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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장녀가 육아물에 빙의하면-132화 (133/197)

132.

이 의문의 답 역시 킬리언에게 있었다. 주치의 가문의 생존자가 저 유품과 함께 황후의 마지막 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퍼델은 진작 내 연구를 알고 있었다. 보안에 그렇게 신경을 썼는데도, 어느새 들키고 말았어. 그래서 이를 이용해 놈에게 경고했다.

내 연구는 성공했고, 마법 다이아몬드에는 이제 두 가지 마법이 담겨 있다고.

네 놈이 마법 다이아몬드를 찾으려 들면, 그 안에 담긴 녹음이 만천하에 드러나도록 장치를 설치했다고.

놈이 한 번, 내 앞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한 적이 있거든. 승리감에 도취되어 말이다.

퍼델은 믿지 않는다 소리쳤지만, 눈빛이 흔들렸다.

다행히 연구의 최종 결과까지는 알아내지 못한 모양이야. 의심이 많은 놈이니, 이걸로 마음껏 설치지는 못하겠지.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이게 마지막이겠구나. 미안하다, 킬리언.」

황후의 예상대로 그녀의 협박은 황태자에게 잘 먹혔다. 놈은 그 후, 정말로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녀의 허세에 그대로 속아 넘어간 황태자가 우스웠지만, 우리로선 고마운 일이었다.

‘거기다 이렇게 증거도 하나 얻었고.’

황후의 선견지명인지, 그녀는 죽어 가는 와중에도 본인의 필체로 편지를 작성했다. 덕분에 글씨는 엉망이었지만, 황태자를 실각시킬 증거로 활용하기에는 충분했다.

이외에도 킬리언은 황후의 죽음에 대한 증거들을 차분히 모으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 황태자가 마물의 부산물을 이용했다는 결정적 증거만 있으면 되는데.’

꼬리 자르기로 도망칠 수 없는 확실한 증거가.

그리고 난 그 안에 저 둘의 연구를 최대한 지원해 업적을 만들어야 하고.

난 눈을 빛내며 멜도르와 시온을 바라봤다. 마법이라는 공통 관심사가 있는 두 사람은 활발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멜도르가 내 제안들을 받아 줘서 다행이야.’

특히 멜도르는 자존심이 쓸데없이 강한 놈이라, 그동안 누군가가 연구에 개입하는 걸 매우 싫어했다.

그러나 내가 넘긴 황후의 유품 해석에 2년 가까이 목을 매면서, 드디어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였다.

‘본인 말대로 정말 변한 건가.’

그의 변화가 나에게 긍정적이라면, 굳이 말릴 이유가 없었다.

난 멜도르에 대한 평가를 조금 수정하며,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

헤라 황녀가 내 집무실에 온 첫날. 난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아이와는 제대로 된 대화 한마디 나눌 수 없을 만큼.

“동부와 서부에서 열린 증기 기관차 설명회가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이제 남부의 설명회만 남았습니다.”

“초대장은 다 돌렸나?”

“예, 이 설명회에 참석하지 않은 이들은 추후 북부의 모든 사업에 투자하기 힘들 거라는 경고도 포함했습니다.”

“남부의 설명회는 특히 은퇴한 놈들이 필참해야 해.”

“그들도 피할 수 없게끔 문구를 작성했습니다.”

“좋아. 남부 전체의 반응은 어떻지?”

“아직 혼란스러운 분위기입니다. 아글라 공작가에서 확실한 입장을 밝히지 않아, 구심점이 잡히지 않은 듯합니다.”

“흠, 그렇단 말이지.”

“다만, 남부의 귀족들은 보험을 좋아하는 자들이니 대부분 증기 기관차의 설명회 정도는 참석할 전망으로 보입니다.”

“괜찮군. 설명회를 진행할 인력은 전부 준비되었나?”

“예, 서부와 동부처럼 이번에도 바바 와트가 발명가로서 설명회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호위는 제플린 빈센드 경을 주축으로 구성했습니다.”

“바바의 상태는?”

“아주 열정적입니다. 이미 동부 설명회에서 증기 기관차를 반대했던 세력을 만난 덕에, 남부에서는 더 깔아뭉개겠다며 잔뜩 칼을 갈고 있습니다.”

“다행이군.”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보좌관 로미는 빠르게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난 일사천리로 로미의 보고에 조언을 얹거나, 결정을 내리며 일을 처리해 갔다.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니, 어느새 헤라 황녀가 돌아갈 때가 다가왔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에 앉아 있던 헤라 황녀에게 다가갔다.

“죄송합니다, 황녀님. 모처럼 오셨는데 제대로 된 대접도 하지 못했군요.”

“아니요.”

헤라 황녀는 고개를 휙휙 젓더니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날 바라봤다.

“오늘은 저에게 아주 새로운 시간이었답니다. 제게 업무 과정을 공개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렇게 말하는 헤라 황녀의 볼은 어느새 발그레 상기되어 있었다.

킬리언의 말처럼 헤라 황녀는 내가 일하는 모습만으로 새로운 자극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난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그렇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그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문밖에서 하녀가 말했다.

“황녀님의 마차가 준비되었다고 합니다.”

그 말에 헤라 황녀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나 역시 배웅을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 참이었다.

그때 다시 노크 소리가 울리며, 네시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가도 될까요?”

그 말에 난 힐끔 시계를 봤다. 지금이면 그레이스 백작 부인과의 수업이 막 끝났을 시간이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바로 달려왔나 보군.’

“그래.”

내 허락에 네시아가 후다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내 예상대로 급하게 왔는지, 아이의 머리가 살짝 헝클어져 있었다.

네시아는 머리 상태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은 채, 헤라 황녀에게 환하게 웃은 후 날 바라봤다.

“언니, 괜찮다면 제가 헤라 황녀님을 배웅해도 될까요?”

“네가?”

“네! 언니는 많이 바쁘시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네시아는 헤라 황녀와 조금이라도 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헤라 황녀도 동일한 마음이었는지 빠르게 날 올려다봤다.

“전 좋아요. 임시 가주님께 방해가 되고 싶지도 않고…….”

그 말에 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부탁할게, 네시아.”

“네, 언니! 황녀님, 가요!”

네시아가 쪼르르 다가와 헤라 황녀의 손을 잡고는 밖으로 나섰다. 헤라 황녀도 꺄르르 웃으며 네시아를 따라갔다.

난 그런 아이들을 보다, 옆에 있는 스티아에게 눈짓을 보냈다. 내 눈빛을 읽은 스티아가 조용히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갔다.

그사이, 난 책상에 앉아 마저 업무를 처리했다. 헤라 황녀 앞에서는 처리할 수 없는 것들을 우선으로 확인하는데, 곧 스티아가 돌아왔다.

“헤라 황녀가 무사히 돌아갔습니다.”

“둘 사이는 어떤 것 같아?”

“서로 이름을 부르고, 말을 놓을 정도로 친근해졌습니다.”

“예상보다 더 빠르게 친해졌네.”

난 그렇게 중얼거리며 눈을 깜박였다.

헤라 황녀와 네시아가 친밀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 속도가 남달랐다.

‘둘 사이가 급속도로 가까워질 계기가 따로 있었나?’

내가 잠시 고개를 기울이자, 스티아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두 분이 나눈 이야기를 보고할까요?”

“그래, 해 봐.”

“우선, 이 방을 나서 마차가 있는 현관까지 두 분은 벨라디 님의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습니다. 주로 헤라 황녀가 오늘 본 벨라디 님에 대한 감상을 꺼내면, 네시아 앨턴이 동조하는 형식이었습니다.”

“…….”

“또한 내일 있을 둘의 티타임에서 종일 벨라디 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자고 굳게 약속한 후, 헤어졌습니다.”

“흐음…….”

난 가만히 눈을 깜박였다.

설마 둘이 가까워진 계기가…….

‘나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생겨서인가?’

이건 또 예상하지 못했는데.

뭐, 저런 대화가 낯선 건 아니었다.

말했다시피 난 내 나이 또래 영애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그들이 주기적으로 모여 내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나눈다는 것 역시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태도를 헤라 황녀와 네시아가 보일 줄은 몰랐는데.’

“하여튼 두 사람이 날 향해 호의를 가지고 있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럼 됐어.”

그 호의를 위해 나름 노력했는데, 당연히 그래야지.

난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 일을 넘겼다. 그리고 스티아를 보며 말했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도로시에게선 연락이 왔니?”

“예, 무사히 도착했다고 합니다.”

“대상은?”

“괜찮은 대상을 물색한 모양입니다. 곧 본 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라 전했습니다.”

그 말에 난 진하게 미소 지었다. 이제 슬슬 새로운 판을 짤 준비를 할 때였다.

“도로시의 활약이 기대되네.”

“잘할 겁니다. 항상 벨라디 님의 바로 옆에서 자신의 능력을 뽐내길 원했으니.”

그래, 나도 알고말고.

그동안 북부에서 알렉산더를 잘 돌본 상으로 도로시가 이렇게 요구했거든.

-저도 수도로 불러 주셔요~! 이 도로시가 얼마나 유능한 인재인지 벨라디 님께 직접 보여 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벨라디 님의 오른팔로 급부상하겠어요~!

그 욕망을 높게 사, 난 도로시를 곧장 수도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그녀에게 큰 임무 하나를 맡겼다.

‘바로 황태자비 궁 잠입을 말이야.’

원래 이런 일은 제플린이 전문이지만, 아무리 스티아의 마법이라고 해도 성별까지 바꾸는 건 무리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중 스파이로서 연기력이 검증된 도로시는 믿을 만한 카드였다.

‘거기다 미리 엘린이라는 윤활유도 바른 상태이고.’

그러니 어련히 잘하겠지.

사실, 도로시에게 기대하는 건 황태자비 궁에서의 활약만이 아니었다. 그보다 내가 더 주시하는 건, 바로 아버지의 반응이었다.

‘이번에는 꽤 티 나게 도로시를 북부 성에서 데리고 왔거든.’

명분도 굳이 꾸미지 않았다. 그저 북부 성에서 일을 잘했기에 내 전속으로 삼겠다며 수도로 데리고 온 거니까.

‘분명 아버지는 내가 제플린과 스티아를 수족으로 삼았을 때 우연이라고 치부하셨겠지.’

제플린은 알렉산더를 훈련한다는 이유로 나와 친분을 만들었고, 스티아 역시 그와 남매였기에 소개라도 받은 줄 아셨을 거다.

무엇보다 일일이 이런 걸 의심하기에는 아버지도 참 바쁘신 양반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미심쩍을 거야.’

그 많은 북부의 하녀들 중, 내가 콕 집은 하녀가 또 감시자니까.

아버지도 마냥 멍청한 분은 아니니, 의심을 품게 될 거다.

‘내가 감시자의 존재를 알고 있는지, 아닌지.’

아버지는 앞으로 어떻게 나올까?

죄책감으로 침묵하려나? 아님 날 타박하려나?

‘둘 다일 수도 있고.’

사실 뭘 선택하든, 내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 난 가만히 구경하면 됐다. 도로시를 통해 내린 일종의 시험에서 아버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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