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장녀가 육아물에 빙의하면-151화 (152/197)

151.

시온 아글라는 모든 상황이 매우 혼란스럽기만 했다.

“마탑주님! 지금 발언이 사실입니까?”

“지금껏 알려진 연구에 따르면 마법 보석에 넣을 수 있는 마법은 한 가지뿐이었습니다!”

“맞습니다! 아무리 보석의 마력이 상당해도 두 가지 이상의 마법을 담으면 마력이 부딪히며 시전 마법사가 사망하는 것이 보편적인 연구의 결과인데요!”

사방을 둘러싼 기자들이 연신 사진을 찍으며 여러 질문을 쏟아 냈다. 그들 모두 평범한 기자들이 아닌 제국에서 엄격한 시험을 거쳐 자격증을 따낸 마법 전문지의 기자들이었다.

그렇기에 질문의 질은 높았고, 취재 열기도 드높았다.

그럴 만도 했다. 지금 기자들을 불러 모아 발표한 연구의 결과는 가히 혁명적이었으니까!

‘수백 년 동안 하나의 보석에는 하나의 마법이 한계였지.’

그런데 멜도르와 자신이 그 한계를 깨고, 안정적으로 마법 루비에 두 가지 마법을 넣는 데 성공했으니!

이 엄청난 결과를 발표하는 지금, 저 기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질문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내가 이렇게 모든 주목을 다 받아도 되는 건가……?’

시온은 슬쩍 고개를 들어 기자들 뒤편에서 정체를 숨긴 채 서 있는 멜도르를 바라봤다.

이 성공은 결코 시온 혼자 이룩한 것이 아니었다. 애당초 멜도르가 시작하지 않았으면 이런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이들 앞에서 연구의 결과를 발표하는 건, 시온 혼자였다.

그는 그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멜도르……. 너 정말 괜찮아?’

이런 시온의 시선을 눈치챈 듯, 멜도르가 그와 눈을 마주했다.

소년은 아주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시온에게 당당히 행동하라는 듯.

또한 옆에 있던 마탑주가 턱, 시온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자세한 연구 과정의 설명은 여기 있는 아글라 공작가의 차남, 시온 아글라 공자가 설명할 걸세.”

그 말에 시온은 고개를 돌려 마탑주를 바라봤다.

바로 이 남자가 취재의 열기를 더욱 달아오르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지난 8년 동안 행방불명이었다가, 갑자기 은둔을 끝내겠다며 나타난 마탑주.

마탑주는 스스로 심경의 변화가 생겨 돌아왔다고 말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시온은 마탑주가 나타나기 며칠 전, 그를 소개해 준 벨라디를 떠올렸다.

***

“둘의 연구 결과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는 이야기 들었어. 정말 축하해.”

“고마워 벨라디. 그런데 정말 옆에 계신 분이…… 마탑주셔?”

“크흠, 벨라디 님께 이야기 많이 들었소.”

마탑의 상징인 검은 로브를 입은 노인은 헛기침을 하며 못마땅한 얼굴로 시온을 훑어봤다.

“확실히 케스퍼, 그 망할 놈과 닮지 않았군. 닮았으면 확 한 대 때려 주려고 했는데.”

“네?”

“시온은 제 절친한 친우예요. 그 일과 연관되어 있지 않으니 괜한 화풀이는 삼가 주세요.”

벨라디가 살짝 노인을 흘겨보며 경고하자, 마탑주는 머쓱하게 수염을 쓰다듬었다.

“알겠습니다, 벨라디 님. 늙은이가 나이만 들어서 감정이 앞섰군요. 미안하오, 아글라의 차남.”

“아, 아닙니다.”

시온은 본능적으로 마탑주가 내민 손을 잡으며 악수했다.

이런 둘의 모습을 바라보던 멜도르가 입을 열었다.

“아글라 공자, 저분은 마탑주가 맞습니다. 여기, 이 사진과 똑같이 생겼어요.”

멜도르는 본인들이 연구에 자주 참고했던 마탑주의 마법 보석 논문 맨 앞장을 펼쳤다. 거기에는 논문의 주인이라며, 마탑주의 얼굴이 선명히 프린트되어 있었다.

거기서 눈을 뗀 멜도르는 반짝이는 눈으로 마탑주 옆에 있는 벨라디를 바라봤다.

“역시 누나야. 실종된 마탑주님과도 친분이 있었구나……! 심지어 누나한테 경어와 존칭을 쓰다니……!”

“이쪽이 벨라디 님의 동생인 모양이군. 훌륭한 누이를 두어 부럽소.”

“제 일생일대의 자랑거리입니다.”

“자, 사적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벨라디는 자꾸 삼천포로 빠지는 이야기의 주도권을 자신에게로 끌고 왔다.

“내가 둘에게 마탑주님을 소개한 건, 전부 부탁할 게 있어서야.”

“부탁이라면……?”

시온의 되물음에 벨라디는 그를 한 번, 그리고 멜도르를 한 번 바라봤다.

그러더니 둘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 마탑주님께서 공언해 주시기로 했어.”

“마탑주님께서 직접?”

“그러면 우리야 영광이지! 마탑의 반발도 많이 줄어들겠다!”

벨라디의 말에 시온이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마탑주가 마법 보석 연구의 권위자인 만큼, 마탑 역시 보석 연구의 선두 주자였다.

하지만 그 영광도 지금은 옛날의 일.

마탑주가 사라진 후, 마탑의 모든 연구는 큰 진척 없이 지지부진한 상황이었다. 잘 나가던 마법 보석 분야까지 전부 다.

이런 때 외부에서 혁신적인 연구 결과가 나오면, 마탑의 반발이 상당할 것이 뻔했다.

특히 마탑과 긴밀한 협력 관계인 동시에, 라이벌로 꼽히는 아글라 공작가의 직계가 관련되어 있다면 더더욱 말이다.

시온은 항상 그런 상황을 염려했고, 이 연구에서 본인 이름을 빼는 게 어떻겠냐고 몇 번이나 건의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멜도르는 그럴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지.’

같은 마법사로서 동료의 공로를 감추는 짓은 할 수 없다고.

그 한마디에 시온은 휘몰아치는 감동의 물결에서 허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 멜도르가 나한테 동료라고 하다니……!’

시온은 멜도르가 철들기 전, 성질 더럽고 벨라디를 힘들게 하던 꼬맹이 시절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멜도르의 인성이 이만큼이나 성장한 게 뿌듯하기 그지없었다.

‘역시 벨라디와의 관계를 고민하던 멜도르에게 조언해 주길 잘했어.’

덕분에 동료라는 귀한 칭호를 얻었으니까.

결국 연구 결과에서 자기 이름을 빼는 건 실패했으나, 시온은 정말로 기뻤다.

그렇게 염려와 기쁨을 반반씩 가지며 연구 결과 발표를 언제로 정할까 손꼽고 있었는데, 때마침 보고를 들은 벨라디가 마탑주를 포섭해 왔다니!

정말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내 친구라서가 아니라, 벨라디만큼 수완 좋은 사람은 형 외에 처음이야.’

아니, 솔직히 형인 케스퍼보다 벨라디가 훨씬 더 사람을 휘어잡고 이끌어 나가는 능력이 탁월했다.

케스퍼는 주로 경쟁 상대를 깎아내려 가며 사람들의 지지와 협조를 얻었다.

반면에 벨라디는 주변의 상황을 교묘하게 엮으며 본인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냈다.

거기에 특유의 카리스마까지 더해지니, 적재적소에 사람을 활용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그만큼 모든 부담을 혼자 지는 게 안타깝지만.’

그래서 이번 마법 보석 연구로나마 친구를 도울 수 있는 게 얼마나 반가웠던가. 거기다 이렇게 골칫거리까지 해결된다니 금상첨화였다.

그렇게 혼자 안도하는데, 벨라디가 단호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 시선에 시온은 벨라디의 말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아챘다.

“대신 이 연구는 시온이 주도적으로 이끌었다고 발표했으면 해.”

“……뭐?”

시온이 멍청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벨라디는 그런 그를 보며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둘에게는 양해를 구하고 싶어. 이번 내 암살 사건, 둘 다 기억나지?”

벨라디의 질문에 가만히 눈만 깜빡이던 멜도르가 발끈했다.

“당연하지! 그 찢어 죽일 놈들, 감히 누구를 건드려! 걸리면 가만 안 둬! 다 죽여 버릴 거야!”

“앗, 벨라디 혹시 뒤늦게 아픈 곳이라도 있는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니야.”

“그 뒤는 내가 말하겠소.”

마탑주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 일을 주도한 게 마탑 소속 마법사인 건 확실하오. 하지만 정확히 어떤 놈들인지 아직 판별하지 못했어.”

“마탑이라고요?”

“마탑이 어째서?”

“크흠, 그건 직접 잡아서 물어봐야겠지만…….”

마탑주가 인상을 찡그리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하여튼 나도 벨라디 님을 노린 암살범들을 잡는 것에 적극 협조할 생각이오. 그래서 안타깝게도 벨라디 님의 동생보다는 아글라가의 차남이 세간의 이목을 끌어야 하고.”

“정확히 어떤 계획인지 알려 줄 수 있어?”

시온은 다급하게 물었다.

멜도르는 시온을 동료라고 부르며, 그의 업적을 가리지 않도록 세심히 신경 썼다.

그런데 갑자기 저런 말을 하면…….

그건 시온의 입장에서 아주 껄끄러운 일이었다.

멜도르 역시 동의하는지, 진지한 얼굴로 벨라디를 바라봤다.

“난 무조건 누나의 계획에 따를 거야. 하지만…… 최소한 내가 엮여 있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고 싶어.”

“그래, 당사자들에게 비밀로 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벨라디는 이런 일을 염두에 뒀다는 듯, 유려한 말솜씨로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했다.

“마탑은 현재 두 개의 세력으로 나뉘어 있어. 행방이 묘연한 마탑주를 기다려야 한다는 사람들과 새로운 마탑주를 뽑아야 한다는 사람들. 마탑주를 기다리자는 사람들 중에는 그의 최측근이 많아.”

“누나를 암살하려는 무리는 새로운 마탑주를 뽑자는 사람들이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야, 마탑주님을 기다리는 무리 중에는 최측근이 많다며. 그럼 마탑주님과 친한 누나를 해칠 이유가 없잖아. 오히려 반대파 쪽에서 방해된다며 덤비겠지.”

멜도르의 말에 벨라디가 피식 웃으며 두 가지를 지적했다.

“일단, 마탑주님과 난 손을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았어. 그리고 반대파라고 해서 마탑주님을 부정하는 무리가 아니야.”

벨라디의 말에 시온이 거들었다.

“맞아, 굳이 따지자면 대표의 자리가 비어 혼란스러운 마탑을 정리하고 싶어 하는 자들이라고 보면 돼.”

“음, 그렇구나.”

마탑과 협력 관계인 덕에 시온은 멜도르보다 마탑 내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대번에 벨라디의 다음 말을 예측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널 암살하려는 무리는 마탑주님을 기다리는 무리 중에 있다는 거구나.”

“정확히는 최측근일 확률이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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