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장녀가 육아물에 빙의하면-134화 (135/197)

134.

난 도로시에게 받은 로켓을 가만히 바라봤다. 로켓의 겉면에는 두 개의 장미가 겹쳐진 간소한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그러니까…… 이 문장이 처단당한 윌리엄 가문의 문장이란 말이지?”

내 물음에 도로시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벨라디 님~! 확실해요~!”

“이걸 다른 누구도 아닌 황태자비의 사촌이 가지고 있었고?”

“맞아요~! 도로시가 은밀하게 훔쳐 왔답니다~!”

도로시는 그렇게 말하며 내게 칭찬을 바라는 눈빛을 보냈다.

난 그런 도로시에게 손을 까딱였다. 도로시가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딱 달라붙어 머리를 내밀었다.

난 그런 도로시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며 로켓을 열었다.

달칵.

로켓 안에는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았다.

난 겉면을 닫은 후, 문장을 만지작거렸다. 확실히 이 문장 자체에 꽃이 들어가 장신구로 활용하기에 나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

‘일이 또 재미있게 흘러가네.’

황태자비의 사촌은 허영심과 욕심이 많은 여자다.

그렇기에 남몰래 황태자비 소유의 물건을 자기가 걸치고는 했다. 그래도 황태자비의 눈에 거슬리지 않게 구석에 처박혀 있는 것들만 골라서 말이다.

‘그러니 이 로켓도 그 사촌이 아니라 황태자비의 소유일 확률이 높지.’

그리고 황태자비는 패러그린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윌리엄과 패러그린이라…….”

그렇게 중얼거리는데, 같이 있던 스티아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벨라디 님, 제가 잠시 그 로켓을 손봐도 괜찮을까요?”

그 말에 난 흔쾌히 스티아에게 로켓을 넘겼다. 그러자 스티아가 로켓을 살펴보더니, 그 뚜껑을 투둑 뜯어 버렸다.

“아앗~!”

무릎을 꿇고 내 손길을 받고 있던 도로시가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스티아에게 삿대질을 해 댔다.

“도로시가 애써 가지고 온 로켓을 그렇게 망가트리다니~!”

스티아는 이런 도로시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뚜껑을 반대로 돌려 사진을 넣는 부근과 다시 겹쳤다. 그러고는 몇 번 만지작거리더니, 로켓 안에 숨겨진 아주 작은 구슬을 꺼냈다.

“역시…….”

그렇게 중얼거린 스티아가 조심스럽게 내게 그 구슬을 내밀었다. 난 그걸 받아 들며 물었다.

“방금 어떻게 한 거니?”

“윌리엄의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오던 방법입니다. 지금은 저와 오빠밖에 알지 못합니다.”

하긴, 감시자의 수장인 제플린은 북부 모든 가문의 비밀 장치를 알고 있었다. 설령 배신자로서 처단당한 가문의 것이라고 해도.

그걸 자신의 대리이자 동생인 스티아에게도 전수한 모양이었다.

“잘했어, 스티아.”

“감사합니다, 벨라디 님.”

“핫~. 스티아, 너 대단하다~.”

도로시는 이번엔 감탄하며 스티아에게 치댔다.

그사이, 난 그 구슬을 가만히 바라봤다. 영롱한 보랏빛의 마법 자수정이었다.

‘이렇게 숨겨져 있으니, 그동안 황태자비에게 들키지 않았던 거로군.’

흥미로운걸?

마법 자수정에서 느껴지는 마력은 아주 은은했다. 위험한 것이 아니라는 걸 확신한 난 내 마력을 자수정 안에 불어넣었다.

그러자 구슬이 깨지며, 그 안에 담긴 쪽지 한 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법 보석 안에 물건을 숨겨 두었던 것이다.

“와~, 도로시도 오늘 그렇게 사본을 가지고 왔는데~.”

도로시가 느긋하게 말했다.

난 굳이 대답하지 않고 쪽지를 펼쳐 무엇이 적혀 있나 확인했다.

‘흠?’

그러곤 벌떡 앉아 있던 소파에서 일어나 시계를 바라봤다. 이제 막 저녁을 먹었으니, 킬리언을 만날 때까지 여유가 있었다.

“나가야겠어.”

“지금 말입니까?”

“그래. 도로시, 마차를 준비해. 아무런 문장이 없는 걸로.”

“네엡~!”

도로시가 유유히 방을 나섰다. 그동안 난 들고 있던 쪽지를 스티아에게 넘겼다.

그걸 확인한 스티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난 그런 스티아의 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저 쪽지에는 이런 게 적혀 있었으니까.

「제 마지막 죄책감을 이곳에 숨겨 둡니다.

부디 이 늙은 배신자를 용서하지 마십시오, 테오도르 님. 도헤미아 님.

마지막으로…… 당신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벨라디 님.」

그 문구 아래 그려져 있는 건, 윌리엄이 살아생전 머물렀던 저택의 지도였다.

그 지도의 한 공간에 X 표시가 적혀 있으니, 거기에 무언가 숨겨 둔 게 분명했다.

‘문제는 윌리엄의 저택이 이미 불타 없어졌단 거지.’

저택은 아버지가 그를 처단하는 사이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누군가의 방화였고, 범인은 이미 죽은 상태로 발견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황태자 측에서 완벽한 증거 인멸을 위해 저런 일을 벌인 게 분명했다.

그렇게 윌리엄의 일은 마무리된 걸로 기록되어 있는데…….

‘역시 숨겨진 뭔가가 더 있을 줄 알았어.’

다만 저택이 화마에 휩싸였을 때, 그것들도 전부 전소되었을 확률이 높았다.

이런 때야말로 스티아의 특기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원래 스티아는 변신 마법보다 복구 마법을 더 잘 다루거든.’

잠시 나갈 채비를 하니, 곧 노크 소리가 들렸다.

“벨라디 님~. 마차가 대기 중입니다~.”

그 말에 난 스티아에게 말했다.

“가자.”

“예, 벨라디 님.”

자, 그럼 이미 죽은 망자가 왜 저런 메모를 숨겨 두었는지 확인하러 가 볼까?

난 망설임 없이 방을 나섰다.

***

마차에서 내리니, 텅 빈 공터가 보였다.

윌리엄 가문의 모든 재산은 그의 처단 이후 앨턴가의 소유가 됐다.

그리고 아버지는 불타 버린 저택을 밀어 버린 다음, 빈 땅을 그저 방치하셨다. 무슨 의미가 있다기보단, 아마 신경 쓸 겨를이 없었을 테지.

덕분에 펜스가 쳐진 땅은 이름 모를 풀과 잡초들로 엉망이었다. 거기다 근처에 인가도 없어 더 음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나마 마법 가로등은 설치되어 있어 앞이 보이는군.’

난 날벌레가 모여 있는 가로등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사이 마차에서 내린 스티아가 챙겨 온 열쇠로 펜스 입구의 자물쇠를 열고, 칭칭 휘감긴 사슬을 치웠다. 그리고 윌리엄의 메모를 펼쳤다.

“위치를 보니, 이 방향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한 스티아가 굳게 닫혀 있던 펜스 문을 열었다.

끼이익-.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녹슨 펜스에서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앞장선 스티아는 내가 걷기 편하도록 마법으로 풀들을 전부 베어 냈다. 덕분에 난 편하게 걸으며 생각에 잠길 수 있었다.

‘드디어 패러그린과 윌리엄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건가.’

윌리엄은 배신을 하는 와중에도 그런 메모를 숨길 정도로 충성심이 높은 이였다.

그런 이가 도대체 무슨 이유로 황태자의 편에 선 건지, 그걸 파악하면 내게 어떤 이익이 될지 머리는 바쁘게 계산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스티아에게 앞을 맡기던 때였다.

“여깁니다.”

스티아가 한 곳에서 멈춰 섰다.

“아마 여기가 윌리엄의 서재였던 모양입니다.”

그 말에 난 잠시 주변을 둘러봤다. 세월을 보여 주듯, 이제 건물의 흔적은 하나도 남지 않은 빈 땅이었다. 당연히 무언가를 숨길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다.

난 스티아를 보며 말했다.

“대략 20년 전에 없어진 물건이야. 복구할 수 있겠어?”

그 말에 스티아가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안경을 치켜올렸다.

“저 역시 벨라디 님의 도움이 된다는 걸, 증명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스티아가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녀의 손끝에서 푸른 마력이 넘실거리며 모였다.

난 그걸 보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한 번도 스티아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 없는데.’

도로시를 수도로 불러 놓고 가만 보니, 스티아는 은근 도로시에게서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도로시도 그런 면모가 없지 않았고.

‘유능한 부하가 라이벌 의식으로 성장하면 나야 좋지만.’

그렇게 잠시 기다리니, 스티아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그러며 손끝의 푸른 마력이 점점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으윽!”

순간, 참기 힘들었는지 굳게 닫혀 있던 스티아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그녀의 마력이 얇은 노트를 하나 만들어 냈다.

그걸 집어 든 스티아가 상당히 지친 안색으로 내게 내밀었다.

“성공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스티아의 팔이 덜덜덜 떨리고 있었고, 호흡도 가빴다.

아무래도 이 기록을 복구하기 위해 가지고 있던 마력을 대부분 소진한 모양이었다.

‘저래선 제대로 걷지도 못하겠는데.’

내 우려가 끝나기도 전에, 스티아의 몸이 휘청였다. 난 재빠르게 그녀를 부축했다.

스티아의 안색이 파리했다.

‘어쩔 수 없지.’

“들고 있어.”

“예?”

난 그렇게 말하며, 스티아의 무릎 안쪽에 손을 넣고 그녀를 안아 올렸다. 그녀의 몸이 깃털처럼 가볍게 들렸다.

스티아는 몸을 뻣뻣하게 굳히며 눈을 크게 떴다.

“베. 벨라디 님!”

내게 공주님 안기로 안긴 스티아가 무척 당황해했다. 난 그런 그녀를 보지 않고, 무심히 걸음을 옮겼다.

“부담스러운 건 알겠지만, 조금만 참아. 난 내 수하가 차가운 흙바닥으로 넘어지는 꼴 못 보니까.”

특히 내 명령으로 온 기력을 다 써 버린 기특한 수하는.

내 말에 스티아는 빠르게 눈을 깜박이다 이내 얌전히 몸을 맡겼다.

난 그런 그녀를 안아 들고 펜스 밖 마차로 향했다. 그러며 힐끗 아래를 보니, 스티아의 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뭐……. 싫진 않은가 보네.’

그렇게 마차로 돌아오니, 대기하고 있던 마부가 화들짝 놀라 이쪽으로 다가왔다.

난 마부가 입을 열기 전에 먼저 말을 꺼냈다.

“난 괜찮아. 딱히 힘들지 않으니까 문 열어.”

“아, 알겠습니다!”

마부가 문을 열었고, 난 스티아를 의자에 앉힌 다음 그 맞은편에 앉았다.

“저택으로 돌아가자.”

내 말에 마부가 공손히 고개를 숙인 후, 마차 문을 닫았다. 그러자 스티아가 특유의 무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벨라디 님. 오빠와 도로시에게 오늘 일을 꼭 자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스티아에게서 어쩐지 위풍당당한 분위기가 풍겨졌다. 마치 최종 승리를 거머쥔 승자처럼.

“편한 대로 하렴.”

저들이 즐겁다면야 기꺼이.

난 그렇게 생각하며 스티아가 복구한 노트를 펼쳤다. 그러자 첫 면부터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날은 이 제국에서 새로운 앨턴이 태어난 역사적인 날이었다. 새로 태어난 아이는 테오도르 님과 똑같은 흑발의 여아였다.

난 그걸 파악한 즉시, 황태자 측에 서신을 보냈다. 황태자가 계속 강조했기 때문이다.

앨턴의 첫째가 남아인지 여아인지 반드시 보고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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