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장녀가 육아물에 빙의하면-161화 (162/197)

161.

원작의 후반부가 떠오르며 새롭게 알게 된 정보들이 있다. 그중 내가 가장 인상 깊게 기억하는 건, 황제의 개인 보물 창고였다.

‘황제는 종종 본인의 보물 창고를 열어 귀족들에게 상을 주곤 했어.’

특히 황제가 개인으로 주최하는 여름 사냥 대회의 단골 우승자였던 아버지는 그의 보물 창고를 가장 많이 방문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수많은 보배 중에서도 본인이 탐낼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잘 구분했지.’

원작에서 아버지가 첫째 아들에게 했던 말이 있다.

「폐하께서 가장 중하게 여기는 보물은 ‘기회의 눈물’이라는 거울이다.」

“수십 개의 크리스탈로 장식된 물방울 모양의 거울…….”

아버지의 지나가는 대사로 짧게 언급되었기 때문에, 어떻게 생겼는지 정확히 알진 못했다.

그러나 그는 분명 ‘기회의 눈물’을 그렇게 묘사했다.

“거울이요?”

내 중얼거림에 킬리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난 그에게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폐하의 창고에 ‘기회의 눈물’이라는 보물이 있어야 해요. 이 목록에는 적혀 있지 않군요.”

“그 기록에 적혀 있지 않다면 폐하께서 소유하지 않은 물건이에요. 황실이 보유하고 있는 보물 중에서도 물방울 모양의 거울은 없고요.”

‘원작과 바뀌었다.’

원작이 바뀌었다는 말은 황태자가 이 일에 개입했다는 뜻이겠지.

여기서 집중해야 할 건, 그 거울을 만든 주체였다. 그건 인간에게 호의적인 한 정령이 제국의 건국 황제에게 선물한 거니까.

‘바로, 눈의 정령 셰넌 말이야.’

셰넌의 보물과 황태자라…….

“킬리언, 당신이 마갈라 제국에서 읽었던 기록에 눈의 정령 셰넌에 대한 것도 적혀 있다고 했죠?”

“네, 눈의 정령은 계약에 자주 응했던 정령이었거든요. 그래서 다른 정령보다 정보가 많아요.”

“그 기록에 적힌 셰넌의 마법은 뭐였어요?”

내 물음에 킬리언이 차분히 답했다.

“눈의 정령 셰넌은 ‘기억’을 자유자재로 만질 수 있어요.”

그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대한 산증인이 나였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나고 얼마 안 지나서, 어머니는 정령의 마법을 사용했지.’

전생의 기억으로 불안해하는 날 달래기 위해서.

어머니가 막 돌아가셨을 때는 그 마법이 그저 심신을 안정시키는 종류라 생각했다.

기억을 잃었던 건 단순히 부작용이라고 여겼고.

그러나 정령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이제껏 경험한 정령의 마법에는 그 어떤 부작용도 없었거든.’

타우딘과 아이닝에게 이에 대해 물어보니, 그 둘은 제자리에서 펄쩍 뛰며 단언했다. 정령의 마법에 부작용이란 있을 수 없다고.

그렇다면 전생의 기억을 잃은 건 부작용이 아니라, 의도되었다는 것인데…….

‘어머니는 도대체 뭘 알고, 셰넌에게 정령의 마법을 배워 내 기억을 지운 걸까?’

아니, 애초에 셰넌에게 직접 마법을 걸어 달라고 하면 편할 걸, 왜 굳이 본인이 배운 걸까?

무엇보다…….

‘셰넌은 어떻게 네시아를 탄생시킨 거지?’

처음에는 어머니의 기억을 토대로 네시아를 만들었으니, 셰넌의 능력으로도 충분히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애초에 원작의 중요한 설정값을 의심하는 것도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라 결론 내렸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찝찝함은 커져 갔다.

‘어떻게 기억을 조종하는 걸로 생명을 탄생시켜?’

아무리 정령의 마법이 기적이라고 해도, 뭔가 이상하잖아.

‘거기다 기회의 눈물은 건국 때부터 황제들이 소중히 보관한 아주 귀한 보물이야.’

그렇다면 안에 담긴 셰넌의 마법이 엄청나다는 소리인데…….

황태자가 그걸로 도대체 뭘 했다는 거지? 세뇌가 있다면 굳이 기억 조작을 이용할 필요 없잖아.

내가 인상을 찡그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니, 킬리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마음에 걸리는 거라도 있나요?”

그 말에 난 킬리언을 빤히 바라봤다.

이 문제는 나 혼자 끙끙 앓아도 속 시원한 답을 내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이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 고민해도 괜찮겠지.

“킬리언, 잘 들어요.”

나는 지금까지 추론한 내용들을 그에게 알려 주었다. 내 말을 들은 킬리언의 두 눈이 커졌다.

“과연…….”

“킬리언. 정령은 분명 한 가지 마법을 선택해 수련한다고 들었어요. 그럼 두 가지 이상의 마법을 수련한 정령은 없는 건가요?”

“기록에 따르면 그래요. 하지만 정령에 대해서는 기록에 적힌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것이 더 많으니.”

킬리언은 그렇게 말하며, 아이닝을 소환했다.

“나 불렀어?!”

아이닝이 해맑게 웃으며 킬리언에게 안겼다. 그걸 본 나 역시 타우딘을 소환했다.

“훈련 중인데 이 몸을 부르다니!”

“급하게 물어볼 게 있어.”

난 아이닝과 타우딘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정령이 두 가지 이상의 마법을 수련하는 것도 가능해?”

내 말에 아이닝이 움찔했고, 타우딘 역시 언짢은 표정으로 꼬리를 살랑였다. 난 그걸 가만히 바라보다 경고하듯 말했다.

“너희가 아무리 숨겨도 난 끝까지 파고들 거야. 그러니 이만 포기해.”

사실 난 꾸준히 이들에게 셰넌의 마법에 대해, 그리고 몇 번 언급되었던 ‘운명의 소용돌이’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이 깜찍한 두 정령은 내 질문을 피하기에 바빴지.

하지만 이쯤 왔으니, 나도 더는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이런 내 다짐을 알았는지 킬리언도 간절한 얼굴로 거들었다.

“도대체 뭘 숨기고 있는 건지, 우리한테 알려 줬으면 좋겠어. 셰넌은 정말 기억과 관련된 마법만 가지고 있는 거야?”

“킬리어언…….”

마음이 약해졌는지 아이닝이 엉덩이를 들썩이며 타우딘을 살폈다.

타우딘은 찡그린 인상을 피지 않으며 나와 눈싸움을 계속했다.

“이미 지나간 일이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당연하지.”

“그에 대한 건 모든 정령들이 쉬쉬하는 사안이야. 꼭 들어야겠어?”

“너희들에게는 쉬쉬할 사안에 불과하겠지만, 나에겐 사활이 걸려 있어서.”

“자칫 모든 정령들의 분노를 살지도 모른다.”

“어차피 인간과 관련되고 싶지 않다며 몇백 년을 나타나지 않은 존재들이야.”

결국 한참 동안 내 시선을 견디던 타우딘이 먼저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정령이 한꺼번에 두 가지 이상의 마법을 배울 수는 없다.”

“정말이야?”

“하지만 기존에 배웠던 마법을 완전히 소멸시킨 후, 새로운 마법을 배울 수는 있지.”

새로운 사실에 난 한쪽 눈썹을 까딱였다.

“그게 무슨 의미야?”

내 되물음에 이번엔 아이닝이 입을 열었다.

“셰넌은 이제까지 세 개의 마법을 수련했어!”

작은 여우는 속 시원하다는 듯, 와다다 말을 늘어놓았다.

“정확히 무슨 마법을 수련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셰넌의 마법에 의해 정해진 운명이 어그러진 건 확실해! 그로 인해 가장 피해를 본 건 킬리언과 벨라디였고!”

그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가장 이득을 본 건, 퍼델 앨러만 데커딜과 케스퍼 아글라란 말이구나.”

그러니 타우딘이 이 둘을 알고 있던 거지.

내 말에 타우딘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몸이 알려 줄 수 있는 건 이게 한계다. 더 자세한 건 셰넌 본인에게 들어야 해.”

“제약이라도 걸려 있는 거야?”

“맞아! 타우딘과 난 이번 사건의 관찰자에 불과해서, 깊이 알지는 못해!”

그러자 이 대화를 듣고 있던 킬리언이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형님이 셰넌의 마법을 사용해서 나와 벨라디의 운명이 어그러졌다는 거야?”

“우웅…….”

“도대체 무슨 마법이었길래? 이건 말해 줄 수 있지?”

킬리언의 질문을 다 들은 난, 조용히 그를 불렀다.

“킬리언.”

“네, 벨라디.”

“회귀를 할 수 있다면 어떨 것 같아요?”

“회귀……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당신은 그 능력을 사용할 건가요?”

자칫 뜬구름 잡는 것 같은 질문이었으나, 킬리언은 재빠르게 내 말의 요점을 파악했다.

“설마 셰넌이 가진 다른 마법이?”

“죽은 이도 소환해 내는 기적이니, 회귀도 불가능할 것 없죠.”

최근 내게는 원작의 후반부가 새록새록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원작의 정보는 이미 네시아가 성인이 된 이후로 넘어간 상태라, 그때 겪게 될 황태자의 미래 역시 알고 있었고.

‘황태자도 이걸 알았다면?’

그래서 모든 걸 바꾸기 위해 시간을 되돌렸다면?

나는 나지막하게 떠올린 추론을 입에 올렸다.

“셰넌이 초대 황제에게 선물한 물방울 모양의 거울. 그 거울에 시간을 되돌리는 정령의 마법이 담겨 있던 거예요.”

타우딘은 분명, 하나의 마법을 전부 소멸시킨 후 새로운 마법을 배울 수 있다고 했다. 셰넌이 기회의 눈물을 만든 건, 지금보다 훨씬 옛날 일이고.

‘그렇다면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을 소멸시키고, 기억을 조종하는 마법을 배우기에 충분해.’

그리고 내 기억을 없앤 후에는, 새로운 마법을 배워 네시아를 탄생시킨 거지.

그럼 타우딘이 말한 세 개의 마법과 개수가 일치했다.

난 확신을 담아 말했다.

“황태자는 그 거울을 이용해 회귀한 거예요. 그리고 앞으로 펼쳐졌을 모든 미래를 바꾼 거죠.”

말을 내뱉을수록 아주 강한 확신이 들었다. 이 추론이 내가 그토록 찾던 정답이라는.

‘하아, 셰넌에게 물어볼 게 또 생겼군.’

가령, 케스퍼 아글라도 같이 회귀를 했는지.

아니, 그 이전에 어머니에게 기억 조작 마법을 가르쳐 준 의도는 뭔지.

내 기억을 손대며 다른 건 건드리지 않았는지.

새로운 의문이 산처럼 쌓여 갔다. 골치가 아파 오는데, 킬리언이 조용히 속삭였다.

“당신은 형님이 시간을 돌렸다고 확신하는 건가요?”

그 물음에 난 킬리언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게 아니라면, 그 녀석이 이렇게까지 내가 아는 미래를 바꿨을 리 없으니까.”

“당신이 아는 미래…….”

난 그런 그를 보며, 원작에서의……. 아니 회귀 전의 킬리언을 떠올렸다.

황태자의 수작으로 강제 유학길에 오르지 않고, 데커딜 제국에서 온전하게 자란 킬리언 앨러만 데커딜.

당연히 그 세계의 황태자는 퍼델 앨러만 데커딜이 아닌, 킬리언이었다.

‘킬리언이 황태자로 임명받는 건 지금보다 훨씬 더 미래의 일이지만.’

그걸 떠올리면, 어째서 회귀한 퍼델이 킬리언을 자신의 밑에 두려고 아등바등했는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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