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제발, 제발 무사히만 있어 다오.’
테오도르는 이대로 영영 벨라디를 보지 못하는 건 아닐지,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그 아이가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긴 시간 동안 행방이 묘연한 데다, 납치되었다는 이야기까지 듣자 심장이 자꾸만 쿵쿵 초조하게 뛰었다.
만약 벨라디와 같이 사라졌던 알렉산더가 황실 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는 아직까지 버그만 후작 영식이 체포한 마법사들을 심문하고 있었겠지.
제 아이가 먼 곳에서 치열한 사투를 벌였다는 것도 모른 채.
“공작님! 여기 벨라디 님의 장갑이 보입니다!”
한 기사의 외침에 테오도르는 사념에서 벗어났다.
숲에서 수상한 짓을 벌였다는 마법사들도, 어리석은 자신도 전부 용서할 수 없지만 지금은 거기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테오도르는 서둘러 말을 몰아 그쪽으로 다가갔다.
***
한편, 도로시 역시 알렉산더를 몰며 예의 주시하며 숲을 살폈다.
‘벨라디 님, 어디 계셔요~!’
도로시는 유능한 감시자지만, 겉으로는 벨라디의 하녀일 뿐이다.
그런 그녀가 테오도르의 기사들과 함께 이 숲에 올 수 있었던 건, 전부 알렉산더 덕분이었다.
알렉산더가 다른 누구도 아닌, 도로시에게만 교감을 시도했기 때문이었다.
‘북부에서 알렉산더와 친해지길 잘했어~!’
황실 별장에서 애용하던 단검을 닦고 있는데, 갑자기 알렉산더의 울음소리가 들려 얼마나 놀랐던가!
벨라디에게 상을 받기 위해, 알렉산더를 물심양면으로 돌보며 말과 신뢰를 쌓은 것이 이렇게 빛을 발했다.
‘설마 벨라디 님은 여기까지 계산하신 걸까~?’
물론 아니었다.
하지만 그 덕에 벨라디를 찾을 수 있다는 실마리를 잡았으니,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앗!”
순간 무언갈 발견한 도로시가 서둘러 알렉산더의 말 머리를 돌렸다.
황실 별장에서 기력 회복 마법을 받은 말은 쌩쌩하기 그지없어, 갑작스러운 도로시의 행동에도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알렉산더. 어쩐지 저기로 가야 할 것 같아~! 가자~!”
그렇게 도로시는 숲 안으로 향했다. 그녀의 돌발 행동에 근처에 있던 기사 몇이 당황해하며 도로시의 뒤를 따랐다.
“이봐! 무단으로 진열에서 이탈하지 마라!”
한 기사의 외침에 도로시가 대답했다.
“나무에 생긴 흔적을 보셔요~! 벨라디 님은 이쪽으로 이동했던 게 틀림없어요~!”
확실히 도로시의 말처럼 어지러이 난 칼자국은 알렉산더가 향하는 방향으로 나 있었다.
도로시는 문득 불안해졌다.
‘칼자국이 너무 많아. 이 정도면 적어도 사람 몇백이 동시에 칼을 휘두른 것 같은데…….’
설마 벨라디 님 혼자서 그 많은 인원을 상대하신 건가?
아무리 사람이 강해도, 물량으로 승부해 오면 지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도로시가 언뜻 듣기로, 벨라디는 부작용이 심한 원거리 텔레포트 마법에 휘말린 것 같다고 했다.
그 증거로 그녀와 같이 마법에 휩쓸렸던 알렉산더도 상당한 내상을 입은 채였다.
‘벨라디 님, 제발 무사하셔요~!’
도로시가 울상을 지으며 알렉산더를 재촉했다.
***
도로시와 마찬가지로 테오도르 역시 대략적인 상황을 깨닫고 그 방향으로 말을 몰기 시작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수색대는 까마득한 협곡 앞에서 말을 멈췄다.
테오도르가 다급히 말에서 내리자, 뒤따르던 기사가 따라와 보고했다.
“공작님, 아무래도 일전의 소공작님을 습격했던 괴한 사건과 유사한 것 같습니다.”
“……확실한가?”
“예. 일단 전투가 있던 건 확실하지만, 주변에 사람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벨라디 님의 실력이라면 분명 쓰러진 자들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기사는 잠깐 말을 멈추더니 뒤에 있던 이들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그들은 들고 있던 옷가지와 무기를 내밀었다.
정신없이 달리는 테오도르 대신 드문드문 숲에 널브러진 것들을 챙겨 온 것이다.
“이렇게 사람은 없고, 옷과 무기만 숲 곳곳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때와 똑같군.”
멜도르와 네시아를 습격한 괴한들의 시신을 수습할 때. 그때도 시신이 녹아 버려 옷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당시에 벨라디는 남은 옷가지들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마물의 부산물을 남용한 부작용이에요.
“그럼…… 벨라디가 또다시 그때 그 괴한들에게 공격받은 거라고?”
“저희는 그렇게 추측합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는 게 이런 걸까.
실력 있는 앨턴가의 호위 몇십으로도 상대하기 벅찬 게 부산물로 각성한 괴한들이었다.
그런 이들을 오로지 제 딸 혼자 상대했단 말인가! 베어도 베어도 다시 일어났다는 그 괴물 같은 것들을 벨라디 혼자!
“이리로 와 보세요!”
날카로운 외침에 테오도르가 휙 고개를 돌렸다.
도로시가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진지한 표정으로 절벽 끝을 살피고 있었다.
“여기에 칼이 박힌 흔적이 있어요!”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수색대는 서둘러 그쪽으로 향했다.
과연, 도로시의 말대로 절벽에는 일정한 방향으로 검이 박힌 자국이 남아 있었다. 한참 살펴보던 기사가 중얼거렸다.
“어쩐지, 아무리 시체가 녹았다 해도 증거가 너무 적다고 생각했는데…….”
그 중얼거림을 시작으로 기사들이 추측을 이어 갔다.
“설마 벨라디 님이 그것들을 처리하다가 그만 저 절벽으로 추락한 걸까요?”
“으음, 그럴 수 있어. 괴한들은 이지가 없으니 벨라디 님을 따라 같이 떨어진 것 같군. 그럼 이렇게 흔적이 없는 게 말이 돼.”
“그래도 벨라디 님께는 보호막을 펼칠 수 있는 마법 보석이 있으니까 다행입니다.”
“아니, 벨라디 님은 원거리 텔레포트로 내상을 입으셨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상태로 보호막을 잘 펼치셨을지 의문이야.”
“거기다 지금은 어디 계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아래로는 사람이 딛고 설 수 있는 땅이 없는데.”
그 말에 동의하듯, 협곡 아래 물살이 거센 소리를 냈다. 종일 내린 비로 불어난 물은 사람을 삼킬 듯 깊고 끝이 없었다.
그걸 확인한 도로시가 털썩 주저앉았다.
“으앙~! 싫어, 싫어~! 벨라디 님~!”
절망하는 도로시를 보며, 기사들도 혹시 모를 불안한 상상을 지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때 가만히 있던 테오도르도 멍하니 읊조렸다.
“내가 내려간다.”
그 말에 수색대 모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공작님!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위험합니다!”
“절벽 아래에 다른 흔적이 있을 수도 있어.”
“그럼 저희가 내려가겠습니다!”
기사들의 만류에도 테오도르는 막무가내였다.
사실 테오도르의 귀에는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벨라디가 저 아래로 추락했다는 섬뜩한 말이 그의 목을 조여 왔기 때문이다.
부모로서 자식이 위기에 처했는데 이렇게 멀쩡히 서 있는 것 자체가 죄로 여겨졌다.
본인이 뭐라고 중얼거리는지 자각도 못 한 채, 테오도르는 거추장스러운 망토를 벗었다.
“너희는 물살을 따라 이동해라. 혹시 몰라. 그 중간에서 벨라디가 구조를 기다릴 수도 있다.”
“공작님!”
“그럴 수는 없습니다!”
기사들이 필사적으로 테오도르를 붙잡았으나, 이미 이성을 잃은 그를 멈출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테오도르가 막아서는 기사들을 손쉽게 치우고선 절벽 아래로 발을 내디딜 때였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마세요, 아버지.”
폭우를 뚫고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테오도르가 재빠르게 고개를 들었다.
“괜히 다치셨다가는 저희만 고생하니까.”
절벽이 아닌 숲 저편에서 벨라디가 걸어왔다. 테오도르의 바람처럼 아무런 상처 없이 멀쩡한 상태로.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나타난 제 딸을 보며, 테오도르는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눈을 깜박였다.
“벨라디……?”
“시간이 많이 늦었네요. 제가 사라지고 나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죠?”
벨라디는 무심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테오도르는 그제야 멈추고 있던 숨을 몰아서 쉴 수 있었다.
“벨라디.”
테오도르가 간절한 목소리로 딸 아이의 이름을 부를 때였다.
“벨라디 니이이이이임~!”
그 가느다란 음성은 도로시의 외침에 파묻히고 말았다.
테오도르가 기사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알렉산더와 함께 후다닥 물살을 따라가던 도로시가 뒤늦게 돌아온 것이다.
“벨라디 니이이이임~! 도로시는 벨라디 님이 무사하실 줄 알았어요오오오~!”
히이이이이잉-!
알렉산더도 같이 기쁨에 겨운 울음소리를 냈다.
둘은 후다닥 벨라디에게 날아와 그녀의 품에 안겼다.
벨라디는 능숙하게 허리에 매달려 오는 도로시의 머리를 쓰다듬고 뺨에 얼굴을 부비는 알렉산더의 갈기를 만져 주었다.
그걸 본 테오도르는 고개를 푹 숙여야만 했다. 무사한 벨라디를 보니까 눈가에서 무언가가 뜨겁게 차올랐기 때문이다.
‘아아…….’
테오도르가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짙은 안도감 때문인지, 평소처럼 감정이 억눌러지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몰랐으나, 테오도르는 한참을 그렇게 생각했다.
벨라디가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제 기도를 들어줘서 감사하다고.
그리고…….
‘앞으로 저 아이가 위험해진다면, 차라리 제 목숨을 가지고 가십시오.’
그렇게 테오도르는 멀찍이 서서 벨라디의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
킬리언은 애초에 사냥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으니, 날 숲에 데려다준 후 다시 돌아가야 했다.
그는 나를 혼자 두고 가는 게 정말 싫은 듯 보였으나, 상황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혹시 모르니 이거 가지고 있어요. 몸을 다 말렸는데, 다시 젖으면 감기에 걸릴 수도 있으니까.
킬리언은 헤어지기 전, 미련 섞인 눈으로 내게 붉은 구슬 하나를 넘겼다. 아이닝의 치유 마법이 담긴 구슬이었다.
‘킬리언도 참. 걱정도 많기는.’
내가 누군데 고작 감기 따위에 걸릴까. 내상도 전부 완치된 터라 지금 난 건강 그 자체였다.
숲으로 돌아오니, 마침 내가 떨어진 절벽 근처에서 아버지와 기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버지의 괜한 짓을 멈추게 하고, 난 곧장 비를 피할 곳을 찾아 근처 동굴로 이동했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져 더 이상 움직이는 건 위험했기에,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이럴 땐 킬리언의 다이아몬드가 참 아쉽단 말이야.’
내가 곧장 황실 별장으로 이동하면 동선이 맞지 않으니 하는 수 없지.
그렇게 동굴로 들어온 후 상시 챙기고 있던 전등으로 빛을 밝히고, 옷을 벗어 물기를 짜냈다.
아이닝처럼 단번에 뽀송해지는 마법이 있으면 참 좋을 텐데.
‘하아, 계속 킬리언과 아이닝이 그립네.’
그래도 대충 물기를 짜내고 마법 전등의 빛을 키우니 온기가 느껴졌다.
그사이 아버지가 내게 대화를 요청했다. 나도 지금까지의 상황을 들어야 하기에 오랜만에 그 요청을 받아들였고.
그렇게 아버지와 난 동굴 깊숙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벨라디.”
아버지가 먼저 입을 여셨다.
“공식적으로 너에게 후계자의 자리를 넘기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