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장녀가 육아물에 빙의하면-139화 (140/197)

139.

“그래?”

난 피식 웃으며 내 옆에 있는 기사를 바라봤다.

그는 오늘 잡은 사냥감을 정리하느라 계속 수풀 너머에 있었지만, 이곳 상황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이렇게 완벽한 타이밍에 나왔지.’

게다가 내게만 들리도록 속삭이거나 버그만 영식이 돌아간 후 보고해도 되는 걸, 이렇게 티 나게 말하고.

내 뒤에 있던 다른 두 기사 역시 묘하게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 세 명이 똑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참고로 나도 같은 생각이거든.’

난 버그만 영식 쪽은 보지도 않은 채 입을 열었다.

“곤란하네, 야간 사냥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제가 베이스캠프에 있는 본부로 가서 빈 수레를 얻어 오겠습니다.”

“그래. 아, 사냥감을 넣는 상자도 특대형이 있나 물어봐. 분명 곰을 넣을 수 있는 것이 있을 테니.”

“예!”

그 기사는 빠르게 자기 말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때 옆에 있던 버그만 영식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고, 곰이라고 했습니까?”

그 말에 난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이런, 들리셨나요?”

“앨턴 양. 이 숲에 곰이 있습니까?”

곰 같은 맹수류는 사냥 대회에서 점수가 가장 높았기에, 버그만 영식이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입을 다물자, 버그만 영식이 애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지 말고 알고 있는 게 있다면 공유해 주십시오. 정말 곰이 있습니까?”

“흠…….”

난 버그만 영식을 보며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그래요, 들켰으니 말하자면……. 이 숲에 곰 서식지가 있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 위치가 어디죠?!”

버그만 영식이 눈을 반짝였다. 그걸 보며 난 싱긋 웃었다.

“그것까지 알려 드리는 건 곤란하네요.”

토기 백 마리보다 곰 한 마리의 점수가 높았다. 그렇기에 그 위치까지 공유하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곰이 있다고 알려 주는 것도 내가 크게 양보한 거거든.’

버그만 영식도 그걸 알고 있는지, 더 이상 물어보질 못했다. 그러나 표정이 다급한 걸로 보아, 정말 간절히 알고 싶은 모양이었다.

난 그런 버그만 영식에게 방긋 미소 지었다.

“버그만 경. 전 잠시 휴식 후, 야간 사냥을 시작하려는데.”

너 계속 여기서 나 방해할 거니?

은유적인 내 축객령에 버그만 영식이 앗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아, 그렇군요. 그럼 저도 이만.”

“즐거운 대화였어요. 부디 만족할 성적 내시길.”

난 그렇게 말하며 망설임 없이 의자 쪽으로 돌아가, 위에 올려 둔 지도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버그만 영식의 시선이 순간 이 지도로 쏠렸다.

물론, 귀족답게 다급히 그 시선을 관리했지만 내 눈을 피할 수 없었다.

‘오호라.’

“가자!”

버그만 영식이 자기 기사들을 데리고 저 너머로 사라졌다.

난 지도를 보지 않고, 그쪽을 잠시 응시했다. 이런 내 행동에 기사 하나가 입을 열었다.

“따라갈까요?”

그 말에 난 잠시 지도를 툭툭 치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놔둬.”

“예.”

난 들고 있던 지도를 대충 짐 더미 위에 올려놓았다. 이미 이 지도는 외운 지 오래였다.

‘곰이 출몰하는 곳도 정확히 알고 있고.’

모스틴이 친절하게 일일이 표시해 줬거든.

다만 지금은 날이 어두워져서, 내일 아침에 그쪽으로 출발할 예정이었다.

“충분히 쉬었으면 이제 움직이자.”

내 말에 기사 둘이 고개를 숙이며 부지런히 야간 사냥을 떠날 채비를 했다.

난 기사가 내민 총을 집어 들며 알렉산더 위에 올라탔다.

쌩쌩한 알렉산더는 다시금 움직인다는 생각에 흥분했는지 앞발로 땅을 긁었다. 난 그런 알렉산더의 갈기를 쓰다듬었다.

‘버그만 후작가라…….’

그곳은 대표적인 중립 가문으로 따로 속한 세력이 없었다. 또한 가주인 버그만 후작은 외무대신으로 외국에 발이 넓었다.

‘그래, 위다나 왕국에도 말이야.’

거기까지 떠올린 난 씨익 미소 지었다.

‘일단 지켜볼까.’

“준비가 끝났습니다.”

마침 들리는 기사의 말에 난 굳이 대답하지 않고 알렉산더를 몰았다.

일이 재미있게 돌아갈 모양이었다.

***

둘째 날은 날씨가 좋지 않았다. 먹구름이 껴 하늘이 우중충했지만, 그것이 사냥의 열기를 식히지는 못했다.

타앙-!

깔끔한 총성과 함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천지를 뒤덮을 듯 울렸다.

난 거기에 집중을 흩트리지 않고 재빠르게 알렉산더를 오른쪽으로 몰았다.

“도망친다!”

“엄호하겠습니다!”

미리 봐 둔 위치에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이 총을 발사했다.

그러나 표적이 어찌나 재빠른지, 기사들의 총알이 전부 바닥에 박히고 말았다.

상황을 모두 지켜본 난 혀를 찼다.

‘역시 만만치 않은 놈이군.’

급소는 아니지만, 이미 총을 한 번 맞았는데 저 움직임이라니!

‘이 숲의 대장이라고 쉽게 잡혀 주진 않는다는 거지?’

그때 표적이 방향을 틀어, 숨어 있던 기사 한 명에게 다가가 거대한 앞발을 치켜들었다.

난 그걸 보며 재빠르게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그러자 앞발의 주인인 거대한 회색곰이 본능적으로 총알을 피하며 주춤했다.

그 사이 기사가 신속하게 반대편으로 대피했다. 난 큰 목소리로 경고했다.

“사람 맛을 아는 놈이다! 방심하지 마!”

“예!”

불과 몇 분 전, 난 모스틴의 지도를 통해 저 곰이 살고 있던 게 분명한 굴을 발견했다.

마침 곰이 자리를 비운 것 같아 안을 살펴봤고, 이 근방 영지민의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뼈를 다수 볼 수 있었지.

사실 놀랍지도 않았다.

‘이 제국이 아무리 마법 공학으로 발전했다지만, 그건 수도와 대도시 기준이고.’

개발되지 않은 지역에서는 맹수로 인한 실종이 왕왕 일어나니까. 그러니 가을 사냥 대회뿐만 아니라 이런 경우는 언제든 나타날 수 있었다.

‘아버지가 참가했던 해에는 야생 호랑이도 나왔었거든.’

모스틴도 이 가능성을 알기에 내게 몇 번이고 충고했었다.

곰 출몰지는 집결지와 좀 떨어진 곳이니, 굳이 찾아가지 말라고.

‘하지만 모스틴.’

난 달리는 알렉산더의 고삐를 놓고, 오로지 허리와 허벅지의 힘으로 자세를 유지했다.

‘내가 그 이야기를 듣고 얌전히 있을 성격은 아니잖아?’

“알렉산더, 믿는다!”

히이이잉!

내 말에 화답하듯 영리한 알렉산더가 속력을 높여 곰을 쫓았다.

알렉산더의 추격 솜씨는 일품이었다. 그랬기에 얼마 안 가 곰과 나란히 질주했고, 덕분에 난 놈과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 순간 곰은 내가 이 무리의 대장임을 직감한 눈치였다.

그러곤 순식간에 방향을 틀어 내 쪽으로 돌진했다.

쿠어어어어어!

놈이 과감하게도 나와의 정면 승부를 선택한 것이다.

회색곰이 나무를 부수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귓가에 선명했다.

순식간에 거리가 가까워졌다. 그러나 난 차분하게 머리를 비운 후, 사납게 핏줄이 선 곰의 눈을 정확히 응시했다.

이번엔 놓치지 않는다.

‘……지금.’

타앙-!

방아쇠를 당기자,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한 한 발이 발사됐다. 찰나의 정적 동안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

그렇게 수 초 후.

쿠웅-.

회색곰이 땅에 거대한 울림을 내며 쓰러졌다. 난 그걸 보며 들고 있던 총을 내려놓았다.

“후우.”

푸르르-.

알렉산더는 일이 끝난 걸 알았는지 달리던 것을 멈추고 투레질했다.

난 그런 말을 쓰다듬으며, 고삐를 잡고 곰 쪽으로 향했다.

한쪽 눈이 꿰뚫린 채 완전히 숨통이 끊긴 곰은 과장 하나 보태지 않고 거의 집채만 한 크기였다.

난 알렉산더 위에서 내려와 곰을 살폈다.

‘아쉽네.’

매복하던 중에 곰이 굴로 돌아왔고, 그 즉시 눈을 노렸다.

그런데 눈치 빠른 곰이 그걸 피하며 총알이 어깨를 스치고 만 것이다.

‘이게 아니었다면 가죽을 온전한 채로 가지고 갈 수 있었는데.’

뭐, 그래도 티가 나지 않으니 상관없으려나?

이 곰 가죽은 북부 성에 자랑스럽게 전시될 예정이었다. 아버지가 잡은 호랑이 가죽은 창고에 처넣고 말이다.

‘그래, 생각해 보면 첫 가을 사냥 대회에 바로 곰이 나와 줬으니 고맙지.’

이런 대형 맹수가 서식하는 숲은 의외로 드무니까.

아버지도 명예 졸업 직전, 마지막 사냥 대회에서야 겨우 호랑이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러니 역시 이번 사냥 대회는 행운의 여신이 날 굽어살피는 게 틀림없었다.

어깨의 상처 외에 다른 흉은 없나 꼼꼼히 살피는데, 기사들이 수레와 특대형 상자를 싣고 달려왔다.

“대단합니다, 벨라디 님!”

“이렇게 큰 곰은 처음입니다.”

“역시, 앨턴가의 임시 가주십니다!”

이번에 날 따르는 기사들은 유달리 과묵했다.

이런 그들이 저리 흥분한 걸 보니, 지금 사냥이 꽤 힘겨운 사투였던 건 분명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내가 우승할 수 있을 것 같아?”

내 물음에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예!”

짧고도 단호한 대답이었다.

히이잉-! 알렉산더도 그에 동조하며 같이 울었다.

***

곰을 싣고 돌아가는 길.

사실 내 우승은 확정이었다. 그렇기에 굳이 사냥을 이어 갈 필요 없을 것 같아, 곧장 황실 별장으로 복귀할까 고민했다.

‘흐음, 아니면 베이스캠프로 가도 되고.’

모스틴에게 이 곰을 보여 줄 겸 말이야.

그럼 모스틴은 “역시 내 친구! 난 널 믿고 있었다니깐!” 하고 말하겠지. 그러곤 내가 나서지 않아도 본인이 먼저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을 할 게 분명했다.

‘그것도 괜찮지.’

난 즐거운 기분으로 기사들에게 말했다.

“오늘 밤은 야영하지 않고, 베이스캠프에서 보낸다.”

“예, 벨라디 님!”

기사들 역시 기분 좋음을 숨기지 않고 나를 따랐다.

그때, 한 기사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벨라디 님, 오늘 새벽에 있었던 일은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입니까?”

그 말에 난 아까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웃었다.

“내게 생각이 있으니, 일단 넘어가.”

“알겠습니다.”

기사는 조용히 고개를 숙인 후, 뒤로 물러났다.

난 알렉산더 위에서 오늘 새벽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첫 번째 야간 사냥을 다녀온 후, 짐을 정리하던 기사가 내게 이런 보고를 했다.

-벨라디 님, 분명 이곳에 두었던 지도가 없어졌습니다.

모스틴이 핵심 정보들을 표시해 준 지도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내가 일부러 티 나게 올려 둔 그 지도가.

그게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우승에 눈이 먼 머저리가 내 함정에 걸려들었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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