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
내가 멈칫하는 사이, 마탑주는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며 내 손을 꼬옥 잡았다. 그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오두막에서 손자에게 뭔가를 들었는지, 마탑주는 그렇게 몇 번이고 내게 감사 인사를 표했다.
오히려 그 뒤에 있던 손자는 생각보다 의연한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고마워요, 누나. 덕분에 이제 떠날 수 있을 것 같아.]
“네 할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니?”
[응!]
그렇게 답한 손자가 마탑주를 바라봤다.
마탑주 역시 내 손을 놓고 자신의 손자와 눈을 마주했다.
[할아버지, 나 이제 가야 해.]
그 말과 함께 애초에 반투명했던 손자의 몸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마탑주는 서둘러 손자를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아…….”
그러나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구분이라도 해 주듯, 마탑주의 손은 그대로 영혼을 통과하고 말았다.
마탑주는 황망하고 안타까운 눈으로 손자를 눈에 담기 바빴다.
“마지막인데…… 한 번 안아 주지도 못하고…….”
[괜찮아, 할아버지. 이렇게 인사라도 할 수 있어서 난 너무 좋아.]
“미안하다, 할아버지가 다 미안해.”
[울지 말아요.]
둘의 애틋한 모습을 보며 난 힐끔 타우딘을 내려다봤다. 내 시선에 타우딘이 꼬리를 살랑 흔들었다.
[뭘 보나.]
머릿속에 타우딘의 목소리가 울렸다. 킬리언에게 듣기론 정령과 계약을 하면, 이렇게 전음으로 대화가 가능했다.
그렇기에 나도 타우딘도 굳이 입을 열지 않고 말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저 둘, 이대로 보낼 거야?]
[만나게 해 줬으면 됐지. 인간에게는 저것만으로 충분히 기적 아닌가?]
[이왕 기적을 보여 줬으면 제대로 실행해야지.]
[이 몸은 이제 모든 게 귀찮다! 너 때문에 자연 친화력을 많이 써서 힘들단 말이다!]
[어차피 이곳은 네가 사는 곳이라, 자연 친화력이 넘쳐 나잖아.]
[흥! 정령술에 재능도 없으면서 쓸데없이 세세하게 알고 있구나!]
[마침 내 파트너가 아주 유능한 정령사라.]
타우딘은 내 말을 다 듣기도 전에 휙 머리를 다른 쪽으로 돌려 버렸다.
어쩐지 저 동그란 뒤통수에서부터 고집이 느껴져, 난 가만히 팔짱을 꼈다.
‘저 고집불통 정령을 어떻게 회유하지.’
개인적으로 마탑주와 손자의 상봉을 보니 동정심이 일기도 했고, 무엇보다 도와줄 때 확실히 도움을 줘야 마탑주를 내 수족처럼 부릴 수 있었다.
그러니 타우딘이 힘을 더 써야 하는데…….
‘내가 알기로 저 정령이 그나마 관심을 보이는 건 마법 보석밖에 없어.’
하지만 그의 흥미를 이끌 보석들은 이미 계약할 당시 전부 사용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난 눈을 한 번 깜박이다, 손을 뻗어 타우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호랑이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털을 바짝 세웠다.
“오글거리게 무슨 짓이냐!”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마탑주와 손자가 이쪽을 바라봤다.
그사이, 손자의 몸은 이제 거의 투명해져 곧 영원히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난 재빠르게 타우딘에게 다가가 뺨을 덥석 쥐었다. 그러고는 마구 주무르기 시작했다.
내 행동에 타우딘이 기겁했다.
“으으으! 이 몸에게서 손 떼라! 당장 떼지 못할까!”
“타우딘.”
난 음산하게 웃으며 전음으로 대답했다.
[회유가 힘들면, 협박을 하면 되잖아?]
[뭐, 뭐라고?!]
[계속 가만히 있으면, 난 오늘부터 네가 오글거려 몸서리칠 때까지 너에게 찰싹 달라붙겠어.]
매일 매일 소환해서 머리를 쓰다듬고 볼을 주물럭거리고, 틈만 나면…….
내가 이렇게 속삭이자 타우딘이 다시 털을 바짝 세웠다.
“집어치워라!”
그렇게 외친 타우딘은 후다닥 내 손에서 빠져나오며 투명해져 가는 손자를 노려봤다.
“해 주면 될 거 아니냐! 해 주면!”
그 말과 동시에 타우딘이 후- 바람을 불자, 투명해지던 손자의 몸이 확 형태를 가지기 시작했다.
그걸 보며 난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으면서.”
그래, 분명 원작 속 셰넌의 말에 의하면, 타우딘이 소환한 영혼은 한순간 몸을 가질 수 있다고 했거든.
‘그런데 이 귀찮음 많은 정령이 일부러 그 과정을 생략한 거지.’
난 잔뜩 경계하는 타우딘에게서 시선을 돌려 마탑주를 바라봤다.
“어서 안아 주세요. 기적은 찰나에 사라지니까.”
“으흑!”
마탑주는 다시금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온전히 돌아온 손자를 꽉 안았다.
손자 역시 이번에는 참기 힘든지, 마탑주의 품에 안기며 울먹였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 할아버지.]
“너희 없는 세상에서 오래 살 자신이 없구나.”
그 한탄과 같은 중얼거림에 손자는 울던 얼굴을 간신히 펴며 배시시 미소 지었다.
[할아버지는 마탑주잖아요. 세상에서 제일 강한 마법사.]
“아가야…….”
[더 많은 사람들이 할아버지의 위대함을 알면 좋겠어요.]
그렇게 속삭인 손자의 몸이 다시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였다.
“시간이 다 됐군.”
어느새 내 옆으로 돌아온 타우딘이 중얼거렸다.
동시에 마탑주의 품에 안겨 있던 손자가 한마디를 내뱉으며 흩어졌다.
[안녕…….]
그렇게 손자의 영혼은 영영 만날 수 없는 세상으로 떠나고 말았다.
마탑주는 텅 비어 버린 손안을 바라보다, 결국 무릎 꿇고 오열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엉켜 버린 감정의 실타래를 이제야 풀어내는 듯,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그런 그를 배려해 조금 떨어져 기다리는데, 타우딘이 전음으로 말했다.
[이 몸이 할 일은 이제 끝난 거지?]
[그래.]
[그럼 이 몸은 그만 간다! 귀찮으니까 자주 부르지 마라!]
타우딘은 저 말을 끝으로 소리도 없이 훅 사라졌다.
정령마다 성격이 다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여러모로 아이닝과는 참 달라.’
그래서 편한 것도 있지만.
난 걸음을 옮겨 마탑주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를 위로하듯, 어깨에 손을 올리고 토닥였다.
“마음의 위안을 좀 얻으셨을까요?”
내 말에 마탑주가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 그는 잔뜩 쉬어 버린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이 은혜,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여기까지 말한 마탑주는 감정을 많이 추스른 덕에 아까보다 차분한 얼굴이었다.
“그나저나 내가 아직 귀한 분의 성함도 모르고 있었군요.”
이성도 함께 돌아왔는지, 마탑주의 눈에는 그제야 날 향한 일말의 의심과 경계가 생겨났다.
하긴, 그럴 만했다.
이 위험한 마물의 숲에 갑자기 젊은 여자가 나타난 것도 이상한데, 뜬금없이 죽은 손자의 영혼을 만나게 해 줬으니.
난 예의 바르게 웃으며 대답했다.
“전 벨라디라고 합니다. 벨라디 앨턴.”
“벨라디…… 앨턴? 혹시 데커딜 제국 사람입니까? 앨턴 공작가의 첫째?”
“맞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테오도르 앨턴과 똑같이 생기셨군요.”
아버지를 쏙 빼닮은 내 외모는 때때로 아주 확실한 신분증이 돼 주었다. 이번에도 딱 그런 경우고.
내 신분을 확인한 마탑주는 잠시 가지고 있던 의심과 경계를 완전히 지워 버렸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내게 예를 올렸다.
“지난 세월 동안 손자를 찾아 주겠다거나, 죽은 손자의 영혼이 보인다며 접근한 사기꾼들이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앨턴 양……. 아니, 벨라디 님처럼 정말로 그 아이를 만나게 해 준 이는 처음입니다. 당신은 제 인생에 다시 없을 은인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벨라디 님.”
위대한 마탑의 최고 권위자는 황제에게도 저리 극진한 자세를 취하지 않았다. 당연히 황제의 신하인 아버지에게도 마찬가지였고.
그런 대륙의 강자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게 극존칭을 쓰다니. 난 속으로 축배를 들었다.
‘좋아……! 계획대로 마탑주는 이제 완벽히 내 손아귀로 넘어왔어.’
저절로 입가에 맺어지는 뿌듯한 미소를 단속하는데, 마탑주가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벨라디 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 늙은 마법사를 조금만 더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말씀하세요.”
“실은…….”
마탑주가 내게 속삭였다. 그 이야기를 다 들은 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가죠.”
내 허락에 마탑주가 희미하게 웃었다.
동시에 우리가 서 있던 곳에 커다란 마법진이 생성됐다. 내게는 아주 익숙한 문양이었다.
‘텔레포트 진…….’
과연, 마탑주쯤 되면 이런 건 큰 준비 없이 바로 만들 수 있다는 건가.
곧 텔레포트 진이 빛나더니 시야가 훅 바뀌었다.
***
눈앞에는 빽빽하게 자란 나무들이 즐비해 있었다.
난 그중 가장 크고 굵은 고목을 바라봤다.
“이 나무인가요?”
“그렇습니다.”
흠, 이게 정말 마물이라고?
난 신기한 눈으로 고목을 뚫어져라 관찰했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나무와 다름없었으나, 마탑주의 말에 의하면 저 고목은 죽은 시신을 흡수해 양분으로 삼는 식물형 마물이었다.
그리고…….
‘마탑주의 손자도 저 마물에게 먹혀 버렸다는 거지?’
내 생각에 대답하듯 마탑주가 입을 열었다.
“식물형 마물이 존재하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만, 대개 이상한 모양을 가지고 있기에……. 전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저런 평범한 나무도 마물일 수 있다는 걸.”
마탑주는 많은 감정을 함축한 눈으로 그 나무를 바라봤다.
“심지어 마력도 통하지 않는 마물이라니……. 제 손자 녀석이 말해 주지 않았다면, 전 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몰랐을 겁니다.”
확실히 마력이 통하지 않으면 추적 마법도 소용없었겠지.
저 마물은 죽은 손자를 흡수한 채 오랫동안 평범한 나무인 척 존재를 숨겼던 건가.
“그 아이의 말로는 이미 저 마물에게 유골까지 다 먹혀 버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입고 있던 옷가지들은 남아 있다고 해요. 전 그걸 수습해 주고 싶습니다.”
“제게 맡기세요.”
손자의 유품을 얻으려면, 저 나무를 베어야 했다. 다만 어지간한 마법으로는 저 나무를 벨 수 없는 모양이었다.
물론, 마탑주는 대륙 최고의 마법사. 강력한 공격 마법을 써서 벨 수야 있겠지만, 그러다 유품이 훼손될까 봐 우려가 된다며 내게 부탁한 것이다.
‘내게는 큰 문제가 아니지.’
난 오른손을 뻗었다.
그러자 내 의지에 의해 주변에 친화력이 모이더니 허공에 정령검이 나타났다.
타악-!
내가 자연스럽게 그 손잡이를 잡으니, 뒤에서 마탑주가 놀라운 듯 중얼거렸다.
“마력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물건이 생기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