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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장녀가 육아물에 빙의하면-131화 (132/197)

131.

난 시온을 소파로 안내했다. 소파에 앉은 그는 스티아가 내온 차를 마시며 집무실을 두리번거렸다. 그러고는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가 능력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괜찮아? 일이 너무 많은 것 같은데.”

당연히 난 괜찮았다. 심리적인 스트레스라면 몰라도, 체력으로는 날 따라올 상대가 없으니까.

평소라면 저렇게 말하며 시온을 안심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난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살짝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가끔 벅차다는 생각은 해. 그래도 다 내게 필요한 일이니, 노력해야지.”

내 말에 착한 시온은 안타까운 얼굴로 날 바라봤다. 그러고는 곧바로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해 주었다.

“혹시 내가 뭐 도와줄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해! 이제 마법 연수도 다 끝났고, 한동안 여유롭거든.”

물론, 시온의 스케줄을 미리 조사했기에 전부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난 아까의 지친 기색을 전부 벗어던지고 방긋 웃었다.

“그래? 너무 잘됐다.”

“으응?”

“마침 네 도움이 너무나 필요했던 일이 있었는데.”

타이밍 좋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난 누군지 물어보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들어와.”

내 허락에 문이 열리며,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곤 이쪽으로 다가오며 인사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아글라 공자.”

“아, 멜도르구나. 안녕.”

집무실에 들어온 멜도르는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았다. 난 그 어깨 위에 턱 손을 올리며 말했다.

“사실 마법 루비 연구에 마법사가 한 명 더 붙었으면 했거든.”

“마, 마법 루비 연구?”

“시온 네가 마법 루비를 멀리하고 있어 굳이 말하지 않았는데, 보다시피 내가 할 일이 너무 많아. 그래서 미처 동생의 연구를 도와줄 수 없었어.”

진작 나와 이야기를 끝낸 멜도르도 말을 거들었다.

“이런 때 마탑에서도 실력 좋기로 소문난 아글라 공자의 도움을 받게 되다니. 큰 영광입니다.”

이런 우리를 보며, 시온이 중얼거렸다.

“두 사람 지금 무척 닮았어.”

특히 저 능글맞은 미소가. 그렇게 안경을 올린 시온이 잠시 머뭇거렸다.

“그나저나, 마법 루비라면…….”

“네 형이라면 걱정하지 마, 시온.”

난 고민하는 시온을 보며 입꼬리를 짙게 올렸다.

“최근 아글라 상단과 마법 루비 운송 거래를 체결했거든.”

“거래를?”

“역시 듣지 못했나 보구나.”

“으응. 아버지도 형도 집에서는 사업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아서.”

그 말에 옆에 있던 멜도르가 입을 열었다.

“이번에 저희 가문에서 대량의 마법 루비를 마갈라 제국으로 보내야 하는데, 그 운송을 아글라 상단이 맡기로 했습니다.”

마법 루비는 내 개인적인 사업이 아닌 북부 전체의 사업이라 멜도르도 얼추 상황을 알고 있었다. 멜도르의 말처럼 이번 교역은 아글라 공작가에서 운영하는 상단이 중개하기로 했다.

‘마갈라 제국과 연결된 교역로는 그 가문이 꿰뚫고 있으니까.’

지리적으로는 우리 북부가 마갈라 제국과 가장 가까웠으나, 두 제국은 광활한 산맥으로 막혀 있었다. 때문에 마갈라 제국의 수도는 육로가 아닌 바다로 나가는 것이 훨씬 안전하고 빨랐다.

‘그리고 데커딜 제국의 대형 수송선은 대부분 남부의 소유란 말이지.’

그렇기에 외국과의 교류에서 아글라 공작의 협력은 필수였다.

여기서 케스퍼 아글라와 내 껄끄러운 관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놈도 나도, 이런 막대한 이익 앞에서 각자의 감정을 앞세울 만큼 어리숙한 사람은 아니니까.

‘최소한 케스퍼 아글라가 본인 가문을 생각하는 마음은 진심이거든.’

그래서 더 의문인 것이다. 마물의 부산물이 얼마나 위험한 물건인데 거기에 함부로 발을 걸친 건지…….

하여튼, 중요한 건 시온이었다.

시온이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

“그럼…… 결국 우리 가문도 마법 루비 사업에 협력하게 된 거네?”

그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니까 더 이상 마법 루비를 껄끄럽게 생각하지 않아도 돼. 오히려 마법 루비 연구가 수월하게 진행되면 그걸 이용해 공격적으로 마갈라 제국에 진출할 생각이야.”

“그럼 교역량이 늘어나고, 우리 가문의 이익도 커진다는 거구나!”

시온이 짝짝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와, 잘됐다. 이렇게 두 가문 다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다니, 정말 잘됐어!”

내심 나와 케스퍼의 사이가 껄끄러웠던 것이 불안했는지, 시온은 정말로 좋아했다.

다만 그런 시온과는 반대로 그 해맑은 얼굴에 난 잠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금 무슨 마음으로 이런 제안을 하는지…… 넌 알까?’

이렇게 해서라도 너 하나만은 살리겠다는 내 마음을, 지금의 시온은 전혀 모르겠지. 그게 내 입 안을 참 씁쓸하게 만들었다.

그사이 시온과 멜도르는 대화를 이어 갔다.

“그럼 나도 기쁜 마음으로 도울게!”

“감사합니다, 아글라 공자.”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우면 될까? 연구의 틀은 다 갖춰졌니?”

그 물음에 멜도르가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놀라지 마세요. 지금 전 하나의 마법 보석에 두 가지 마법을 집어넣는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뭐?”

시온의 두 눈이 커졌다.

“하나의 마법 보석에 마법 두 개를 넣는다고? 그러다가는 마력 폭주로 매우 위험해질 텐데?”

그 말에 멜도르가 후후 웃었다.

“제가 어수룩하게 연구를 할 리 없지 않습니까.”

멜도르가 손가락을 탁 튕겼다. 그러자 허공에서 두 개의 책이 뿅 생겨났다. 본인이 따로 개량한 텔레포트 진 위에 미리 올려놓은 물건을 소환한 것이다. 일종의 단거리 텔레포트였다.

시온이 감탄했다.

“와, 멜도르! 설마 벌써부터 텔레포트 진을 변형시킨 거야? 대단하다!”

그 말에 멜도르가 어깨를 으쓱였다.

솔직히 이건 시온이 칭찬할 만했다. 텔레포트 진을 변형시켜 성공적인 결과를 내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니까.

심지어 멜도르의 나이를 생각하면 감탄이 나올 만하지.

아마도 납치 미수 사건이 멜도르에게 일종의 자극제 역할을 한 듯싶었다.

‘그때 텔레포트를 익히지 못한 것이 분하다면서, 미친 듯이 그 마법만 연습했거든.’

덕분에 이렇게 간단한 물체를 이동시킬 만큼 실력을 향상시켰고.

아직은 할 수 없었지만, 그의 성장 속도를 봤을 때 몇 년 안에 안정적으로 생명체를 텔레포트시키는 마법도 익힐 수 있을 것 같았다.

멜도르도 본인의 성장세가 가파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이제는 자신감이 빠르게 회복된 상태였다.

“제 칭찬은 누나한테 이미 많이 들었으니 자제하셔도 됩니다.”

“으응? 하하, 그래.”

“그보다도 아글라 공자께 보여 드리고 싶은 건 이 두 가지 논문입니다.”

그렇게 멜도르는 시온에게 책 두 권을 보였다. 시온은 그중 하나를 알고 있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음? 이거 마탑 상점에서 네가 사 갔던 그 연구집이네?”

“맞습니다. 마탑주님이 분석하신 <마법 보석의 활용성>에 대한 논문이죠.”

예전부터 멜도르는 마탑 상점에서 논문을 쓸어 담는 것이 취미였다. 저 논문도 그중 하나인 듯싶고.

그렇게 논문들을 쌓아 놓았던 것이 마법 루비를 연구할 때 많은 도움이 된 모양이었다.

“거기다 이것.”

멜도르가 그 논문 옆에 있는 다른 책을 내밀었다. 그 책은 정식으로 출간된 논문이라기보단 연구 일지에 더 가까웠다.

“이건 뭐야?”

시온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 일지를 펼쳤다. 그리고 잠시 눈을 깜박였다.

“어?”

시온은 순식간에 안에 적힌 내용에 집중했다. 그러고는 신속하게 종이 몇 장을 넘겼다.

그렇게 신중한 얼굴로 일지를 살펴보던 그가 곧 고개를 들어 멜도르를 바라봤다.

“이거…… 네가 적은 거야?”

“아니요. 저도 얻은 자료입니다.”

“어디서?”

“그건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멜도르는 저렇게 말하며 날 힐끔거렸다. 내가 잘했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놈도 다시 당당함을 되찾았다.

사실 멜도르는 저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멜도르도 저 물건의 출처를 정확히 모르니까.’

내가 알려 주지 않았거든.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건 사망한 첫 번째 황후의 유품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황후의 죽음에 책임을 지고 처형당한 황실 주치의 가문 생존자가 빼돌린.’

마갈라 제국으로 건너간 생존자는 우여곡절 끝에 킬리언에게 저 유품을 건넸다고 했다. 그는 마법 보석 광산을 소유하고 있는 나에게 다시 넘겨줬고.

놀랍게도, 저 유품에는 마법 보석에 두 개의 마법을 담으려 시도한 흔적이 적혀 있었다. 그 당시 황후가 자신의 권한을 키우기 위해 남모를 한 방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멜도르의 연구 방향과 일치하는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

원작에서 멜도르는 성인이 될 무렵 마법 루비에 두 개의 마법을 담는 데 성공한다. 그게 앨턴가와 북부에 더 큰 성공과 영광을 안겨 줬고.

난 그 업적이 탐이 나, 멜도르를 내 옆에 두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그걸 황후가 앞서 시도했다는 건 드러나지 않은 정보였다.

뭐, 나름 이유는 추측이 갔다.

‘황후는 저 연구를 주치의 가문과 함께 진행했는데……. 그녀가 급사하면서 주치의 가문도 순식간에 절멸했으니까.’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재난에 생존자조차 빼돌릴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유품을 빼돌릴 수 있을 리 만무했고.

그러나 이곳에서는 황후의 죽음까지 1년간의 시간이 있었다. 그사이 그들은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 방도를 마련할 수 있었던 듯했다.

‘정말 여러모로 원작이 꼬였어.’

그래도 이번 일은 나에게 잘된 일이었다. 저 유품 덕분에 멜도르의 연구 시간이 단축될 테니까. 더불어 시온에게도 공을 돌릴 수 있고.

“이 일지를 해석하려면 아글라 공자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확실히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고대 룬어가 많이 적혀 있네.”

“아쉽지만 전 룬어를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아글라 공자께서 룬어에 정통하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하, 쑥스럽네. 음……. 알겠어! 너희가 가지고 있는 자료니까, 출처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우리 같이 열심히 해석해 보자!”

두 사람은 막힘없이 이야기를 진행했다. 저 상태로 봤을 때, 연구의 성과는 빠르게 나올 것이 분명했다.

‘일이 딱 맞물려서 진행되는군.’

난 둘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아, 참고로 저 유품의 존재는 킬리언과 마법 다이아몬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알게 됐다.

‘사실 처음부터 궁금했거든.’

마법 다이아몬드는 이 대륙에 딱 세 개뿐인 귀한 보물이다.

하나는 우리 가문에, 하나는 마갈라 제국 황실에. 그리고 남은 하나는 킬리언의 손에.

특히 텔레포트 마법이 새겨진 킬리언의 다이아몬드는 계속 강조했다시피 아주 유용한 무기였다. 이걸 욕심 많은 황태자가 쉽게 포기할 리 없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너무 얌전했단 말이야.’

황실 체면상, 다이아몬드가 사라진 건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았다. 하지만 황태자의 성질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그걸 찾으려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아주 작은 흔적이라도 남았을 테고, 감시자의 레이더에 걸렸겠지. 그런데 과거의 보고를 찾아보니, 그런 흔적은 전혀 적혀 있지 않았다.

황태자는 황후의 죽음 이후, 다이아몬드를 찾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 킬리언이 돌아오면서 조금씩 움직인 거지.’

그렇다면 호기심이 들지 않겠는가.

황후가 죽기 직전 뭐라고 했길래, 그 고약한 황태자가 찍소리도 내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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