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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소연우의 과거 (21/28)

21. 소연우의 과거

  고등학생의 소연우는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지금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그저 조금 동글동글하고 키가 작으며 어렸을 뿐이다.

 그때에도 그는 고등학생 치곤 상당히 시크했으며, 사람들에 무감했다. 서울대 법대를 지망할 만큼 성적이 우수했지만 뭐든지 자신이 필요한 만큼만 능력을 발휘했고 그 외에는 일체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학교에서도 그를 향한 기대가 컸다. 소연우 입학 전담반을 꾸릴 정도로 서울대 법대에 입학시키기 위해 그의 모교에서는 부던히도 노력했더랬다. 만에 하나 그가 스트레스를 받거나, 도중에 나쁜 길로 빠지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했다.

  학교 입장에서야 금이야, 옥이야 예쁜 학생이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또래 사이에선 왕재수로 통했다. 무슨 말을 해도 응, 아니로 일관했고 그 나이 또래면 열광하는 게임도 할 줄 알기는 커녕 관심 자체가 없었다. 여자에 대해서도 같은 맥락이다 보니 몇몇 애들을 중심으로 괴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소연우가 이태원의 게이바에 들락거리는 걸 본 적이 있다.

 3학년 선배한테 고백을 받더라. 돈으로 박아줄 남자를 산다더라.

 등등. 확인도 되지 않은 갖은 유언비어가 퍼졌다. 학교에서도 그 소문을 접하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연우는 교장실에 불려가서‘네가 동성연애에 관심이 있다던 게 그게 사실이냐.’는 질문을 받고 나서야 그런 소문이 떠돌고 있다는 걸 알았을 뿐이다.

  당연히 있지도 않은 관심을 있다고 말할 소연우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아니오.’라고 짤막하게 대답한 말을 교장은 믿었고 일은 그렇게 흐지부지 되는가 싶었다.

 그랬는데. 그가 모르는 곳에서 아주 질이 나쁜 내기가 오가고 있었다.

 “제가 흥분할 줄 모른다고, 흥분시키는 아이는 내기에서 이겨 돈을 받는다…. 뭐 그런 내기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담담하게 말하지만 그때는 제아무리 소연우라고 해도 놀랐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안면도 없는 남자들이 선배랍시고 강제로 체육창고 같은 곳으로 끌고 갔다. 돌려 말할 줄 모르는 연우는 그 자리에서 몇 대인가를 맞았고, 억지로 바지를 끌어내려져 성추행을 당했다.

 그도 사내이다 보니 처음 몇 번 정도는 타인에 의해 흥분을 하게 됐다. 싫어도 만지니까 흥분됐다. 흥분하는 걸 보니 게이가 맞다며 더럽다고 팼다. 그리고 또 불러냈다.

 그러는 동안에 연우는 스스로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점차 발기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발기를 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고 또 맞았지만 차라리 발기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자신을 더럽다고 생각하진 않을 수 있었으니까.

 소연우가 발기 부전이다. 라는 소문이 퍼지자 한동안은 또 그걸 확인해보겠다는 녀석들 때문에 곤혹을 썩었다.

 이것도 얼마가지 않아 끝나겠지. 라고 생각했던 대로 상대가 별 저항도 하지 않자 그 나이 또래 애들이 다 그렇듯 쉽게 흥미를 잃고 떨어져 나갔다.

 ‘이제 자유다.’

  그때 소연우에게 든 생각은 그것뿐이었다.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가 학교, 집만 배회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건 정말 입시 공부 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한 선배를 만나게 됐습니다. 학교에서 진행하던 스터디에서 만났던 분인데, 평소에 절 무척 잘 챙겨주셨습니다. 하교도 같이 하고, 같이 CD를 사러가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그 놈이 했어? 한 거야?”

  대체 그 놈한테 무슨 짓을 당한 거냐며 피형욱은 지치지도 않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얼굴은 기억나냐는 둥, 이름이 뭐냐, 키나 인상착의 같은 걸 말해봐라 떠벌거리는 그에게 연우는 고개를 저어버렸다.

 “기억나는 건 없습니다. 그랬더라면 어쩌면 편했을 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하교하던 길에 그 선배가 골목으로 저를 밀어붙이고, 그러더니―.”

 “그러더니?”

 “……구강, 성교를 하셨습니다.”

  오럴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굳이 구강성교라는 정식 명칭을 사용하는 것조차 참 비뇨기과 의사스럽다.

 형욱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지도 못하고 연우는 시선을 돌렸다.

 끝난 것 같았던 내기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내가 해줬으니 너도 해줘야 하지 않겠어?’

  그는 싫어하는 연우의 손을 억지로 끌어 잡고 자신의 것을 쥐게 만들었다. 그리고 선배는 처음부터 내기에 이기기 위해 친한 척 접근한 것이라며 오럴 끝에 결국 토정한 연우의 얼굴에 자신의 정액을 묻히고 증거로 사진까지 찍었다.

 선배는 재미일 뿐이니 별로 자신을 원망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 일은 무감한 연우의 마음에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 뒤로 연우는 학교에 말해 스터디를 나가지 않았다. 고민을 하다가 큰 형, 연호에게 부탁해 졸업할 때까지 운전기사가 등하교를 시켜줬다. 도중에 몇 번인가 그 선배가 말을 걸려고 했던 것 같지만 기억에 없는 것으로 보니 무시했던 것 같다.

 입시 목표를 바꾸게 된 것도 같은 때다. 느닷없이 서울대 법대에서 진로를 바꿔 서울대 의대로 전향하겠다는 말에 학교는 당황했지만 어차피 같은 서울대니 상관없지 않겠냐는 다소 두루뭉실한 반응을 보였다. 반면에 집에서는 난리가 났었다.

 친척들은 물론, 바로 위의 형들도 서울대 법대를 나와 이미 신임 판검사를 하고 있던 중이라 그들은 마지막 남은 막내까지 법조계로 들어오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집안에 판사와 검사가 있으니 변호사만 있으면 완벽한 3종 세트가 될 거라는 연한의 우스갯소리도 사라졌다.

 갑자기 의대를 가겠다는 소리에 연호는 어린 연우를 앉혀놓고 신성한 대한민국 법전을 두고 물었다.

 ‘의대에 가서 뭘 하려고.’

 ‘비뇨기과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퍼억!

 그 자리에서 성인 남자 팔뚝보다 두껍다는 법전으로 이마를 맞은 연우는 몇 바늘을 꿰매야할 정도로 심한 상처를 입었다. 평소라면 형이어도 엄연히 웃어른이라며 고분고분 말을 따르던 연우가 그때부터 자신의 뜻을 펼치며 그대로 행진하기 시작하자 막내 동생의 진로를 멋대로 이리저리 꾸몄던 연호는 처음엔 무척 당황했었다.

 ‘그래봤자 얼마 가지 않겠지.’

  원래 법조계를 준비하고 있었으니 얼마 준비하다 못해 흥미를 잃을 거란 기대와 달리 소연우는 당연하게도 서울대 의대에 척. 붙고 말았다.

  그런데 대학에도 붙었겠다, 조금 마음이 편해졌던 연우의 졸업식에 선배는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어찌됐든 학교 입장에서는 서울대 입학생을 1명 배출한 것이었으니 경사가 났다. 비록 계획했던 서울대 법대는 무산됐지만 무사히 대학에 입학하게 된 연우의 가족들이 담임선생님께 인사를 드리러 간 사이 그는 연우에게 줄 것으로 추정되는 장미 꽃다발을 들고 교문 앞에 서있었다.

 ‘소연우, 축하한다.’

  너라면 할 줄 알았다며 평소의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지만 연우는 더 이상 그의 미소가 싱그러워보이지도, 존경하는 선배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모른 척 하고 지나갔습니다. 꽃도 받지 않았고 선배도 절 다시 붙잡지 않았어요. 그러고 그냥 끝났습니다.”

  별 이야긴 없어요.

 지금이야 심드렁하게 말하지만 한창 예민할 나이에 그가 겪었을 상처를 생각하면 그냥 흘려 넘길 수 있는 이야기가 못 됐다.

 충격을 받고 누가 옆에 있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떡, 입을 벌린 채 이야기를 듣고 있던 피형욱이 갑자기 성큼성큼 다가와 연우를 품에 와락 끌어안았다.

 “잠…!”

 “그걸 왜 이제 말해 멍청아!”

 “멍청하지 않은데요.”

  그 와중에도 꼬박꼬박 착실하게 말대꾸를 하는 게 미워서 형욱은 일부러 더 품안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바보야…. 이럴 때는 그냥, 고맙다고 하는 거야.”

  대신 화내줘서 고맙고, 걱정해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거라고. 피형욱은 강하게 끌어안은 품안에 조용히 속삭였다.

  어린 소연우는 얼마나 괴로웠을까.

 아무리 똑똑한 소연우라고 해도 그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할 만큼 당혹스럽고, 창피하며, 상처가 되는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어리다고 해서, 괜찮은 일은 없다. 어린 나이에 그냥 마음에 안 들어서 재미로 해봤다는 말도 당한 사람에겐 아무런 위안이 되어주지 못한다. 오히려 더 큰 상처로 남게 된다. 그것을 연우는 여태 혼자 안고 있었던 것이다.

 혼자서 참고, 또 참았겠지. 별 거 아니라고 하면서. 여자도 아니고, 성추행과 폭행을 당하기는 했지만 성폭행까지는 아니었으니까. 그러니까 괜찮은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몸은 그 생각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 증거로 이미 16년은 지난 일로 아직까지 성기가 발기하지 않게 되고 비뇨기과 의사이면서 남자로서, 발기하는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된 거다.

 “그냥 고맙다는 말이면 돼. 소연우.”

 “……고맙…다….”

  정말 그 말이면 되는 걸까.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양팔에 안긴 어깨를 만지며 연우는 조용히 형욱의 말을 따라했다. 고맙다, 고맙다…. 몇 번인가를 의미 없이 반복하던 그가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고맙, 습니다…. 형욱씨.”

 “그래.”

  목소리에 물기가 섞인 걸 뻔히 알면서도 형욱은 말없이 떨고 있는 등만 두들겨주었다. 신기하게도 그의 손이 한 번씩 등을 훑을 때마다 그간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쌓아두기만 했던 답답한 감정들이 쓸려 내려가는 것만 같았다.

 “걱정해주셔서, 대신 화내주셔서…. 아직도 자기 일처럼 생각해주셔서……. ―고마워요.”

  고해성사 같던 감사 인사를 끝으로 연우는 아예 넓은 어깨에 고개를 파묻고 들지 않았다. 간간히 어깨가 떨리는 걸로 봐서 혹시 울고 있는 건 아닐까. 조심스런 추측만 할 뿐이다.

 ‘그러고 보면 들어선 안 될 것들을 너무 많이 듣고 본 듯한데….’

  뒤늦게 정신을 차린 조직원들이 후다닥 객실을 빠져나갔다. 지금이야 소연우를 달래는 데에 정신이 다 팔려있긴 하지만 만약 형욱이 그들이 아직도 객실의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걸 아는 날엔 바로 신체검사 후 소연우 비뇨기과로 끌려가게 될 지도 모르니까.

 기척을 숨기고 조직원들이 빠져나가는 사이, 감정이 격해졌던 연우도 조금씩 평정을 되찾았다. 피형욱은 머쓱해졌는지 시선을 피하려는 그에게‘아유, 우리 연우. 다 울었어? 어디 봐봐. 딸기코가 됐네~.’라며 개구지게 놀렸고, 연우도 그만 놀리라고는 해도 그렇게 싫은 표정 같지 않았다.

  어느새 둘이 객실에 남아있던 또다른 사람, 소연호는 깡그리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장난을 치고―적어도 연우는 장난이 아니었지만―, 투닥거렸다.

 “…극복, 한 거냐.”

 “예?”

  잠시였지만 큰형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연우가 당황하며 돌아봤다.

 “아니다. 별 거 아니야.”

  제법 충격을 받았는지 안색이 좋지 못하다. 아무리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해도 형제는 형제. 연우는 자꾸만 화해의 섹스를 하자며 몸을 더듬는 피형욱을 후려치던 손을 내려놓고 그에게로 달려갔다.

 이제 보니 검찰청에서 바로 온 건지, 그는 아직 정장 차림이다. 평소의 빈틈없는 성격처럼 빳빳하던 바지에도 꼬깃꼬깃한 주름이 잡혀 있다.

 “…형님….”

  잠시 할 말을 잃은 연우에게 손을 들어 보인 연호는 흘러내린 안경을 고쳐 쓰며 미간을 눌렀다.

 조금 피곤했던 것뿐이야. 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늦둥이 막내 동생을 가장으로서, 맏형으로서 가장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일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남자가 다 팽개치고 단번에 상하이의 조폭 소굴까지 혈혈단신으로 찾아왔겠지.

 한 번도 크게 의식해본 적 없던 큰형의 마음이 갑자기 연우에게 찾아왔다.

 “형….”

  얼마 만에 존칭을 빼고 불러보는 걸까.

 연호 역시 예상치 못했는지 처음엔 괜찮더니 점점 얼굴에 홍조가 번졌다.

 형, 한 번 더 소리내어 부르자 그는 더 이상은 견디지 못하겠던지 일단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쉬어야겠다며 방을 나가려 했다. 뒤에서 있던 형욱이야 올레를 외쳤지만 연우는 그를 붙잡았다.

 지금이 아니면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고마워, 형.”

 “……당연한 일이다. 아버지가, 널 부탁하셨었으니까.”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비명횡사하셨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부친을 하늘로 떠나보내면서 소연호는 마치 돌아가신 아버지가 어린 연우를 자신에게 맡긴 것만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바로 아랫동생인 연한에게보다 더 엄하게 그를 대했고, 혼자 되신 어머니보다 동생을 더 살폈다. 누군가를 만나 연애를 할 때에도 그는 수첩을 뒤적이며 연우의 대학 MT비를 입금하곤 했고, 종종 시간을 내어 인천에 있는 비뇨기과 주변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슬쩍 잘한다고 인천지검 동기들과 만날 때면 나름 홍보를 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마냥 어린 줄만 알았던 동생이 어느새 서른둘의 나이가 되어 이제야 그를 자체로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하니, 제 아무리 소연호라고 해도 가슴이 울컥거렸다. 비록 동성에, 그가 가장 싫어하는 조폭 보스지만 아버지를 죽이고 태어났다는 생각에 어릴 적부터 웃음이 적던 동생에게 웃음을 터뜨려줬으니 조금쯤 봐줄 의향은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고소는 할 거다.”

 “엥??”

  그 이야긴 아까 끝난 거 아니었어?

 피형욱이 뒤에서 깨끗하게 이야기를 끝내고 가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연호는 성큼성큼 자신의 객실을 향해 돌아갔다. 어서 이 구깃구깃한 양복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시 본래 소연호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쳇. 뭐야. 산통 다 깨놓더니.”

  꽁하기로는 대한민국 최고라고 해도 서운해서 꽁하고, 꽁하다고 해서 꽁할 피형욱은 잔뜩 입술을 내밀었다.

 반면에 연우는 그들이 들이닥치기 전까지 자신이 어떤 위협에 처해있었는지를 기억하고 잽싸게‘우리 연우’부터 치웠다. 저걸 보면 머리에 든 건 고추뿐인 저 남자가 무슨 짓을 할 지 장담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말이야, 선생. 나 하나 뭐 물어봐도 되나?”

 “뭐를요.”

  분주히‘우리 연우’를 숨기고 있던 연우가 지레 놀라 화들짝 몸을 떨었다.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눈치채지 못하고 기다란 카우치에 몸을 뉘이고 무의미하게 TV 채널을 돌리며 형욱이 말했다.

 “그 왜 있잖아. 핸드폰. 그거 암호 걸려있었을 텐데 어떻게 풀었어?”

  백건우가 가져갔던 조직원들의 핸드폰에는 하나같이 암호가 걸려 있었다. 생각해보면 연우는 핸드폰이 없어지기 전에도, 사진을 모두 지웠다고 했었다. 그땐 그것에 화를 내느라 몰랐는데 연우가 한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암호를 해제했다는 이야기가 됐다. 한 개도 아니고 몇 개나.

 설마 좀 천재?

 이미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무사히 개인 병원을 가지고 있을 정도면 세계적인 천재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우수한 두뇌를 갖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텐데. 모르는 쪽이 오히려 둔재다.

 “쉽던데요, 암호. 못 푸는 쪽이 더 이상했습니다.”

 “어떻게 그걸!”

 “조직 이름이 단사파잖습니까. 그래서 혹시 4444가 아닐까 생각했을 뿐입니다.”

  눌러놓고도 정말 그럴 줄은 몰랐죠. 라고 말하며 당시의 기억을 떠올린 듯 불쾌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형욱은 그것만큼 단사파라는 조직에 어울리는 비번이 어딨냐고 반론을 제기했다.

 “안되겠어. 당장 애들한테 비번을 바꾸라고 해야지. 이렇게 풀기 쉬워서야 원.”

  게다가 사진까지 날려먹었지 않은가.

 그걸 생각하면 아직도 분이 터지고 그 놈의 핸드폰 때문에 백사 대가리 백건우 놈에게 피 같은 연우의 입술을 뺏긴 것을 생각하면―단 한번이라도 뺏긴 건 뺏긴 거다.― 아직도 열불이 터져 미칠 것 같았다.

 “내 피 같은 사진들.”

  중얼거리며 분해하는 형욱을 보고 연우는 무심코 말했다.

 “사진이라면 아직 있을 걸요.”

 “뭣?!”

  마치 보물은 지금 당신이 자빠져 있는 카우치 밑에 있답니다. 라는 말을 들은 사람마냥 형욱은 누워있던 자리에서 발딱 일어났다.

 그 기세에 오히려 눌려 주춤하는 연우를 붙잡고 본격적인 닦달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의 핸드폰인데 지울 수 없다고 생각해서 내버려뒀다는 심플한 대답에 형욱은 그를 석방시켜주었다.

 “이 놈드을~~~!!!”

  당장 핸드폰부터 다시 압수해야겠다며 조직원들이 고스톱 판을 벌이고 있는 객실로 뛰어든 지 얼마 되지 않아 옆방에선 끔찍한 비명이 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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