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
“이 사건의 수사 권한이 절대로 황태자에게 넘어가선 안 돼요.”
혹여라도 황태자가 이 일에 책임을 지고 본인이 조사하겠다 나서면 모든 것이 엉망진창일 게 분명했다.
“아시겠지만, 이번에도 마물의 부산물이 쓰였어요. 마침 킬리언 황자가 폐하의 허락하에 그 유통 과정을 추적 중이니, 이를 명분으로 지금 사건도 그가 맡을 수 있도록 아버지께서 힘을 보태세요.”
공적인 말을 하니, 그제야 아버지도 정신을 차린 모양인지 눈에 초점이 잡혔다.
그가 이성을 되찾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다. 또한 지금이야말로 마물의 부산물이 이 제국에 흘러 들어왔음을 공언할 때다. 이번에도 은밀히 움직이다가는 시기를 놓칠 거야.”
확실히 지금은 황제를 포함한 아주 극소수의 인물만 부산물에 대해 알고 있었다.
심지어 황제도 앨턴가를 습격한 괴한들이 부산물을 섭취했다는 건 알지만, 본인이 즐겨 마시는 꽃 차가 수상하다는 건 모르고 있었다.
‘아직 꽃 차에 대해서는 확실한 증거가 없어서 보고하지 않았거든.’
그래도 다행히 가을 사냥 대회 시작 전, 킬리언 측에서 블렌딩된 꽃잎을 입수했다고 알렸다.
그가 이번 사냥 대회에 참석하지 못한 건 입수한 꽃잎의 성분 분석에 집중하기 위해서였고.
그렇다면 곧 결과가 나올 테니, 슬슬 마물의 부산물을 물밑에서 건져 올릴 타이밍이긴 했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아버지의 의견에 동의했다.
“자세한 건 아버지께 맡길게요.”
가족으로서 아버지는 최악이지만, 일꾼으로서 테오도르 앨턴은 능력 있는 자였다. 그러니 세세한 것들은 알아서 황제와 조율하겠지.
“그럼 먼저 가 보겠습니다.”
아버지에게 할 말은 다 했으니 알렉산더와 미리 텔레포트 진이 있는 곳으로 갈 생각이었다.
고삐를 고쳐 잡는데, 아버지가 내게 물었다.
“수도에 가도 쉴 생각이 없어 보이는구나. 가서 뭘 할 생각이지?”
그 물음에 난 지나가는 투로 대답한 후, 알렉산더와 걸음을 옮겼다.
“전 따로 족쳐야 할 것들이 있어서요.”
내가 말했었나?
난 갚아야 할 것들은 절대 잊지 않는다고. 그게 은혜든 혹은 원수든 말이야.
썩어 버린 마탑을 대번에 갈아엎을 생각에 한쪽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
내가 오래전부터 어둠의 정령 타우딘을 노린 건 소식이 끊긴 마탑주를 손에 넣기 위함이다.
데커딜 제국은 그리리카 선황의 영향으로 마도 공학이 널리 퍼졌지만, 순수한 마법에만 몰두하는 자들도 남아 있었다.
마탑주는 그중에서도 아주 대표적인 전통파 마법사였다.
‘그만큼 대륙에서도 손꼽힐 만큼 실력이 뛰어났지.’
마법 보석에 관한 연구도 따라잡을 자가 없는 권위자였고.
그렇다고 마탑주가 마도 공학을 아예 배척하는 인물은 아니었다. 마도 공학을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그래도 후배들이 선택한 길을 나름 존중한다는 설정이었으니까.
마탑은 이런 마탑주를 주축으로 활발하게 운영되었으나, 어느 순간 점점 방향성을 잃어 갔다.
‘정확히는 마탑주가 가족을 잃고 방황하기 시작하면서부터야.’
마탑주의 유일한 식구였던 아들 부부와 그 손자.
그 셋은 불행히도 타고 있던 마차가 절벽 아래로 추락하며 유명을 달리했다.
아니, 사실 정확한 건 아니었다.
‘부부의 시신은 발견됐지만, 그 아들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거든.’
마탑주는 그때부터 모든 걸 뒤로하고, 실종된 손자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부서진 마차 안에서 발견된 누군가 탈출했던 흔적은 자식 잃은 노인에게 희망이 되기 충분했으니까.
‘아주 잔혹한 희망이었지만.’
그렇게 마탑주의 행방이 묘연해진 지 8년. 그 세월은 마탑 내에서 세력이 나뉘고, 갈등이 깊어지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크게 차기 마탑주를 뽑아야 한다는 측과 그래도 기다려야 한다는 측으로 나뉜 채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지.’
원작에서는 결국 마탑주를 기다려야 한다는 측이 승리했다.
그가 행방불명된 지 딱 10년이 되던 해, 누군가가 마탑주를 설득해 마탑으로 돌려보냈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네시아였고.’
거리에서 쓰러져 있던 마탑주를 우연히 구한 네시아는 그를 안타깝게 여기며 성심성의껏 챙겼다.
공교롭게도 그 당시 네시아의 나이와 죽은 손자의 나이가 같았던지라, 마탑주는 그런 네시아에게서 손자의 모습을 봤고 다시 삶의 의지를 찾았다나 뭐라나.
사실 그런 사정은 관심 없었다.
‘내게는 그렇게 은혜를 입은 마탑주가 얼마나 북부에 도움이 되었는지가 중요하지.’
녹슬지 않은 마법 실력과 괴팍한 성격으로 마탑을 다시 휘어잡은 마탑주는 네시아를 위해 무료로 북부에 텔레포트 진을 설치하는 등, 아주 통 큰 모습을 보여 줬다.
그리고 그걸 놓칠 내가 아니었다.
‘그 노인을 손에 넣으면, 마탑의 고급 인력들까지 덤으로 따라오는 거니까.’
그 정도로 가공할 노동력이면 순식간에 철도 공사를 전국으로 연장할 수 있었다. 거기다 복잡한 장치가 많이 들어간 증기 기관차도 훨씬 손쉽게 제작할 수 있었다.
원래는 그렇게 철도 공사 면으로만 활용할 생각이었는데.
‘그쪽이 먼저 뒤통수를 쳤으니, 이쪽도 가만히 있을 수 없거든.’
난 앞으로 있을 계획을 차분히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조금 더 빠르게 못 가?”
이 말에 날 태우고 있던 커다란 호랑이가 까칠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요구가 너무 많다! 이 몸을 교통수단으로 삼은 것만으론 부족한 것이냐!”
“말했잖아. 너처럼 나도 욕심이 많다고.”
그렇게 말하며 후후 웃자, 타우딘이 분하다는 듯 크게 울부짖었다.
“이 몸! 자기 꾀에 자기가 당했구나!”
그래도 타우딘 역시 순박한 정령이라, 큰 반항 없이 속력을 올리기 시작했다. 바람에 의해 머리카락이 세차게 흩날렸다.
난 떨어지지 않도록 몸을 낮추며 타우딘의 등에 가깝게 밀착했다.
‘정령이 덩치가 크니 이런 점은 편하네.’
만약 타우딘이 아이닝처럼 작았다면, 날 태우는 건 꿈도 못 꿨을 텐데.
난 이곳으로 출발하기 직전, 은밀히 만났던 아이닝과 킬리언을 떠올렸다.
***
“아이닝도 벨라디 따라서 거기 가고 싶은데-!”
원작에서 마탑주가 중얼거렸던 정보에 따르면, 실종 8년 차의 그는 현재 마물의 숲에 머물고 있었다.
마차 사고가 일어난 곳이 마물의 숲 근방이었기 때문이다.
마물의 숲은 국경 너머에 있는 위다나 왕국의 땅이기에, 몰래 다녀오려면 텔레포트 다이아몬드가 필수였다.
그렇기에 난 내가 가지고 있는 황궁 근처 안가로 그를 불렀다.
“아이닝도 벨라디 따라가고 싶은데!”
아이닝은 다시 한번 그렇게 외치며 커다란 눈으로 킬리언을 바라봤다.
그러나 킬리언은 단호한 목소리로 아이닝을 제지했다.
“벨라디는 놀러 가는 게 아니야. 방해하지 말고 이리 와, 아이닝.”
“방해 안 해! 절대 방해 안 할게!”
아이닝은 그렇게 말하며 부모의 허락을 구하는 아이처럼 킬리언을 졸랐다.
그런 아이닝을 타박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타우딘이었다.
“어리석구나, 아이닝! 너같이 평범한 정령은 마물의 숲 심층부로 들어가는 순간, 소름이 돋아 움직이지도 못할 거다!”
그렇게 외친 타우딘은 당당하게 가슴을 내밀며 외쳤다.
“하지만 이 몸은 모든 것을 포용하는 어둠의 정령으로서 마물에게 거부감을 느끼지 않지! 그러니 이 몸이 아니면 그 어떤 정령도 그 숲을 견디지 못해!”
실제로 타우딘이 평소 머물고 있는 곳은 마물의 숲 심층부였다.
타우딘의 말에 아이닝이 울상을 지으며 폴짝였다.
“타우딘 얄미워! 타우딘 얄미워!”
폴짝폴짝 뛸 때마다 타우딘이 얄밉다고 소리치던 아이닝이 곧 킬리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킬리언은 그런 자신의 정령을 쓰다듬으며 위로했다.
“이번만큼은 양보해야 해, 아이닝. 벨라디는 뛰어난 검사야. 게다가 정령과 계약까지 했으니…… 걱정할 필요 없어.”
어쩐지 그 속삭임이 아이닝이 아닌 자신에게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은 착각일까?
킬리언이 희미하게 웃으며 날 바라봤다.
“벨라디가 정령과 계약하니, 확실히 소통이 더 편안해진 것 같아요. 설마 정령검에 만들어 놓은 길을 역이용해 타우딘을 보낼 줄 몰랐어요.”
“그동안 제가 먼저 당신한테 연락할 수 없어서 꽤 답답했거든요.”
내 말에 킬리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법 다이아몬드가 담긴 주머니를 내밀었다. 난 그걸 받아 들며 말했다.
“이렇게 흔쾌히 빌려줘서 고마워요. 최대한 빠르게 일을 마무리하고 돌려드릴게요.”
“빨리 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저 몸만 조심하세요. 마물의 숲은 위험하니까…….”
킬리언은 그렇게 말하며 미련 가득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그 역시 나와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을 꾸욱 억누르는 게 티 났다.
그러나 아쉽게도, 킬리언은 이 시간 이후부터 단 한시도 황궁을 떠날 수 없었다.
꽃 차의 분석도 분석이지만, 내가 수도 저택으로 돌아오고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도 황제와 함께 입궁했기 때문이다.
그 후, 둘은 장시간의 논의 끝에 내 납치 사건과 네시아의 납치 미수 사건을 공동 수사 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별도의 수사대를 구성하기로 했지.’
그 수사대의 총책임자 후보에는 킬리언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염려대로, 황태자 역시 자신이 주관한 대회에서 불미스러운 사고가 일어나 송구하다며, 책임지고 범인을 잡겠다고 나선 상태였다.
‘이런 때 킬리언이 장시간 자리를 비운 게 들통나면, 책임자 자리를 빼앗길 수 있어.’
그건 우리에게 썩 좋지 못한 상황이었다.
킬리언도 그걸 알기에 다이아몬드를 빌려주며 무운을 비는 수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우울해하는 킬리언을 보자, 상냥히 웃으며 근심을 덜어 줄까 하는 마음이 살짝 들었다.
그러나 난 그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걱정 고마워요, 킬리언. 시간이 너무 지체되는 것도 위험하니 이제 돌아가는 게 좋겠군요.”
“네, 벨라디.”
킬리언이 스르륵 소파에서 일어났다. 아이닝도 기운이 없는지 그의 품에 축 늘어진 채였다. 난 그런 그들을 보며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가기 전에 저랑 내기 하나 할래요?”
“내기요?”
“우리가 언제 황태자를 실각시킬지. 난 올해 겨울을 넘기지 않겠다에 걸죠.”
그러자 킬리언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올해…… 겨울이요? 그건 너무 성급하지 않을까요?”
역시 저렇게 생각할 줄 알았어.
난 확고한 눈빛으로 킬리언과 눈을 마주했다.
“당신이 마갈라 제국에서부터 칼을 갈았던 시절을 떠올리면, 오히려 오래 기다렸죠.”
내 말에 순간 킬리언이 멈칫했다. 난 그런 그를 빤히 응시했다.
“대업을 위해 우리가 모은 증거들. 이제 남은 건 단 하나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