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장녀가 육아물에 빙의하면-160화 (161/197)

160.

내 물음에 네시아가 빠르게 눈을 깜박였다.

“소환이요?”

“네 얼굴을 보니 무슨 고민을 하는지 다 알 것 같거든.”

난 일부러 또렷한 발음으로 말했다.

“보나 마나 돌아가신 어머니와 관련해서 생각이 많아졌겠지. 그에 대한 뒷말도 많았고, 네 출생에 대해서도 의문이 생길 시점이니까.”

“아…….”

나에게 제 속을 빤히 읽힌 네시아가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난 그런 아이에게 속삭였다.

“그 물음에 확실한 답을 해 줄 이는 셰넌밖에 없어. 그러니 직접 소환해서 물어보는 걸 추천할게.”

“조언 감사해요, 언니.”

네시아가 살짝 시선을 내렸다.

“하지만…… 제가 셰넌을 무사히 소환할 수 있을지…….”

이렇게 중얼거리던 네시아가 퍼뜩 정신을 차렸는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방금 한 말은 잊어 주세요! 결코 언니에게 투정 부린 게 아니에요!”

“자신이 없나 보구나.”

“그, 그게 셰넌은 제가 다 크고 나서야 자신을 소환할 수 있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전…….”

네시아는 그렇게 말을 웅얼거리며 머뭇거렸다.

마치 제가 무슨 말을 하든 투정으로 보이면 어떻게 하나, 겁을 먹은 듯이.

난 그런 네시아를 말없이 응시했다.

‘아무리 어머니의 기억과 악몽으로 기세가 위축되었다고 해도, 외부인에게까지 저런 태도를 보일 생각은 아니겠지?’

어쨌든 이 아이는 이제 앨턴가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이런 태도는 곤란했다.

거기다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무는 모습이, 과거의 나를 보는 듯해 썩 유쾌하지 않았다.

난 한쪽 눈썹을 까딱이며 아이를 불렀다.

“네시아 앨턴.”

그러자 아이가 흠칫거렸다. 난 그런 네시아를 눈에 담으며 담담히 충고했다.

“혼자서 답을 낼 수 없는 문제는 아무리 끌어안아도 해결되지 않아.”

“아…….”

“또한, 투정을 부리는 것과 네 의견을 말하는 건 엄연히 다르지. 구분하도록 해.”

“……네, 언니!”

내 충고에 약간의 자신감을 얻은 듯, 네시아가 눈을 빛냈다. 난 그걸 보며 아이의 말을 정리했다.

“요점은 네가 아직 셰넌을 소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거구나.”

“맞아요! 사실 저도 셰넌에게 물어볼 게 너무 많은데, 소환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서…….”

“걱정하지 마. 그런 널 위해 선생을 초빙했으니.”

“네?”

난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타우딘.”

내가 부르기 무섭게, 허공에 생겨난 커다란 입구에서 흑호가 탁 뛰어내렸다.

호랑이는 두툼한 앞발을 바닥에 대고, 엉덩이를 위로 쭉 올리며 하품했다.

“흐암~. 심심한데 마침 잘 불렀다. 이 몸, 새로운 유흥거리가 필요하다. 놀아 다오.”

“우, 우와…….”

“으응? 이 애매한 생물은 뭐지?”

타우딘은 어슬렁거리며 소파에 앉아 있는 네시아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느긋하게 아이를 관찰했다.

“오호라, 이 생물에게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진다 했더니. 셰넌이로군.”

“맞아, 셰넌과 깊게 연결된 아이지.”

내 말에 타우딘이 살짝 흥미를 띠고 네시아의 근처를 서성였다.

그런 타우딘과 마찬가지로 네시아 역시 입을 헤 벌린 채 흑호를 구경했다.

“언니……. 혹시 이 호랑이도 정령이에요?”

“그래, 어둠의 정령 타우딘이야.”

“타우딘……. 멋있다!”

활짝, 오늘 처음으로 해맑게 웃은 네시아가 쓰윽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아무 망설임 없이 타우딘의 등을 쓰다듬었다.

“우와, 우와! 털이 매끄럽고 부드러워!”

“으음…….”

“전에 봤던 작은 정령이랑은 또 다른 기운이 느껴져요! 이게 어둠이구나!”

“으으음…….”

네시아는 어느새 거리낌 없이 타우딘을 조물거리기 시작했다.

타우딘은 아주 미묘한 얼굴로 가만히 있었고. 난 그걸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거절할 거면 거절하고, 아니면 말지. 왜 그렇게 이상한 표정이야?”

“복잡하군. 이 녀석에게는 정령의 기운과 인간의 기운이 반반씩 섞여 있다. 이 몸, 정령과의 접촉은 아무렇지 않다만, 인간과의 접촉은 싫다!”

“아-. 그래서 기운이 섞인 네시아의 손길에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야?”

“그렇지!”

우리의 대화를 듣던 네시아가 후다닥 손을 거둬들이고 사과했다.

“미안해. 털이 너무 부드러워 보여서 나도 모르게 그만……. 불쾌했다면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

타우딘은 그런 네시아를 슬쩍 보더니, 꼬리로 바닥을 탁 친 후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함께 지내면서 나름 저 정령의 파악을 끝낸 난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그래도 호통을 치지 않는 걸 보니, 네시아의 첫인상이 나쁘지 않나 보군.’

그럼 나야 좋지.

난 가까이 온 타우딘에게 말했다.

“올해 안으로 네시아가 셰넌을 소환하게 만들어야 해. 된다면 계약까지 완료해야 하고.”

“계, 계약까지요?”

네시아가 당황해하며 되물었지만, 난 굳이 대답하지 않고 타우딘에게 말했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네가 네시아를 훈련시켜 줘, 타우딘.”

“흐음, 훈련이라. 이 몸이 또 교육에 소질이 있긴 하지.”

“할 수 있겠어?”

“뭐, 좋다! 마침 이 몸도 저 아이가 완전히 인간의 기운으로 물드는 게 싫으니까! 셰넌과 계약하면 좀 나아지겠지!”

다행히 타우딘은 흔쾌히 수락했다.

뭐, 솔직히 말하자면 타우딘이 내 부탁을 거절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내가 어떻게 해서든 따르게 만들었거든.’

그래도 이번에는 큰 잡음이 없으니, 나로서는 편한 일이다.

‘물론 타우딘이 거절해도 킬리언과 아이닝이라는 차선책이 있긴 해.’

그러나 킬리언은 복수의 마지막 단계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어, 네시아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런 때 내가 타우딘과 계약해, 잉여 인력을 만들어 두었으니 얼마나 효율적인가.

‘거기다 슬슬 마탑에서도 입질이 오고 있고.’

순조로운 상황에 만족스럽게 웃는데,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네시아가 슬쩍 손을 들었다.

“저, 저기…….”

잠깐 주춤하던 네시아는 곧, 할 말은 하라는 내 말이 떠올랐는지 용기를 냈다.

“제게 정령의 기운이 있다는 건 정확히 무슨 의미예요?”

그 물음에 난 네시아 눈을 마주했다.

어머니와 같은 색채지만, 어느새 꽤 다른 분위기를 띠게 된 푸른 눈은 날 피하지 않았다.

“정령을 소환할 수 있는…… 단순히 그런 기운을 말하는 게 아니죠?”

“그것 역시 셰넌에게 물어봐, 네시아.”

“하지만 혹시라도 실패하면…….”

“이번 소환에 실패는 없어.”

난 단호하게 말했다.

“네가 성공할 때까지 타우딘이 죽도록 훈련시킬 테니까.”

“하하하! 웬일이냐, 벨라디! 이 몸을 그렇게 믿다니! 그렇다면 이 몸, 계약자의 기대에 부응해 줘야지!”

“어, 어라라? 죽도록 훈련……이요?”

“각오해라, 셰넌의 아이여!”

그렇게 외친 타우딘이 의지를 활활 불태웠다.

네시아도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는지 얼떨떨한 얼굴로 눈만 깜박였다.

그런 둘을 보니, 아이의 고생이 선명히 그려졌다.

난 유유히 차를 마시며 마음속으로 네시아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넸다.

***

타우딘은 훈련을 위해 네시아를 본인이 머무는 마물의 숲으로 데리고 갔다.

정확히는 마물의 숲에서도 가장 심층부에 위치한 곳으로, 기록에 따르면 그곳을 정령의 둥지라고 불렀다.

그 둥지는 정령 외에 어떤 생명도 들어올 수 없는 미지의 공간이었다. 제아무리 자연 친화력이 풍부한 정령사라고 해도 말이다.

‘물론, 정령의 기운을 품은 네시아는 해당되지 않지만.’

애초에 네시아는 태어나고 7년 정도를, 셰넌의 둥지에서 지냈다.

과거, 북부 숲에서 셰넌에게 거두어진 어머니도 그 둥지에는 갈 수 없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하루가 저물면, 바로바로 네시아의 방으로 돌려보내겠다 했으니.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겠고.’

마침 제국은 겨울이 오면 모든 가정 교육을 중지하고 아이에게 휴식을 주는 문화가 있으니, 시기가 좋았다.

낮 동안 네시아가 안 보여도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혹시 모르는 상황을 대비해서 나는 집안 모든 사용인들에게 네시아를 찾는 이가 있으면 내게 알리라고 명령해 뒀다.

이제 남은 건 아이의 의지이려나.

‘부디 셰넌을 무사히 소환할 수 있기를 바라, 네시아.’

그게 네가 내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일 테니.

난 그렇게 생각하며, 눈앞의 자료를 꼼꼼히 살폈다.

팔락-, 팔락-.

말없이 종이만 넘기던 난 작게 감탄하고 말았다.

“제 예상보다 정리가 잘돼 있네요, 설명도 상세하고.”

“황실 기밀문서를 그대로 가지고 왔으니까요.”

그 말에 종이를 살피던 난 손을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바로 옆에 앉은 킬리언을 빤히 바라봤다.

“황실 기밀문서를 그대로 가지고 왔다고요?”

“네, 벨라디. 그게 원본이에요.”

킬리언이 뭐가 문제냐는 듯, 상큼하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난 그대로 시선을 돌려 다시금 손에 들린 자료를 바라봤다.

지금 내가 살피고 있는 건, 단순한 기밀문서가 아니었다.

바로, 황제의 개인 보물 창고에 어떤 보물들이 있는지 소상히 적힌 목록이었으니까.

‘황제의 보물 창고를 구경하자고 하긴 했지만, 설마 이 원본을 그대로 가지고 왔을 줄이야.’

“이것도 꼬투리를 잡힌다면, 반역으로 몰릴 수 있어요.”

“걱정 마세요, 벨라디. 폐하께서 전부 허락하신 일이니까요.”

아~, 그러면 됐지.

난 피식 웃으며, 자료를 마저 살폈다.

‘이걸 허락했다니. 황제도 어지간히 황후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는 모양이군.’

그 죄책감은 또 다른 피해자인 킬리언에게도 적용되는 모양이고.

하긴, 아무리 황제라고 해도 응당 사람이면 그래야지.

황제가 킬리언에게 가지는 감정이 어떻든, 지금 기회를 놓칠 생각은 없었다. 이미 아버지의 죄책감을 이용한 경험이 있었기에, 딱히 황제에게 연민을 느끼지도 않았다.

난 잘했다는 의미로 빈손을 뻗어 킬리언의 머리를 토닥였다. 내 행동에 그의 눈이 순간 동그랗게 변했다.

“……누가 제 머리를 쓰다듬는 거, 너무 오랜만이에요.”

“그래요?”

“……뭔가 부끄럽네요.”

“원한다면 그만하죠.”

“아니요, 더 해 주세요.”

킬리언이 수줍게 머리를 숙였다. 난 그런 그를 내치지 않으며, 자료에 집중했다.

과연 원본을 그대로 가지고 와서 그런지, 대대로 황제들이 소유했던 보물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적혀 있었다. 다른 이에게 상속하거나 상으로 내린 것들까지 전부 다.

상당히 두꺼운 자료를 전부 다 읽은 난 이를 아득 갈았다.

내가 손을 거둬도 눈치껏 붙어 있던 킬리언이 조심스럽게 날 살폈다.

“죄송해요, 제가 너무 질척였죠.”

안타깝게도 지금 내 귀에는 킬리언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게 없어.’

데커딜 제국의 황제들이 대대손손 물려준 가장 중요한 보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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