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장녀가 육아물에 빙의하면-130화 (131/197)

130.

저택에 돌아온 난 곧바로 지하 감옥으로 향했다.

지하 감옥에는 아직 살아남은 괴한들이 투옥 중이었다. 그중에는 황태자의 끄나풀이었던 호위 기사도 있었다.

놈이 최근 정신을 차렸다는 보고가 있었으나, 아직 정상적인 대화는 어려웠다. 나 역시 개통식으로 매우 바빠 제대로 된 심문을 하지 못했고.

그러다 모처럼 실마리를 잡았으니, 그놈을 다시 한번 살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오셨습니까, 벨라디 님!”

내가 내려가자, 입구를 지키고 있었던 병사들이 예를 표했다. 난 그런 그들의 인사를 가볍게 받은 후,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쿵-. 쿵-. 쿵-.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감옥 안에서 울리는 것이다. 그 소리는 그 호위 기사에게 가까워질수록 뚜렷해졌다.

“이건 무슨 소리지?”

난 뒤따라오던 병사에게 물으며 창살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괴이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쿵-. 쿵-. 쿵-.

“에으어, 에으어.”

구속구로 손과 발이 결박당한 놈이 침을 줄줄 흘리며 벽에 머리를 쿵쿵 박고 있는 것이다. 난 그걸 보며 고개를 천천히 기울였다.

이런 나에게 병사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어제부터 계속 저러고 있습니다. 크게 다칠 정도도 아니고, 눈에 띄는 증상도 아니라 따로 보고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래…….”

운 좋게 목숨은 건졌으나, 살아남은 괴한들은 무사하지 못했다. 저 호위 기사 외에도 정신을 차린 놈들 모두, 이지를 상실한 것처럼 이상한 증세를 보였으니까.

의원은 이를 심각한 뇌 손상으로 진단했다.

‘그래서 눈에 띄는 증상이 아니면 일일이 내게 보고하지 말라고 했지.’

괴한 놈들의 이상 증세까지 내가 하나하나 알 필요는 없으니까.

놈들을 살려 둔 이유는 단 한 가지. 바로 황태자가 마물의 부산물을 사용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처음보다 상태가 더 안 좋아졌군.”

그래도 저 호위 기사는 처음 정신을 차렸을 때, 눈을 깜박이는 것으로 어느 정도 의사 표현을 했는데…….

‘다른 괴한들처럼 이제 말도 통하지 않으려나.’

“시간만 낭비했어.”

그렇게 중얼거리던 때였다. 일정하게 들리던 소리가 뚝 끊겼다.

호위 기사가 벽에 머리를 부딪치는 걸 멈춘 것이다.

그러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날 바라봤다. 흐리멍텅한 놈의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으어어어!”

쾅-!

놈이 거칠게 달려와 창살과 부딪쳤다. 그 갑작스러운 행동에 병사가 당황스러워하며, 들고 있던 창으로 놈을 밀쳐 냈다.

“이 자식이 미쳤나! 감히 누구 앞에서!”

“에으어! 에으어!”

그러나 놈은 굴하지 않고, 꿈틀거리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같은 말밖에 모르는 사람처럼, 계속 저렇게 외쳤다.

“에으어! 에으어!”

마치 내게 들으라는 듯이.

아주 필사적으로.

순간 난 저놈이 정신을 차렸던 그날, 내가 했던 질문을 떠올렸다.

-널 그렇게 만든 사람이 누구지?

“에으어! 에으어!”

놈이 그 질문에 답하고 있었다.

“에으어!”

“……케스퍼.”

“에으어! 에으어!”

“케스퍼 아글라?”

내 말에 호위 기사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날 보며 눈을 한 번 깜박였다.

저것 역시 내가 정해 준 규칙이었다.

예라면 눈을 한 번. 아니라면 눈을 두 번.

난 다시 놈에게 물었다.

“케스퍼 아글라가 널 그렇게 만들었나?”

호위 기사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멍한 얼굴로 눈만 한 번 깜박일 뿐이었다.

***

“벨라디.”

날 부르는 소리에 겨우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창밖이 어두웠다. 내 옆에 있던 킬리언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군요.”

“오늘 폐하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길래, 그렇게 심각한 얼굴로 있어요.”

그 말에 난 후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을 전달했다.

내 말에 킬리언 역시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안 그래도 저 역시 공유하고 싶은 게 있어요.”

그러며 그는 종이 한 장을 내게 내밀었다. 그걸 받아 보니, 처음 보는 품목이 적혀 있었다.

“패러그린 측이 신분을 속이고 구매한 마물의 부산물 목록이에요.”

“이걸 알아냈군요.”

내 말에 킬리언이 살짝 미소 짓더니, 품목 중 하나를 가리켰다.

“당신의 말을 들어 보니, 그들이 이용한 부산물은 이것 같아요.”

그가 가리킨 건 ‘링케의 가루’였다. 킬리언이 설명을 이어 갔다.

“이 가루는 링케라는 요정형 마물의 날개에서 나오는 가루로, 양만 잘 조절하면 약재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해요. 하지만…….”

그렇게 말한 킬리언이 시선을 돌려 내 방 창가 옆에 놓인 콘솔을 바라봤다. 그 위에는 화병에 담긴 꽃이 있었다.

그걸 보며 난 그의 다음 말을 짐작했다.

“꽃과 혼용하면 위험해지는군요.”

“맞아요. 이건 위다나 왕국에서도 아주 오랫동안 부산물을 취급한 꾼들만 아는 정보라는데. 도대체 어떻게 알고 사용한 건지.”

킬리언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난 그 말을 흘려 넘기며 가만히 목록에 적힌 부산물들을 바라봤다. 욕심도 많은 놈들은, 링케의 가루 외에도 상당한 종류의 부산물을 구입하고 있었다.

“이것들을 이용해 괴한들을 조종했겠군요.”

그리고 그걸 주도한 게…….

“하아.”

난 다시 한숨을 쉬었다. 킬리언은 이런 날 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괜찮나요, 벨라디?”

“그럼요.”

그렇게 말했지만, 솔직히 머리가 아팠다.

마음 한구석으로 케스퍼가 마물의 부산물과 엮여 있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그 자식이 마물의 부산물을 이용해 네시아를 노렸단 말이지?’

이건 내가 수습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섰다.

마물의 부산물을 이용한 황후의 암살이 황태자를 실각시킬 가장 큰 카드였다.

거기다 아직 직감일 뿐이지만, 황제에게도 꽃 차를 이용해 부산물을 먹였다면 반역죄까지 물을 수 있었다.

그런데 케스퍼도 마물의 부산물을 사용했다니……. 이제 황태자와 그를 따로따로 바라볼 수 없었다.

“하아.”

혹시 이 일에 아글라 공작도 연루되어 있을까? 그럼 시온의 안위까지 위험한데.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명백했다. 아글라 공작은 어디까지 알고 있나 파악하는 것.

만약 공작이 제 아들의 일에 동참했다면, 시온만 따로 구제할 방안을 마련해야 했다.

혹여 케스퍼의 음모를 전혀 몰랐다면, 아글라 공작가는 케스퍼를 내칠 각오를 해야 했다.

‘어떤 방법이든 시온에게 면죄부가 될 큰 업적이 필요해.’

이 제국에서 죄인이 용서받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그 죄를 면제할 업적을 세우는 것이다.

황태자도 이러한 관습 덕에 한심한 짓거리를 해도 변덕으로 포장되었다. 그러니까 시온 역시 확실한 공로를 세우는 것이 안전했다.

‘그렇다면…….’

생각들이 맹렬하게 엉켜 갔다.

어느 순간부터 내게 찾아온 편두통 탓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난 그 통증을 익숙하게 참으며, 차분히 계책을 세웠다.

그때, 무언가가 내 어깨를 감쌌다.

그리고는 내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따스한 것이 머리가 닿았다.

난 잠시 눈을 깜박이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킬리언.”

“죄송해요, 벨라디. 당신이 너무 힘들어 보여서.”

날 자신의 품에 기대게 만든 킬리언이 아주 부드럽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피곤하면 언제든 기대요, 벨라디. 당신의 모든 고민을 함께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난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아요.”

“그래도 전 당신에게 소중한 편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랬지. 언젠가, 내게 타인 이상이 되고 싶다는 킬리언에게 그리 말했었다.

‘넌 타인이지만, 소중하다고.’

“……그건.”

여기까지 답했던 난 곧 입을 다물었다.

머리는 여전히 지끈거렸지만, 킬리언의 손길이 지나갈수록 점점 버틸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귓가에 들리는 심장의 고동 소리 역시 날 진정시켰다. 덕분에 엉키던 생각들이 수월하게 풀렸다.

그걸 느끼자, 난 점차 긴장을 풀고 그의 품에 편안하게 기댔다.

‘이건 전부 필요에 의해서야.’

지금 킬리언의 품이 내게 도움이 되니까. 그래서 이렇게 이용하는 거라고.

그렇게 스스로와 합의점을 찾은 난 스르륵 눈을 감았다.

곧 킬리언이 속삭였다.

“벨라디 당신도 제게 소중해요. 정말로 많이.”

그 목소리에서 어렴풋이 그의 감정이 전해졌다.

킬리언은 지금, 무척 행복한 것 같았다.

***

증기 기관차는 개통식 이후 데커딜 제국의 가장 큰 이슈가 되었다.

마법 루비를 처음 발견했을 때 이상으로, 사람들은 온 관심을 이쪽으로 기울였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마법 루비는 귀족들에게 한정된 이야기지만, 증기 기관차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제국의 온 사람들에게 해당되니까.’

거기에 신문에 실린 앨턴가의 명화 같은 사진은 평민들의 환상을 부추기기에 충분했다.

‘예를 들면, 자신도 저런 귀족과 같은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는 환상?’

덕분에 요즘 사람들은 모였다 하면 증기 기관차 이야기로 시끌벅적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아주 바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난 일단 공사의 규모를 훨씬 넓혀, 미리 계획했던 구간대로 철도를 이었다.

리켄 남작의 주도 아래 북부의 가신들과 영지 이용 계약을 맺은 건 물론이요, 서부 연합과도 철도 연장의 물꼬를 텄다.

참고로 프레도 공작은 이때가 되어서야 모스틴이 카라노 탄광으로 나와 제휴 계약을 맺은 걸 알게 됐다.

-하하하! 이런 앙큼한 아들 같으니! 도대체 넌 누구를 닮아서 이렇게 깜찍한 짓을 벌이는 거냐!

-하하하! 아버지도 참! 여우한테선 당연히 여우가 태어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 직후, 난 프레도 공작에게 엉덩이를 뻥 차인 모스틴을 목격했지만, 친구의 체면을 위해 기꺼이 침묵을 선택했다.

이 이후에도 내가 할 일은 태산이었다.

증기 기관차의 안전을 수차례 다시 점검하고, 철도에 투자할 투자자들을 만나고, 헤라 황녀와의 일정도 조율하고.

그리고 난 이걸 핑계로 시온을 내 집무실에 초대했다.

“안녕, 시온. 이 공간에는 처음 오지?”

“와, 벨라디. 서류가 정말 산더미 같다.”

시온이 안경을 치켜올리며 천장에 닿을 듯 쌓아 올려진 서류들을 바라봤다.

물론, 이건 시온을 위해 내가 일부러 연출한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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