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장녀가 육아물에 빙의하면-162화 (163/197)

162.

‘퍼델 앨러만 데커딜은 자기 동생에게 상당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거든.’

그러니 시간을 되돌려서라도 본인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한 다음, 도취하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에게 열등감을 주었던 동생을 무릎 꿇렸다는 승리감 같은 거?’

그 철저한 승리를 위한 발판으로 회귀하자마자 킬리언을 먼 타국으로 보내 고립시킨 거고.

당연히 킬리언에게 이에 대한 걸 말할 생각은 없었다.

마침 그가 입을 열었다.

“벨라디, 당신도 정령의 마법을 겪은 적이 있죠. 그렇다면…… 형님과 같이 회귀를 한 건가요?”

“그건 아니에요. 하지만 내가 어떻게 미래를 알고 있는지 궁금해하지 마세요.”

이걸 설명하려면 원작에 대해서 말해야 했다. 그러면 원작 속의 나도 언급이 되겠지.

‘내가 겪지 못했던……. 황태자가 버린 또 다른 나.’

아니, 그를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어머니의 사랑과 아버지의 인정을 받으며 평탄하고 빛나는 길만 걸었던 앨턴가의 장남.

‘원작 속의 그는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었어.’

비단 성별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는 나와 취향부터 성격까지 겹치는 게 없는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또 의문이 생긴다.

‘그놈은 윌리엄을 시켜 막 태어난 내 성별을 확인했었지.’

퍼델 앨러만 데커딜……. 도대체 내게 무슨 수를 쓴 거야.

이런 의문을 품고 아이닝과 타우딘을 살피니, 두 정령도 거기까지는 알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지금 여기 있는 건 나였고, 앨턴가의 장남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미 사라진 과거를 타인에게 설명하고 싶지 않았기에, 난 킬리언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선을 그었다.

“당신이 무엇을 물어보든, 대답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확고하게 말하니, 킬리언이 빤히 날 주시했다. 그 시선에 괜히 살짝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기분 상한 건가.’

그래, 킬리언은 내게 모든 걸 다 말해 줬었지. 말하지 못한 것도 후에 사과했었고.

그렇다 해도……. 이번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 탄생이 황태자나 셰넌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니,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일인가.

‘어쩌면…… 나도 네시아처럼 만들어진 존재일지도 모르지.’

심란한 마음을 꾹 눌러 담는데, 킬리언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전 비밀이 많은 사람이 취향이에요.”

“……네?”

난 그렇게 되물으며 그를 바라봤다.

킬리언은 어느새 얼굴을 붉히며 말갛게 웃고 있었다.

그걸 보자 순간 엉켰던 속이 말끔하게 풀리고 말았다.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새롭게 안 사실이네요.”

“방금 생겼거든요.”

“내가 갑자기 말하겠다고 하면?”

“그럼 비밀이 없는 사람이 취향이 되겠죠.”

그 대답을 듣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취향이 변덕스럽군요.”

“당신에게 맞춰서 매번 변하거든요.”

덕분에 머릿속이 적당히 환기됐다. 난 농담을 그만두고, 이야기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회귀에 대해서는 내가 더 알아보겠어요. 마침 셰넌을 소환하기 위해 네시아가 훈련에 들어갔으니.”

그러자 옆에 있던 타우딘이 소리쳤다.

“맞다! 지금 이 몸이 죽음의 훈련을 시키고 있지.”

그러더니 검은 호랑이는 늠름한 목소리로 한마디를 외치고 사라졌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훈련은 계속되어야 해!”

그렇게 미련 없이 사라진 타우딘을 보며, 아이닝이 꺄하항 웃었다.

“타우딘 눈이 활활 불탔어! 네시아 힘들겠다!”

그래, 그만큼 믿음직스러워서 다행이야.

난 킬리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니 당신은 지금 일에 집중하는 게 좋겠어요.”

킬리언도 어느새 단정한 얼굴로 미소 지으며, 내 말에 긍정했다.

“알겠어요. 다행히 소문이 수월하게 퍼지고 있어요. 어떤 변수가 생길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킬리언 많이 노력했어! 아이닝이 다 봤어!”

그 말에 난 아이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걱정 말아요. 퍼델 앨러만 데커딜은 우리가 쳐 놓은 그물에서 절대 빠져나오지 못해요.”

타이밍 좋게도 마침 그 증거가 도착했다.

난 티 테이블 위에서 반짝이는 마법 루비를 집어 들고 마력을 불어넣었다.

영상 마법이 담겨 있는 영상구였기에, 곧장 루비 위로 화면 하나가 떠올랐다.

[벨라디 님, 명하신 대로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렇게 말한 이는 수염을 단정하게 정리한 마탑주였다.

마탑주는 눈을 번뜩이며 웃었다.

[벨라디 님의 예상대로 모두 나방처럼 모여들더군요. 이게 제 놈들을 산 채로 불태울 함정인지도 모르고.]

“마탑주님의 연기도 한몫했지요. 훌륭합니다.”

가볍게 그를 칭찬한 난 마탑주의 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

“놈들이 황태자 측과 연락할 틈을 절대로 줘서는 안 됩니다. 내일 바로 일을 진행하도록 하죠.”

[예, 그럼 벨라디 님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렇게 마탑주와의 대화가 종료되었다.

각도에 의해, 화면에 나오지 않았던 킬리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형님의 편으로 돌아선 마법사들을 색출했군요. 예상보다 빠르게 덜미를 붙잡혔네요.”

“그럴 수밖에요. 그 소문을 듣고 가만 있을 수 있는 간 큰 자가 몇이나 되겠어요.”

지금 온 제국을 떠들썩하게 뒤집은 이슈가 하나 있다.

수도를 포함한 각 지역의 유력 신문사가 연신 특종으로 보도하는 정보.

나와 킬리언의 손에 의해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각 전역에 퍼지고 있는 소문.

바로,

「데커딜 제국의 황태자는 정녕 모친을 살해한 패륜아인가!」

내가 뽑았지만, 참 마음에 드는 문구였다.

문득 네시아가 막 입양되었을 무렵, 친딸이 양딸을 질투한다는 추잡한 소문으로 내 이미지를 망치려던 황태자가 떠올랐다.

‘놈이 그렇게 여론전을 좋아하니 어쩌겠어.’

나도 한 번은 거기에 맞추어야지.

심지어 난 황태자보다 훨씬 판을 넓혔다.

황태자의 패륜이라는 범죄를 고작 사교계의 이슈로 취급할 생각, 추호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종 신문사에 증거들을 차근차근 돌렸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첫 번째 황후의 편지를 비롯해, 황태자가 남부 치료제를 이용해 인체 실험을 했다는 증거들.

난 증기 기관차로 연을 튼 신문사들에게 그 증거들을 보냈고, 덕분에 신문사는 연일 특종을 내며 축제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제국 역시 삼 일에 한 번꼴로 업데이트되는 새로운 증거 때문에 난리가 났고.’

황태자 측도 이 소문을 막기 위해 최대한 애썼다.

연신 황궁에 입궁해 헛소문을 퍼트리는 신문사들을 전부 체포해야 한다 읍소했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이용해 신문사를 겁박했다.

‘황태자 본인 역시 이 소문을 수습하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녔다지.’

물론, 전부 부질없는 노력이었다. 뛰어다니는 황태자 위에 날고 있는 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폐하께서 저희의 부탁대로 어젯밤 퍼델 앨러만 데커딜을 황태자궁에 감금했다고 들었어요.”

“예, 확실히 폐하께서 저희 편을 들어 주시니 든든하네요.”

킬리언의 말대로였다.

황제는 모든 진실을 알고도 가만히 몸을 웅크렸다. 그러나 황실 근위대를 움직일 수 있는 군권만큼은 황태자에게 절대 넘기지 않았다.

때문에 황태자는 군대를 사용해 신문사를 체포할 수 없었고, 그사이 소문은 일파만파 퍼져 나갔다.

‘그리고 나서야 내 신호를 받은 황제가 놈을 구금한 거지.’

가뜩이나 일을 수습하느라 멘탈이 나간 황태자는 근위대에게 끌려가는 내내 악을 쓰며 반항했다고 한다.

‘그걸 내가 직접 봤어야 했는데.’

그래도 크게 아쉽진 않았다. 킬리언이 건넸던 자료 중 아주 재미있는 것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난 사진 한 장을 보며 씨익 웃었다.

“좀 흐릿하긴 하지만, 잘 찍혔네요.”

“계획대로 내일 각종 신문사의 1면에 그 사진이 쓰일 거예요.”

킬리언의 말을 들은 나는 여유롭게 사진 속 황태자를 구경했다.

헝클어진 머리와 핏발 선 눈, 양팔을 근위 기사단에게 붙잡힌 채 발버둥 치는 모습이 황태자라기엔 너무나 형편없었다.

‘좋아, 내가 딱 원하는 자세야.’

그 사진을 자료들과 함께 잘 넣으며 킬리언을 바라봤다.

“사실 조금 놀랍긴 해요. 아무리 폐하께서 저희의 의견을 잘 수용한다 해도, 설마 현 황태자의 이런 추한 모습을 신문에 싣게 하다니.”

자칫 잘못하면 황족의 위엄을 진창으로 끌어내리는 사진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황제가 황태자에게 실망했다고 해도, 쉽게 허용하지 않을 거라 여겼는데…….

내 말에 킬리언이 다정하게 웃었다.

“확실히 처음에는 그랬어요. 하지만 전 폐하를 움직일 수 있는 핵심적인 두 인물을 알거든요.”

“두 인물.”

그 말에 난 자연스럽게 붉은 머리의 두 여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황제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자, 제국민 모두의 사랑을 받는 그리리카 선황.

‘그리고 황제가 가장 아끼는 자식인 헤라 황녀.’

킬리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차분히 입을 열었다.

“폐하께 제 뜻을 확실히 밝혔어요. 전 황위에 관심이 없으며, 헤라에게 넘겨줄 용의가 충분하다고.”

“그래요, 그러면 얘기가 달라지긴 하죠.”

그리리카 선황이 있었다고 해도 결국, 제국은 오랜 시간 동안 남자가 황제로 즉위하여 다스려 왔다.

이런 관습에 익숙해 있는 상황에서 장성한 두 남자 형제를 제치고, 헤라 황녀가 황위를 물려받게 되면 시끄러운 잡음이 생길 게 분명했다.

‘그러니 헤라 황녀 위의 두 남자 형제에게 치명적인 결함이 있어야 하는데…….’

그 결함을 위해서라도 황태자는 처참하게 추락하는 게 맞았다.

거기다 헤라 황녀는 그리리카 선황을 닮았으니, 후에 그리리카 선황의 손녀라는 이미지를 강화하면 손쉽게 제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그때쯤이면 우리 북부 역시 헤라 황녀의 든든한 세력이 되어 줄 테니까.’

하지만 이 모든 그림을 완성하려면 중간에 낀 킬리언이 문제였다.

내가 염려를 담은 눈으로 킬리언을 보니, 그가 싱긋 웃었다.

“걱정 말아요. 폐하와 간단한 거래를 했으니까.”

“거래라고요?”

“폐하께선 헤라의 성장을 기다릴 시간이 없으세요. 제국을 보살피기에는 연세가 많으시니까. 그러니, 퍼델 앨러만 데커딜을 사형하면 곧바로 제가 뒤를 잇기로 했어요.”

“흠…….”

“물론 그대로 황위를 차지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전 몇 년만 정무를 보다, 헤라에게 자리를 넘겨줄 생각이에요.”

“황제가 된 당신이라…….”

그 말을 듣자,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따지고 보면, 원래 황제의 자리는 퍼델도 헤라도 아닌 킬리언의 것이니까.

그는 누구보다 현명하고 능력 있으며 다정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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