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장녀가 육아물에 빙의하면-167화 (168/197)

167.

“……뭐?”

거울이 두 개?

본능적으로 난 셰넌이 뭘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믿는 구석이 있는 듯, 묘하게 막 나가던 황태자.

두 개의 거울. 그리고 회귀.

“설마, 거울이 두 개니까 회귀도 두 번 일으킬 수 있다는 거야?”

“맞아. 이미 한 번 일으켰으니, 이제 딱 한 번 남았어.”

“하, 미치겠네.”

난 이를 아득 갈며, 셰넌을 매섭게 노려봤다.

“정말 쓸데없는 짓만 골라서 했구나.”

“그, 그래도 내 첫 계약자에게 주는 선물인데 하나는 아쉬우니까……. 나도 거울을 만들고 힘을 다 소진해서 새로운 마법을 배워야만 했어.”

셰넌이 조용히 반박했으나,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이유였다.

내가 한심하게 바라보니, 셰넌이 얼른 화제를 돌렸다.

“이번 회귀로 거울 하나는 깨졌을 거야. 만약 네가 또 다른 회귀를 원하지 않는다면, 아직 깨지지 않은 다른 거울을 찾아야 해.”

“그게 놈들의 손에 있으면 언제든 회귀가 일어날 수 있다는 건가?”

“그래, 하지만 그 거울을 내게 가지고 오면 안에 담긴 마법을 없애 줄게.”

“거울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내 말에 셰넌이 말없이 눈을 감았다. 잠시간 집중하던 정령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주 강력한 마력에 보호받고 있어.”

“강력한 마력?”

“……못해도 한 세기에 걸쳐서 구축된 보호막이야. 마치 정령의 둥지같이…… 허락된 자들만 들어갈 수 있구나.”

그렇게 말한 셰넌이 감았던 눈을 떴다.

“내가 알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셰넌의 목소리는 차분했으나, 그 안에 자기는 할 만큼 했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그게 거슬려 난 한쪽 눈썹을 까딱였다.

“애초에 네가 그딴 거울을 두 개나 만들지 않았어도…….”

“……난 네시아에게 가야겠어.”

내 형형한 눈빛을 견디지 못한 셰넌이 스르륵 사라졌다. 난 셰넌이 사라진 자리를 뚫어져라 응시하다 소파에 몸을 기댔다.

‘어쩐지. 놈들이 당당했던 이유가 있었군.’

아직 한 번의 기회가 더 남아서 그랬던 거야.

난 천장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네시아를 통해 반드시 셰넌을 만나야 한다는 직감이…… 다 이것 때문이었나?’

만약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황태자와 케스퍼를 바로 찍어 눌렀다면?

그럼 그들은 다시 회귀를 감행했겠지. 또 누군가의 운명을 비틀면서.

‘그렇게 따지면, 케스퍼를 체포하기 전에 셰넌을 만나서 다행이야.’

지금 황태자는 절벽 끝에 서 있는 것과 같았다.

우리 측이 찍었던 황태자의 추악한 사진과 남은 증거들이 모든 신문사의 1면에 실리며, 제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황태자의 후원을 받던 남부의 신문사도 탈세 혐의로 전부 체포당한 상태고.’

참고로 그 탈세 자료를 마련한 것도 당연히 나다.

하여튼 황태자를 옹호할 수 있는 언론도 전부 사라진 상태였다.

황태자의 든든한 세력이던 패러그린 후작가는 물론, 그 외 다른 가문들도 진작 팔다리를 묶어 놓았고.

‘하지만 케스퍼는 아니야.’

그 새끼가 미꾸라지처럼 각종 악행에서 본인만 쏙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이것도 전부 놈들이 설계한 그림일까?’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케스퍼만큼은 빼돌리고, 언제든 거울을 사용할 수 있게 하려고?

셰넌은 분명 기회의 눈물이 강력한 마력에 보호를 받고 있다고 했다.

한 세기에 걸쳐서 구축된 보호막.

그럼 그 누구보다도 아글라 공작가를 의심 선상에 둬야 했다.

‘예전만 못하더라도 아글라 공작가는 대대로 대마법사를 배출한 가문이니까.’

거기다 케스퍼는 같이 회귀를 할 정도로 황태자의 든든한 우방이니, 남은 거울 하나를 가지고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케스퍼가 지금 당장 거울을 사용하면 어떻게 하지?’

부정적인 생각이 뇌리를 스쳤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놈들이 회귀할 때가 아니야.’

과거로 간다면, 놈들은 처음부터 모든 걸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오늘날 이룩한 것을 전부 버리고 말이다.

‘놈들은 내가 막 태어났을 때 성별을 확인했다고 했어. 그럼 적어도 20년의 세월을 건너온 건데…….’

성질 급하고 욕심 많은 놈들이 그 긴 시간을 다시 견딜 리 없었다. 아마 최악의 상황까지는 버티겠지.

그럼 서둘러 남은 거울 하나를 찾아야 한다는 건데…….

‘케스퍼 아글라……. 아글라 공작가…….’

난 깊은 갈등에 휩싸였다. 아글라 공작가를 조사하기에 누구보다 적격인 인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필 그 인물이 내게 없으면 안 될 친구라는 게 문제지.

‘시온, 내가 어떻게 해야 널 도울 수 있을까?’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질문이 마음속에서 흩어졌다.

***

“이게 누구야~!”

사냥 대회 이후로 오랜만에 만난 모스틴이 환하게 웃으며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걱정하는 친구에게 뒤늦게서야 편지 하나 보낸 무정한 벨라디 앨턴 아니야~!”

“그 대신 길게 썼잖아.”

“이 친구야, 길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모스틴이 원망 섞인 시선으로 날 바라봤다.

“그 편지 기다리는 동안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시온은 만났으면서, 어떻게 나한테는 아무런 말도 없을 수 있어!”

모스틴은 그렇게 말하며 본인의 체중을 온전히 내게 기댔다.

난 묵묵히 모스틴의 체중을 견뎠다. 솔직히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뒤돌아보지 않고 일을 진행시킨 터라 모스틴을 방치하긴 했지.’

난 내 무신경함을 통감하며 쓰윽 손을 올렸다.

“미안하다, 모스틴.”

“그래, 그래. 네 죄를 네가 알긴 아는구나.”

그리고 곧장 모스틴의 등을 내려쳤다.

“으윽!”

“앞으론 무슨 일 생기면 늦지 않게 연락하마.”

“으으, 진짜 아프잖아.”

모스틴이 기대던 체중을 떼어 내고는 맞은 부위를 손바닥으로 마구 문질렀다.

난 씨익 입꼬리를 올린 채 그런 모스틴을 응접실 소파에 앉혔다.

“그래도 이렇게 못난 친구의 병문안을 와 주다니, 고맙네.”

“내가 아니면 누가 오겠어?”

잠시 잡담을 나누며 우리는 스티아가 준비한 찻잔을 들었다.

그렇게 한차례 목을 축인 후, 모스틴이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

“보니까 심신 안정은 충분히 취한 것 같은데……. 아직 저택에 있는 거 보면, 뭔가 꾸미고 있나 봐?”

난 그 말에 굳이 대답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이런 내 반응에 모스틴이 우아하게 찻잔을 내렸다.

“어지간하면 슬슬 사교계로 나와. 널 따르는 영애들도 밤낮으로 네 걱정만 하고 있어.”

“안 그래도 편지가 많이 와서, 차례대로 답장을 보내고 있어. 아, 당연히 네가 첫 번째였고.”

내 대답에 모스틴이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가, 긴 다리를 꼬며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럼 말해 봐.”

“뭘?”

“날 부른 이유.”

모스틴의 눈빛이 어느새 진지하게 바뀌었다.

“편지에 상의가 필요하다고 해서 꽤 놀랐거든. 네가 나한테 그런 말 꺼낸 건 처음이니까.”

“…….”

“무슨 고민이 있길래 그래?”

그 말에 잠시 침묵하던 난 어렵게 입을 열었다.

“모스틴, 넌…… 네 가족이 소중하니?”

“가족? 당연하지. 우리 류스펠이 얼마나 귀여운데. 아버지도 조금 약은 면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존경스러운 분이고.”

그 대답에 난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나답지 않게, 조심히 할 말을 골랐다.

“만약……. 만약 네 가족이 용서받기 힘든 죄를 저질렀다면?”

“뭐?”

“그리고 내가 그걸 알아내기 위해 널 이용한다면. 날 용서할 수 있겠니?”

난 모스틴을 믿고 꽤나 직접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눈치 빠른 그는 내가 누구를 가정했는지 단번에 깨닫고는 표정을 굳혔다.

“설마, 아글라 공작가를 말하는 거야? 역시 케스퍼 아글라가 황태자 전하의 추문과 관련 있어?”

“……그보다 더한 죄에도 직접적으로 엮여 있지.”

“젠장.”

골치 아픈 듯, 모스틴이 이마를 짚었다.

“진짜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인데……. 확실한 거야?”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했어. 아마 빠져나가기 힘들 거야.”

“시온은? 아직 모르는 거고?”

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스틴 역시 덩달아 입을 다물고 복잡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난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해, 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그때, 모스틴이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그 증거가 뭔지 모르겠지만…… 꼭 발표해야겠어? 공개되는 순간, 아글라 공작가는 뒤집어질 거야.”

“…….”

“아글라 공작도, 공작 부인도 장자를 포기할 확률은 낮아. 그렇다면 시온도 큰 낭패를 겪을 거고.”

“…….”

“솔직히 난 케스퍼 아글라까지 건들 필요가 있나 싶다. 아무리 죄가 있다고 해도……. 시온이 너무 눈에 밟혀.”

어느새 모스틴은 날 설득하는 어조로 말했다.

그 역시 시온에게 최대한 피해가 생기지 않을 방향으로 머리를 굴리는 거겠지.

나처럼.

“벨라디 네가 가주가 되려는 거 다 알아. 거기에 황태자 전하가 장애물이 되는 것도. 그렇다면 차라리 네가 확보한 증거로 케스퍼 아글라를 협박하는 건 어때? 어차피 법을 바꾸려면 남부의 동의가 필요하니까. 그럼 너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 거잖아.”

나도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말이야, 모스틴.

‘케스퍼 아글라는 이미 선을 너무 심하게 넘었어.’

황태자와 함께 감히 내 존재를 함부로 휘둘렀으니까.

난 냉정한 목소리로 모스틴의 말을 잘랐다.

“반역이야.”

“뭐라고?”

“케스퍼 아글라가 엮인 죄목. 반역죄라고. 마물의 부산물을 밀수입한 주축이 그놈이었어.”

내 말에 모스틴의 두 눈이 커졌다.

“심지어 케스퍼 아글라는 황태자와 손을 잡고 폐하에게 마물의 부산물을 먹였어. 날 납치하라 사주했던 것도 역시 놈의 짓이었고.”

“말도 안 돼.”

“모스틴, 이런 케스퍼 아글라를 가만 놔둬야 할까? 오로지 시온을 위해서?”

내 질문에 모스틴은 한참을 대답하지 못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