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장녀가 육아물에 빙의하면-143화 (144/197)

143.

“좋아~!”

허공에서 뿅 나타난 아이닝이었다. 아이닝은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웃었다.

“우웅, 이상하다!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구름 위를 걷는 기분~!”

“크흠, 아이닝. 이리 와.”

킬리언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날뛰는 아이닝을 안아 올렸다. 그러자 비로 흠뻑 젖었던 킬리언의 소매와 가슴 부근이 뽀송하게 말랐다.

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으니, 킬리언이 설명했다.

“아이닝은 불의 정령이라 비를 싫어하거든요. 그래서 젖기 전에 물을 증발시키는 거예요.”

“어쩐지, 아이닝 주위에서 비가 사라지는 것 같더라니.”

“벨라디도 말려 줄까?”

“난 환영이지.”

그렇게 말하며 난 킬리언을 바라봤다.

“우선 비도 피할 겸, 내 방으로 이동해요. 좌표는 알고 있죠?”

“그럼요, 벨라디. 제가 매일 들렸던 곳인걸요.”

킬리언이 새삼 수줍게 손을 내밀었다. 손을 포개자마자 그가 바로 수도 저택의 내 방으로 이동했다.

귀를 때릴 정도로 거셌던 빗소리는 방에 도착하기 무섭게 뚝 그쳤다. 창을 보니, 수도는 비가 오지 않아 날이 화창했다.

아이닝은 방에 도착하자마자 내게 안겼다. 그러자 푹 젖었던 내 옷들이 순식간에 빠삭하게 건조됐다.

머리끝까지 완벽하게 말린 걸 확인한 난 칭찬의 의미로 아이닝을 쓰다듬었다.

“고마워, 아이닝.”

“벨라디이-.”

아이닝이 내 품에 몸을 비비며 애교를 부렸다.

자연 친화력을 쓴 건지, 아이닝 없이도 몸을 전부 말린 킬리언이 입을 열었다.

“계약을 이행하겠다는 건, 지금 정령을 소환하겠다는 건가요?”

그는 아까의 사적인 얼굴을 전부 치운 채,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겠어요?”

“문제없어요. 아이닝 준비됐지?”

“응! 나만 믿어, 벨라디!”

아이닝의 말에 흐뭇하게 미소 짓던 킬리언이 내게 허락을 구하고 책상에서 만년필과 종이를 꺼냈다.

“소환할 정령은…… 정해져 있죠.”

그 말에 난 씨익 미소 지었다.

어머니의 일기장에서 발견한 미완성된 정령의 수식. 난 그걸 따로 보관하고 있다가 킬리언에게 완성을 부탁했다.

‘정령마다 소환진이 조금씩 다른 것처럼, 최종 계약에 필요한 고대 마법 수식도 다르거든.’

하지만 기본 토대는 모두 비슷하기 때문에, 어머니의 수식을 응용하면 내가 원하는 정령의 수식을 완성할 수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특히 아이닝과 계약했던 킬리언이라면 믿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로, 수식을 깔끔히 완성시켜서 내 믿음에 보답했지.’

참고로 이 수식을 통해 그는 내가 무슨 정령을 소환할지 알고 있었다. 그 정령이 단 한 번도 인간과의 계약에 응한 적이 없다는 것도.

그래서 킬리언은 수식을 완성한 후, 내게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벨라디, 이 정령은 마갈라 제국에서도 기록도 찾기 힘들 만큼, 아주 희귀해요. 수식이 완벽해도 정령이 계약에 응하지 않으면…….

-걱정 말아요, 킬리언. 내게 다 계획이 있으니까.

그는 내 한마디에 가지고 있던 불안을 바로 잠재울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럼 바로 수식을 그릴게요. 정령석이 있으니 소환진은 따로 필요 없겠군요.”

그렇게 말한 킬리언은 빈 종이에 거침없이 무언가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딱 봐도 해석할 수 없는 어려운 수식들이 아름다운 모형처럼 그려졌다.

그걸 잠시 바라본 난 아이닝을 바닥에 내려놓고, 금고에 넣어 두었던 정령석을 꺼냈다.

보석 형태로 세공된 정령석이 조명 빛을 받아 반짝였다.

난 그걸 가지고 오며, 아이닝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아이닝, 내가 절벽에 있는 건 어떻게 알고 나타난 거야?”

그러자 킬리언 근처에서 알짱거리던 아이닝이 한달음에 내게 다가왔다.

“사냥 대회에 참가했던 킬리언의 부하한테 연락이 왔거든! 벨라디가 실종됐다고! 그래서 킬리언이 날 보낸 거야! 벨라디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정령검을 꺼냈을 거라고~!”

“그랬구나. 정령검이 있으면 넌 언제든 이쪽으로 올 수 있으니까.”

“응! 그렇게 벨라디가 있는 곳을 확인하고, 다시 킬리언한테 돌아가서 지도로 위치를 알려 준 거야! 킬리언이 그 위치의 좌표를 알아내서 바로 텔레포트했고!”

“지도도 볼 줄 알아?”

“그러엄~! 나 킬리언이랑 벨라디한테 도움이 되고 싶어서, 인간 세상 지식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

“듬직하네, 아이닝. 고마워.”

내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껏 예뻐하자, 아이닝이 몸을 녹이며 좋아했다.

그사이 힐끔 킬리언을 바라봤다. 수식에 집중한 그는 내 시선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의도치 않게 킬리언에게 마음고생을 시켜 버렸네.’

그나저나 내 실종이 킬리언에게 닿았다는 건, 다른 이들도 알고 있다는 건데.

‘모스틴과 시온도 걱정을 많이 하겠어.’

현재 황실 별장에 있을 스티아와 도로시도.

아버지는…….

‘내 알 바 아니지.’

얼른 계약을 마무리 짓고, 사냥 대회로 돌아가 그들을 안심시켜야겠다. 그렇게 다음 계획을 정리하는 사이, 킬리언이 숨을 크게 내쉬었다.

“다 그렸어요.”

그 말에 난 곧장 킬리언에게 다가갔다.

수식은 어느새 종이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킬리언은 그걸 티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힐끔 문밖을 바라봤다.

진작 기척을 체크한 난 그 위에 정령석으로 두면서 말했다.

“지금 4층에는 아무도 없어요. 내 방은 방음이 무척 잘 되니 큰소리가 나도 걱정 없고요.”

“알겠어요. 아이닝.”

“응!”

킬리언의 말에 아이닝이 폴짝 뛰어왔다. 그러곤 테이블 위 정령석에 본인의 솜방망이 같은 앞발을 올려놓았다.

“아이닝이 자연 친화력을 불어넣으면, 소환할 정령의 이름을 부르세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킬리언이 저 멀리로 떨어졌다.

“시작한다!”

아이닝의 외침과 함께 검은 정령석이 점점 빛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아래에 있던 수식에도 이변이 일어났다. 문자가 마치 살아난 듯, 종이 위에서 일어나 두둥실 허공으로 떠오른 것이다.

글자들은 점점 크기를 키우며 회오리쳤고, 그로 인해 생긴 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거세게 흔들었다.

그 마법 같은 그 광경을 보며, 난 본능적으로 느꼈다. 지금이 정령의 이름을 말해야 할 때임을.

마침 아이닝이 소리쳤다.

“벨라디, 지금이야!”

“타우딘!”

호명이 끝나자마자, 회오리치던 수식들이 훅 뭉치며 정령석을 삼켰다.

아이닝이 재빠르게 몸을 뒤로 물리며 웃었다.

“타우딘! 얼른 나와~!”

그 해맑은 부름에 정령석과 합쳐진 수식 뭉치가 크게 부풀려지며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재촉하지 마라!”

아이 같은 아이닝의 목소리와 상반된 무척이나 낮고 굵은 목소리였다.

부풀린 뭉치는 서서히 하나의 형체를 만들어 냈다. 얼굴 부근에 눈빛과 표정이 생기더니 생동감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마치 신이 무생물에 숨을 불어넣듯이.

곧 완전히 소환된 정령이 위협적인 고함을 질렀다.

“누가 이 몸을 소환했는가!”

마주한 타우딘은 오늘 내가 잡은 곰보다도 훨씬 거대한 흑호였다. 짙은 회색 털에 화려한 검은 줄무늬를 가진 호랑이.

‘저게 바로 어둠의 정령인가.’

불의 정령 아이닝.

어둠의 정령 타우딘.

기록에 따르면, 단 한 번도 인간과 계약을 맺지 않았다는 도도한 두 정령이 지금 내 눈앞에 있었다.

타우딘은 밝은 갈색 눈동자를 번뜩이며 날 응시했다.

“네가 이 몸을 부른 거로구나!”

“맞아.”

난 싱긋 웃으며 타우딘과 눈을 마주했다.

“이렇게 만나서 반가워, 타우딘.”

내 인사에 흑호가 꼬리를 탁 내리치며 근엄하게 말했다.

“이 몸은 네 부름에 응답한 것이 아니다! 실로 오랜만에 아이닝의 기운이 느껴져 나와 봤을 뿐!”

그러며 흑호는 곧장 내게서 눈을 떼, 아이닝을 바라봤다.

“아이닝, 네가 인간과 계약한 것도 모자라 도움까지 주다니. 아주 의외구나!”

“꺄하항~! 내 계약자가 그걸 원했거든!”

그 말에 타우딘이 슬쩍 떨어져 있는 킬리언을 훑어봤다. 그러고는 콧방귀를 뀌었다.

“고약한 운명에 휘말린 인간이로군. 확실히 드물긴 해!”

타우딘은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버럭 외쳤다.

“하지만 아무리 특별하다곤 해도 이 몸은 인간이 싫다! 그러니 그 누구하고도 계약하지 않아!”

물론, 타우딘이 날 거절하는 것은 전부 예상 범위 안이었다.

난 여유로이 목에 걸고 있던 마법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풀고는, 타우딘 앞에서 이리저리 흔들었다.

“이걸 준다고 해도?”

“……아닛! 그, 그건 셰넌의 다이아몬드!”

흑호의 동공이 순간 동그랗게 확장됐다. 타우딘은 흔들리는 다이아몬드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휙휙 고개를 좌우로 움직였다.

난 싱긋 웃었다.

“나와 계약하면 선물로 이 다이아몬드를 줄게. 어때?”

“이, 이 몸은! 이 몸은 인간이 싫다고 하지 않았나!”

타우딘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느새 내 옆으로 바짝 다가왔다. 그리고 움직이는 다이아를 잡기 위해 집채만 한 앞발을 요리조리 휘둘렀다.

당연히 난 요령 좋게 그의 발을 피하며 타우딘을 내려다봤다.

“지금 네가 이 기회를 놓치면, 난 다른 정령을 소환할 거야.”

“다른 정령?”

“가령…… 바람의 정령이라던가?”

난 그렇게 말하며 가만히 흔들던 다이아몬드를 휙 위로 올렸다.

그러자 타우딘은 그걸 잡기 위해 두 발을 번쩍 세우며 일어났다. 그러고는 다급히 소리쳤다.

“아니 된다!”

난 타우딘의 거대한 앞발이 다이아를 낚아채기 전에 재빨리 오른쪽으로 치웠다.

타우딘은 포기하지 않고 그대로 다이아를 따라왔다.

“셰넌의 다이아몬드가 그놈에게 넘어가다니! 이 몸은 그 꼴을 절대로 볼 수 없다!”

“그럼 나랑 계약하자. 어때?”

“하지만 이 몸은 탄생한 이후, 단 한 번도 인간과 계약한 적이 없다! 그 기록을 깨기 싫다!”

“그럼 하는 수 없지. 다이아몬드는 바람의 정령한테 줘야겠다.”

“안 된다! 그놈은 이 몸의 라이벌이란 말이다!”

난 타우딘과 말장난을 하며 다이아몬드를 이용한 사냥 놀이를 계속했다.

다이아몬드에 홀린 타우딘은 근엄했던 첫 등장을 완전히 잊은 듯, 순식간에 내 페이스에 말려들었다.

이런 우리를 뒤에서 구경하던 킬리언과 아이닝이 한마디씩 중얼거렸다.

“거구의 호랑이와 마법 다이아몬드로 놀아 주다니……. 역시 벨라디는 대단해……!”

당연했다. 내가 대단한 거 한두 번 보나.

“우와, 벨라디는 타우딘이 마법 보석에 환장하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어떻게 알긴. 당연히 원작을 통해 알았지.

사실 아이닝의 말에는 한 가지의 맹점이 있었다. 타우딘을 현혹할 수 있는 마법 보석은 매우 한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타우딘은 인간을 싫어하니 인간이 발견한 건 안 돼. 또 본인이 가지고 있지 않은 희귀한 보석이어야 하지.’

그리고 저 까다로운 두 조건을 모두 충족시킬 보석이 딱 내 손에 들려 있네?

“자, 타우딘! 빨리 결정하지 않으면 셰넌이 발견한 마법 다이아몬드는 네 라이벌 손에 넘어간다!”

난 타우딘의 이성을 흩트리기 위해 요리조리 흔들던 다이아몬드를 휙 방구석으로 던져 버렸다.

“물어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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