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영업 방해
경첩 소리가 유난한 문을 열자 삐걱―하고, 투덜대며 특유의 암모니아 냄새가 코끝에 진동했다.
“새끼들. 군기가 빠져선.”
투덜거리며 퍼스너를 내린 형욱은 다리를 어깨 넓이만큼 벌리고 섰다. 흔하디흔한 하얀 화장실 타일을 응시하며 아래를 향해 집중하려던 차에 화장실 칸이 열렸다.
“엇…….”
“여어―.”
“안녕하십니까, 보스.”
“그래.”
닉네임 도끼의 눈이 탈출로를 확보하기 위해 광속으로 움직였다.
“…….”
“…….”
어느 하나 움직이지도 못하고 조용히 서로만 마주보는 시간이 지속됐다. 쪼르륵, 물이 흐르는 소리가 나자마자 도끼가 칸을 박차고 튀어나왔다. 동시에 형욱도 움직였다.
“살려주십시요! 살려주십시요! 살려주십시요!”
“살려줄지 말지는 일단 까고 볼 테니까 일단 거기 섯!!!”
“안 됩니다! 이건 남자의 자존심이라고요!”
“너 해바라기 꼈지!!!”
헉! 진짜 귀신!
이걸 끼면 삽입할 때 여자들이 확 넘어간다는 말에 넘어가 귀두 부근에 오돌토돌한 해바라기 꽃잎 같은 모양의 링을 끼워둔 도끼는 지레 겁을 먹고 걸음아 날 살려라 줄행랑을 쳤다. 이걸로 득을 본 적이 몇 번인데!! 이렇게 이별할 수는 없다며 필사적으로 도망을 치는 바람에 잡힐 듯 잡히지 않으니 바짝 약이 오른 형욱의 눈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막 모퉁이를 돌아 출입구에 다다른 도끼의 발걸음에 더욱 힘이 실렸다. 잡히면 끝이다. 이게 어떻게 낀 건데. 부작용으로 재수술만 세 번을 했다. 절대로 이대론 못 잡혀!
도끼가 드디어 축지법의 반열에 오른 참이었다. 때마침 차를 대고 건물 안으로 들어오려던 쌍칼과 맞닥뜨렸다.
“어!”
“쌍칼, 저거 잡아!!”
“사람한테 저게 뭡니까!”
울먹거리는 주제에, 할 말은 다 한다. 그러나 순식간에 쌍칼과 그 밑의 부하들로 인해 퇴로가 막히고 말았다. 나도 당했으니 혼자 죽을 수는 없다는 투철한 물귀신 정신에 입각한 행동이었다. 사방이 검은 깍두기 동료들에게 막힌 도끼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곧 해일처럼 높이 뛰어오른 형욱이 그를 덮쳤다.
이러지 마세요! 처녀처럼 외치며 필사적으로 사수하려던 바지가 휙 내려갔다.
과연.
남녀 가리지 않고 다 따먹는다는 보스다운 깔끔한 솜씨였다. 절대 씹히거나 도중에 올라가는 일은 허용하지 않고 단번에 내려간 바지와 속옷이 숨기고 있던 고추를 툭 오픈했다.
“찾았다.”
그야말로 공포 영화였다.
? ♂ ?
“이 간호사. 급여 넣었어요.”
어머!
행복한 비명이 접수처에서 터지더니 마우스와 타자 소리가 정신없이 들렸다. 아마도 벼르고 있다던 명품 백을 지르는 거겠지만.
“후…….”
저도 모르게 터진 한숨 소리에 놀란 연우가 인터넷 뱅킹 창을 닫고 책상에 쌓인 차트로 눈을 돌렸다.
개원하고 현재까지 1년 동안 시술했던 횟수보다 최근 1달 사이에 시술한 횟수가 더 압도적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보통은 병원이 이제야 잘 풀려가고 있다는 이야기니 기뻐하는 게 맞아야 할 텐데…….
“의사 선생! 나 왔다! 2, 2, 3으로 타와!”
마치 제 집인냥 오늘도 죄 없는 어린 양―이라기엔 너무 큰―을 하나 붙잡고 질질 들어오는 저 유기농 초고급 깍두기만 아니었더라면.
남자는 정확히 1달 전 비가 오던 날 양 뺨에 사이좋게 칼자국이 있는 저렴한 깍두기를 대동하고 소연우 비뇨기과의 문지방을 처음으로 밟았다. 보형물 제거술은 하지 않는다는 소연우를 간단히 협박, 시술을 끝낸 뒤 두 번 다시 볼 일 없을 거라는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는 유리문을 밀고 나가려다 말고 돌아보며 말했었다.
‘또 봐.’라고.
그게 이 의미였나.
연희동 집에 부탁을 하는 한이 있어도 돈을 빌려서 병원 터를 옮겼어야 했던 게 아닌가 잠시 고민도 해봤지만 이내 고개를 젓고 말아버렸다. 어차피 그 정도로 애착을 갖고 있는 직업도 아니고, 그저 이 간호사 급여나 챙겨줄 정도만 되면 된다. 보형물 제거술이 주 종목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어차피 심각한 것은 일반 개인 병원에선 할 수 없으니 대학병원에 소견서를 써서 보내주면 끝.
‘하지만 이건 좀 귀찮긴 해.’
피형욱의 주문대로 커피 둘, 프림 둘, 설탕 셋을 넣은 커피를 타 휘휘 저어 그의 앞에 놓아주면서 연우는 조금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도 사람이니 돈을 버는 건 싫지 않다. 하지만 다른 ‘정상적인’ 손님은 들어올 수 없게 뻔질나게 소형 깍두기들을 데리고 병원을 들락날락거리는 것은 이른바 영업 방해였다.
아무리 인천 바다를 중심으로 조폭들이 많아, 강남에 이어 비뇨기과의 제2 메카라고는 하지만 소연우 비뇨기과는 그런 노른자위 땅에 있지도 않았고, 주택가 주변의 조그마한 번화가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주요 고객층은 인근의 소위 조금 노는 아저씨들이 고작이었다.
아내 몰래 바람을 피우고 싶다던가, 나이 80에 20대 때처럼 바짝바짝 세우고 싶다며 상담을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을 뿐 그 외에는 거의 시골 다방보다 더 못할 정도로 파리가 유일한 손님.
그런 곳에 느닷없이 조폭들이 드나들기 시작했으니…….
척 보기에도 나 가로세로높이 5cm인 정사각형 깍두기야, 하고 광고하고 다니는 검은 외제 승용차를 서너 대씩 몰고 나타나 경호랍시고 비뇨기과 주변 건물을 2중, 3중으로 에워싸며 담배를 뻑뻑 피워대고 있으니 굳이 연우의 병원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주변 건물에 입주한 상점으로부터 슬슬 항의를 받던 중이었다. 영업 방해라면서.
그런 속사정을 알 리 없으니 커피를 타오라는 둥 다방 레지처럼 취급하며 몇 안 되는 소파를 혼자 떠억 하니 차지하고 옆에 앉아보라고 꼬시고 있는 거겠지만.
“하아.”
노골적으로 한숨을 크게 내쉬는 바람에 형욱의 등장으로 바짝 긴장한 나머지 명품 백의 결제 완료도 누르지 못하고 있던 이 간호사가 숨을 멈췄다.
“의사 선생 고민이라도 있어?”
고민의 원흉이 그렇게 물어오면 할 말이 없다. 게다가 말한다고 해서 들어줄 위인으로 보이지도 않고.
“없습니다.”
“그럼 가슴 병 있는 거 아냐? 어디 봐봐. 내가 진찰해주지.”
“싫습니다. 병도 없고요.”
“에에~. 이제 1달 된 사인데 아직도 그렇게 퍽퍽하게 굴 거야?”
자꾸 1달된 사이라느니, 생긴 건 사막 여우처럼 귀엽게 생겨놓고 애교를 안 떠는 건 사회에 큰 해라느니 쓸데없는 소리나 하는데 애당초 소연우와 피형욱은 단지 민폐 손님의 보호자와 의사의 관계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생각해봐도 자신이 뭔가 그의 빈정을 상하게 한 적은 없는데. 이건 아무리 타인에게 무심한 소연우라고 해도 뻔히 알 수 있을 만큼 태클 작렬이다. 축구 게임이었다면 차라리 심판이 나서서 경고든, 퇴장이든 먹여줬을 텐데. 인생이란 그런 심판이 없으니 참 힘들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뭐 기회 없나―. 두 눈을 희번덕거리는 형욱을 피해 진찰실로 환자를 안내했다. 대부분 피형욱이 데려오는 환자가 다 그렇지만 이번엔 정말 죽을상을 짓고 있었다. 그렇게 빼기 싫은 건가. 싶을 정도로.
“성함과 나이를 알려주시겠습니까?”
“뭐야, 선생. 나한텐 그런 것도 안 물어봤잖아.”
“차트를 작성해야 하니 여쭤보는 것뿐입니다.”
컴퓨터에 의사랑 프로그램을 띄워놓고 타이핑을 준비하고 있던 연우에게 기회를 놓치지 않고 또 태클이 날아왔다. 그 와중에도‘도끼’라고 적으면 안 되냐며 짭새에게 병원 진료 기록이 들키면 안 된다는 둥, 헛소리를 늘어놓는 환자 사이에 낀 채로 연우는 꿋꿋하게 차트를 작성했다.
“난 또. 대놓고 바람이라도 피는 줄 알았잖아.”
멈칫. 다른 부분에선 별로 반응을 하지 않을 수 있는데 가끔 저런 표현을 할 때면 제아무리 소연우라고 해도 조금은 빈정이 상했다.
피형욱은 이따금 소연우를 상대로 정부인 것처럼 대하는데, 여러 차례 이야기하지만 그들은 실상 아무런 관계도 아니다. 그가 보호자를 자처하지 않고, 엄한 조직원들 바지를 내려서 강제로 끌고 오지만 않았어도 만날 일이 없는 사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저렇게 사람을 무슨 초콜릿처럼 달달하고 은밀한 관계에 놓인 사람처럼 대할 때면 본능적인 소름이 돋아 그대로 그가 가장 싫어한다는 보형물 삽입술을 시술해주고 싶은 욕구가 불끈불끈 솟았다.
물론 그때마다 저 남자라면 시술하기 전, 촉진하기 위해 바지를 내리는 것만으로 온갖 망상을 다 하며 바로 못된 짓을 할 것 같아 실행에 옮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진찰대에 누워보시겠습니까? 바지는 허벅지까지만 내리시면 됩니다.”
의례 하는 질문들을 한 뒤엔 촉진이 이어졌다. 이것도 두, 세 번째 환자를 진료할 때였나. 언제나처럼 보호자를 핑계로 진찰실에 끼어들어와 있던 형욱이 촉진 정도는 사람 하나 더 고용해서 쓰면 안 되냐며, 원장의 가오가 없다는 둥 헛소리만 늘어놓다가 결국엔 자신이 애하나 여기에 박아주겠다는 엄한 실천을 하려고 해 간신히 말린 바가 있었다.
지금만 해도 영 못마땅한 눈으로 연우의 옆에 서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는 폼이 마치 마누라 못 잡아먹어 안달인 남편처럼 보였다.
피형욱과 부부 관계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보아하니 아직 미혼인 것처럼 보이는데, 그와 결혼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도 아마 고생 꽤나 하지 않을까. 평소 취미에도 맞지 않는 걱정이 들 정도다.
“어…, 어때요, 선생님. 심하나요?”
“성관계를 가지실 때 통증이나 다른 불편한 점을 느끼신 적이 있습니까? 보형물이 이동한다던가.”
“아뇨. 그, 런데 딱 한 번 매독에 걸린 년이랑 한 적이 있어서 그때 좀 염증이 났었는데….”
“매독? 누가.”
매독이라는 말에 형욱의 귀가 뾰쪽해졌다. 직업적 특성상 아무래도 클럽이나 바 같이 몇 군데 관리하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성병은 무척 위험한 존재였다. 하나가 걸리면 순식간에 전염되니까 병에 걸린 여자는 바로 격리를 해야 했다. 괜히 감싸준답시고 쉬쉬했다간 영업에 지장이 컸으니까.
도끼 역시 형욱이 어떤 부분에 대해 민감하고 걱정하는지 알고 있었던 듯 별로 거리낄 것도 없이 아무렇지 않은 어투로 말했다.
“왜 있잖아요. 메리.”
메리면 개 이름 아닌가.
같은 남자의 성기를 손으로 조물락대며 연우는 뽀삐나 마리 같은 개 이름들을 생각했다.
“아아. 그 년―. 야. 넌 상대를 골라도 순 그런 창녀 같은 년을 골라, 고르길.”
“창녀 맞잖아요. 몸 파는 기집애가 창녀지. 성년가.”
“하긴 그렇긴 해.”
키득거리는 꼴이 영락없는 건달이다.
하긴, 건달은 건달이지. 촉진을 마치고 고무장갑을 벗어 트레이에 올려놓은 뒤, 차트에 모양과 촉진에 대한 소견을 기재하며 연우는 최대한 둘의 대화를 뇌에 담아두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소연우는 의사답게 자신의 건강을 잘 챙기는 편이었는데, 건강관리를 위해 그가 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필라테스였다. 보통 우리나라에서 남자들이 꺼려하며 기피하는 운동이긴 하지만 요가의 일종인 필라테스는 정신이나 육체적으로도 좋아 선호하는 것 중 하나였다. 평소엔 유산소 운동으로 먼저 가볍게 몸을 풀어준 다음, 필라테스 1시간 반 정도를 하고 헬스를 하고 집으로 귀가해 간단한 스트레칭을 마치고 잠든다. 그런데 요즘엔 그것이 조금 바뀌었다. 원래는 러닝머신을 30분 정도만 하는데 정신을 차려보면 시간을 맞춰놓고 시작하지 않는 바람에 그것만 1시간 째 하고 있고, 시간에 쫓기듯 다른 운동은 하지 못하고 필라테스로 가면 좀처럼 집중을 하지 못해 자세가 좋지 못하다며 선생에게 여러 번 지적을 받았다.
달라진 건 운동만이 아니다.
귀가를 해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컴퓨터를 조금 살펴보고 잠드는데, 요즘엔 차보다 맥주를 하는 일이 잦아졌다. 숙면을 취하지 못해 매일이 피로하고 무엇보다 꿈에서 자꾸 누군가에게 쫓기는 꿈을 꿔서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아마도 이 모든 원흉은 한 명일 테지만 소연우는 굳이 입 밖으로 내어 말하지 않았다.
원래 한 번 의식을 하는 게 어려울 뿐이지, 했다 하면 자꾸 관심이 가는 게 사람 마음이다. 그로 인해 마음이 어지러워지고 주변이 바빠진 거라면 그냥 그 상태로 두고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 정신 건강에 더 이롭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냥 두면 모두 스쳐 지나가리라.
소연우의 신조였다.
“어이, 의사 선생. 내 말 듣고 있어?”
잠시 딴 생각을 했던 탓일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피형욱이 코앞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간발의 차로 몸을 돌렸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입술이 맞닿는 불상사가 발생할 뻔 했다.
형욱 역시 목적이 그것이었던지 아쉬운 입맛을 다시며 괜히 뒷머리를 긁적댔다.
“이 녀석 바로 수술할 수 있지? 좀 서둘러줘. 이거 데리고 이번 주말에 오사카 갔다 와야 하거든.”
달력으로 날짜를 확인한 연우는 주치의로써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출장은 아직 무리일 겁니다. 시술 부위가 터질 수도 있으니까요.”
“터져…! 큭! 야. 너 꼬추 터지면 완전 웃기겠다. 큭큭….”
“우, 웃지 마십시오, 보스! 남의 일이라고 참…….”
이젠 아예 대놓고 울 기세다.
피형욱은 평소 부하들을 갖고 노는 게 취미인지 병원에 올 때마다 쓸데없는 겁을 준다던가, 성기 모양을 가지고 놀린다던가 해서 눈에서 눈물을 한번은 빼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았다. 정말 악취미인 남자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젠 제법 소형 깍두기들에게 면역이 된 이 간호사에게 평소처럼 수술 준비를 부탁하고 연우는 환자를 대동하고 엑스레이실로 향했다. 엑스레이 촬영 시엔 금속 제품을 착용하고 있으면 방해가 되므로 도끼에게 작은 트레이를 건네고 연우는 엑스레이 기계를 작동시켰다.
“어이, 의사 선생.”
“무슨 일이십니까? 엑스레이 실엔 들어오시면 안 된다고 전에 이야기를….”
“그런 고리타분한 이야기 말고. 정말 괜찮아?”
예?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에 연우는 잠시 당황했다. 보통 일상적인 안부 인사는 사람과의 사이에서 흔한 것이지만 누누이 언급하다시피 피형욱과 소연우는 그런 관계도 아니고, 더군다나 남 괴롭히는 게 취미고 특기인 형욱이 타인을 상대로 안부를 묻는 쪽이 오히려 더 이상하게 여겨졌다.
당황한 것을 알았는지 형욱도 멋쩍은 얼굴로 뒤통수를 투박하게 긁적였다.
“아니, 그러니까…. 요새 선생, 안색이 별로라서. 우리가 힘들게 하고 있나 하고.”
“……별로 힘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우리들이 자주 들이닥치고 있잖아? 일도 배로 늘었을 거고 게다가….”
위치를 잊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가슴이 느리게 콩닥댔다. 연우는 들키지 않도록 차트 사이로 손을 넣어 가슴팍을 짚었다. 가슴이, 정말로 뛰고 있었다. 콩닥콩닥. 가볍고 빠르게.
“전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하지만 엑스레이 촬영이 늘어났잖아. 그거 남자 거시기에 엄청 안 좋지 않아? 요새 선생 모닝 텐트 꾸준히 잘 치고 있어? 경사가 낮아졌다던가, 무너졌다던가 하지 않아? 원래 의사들은 자기 병 못 고친다고. 뭐하면 내가 촉진해줄 수도 있는데.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나도 여기 1달 동안 들락거렸더니 이제 뭐가 어떤 건지 알 것 같다고. 어때. 한번 맡겨보는 게.”
“……싫습니다.”
나가주세요.
연우는 망설이지 않고 형욱을 엑스레이실 밖으로 밀고 문을 닫아버렸다. 다시 짚어본 가슴은 더 이상 가쁘게 뛰지 않고 평상시와 같았다.
“―그럴 리가 없지.”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이쪽으로 누워주세요. 연우는 능숙하게 벌써부터 겁에 질려 있는 도끼의 거구를 이리저리 눕혀 무사히 촬영을 마쳤다.
“여어. 선생.”
촬영을 마치고 나오는 연우를 반긴 건 대기실을 전세내고 있던 형욱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색의 립글로즈를 바른 이 간호사의 입술이 한껏 나와 있는 것을 보아하니 자리를 비운 그 잠깐 사이에 둘이 또 뭔가 다툼이 있었던 모양이다.
선생이 타주는 커피가 제일 맛있다며 커다란 덩치 값도 못하고 이쪽 사정은 생각도 안하고 막무가내로 등에 매달려 투정을 부리기까지 했다. 졸지에 1달 만에 다방 레지로 전락한 연우는 한숨을 쉬면서도 이 간호사가 마저 수술 준비를 끝마치기 위해 수술실로 도피한 동안 커피를 타야 했다. 이제는 그가 좋아하는 물의 양도 척하면 척 맞췄다.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지, 슬퍼해야 하는 건지.
씁쓸하게 탄 커피를 받아 마시더니 금세 험악하던 미간이 헬렐레 풀린다. 역시. 이 맛이야. 옛날 CF 대사까지 하면서 맛을 음미하고 있는 걸 보니 씁쓸하던 기분도 잊혀졌다.
“커피를 좋아하시나 봅니다.”
“음?”
시원한 걸 좋아하는 입맛에 맞게 얼음을 동동 띄운 아이스커피를 벌컥벌컥 잘도 마신다.
머리가 띵하지도 않나.
차트를 챙기면서 연우는 이미 그가 마시고 남은 종이컵 더미에 잠시 시선을 주었다. 무시하기엔 조금 양이 많았다.
“커피 많이 드시네요.”
“아아. 그렇지. 하는 일이 밤에 주로 있다 보니까.”
내가 좀 밤잠이 많다며 물어보지 않은 것까지 시시콜콜하게 대답한다. 때마침 수술 준비를 끝마친 이 간호사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쓰리 사이즈에 성기 크기까지 알려줄 기세다.
“고마워요, 이 간호사.”
“예? 제가 뭘…….”
“그런 게 있어요.”
여전히 그녀는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 기색이었지만 아무렴 어때. 좋은 게 좋은 거지.
누가 붙잡을 새라 서둘러 차트를 품에 안고 바로 수술실로 향하려던 연우의 몸이 뒤로 홱 돌아갔다.
‘어…….’
벌어진 입술 사이로 딱딱한 뭔가가 쏙 들어왔다 빠져나갔다.
“…….”
“마약 아냐. 비타민이야.”
이 밑에 약국에서 사온 거라며 뭐하면 영수증도 보여줄 기세인 남자를 손을 들어 말렸다. 새콤달콤한 알약의 맛이 입안에서 상큼하게 퍼졌다.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요.”
히죽. 이런 걸로 그렇게 흐뭇하게 웃을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왠지 더 이상 눈을 맞추기가 뭐해진 연우는 수술실의 문을 닫으며 기대섰다.
“원장님?”
이 간호사가 말을 걸지 않았더라면 하마터면 마취를 마치고 안대를 쓰고 침대에 누워 기다리고 있는 도끼를 차가운 수술대 위에 내내 방치할 뻔 했다.
“수술 시작합시다.”
이런 일에 흔들릴 수는 없지.
다시 평소의 소연우로 돌아온 그의 손에 들린 메스가 번뜩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