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장녀가 육아물에 빙의하면-155화 (156/197)

155.

헤라 황녀가 내게 아이닝의 보물을 받아 들고 황궁으로 돌아간 지 며칠이 지났다.

-임시 가주님, 아니 소공작님의 조언. 진지하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 말을 남겼던 헤라 황녀는 나와의 대화로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눈빛이 한층 깊어져 있었다. 그걸 떠올리자 흡족한 미소가 나왔다.

‘계획보다 조금 이르게 말했지만, 헤라 황녀가 새로운 미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니. 괜찮은 출발이야.’

이제 그 아이가 황제에게 아이닝의 구슬을 먹이길 기다리면 되겠군.

‘그러고 보니 더너스가 소식을 가지고 오는 것도 오늘이었나.’

그렇게 생각하며 빠른 손길로 서류를 체크하고 있는데, 집무실 한편에서 빛이 생겼다.

‘텔레포트 진?’

빛이 사라지면서 요즘 통 얼굴을 보기 힘들었던 킬리언이 등장했다.

“킬리언!”

내가 그를 부르자, 킬리언이 책상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벨라디, 이렇게 갑자기 찾아와서 정말 죄송해요.”

“괜찮아요, 그만큼 급한 일이 있는 거겠죠.”

난 자리에서 일어나 킬리언을 소파에 앉히려 했다.

그러나 킬리언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착잡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처럼 무능력한 놈은 이 소파에 앉을 자격이 없어요.”

“킬리언, 그게 무슨 말이에요.”

“벨라디…….”

킬리언이 인상을 찡그렸다.

“위다나 왕국에서 형님의 창고 위치를 발견했어요.”

“드디어.”

“당신이 다리를 놓아 준 외무대신의 도움으로 유력한 은신 장소를 알아냈거든요. 하지만 저희가 찾아갔을 때 이미 그 창고는…….”

킬리언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한숨을 푹 쉬었다.

그 반응을 가만히 보던 난 차분히 뒷말을 이었다.

“폭발한 후였겠죠.”

그러자 킬리언이 잠시 멈칫하고는 나와 눈을 마주했다.

난 동그래진 그의 회색 눈을 보며, 차분히 입을 열었다.

“그 폭발로 저희가 찾고 있던 결정적인 증거들은 모조리 없어졌겠군요.”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아마 킬리언은 창고가 폭발한 것을 알자마자 바로 내게 이동했을 거다.

그런데 그보다 내가 먼저 저 소식을 언급하니, 얼마나 놀랐을까.

“일단 앉아서 이야기해요.”

아마 이야기가 길어질 테니.

난 그를 기어코 소파에 앉힌 후, 상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킬리언이 다시금 내게 물었다.

“제가 그 은신 장소에 도착하기 딱 하루 전, 창고가 폭발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그걸 알고 있는 거예요?”

“저도 확신하고 있던 건 아니에요.”

난 그렇게 대답하며 힐끔 시계를 봤다. 더너스가 나와 약속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제 수하 중 하나가 이런 보고를 하더군요.”

내가 입을 열자, 킬리언이 집중하는 게 느껴졌다.

“몇 년 전, 위다나 왕국의 몇몇 비밀 창고에 원거리 마법 폭탄을 설치했다는 증인이 나타났다고.”

“원거리 마법 폭탄을?”

“유사시, 그 창고를 폭발시킬 용도겠지요. 유효 거리가 국경을 넘어갈 정도로 매우 긴 폭탄이라고 했어요.”

“맙소사. 그럼 그 창고가 설마…….”

그렇게 한탄하던 킬리언이 약간 의문을 품고 날 바라봤다.

“그런데 어떻게 그 증인의 협조를 얻어낸 건가요? 그런 은밀한 일을 했다면, 못해도 전문 범죄 조직의 간부일 확률이 높은데.”

확실히 킬리언의 말대로였다.

‘비밀 창고가 괜히 비밀이겠어?’

그런 걸 따로 마련할 정도라면 상당한 세력가라는 뜻이고, 그들의 입맛을 맞춰 주는 범죄 조직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범죄 조직의 입은 아주 무겁지.’

때로는 본인들의 목숨보다도 더. 킬리언도 이를 알기에 증인의 등장을 의아하게 여긴 것이다.

난 그런 킬리언에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악독한 놈들이라도 유일하게 솔직해지는 곳이 있지요.”

“솔직해지는 곳?”

그의 되물음에 난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형무소. 그곳의 가혹한 환경은 사람을 한없이 약하게 만들거든요.”

“아……!”

그가 내 말을 알아들은 것과 동시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벨라디 님, 더너스 로건 경이 왔습니다.”

“들여보내.”

그러자 문이 열리며 남자 둘이 안으로 들어왔다.

기사단 제복을 입은 더너스와 남루한 복장의 남자. 둘이 격식에 맞춰 인사했다.

“벨라디 님을 뵙습니다.”

“벨라디 님을 뵙습니다.”

난 킬리언에게 더너스를 소개했다.

“제 직속 수하예요. 로건 백작의 아들이죠.”

“2황자 전하를 뵙습니다. 더너스 로건입니다.”

“만나서 반갑군. 그럼 저쪽도 당신의 수하인가요?”

“아니요.”

그러며 놈을 주시하자, 남루한 차림의 남자가 어깨를 크게 움츠렸다.

“저놈은 죄인에 불과해요. 지금은 특별 임무 때문에 저렇게 움직이는 거랍니다.”

“죄인이요?”

“괘씸하게도 저희 가문을 배신한 전적이 있거든요. 뭐, 별다른 활약도 하지 못한 채 체포당한 머저리에 불과하지만요.”

내가 말을 내뱉을수록, 남자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졌다.

난 그런 놈을 보며 비웃음을 참지 않았다.

“네 여동생 덕분에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건 잘 알고 있겠지?”

“예, 벨라디 님. 언제나 가슴속에 새기고 있습니다.”

남자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래, 지금 내 앞에서 잔뜩 긴장한 채 움츠러든 저놈은 감히 가문을 배신했던 어머니의 전 호위 기사이자 스파이였다.

현재는 황태자비의 피아노 강습을 마무리한 엘린 돈티오의 오빠란 작자 말이다.

‘원래라면 사형에 처해도 할 말이 없는 놈이지만, 엘린을 이용할 속셈이었으니 살려 두고 있었지.’

아니, 애초에 난 죄인에게 사형이라는 단순한 처벌을 내리는 걸 선호하지 않았다.

차라리 죽여 달라고 사정할 정도로 굴리는 게, 내게는 이익이니까.

‘때마침 북부에는 가혹한 형무소가 아주 많이 있거든.’

제국 최북단에 위치한 마테오 산맥. 그곳의 광산들은 죄인에게 노동의 형벌을 내릴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특히나 루비 광산 개발은 다른 광산보다도 까다로운 작업이기에 어마어마한 인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북부는 요 몇 년간 적극적으로 여러 지역의 죄인들을 이송받았다.

‘거기에 동참해 나도 저놈에게 루비 광산 징역형을 선고했고.’

그렇게 광산의 형무소는 여러 범죄자들이 뒤섞여 있는 형편이었다. 그중 비밀 창고의 폭약을 알고 있는 자가 섞여 있어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런데 그 정보를 저 스파이가 알아낼 거라고는 예상 못했지.’

때마침 같이 일하던 죄인이 폭약을 설치했던 범죄 조직의 간부인 터라, 그에게서 여러 정보들을 들은 모양이었다.

저놈은 그걸 더너스에게 전달했고, 더너스가 다시금 내게 이 모든 사정들을 보고한 것이다.

‘언제였더라, 증기 기관차의 진척을 확인하기 위해 북부로 갔을 때였나.’

오랜만에 마주한 더너스의 안색이 유달리 좋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당시에는 바바와 성격이 맞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는 건가 했는데, 설마 저 배신자를 만났을 줄은 몰랐다.

‘정확히는 내 명령을 이행하던 중에 말이야.’

내가 내린 명령 중에는 마법 루비가 대량으로 필요한 사항들이 있었거든.

더너스는 이를 원활하게 받기 위해 그 광산에 들렸고, 노역 중이던 옛 친구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의리 넘치는 본인의 성격상, 못 본 척 무시할 수가 없었던 거지.’

그래서 잠시 대화를 나누다가 이 정보를 들었고, 이걸 내게 보고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느라 컨디션이 많이 흐트러진 거라나.

그러다 결국, 증기 기관차를 성공적으로 선보인 후에야 어렵사리 모든 사정들을 내게 꺼내었다.

그때 난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더너스가 물고 온 저 정보가 황태자의 비밀 창고와 관련 있다는 걸.’

거기다 내가 천천히 떠올리고 있는 원작의 후반부를 보면, 패러그린 후작은 원거리 폭탄에 큰 관심을 보였었다.

그것도 불법 개조된 원거리 폭탄에 말이다.

‘이런 의심스러운 연결고리를 찾아냈는데, 내가 가만있을 리 없지.’

난 죄인과 사적으로 접촉한 더너스에게 벌을 내리는 걸 미루고, 특별 임무를 지시했다.

그 스파이와 함께 위다나 왕국으로 건너가 직접 신빙성을 확인하라고.

‘사실은 저 스파이가 아닌, 이 사건에 얽혀 있다는 범죄 조직의 간부를 쓰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놈은 광산의 가혹한 노동을 버티지 못하고 이미 병사했다고 하니, 하는 수 없었다.

‘그래도 아직 엘린과 그 식솔들이 내 손아귀에 있고, 스파이에게는 힘이 없으니. 크게 나쁜 수는 아니라고 판단했어.’

그렇게 더너스는 저 스파이와 함께 특별 임무를 떠났고, 사냥 대회 전까지 몇 번의 보고가 오갔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제국의 수도로 돌아온 것이다.

난 회상을 끝내며, 눈앞의 둘을 바라봤다.

“그래서, 확인은 완벽히 끝났나?”

내 질문에 오른쪽에 있던 더너스가 입을 열었다.

“예.”

“결과는?”

내 질문에 더너스가 멈칫하더니, 팔꿈치로 스파이의 옆구리를 푹 찔렀다. 그 행동에 잔뜩 긴장하고 있던 스파이가 움찔했다.

난 그런 놈을 가만히 관찰하다 나지막하게 다시 말했다.

“그래, 본인 입으로 직접 말해 봐. 네가 이 정보를 가지고 왔으니까.”

“아…….”

내 말에 스파이는 멍청하게 눈을 깜박이다, 곧 마음을 다잡고 조심스럽게 날 바라봤다.

“제가 광산에서 들었던 정보와 현장이 얼추 일치했습니다. 위다나 왕국 수도 근처의 빈민가에 판자로 가려진 창고가 있었습니다. 그 안에서 데커딜 제국에서 제조한 것과 유사한 폭탄을 발견했습니다.”

“유사? 직접 위다나 왕국까지 가서 확인한 결과가 고작 유사?”

내가 한쪽 눈썹을 까딱이자, 스파이가 황급히 말을 수정했다.

“아, 아닙니다. 제가 말실수를 했습니다. 유사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똑같았습니다.”

“내가 지적하니까 말을 바꾼 건 아니고?”

그러자 스파이가 필사적으로 설명을 늘어놓았다.

“소량의 마력을 흘려 넣어 폭약을 터트리는 방식은 제국에서 광석 채굴을 할 때 주로 사용합니다. 여기에는 복합적인 기술이 필요하기에, 약소한 위다나 왕국이 감히 따라할 수 없습니다.”

남자의 말에 힘을 실어 주듯, 더너스가 보고를 덧붙였다.

“거기다 그 원거리 폭탄은 시중에 나와 있는 것보다 유효 거리가 훨씬 길었습니다. 별도의 개발이 있던 것 같습니다.”

그때, 킬리언이 내게 속삭였다.

“형님이 소유하고 있던 창고 중 하나가 빈민가에 있었어요. 물론 그곳도 폭발하고 말았지만…….”

“황태자의 보조 창고들까지 전부 폭발했다는 말이죠?”

“예.”

그 말에 난 검지로 의자 팔걸이를 툭툭 쳤다.

‘황태자……. 이렇게 빠져 나가겠다, 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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