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
“차별이라니! 외면이라니! 내가 널 얼마나 귀하게 키웠는데! 언제나 가장 좋은 것만 먹이고, 가장 좋은 것만 입혔어!”
“…….”
“난 널 제국 최고의 영애로 키우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했다고! 물론 나도 아이를 키우는 게 처음이라, 부족함이 있을 수 있겠지만……!”
본인도 억울한지, 어머니의 창백한 목에 핏줄이 돋았다.
“벨라디 넌 이런 엄마를 언제나 이해해 줬던 착한 딸이었잖니?! 동생에게 양보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상냥한 누나였잖아!”
“그래서 멜도르와 날 차별한 적 없다?”
“적어도 엄마는 최선을 다했어, 벨라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은 듯, 당당한 어머니의 모습이 가소로웠다. 난 그녀를 비웃으며 중얼거렸다.
“헛소리도 정도껏 해야 들어 주지.”
냉소적인 목소리에 어머니의 눈이 커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 셰넌을 바라봤다.
“아직 멀었나?”
마침 준비를 다 끝냈는지, 셰넌이 눈을 번쩍 뜨며 외쳤다.
“시작한다!”
그 순간이었다.
“꺄아아아악!”
어머니가 생전 처음 듣는 목소리로 악을 질렀다.
그녀는 돌아오는 기억이 괴로운지 몸을 마구 비틀었고, 그제야 자신을 붙잡고 있던 셰넌에게서 빠져나왔다.
풀썩.
어머니가 바닥에 쓰러져 버둥거렸다.
재밌게도 셰넌은 네시아를 살피느라 그런 어머니를 신경도 쓰지 않았다.
셰넌은 심각한 얼굴로 네시아의 상태를 점검하고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하아, 다행이야. 폭주하던 기운이 안정되고 있어.”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며 나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혼자서 괴로워하는 어머니, 아픈 네시아, 아이만 바라보는 셰넌…….
저 셋의 구도가 너무나 익숙했기 때문이다.
‘거슬려.’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그 모습이 보기 싫어, 숨을 헐떡이는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가만히 상황을 관망하던 타우딘이 슬쩍 이쪽으로 다가왔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마탑주 때보다도 짧네.”
“그때는 무리하게 기억을 돌려주지 않았으니까. 그 아이에게 미련도 많았고.”
그사이 기억이 전부 돌아왔는지, 어머니의 발버둥이 멈췄다.
어머니가 겨우겨우 상체를 일으키는 걸 보며, 타우딘이 말을 이었다.
“참고로 미련을 거의 떨치고, 승천을 눈앞에 둔 영혼일수록 아이처럼 순수해진다.”
“그래서 어머니가 처음에 그런 반응을 보인 거구나.”
원래 저 사람이 천진하긴 했어도, 아까는 너무 상황 파악을 못 했지. 덕분에 내 울화통만 터졌고.
“반대로 미련이 많을수록 차분해지지. 그러니 벨라디.”
타우딘이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 해야 한다.”
“……알겠어.”
그렇게 말하는 사이, 어느새 어머니의 근처에 도달했다.
그녀는 일어설 힘도 없는지, 불안정한 자세로 앉은 채 고개를 푹 숙인 상태였다.
시선을 더 아래로 내리니, 어머니의 얼굴 아래로 뚝뚝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젖어 가는 카펫을 응시하며 난 덤덤히 입을 열었다.
“왜 그러셨어요?”
내 목소리에 어머니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반짝이던 그녀의 눈은 흐르는 눈물로 탁해져 있었다.
“도대체 저에게 왜 그러신 거예요?”
내 물음에 어머니가 몸을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파들파들 떨리는 손으로 내 뺨을 감싸려 했다.
불쾌한 접촉에 어머니의 손을 거칠게 쳐 냈다.
“어물쩍 넘어갈 생각하지 말고, 묻는 말에 대답하세요.”
이런 내 행동에도 어머니는 내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릴 적, 그렇게나 원했던 시선이었으나 지금은 별 감흥 없었다.
난 날카로운 눈으로 그녀를 주시했다.
“당신도 여자라는 이유로 부모에게 차별받고, 학대당했으면서……. 어째서 그걸 답습한 거죠?”
어머니를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지만, 언제나 가슴 한구석에 묻어 왔던 질문이었다.
본인도 그렇게 당해 놓고서, 왜 내게 모질게 굴었는가.
어차피 마지막이니, 이에 대한 대답 정도는 어머니의 입으로 듣고 싶었다.
“아니면 아직도 당신은 그런 적 없다, 발뺌할 셈인가요?”
내 말에 어머니는 입을 달싹이다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
“미안해.”
“…….”
“미안해, 벨라디……. 내가, 내가 미쳤던 거지. 정말 미안하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가슴을 쿵쿵 내리쳤다. 마치 모든 걸 후회하듯이.
“전부 내 잘못이고, 내 탓이야……. 미안해, 미안해…….”
어머니는 아까와는 전혀 다른 태도로 본인을 자책하며 연신 사과했다.
돌아온 기억이 그녀에게 무슨 영향을 끼쳤길래, 저런 반응을 보일까?
눈물 섞인 목소리에 심장이 조금씩 울렁거렸다.
난 후우, 깊게 한숨을 쉬며 요동치려는 가슴을 가라앉혔다.
“왜 그랬냐고 묻잖아요. 대답해요.”
그러자 축축한 눈으로 한참이나 날 바라보던 어머니가 메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난 내가 싫었어.”
어머니는 본인의 주먹을 꼭 쥐며, 마치 참회하듯이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내가 여자라서 싫었어. 여자라서…… 가족들에게 구박받고, 맞았으니까. 스스로가 소스라치게 싫고, 역겨웠어. 버림받았을 때는 죽고 싶었지.”
“…….”
“그 사람들이 병으로 죽었어도, 자기혐오가 끊이질 않았어. 그러다 테오도르를 만나 북부를 떠나게 되면서 셰넌이 내 아픈 기억을 가져간 거야.”
“그래서요.”
“믿기지 않겠지만, 난 내 아이를 나처럼 키우고 싶지 않았어. 나와 다르게 행복한 환경에서 아무런 차별도, 구박도 없이 키우고 싶었는데……. 기억이 없어지니까 그때 느꼈던 감정들도 다짐들도 흐릿해져서…….”
어머니가 다시금 세상이 무너진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멜도르가 태어나고 나서는 그 애에게 더 눈길이 갔고, 그게 이상한 줄 미처 몰랐어. 그리고 점점 널 나와 동일시했지. 넌 여자아이니까 신경을 덜 써도 괜찮다고. 멜도르는 아직 어리고 집안을 이끌 아들이니까 더 중요하다고. 내가 무의식중에 배운 건 그런 것밖에 없어서,”
“내가 미우셨군요.”
“!”
“본인이 여자인 것도 싫은데, 애써 낳은 첫째가 여자이니. 얼마나 내가 싫었겠어요.”
“아니야! 그런 거 절대 아니야!”
어머니가 황급히 내게 다가오려 하자, 눈빛으로 그녀의 행동을 저지했다.
내게 오지 못한 어머니는 발만 동동 구르며 서둘러 변명을 이었다.
“멜도르를 편애한 것도 맞고, 네가 나로 보인 것도 맞아! 그래도 널 사랑했어! 넌 나한테 항상 과분한 아이라고, 네가 내 딸이어서 너무 감사하다고 생각했어!”
“그만 하세요. 듣기 거북하니까.”
내 말에 어머니가 입을 꾹 다물었다.
적어도 이번에는 본인의 잘못을 잘 알고 있는 눈치였다. 내게 어떤 짓을 했는지 부정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사과했으니.
그 모습에 작은 위안을 받아 버린 게 짜증이 나,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만약 본인의 기억이 온전했으면, 멜도르와 절 차별 없이 키웠을 거라 자신하나요?”
“당연하지!”
“그래요? 진심으로 날 당신과 동일시하지 않고, 어릴 때부터 보고 들은 것들을 전부 무시한 채, 공평하게 사랑을 줬을 거라고요?”
“……그, 그건.”
“거짓말하지 마세요. 세상에 아직도 성별로 인한 차별이 만연한데, 어머니가 어떻게 그래요.”
“…….”
“당신은 그럴 위인이 절대 아니에요. 기억의 유무를 떠나 내가 여자라서, 그런데 첫째라서……! 어머니는 언제나 내가 억울하고 서러워할 상황을 만들어 냈을 거예요. 당신은 아들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오해야. 정말…… 아니야, 벨라디.”
어머니가 울먹이며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호소에 진심이 느껴지는 게 너무 역했다.
이 감정을 참기 힘들어서, 본심이 저절로 나왔다.
“……차라리 그렇다고 하세요.”
동시에…….
뺨을 타고 따뜻한 물줄기가 주륵 흘렀다.
“벨라디!”
눈앞이 흐릿해진 탓에 어머니의 표정이 보이질 않았다. 의외로 거기서 용기를 얻어, 보다 진솔하게 말할 수 있었다.
“당신이 아들을 더 사랑하고, 그냥 딸을 싫어하는. 그런 가부장적인 사람이라고 말해. 그게 내가 원했던 답이니까.”
“아아…….”
“내게 했던 차별에 거창한 이유를 붙이지 말아요. 그래도 날 사랑했다느니, 잘 키우고 싶었다느니……. 모든 게 기억이 없어져서 그랬다는 핑계, 듣고 싶지 않아요.”
“울지마, 내가 미안해. 엄마가 다 잘못했어…….”
“당신이 그렇게 나오면, 내가 뭐가 돼? 내가 받은 상처는 어떻게 해? 알고 보면 어머니에게도 다 사정이 있었으니, 내가 또 이해해야 하나요? 또 나 혼자만 참고, 연민이라도 느껴야 하는 건가?!”
이렇게까지 스스로에게 솔직해진 적이 없었다.
내 외침이 계속될수록, 어머니가 괴로운 얼굴로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나 때문에 어머니가 힘들어한다는 게, 약간은 통쾌했고 아주 많이 원망스러웠다.
“난 당신이 미워요! 그 어떤 사연이 있었다고 해도! 내 어린 시절을, 내 세상을! 모조리 망가트린 당신이 너무 싫고, 용서할 수 없어!”
여기까지 내뱉은 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며 이성을 찾으려 노력했다.
‘진정하자. 진정해.’
다행히 격하게 치솟은 감정을 내리누르는 건 내가 무척 잘하는 것이었다.
빠르게 마음을 추스른 난 두 손으로 눈물 자국을 닦은 후,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깨끗해진 시야로 보이는 어머니는 너무나도 미련이 가득한 얼굴로 오열하고 있었다.
“네 마음을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네 괴로움을 몰라서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 넌 아무런 잘못이 없어. 내가 나쁜 거야……!”
그동안 벌어졌던 간극을 메우려는 듯, 어머니는 연신 사과를 입에 올렸다.
그러며 아주 조심스럽게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난 살짝 시선을 내려 그녀의 손끝을 바라봤다.
어머니의 몸이 투명해지고 있었다.
“아……!”
내 시선에 본인의 상태를 눈치챈 어머니가 깜짝 놀라 제 손을 매만졌다.
그러자 한 걸음 물러나 있던 타우딘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시간이 다 됐군.”
“……가세요.”
내 말에 어머니가 날 바라봤다. 난 그녀에게 단호히 말했다.
“혹여 죄책감을 들먹이며 제 주위에 서성이지 마세요. 불편하니까.”
“……벨라디.”
그녀는 아주 빠르게 투명해졌다.
어머니는 후회와 자책 섞인 눈으로 날 응시하다, 이 말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졌다.
“솔직하게 말해 줘서…… 고마워.”
아주 상냥하고 다정한 목소리였다.
내가 너무나 사랑했던 순간들처럼.
빌어먹게도…… 다시 눈물이 고일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