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장녀가 육아물에 빙의하면-129화 (130/197)

129.

터억-!

“이런.”

벨라디가 한 손으로 여유롭게 그 주먹을 막은 건 그가 손을 내리꽂는 것과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그녀는 얼굴 바로 앞에 있는 주먹에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오히려 퍼델의 표정이 다른 의미로 일그러졌다.

“으윽!”

그는 입술 사이로 나오는 신음을 겨우 삼켰다.

‘무, 무슨 힘이……!’

생전 처음 느껴 보는 악력에 주먹이 바스라질 것 같았다. 그러나 아프다고 티를 내기에는 퍼델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이런 그를 뻔히 알면서도, 벨라디는 태평하게 말했다.

“이렇게 먼저 악수를 청하시다니.”

그녀는 퍼델의 손을 놓지 않고, 도리어 꽉 잡은 채로 붕붕 흔들었다.

“전하께서도 제가 어지간히 반가우셨나 보군요.”

벨라디는 그렇게 웃으며, 점점 빨갛게 익어 가는 퍼델의 얼굴을 구경했다.

퍼델은 생각지도 못한 고통에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새어 나오는 신음을 참는 것뿐이었다.

“이것…… 놔…라.”

퍼델이 겨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당연히 쉽게 놓아 줄 벨라디가 아니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 양, 고개를 기울였다.

“소리가 작아서.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사이 퍼델은 몇 번이고 자신을 손을 빼내려 했다. 그러나 벨라디의 손아귀에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녀가 점점 손에 힘을 줘, 고통만 강해졌다.

결국 퍼델은 참지 못하고 악을 질렀다.

“아악! 이거 놓으라고!”

그걸 보고 나서야 벨라디는 유유히 손을 풀었다.

퍼델은 황급히 자신의 손을 살펴봤다. 쥐덫에 걸린 것처럼 벨라디의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다음 날이면 시꺼멓게 멍이 들 게 분명했다.

“으으……!”

퍼델은 감히 자신의 귀한 몸에 상처를 남긴 벨라디가 너무나도 괘씸했다. 성질 같아서는 당장 기사들을 불러, 그녀를 황족 상해죄로 감옥에 처넣고 싶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다짜고짜 그녀의 얼굴에 주먹을 날린 것은 자신이었기에, 벨라디가 이를 문제 삼으면 일이 커지기 때문이다.

마침 시종장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노련한 그는 벨라디가 퍼델의 주먹을 잡은 순간, 상황이 이미 종료됐음을 알고 관망하던 차였다.

“대화를 나누실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마련할까요?”

그 물음에 퍼델이 버럭 소리쳤다.

“내가 그만큼 한가로워 보이는가!”

“죄송합니다, 전하.”

퍼델의 신경질을 능숙하게 넘긴 시종장이 힐끔 그의 손을 바라봤다.

“하면 주치의는….”

“시종장은 가서 그대 일을 하도록!”

퍼델이 시종장의 말을 끊었다. 그러고는 입술을 꽉 깨물며 본인의 손을 뒤로 감추었다.

자기보다 10살은 넘게 어린 여자에게 힘으로 밀렸다는 걸 티 낼 일 있는가! 다행히 시종장이 미리 사람을 치웠기에, 이 상황을 목격한 이도 없었다.

시종장은 퍼델의 축객령에 조용히 예를 취한 후 물러났다. 이번 일은 명백히 퍼델의 잘못이었고, 저 상처도 인과응보였다. 그러니 시종장이 따로 나서야 할 일은 없어 보였다.

거기다…….

‘저 아가씨라면, 아까 같은 상황에서도 충분히 전하를 제압하겠어.’

역시 제국 최고의 무력을 가진 집안의 핏줄다웠다.

그렇게 시종장이 제자리로 돌아간 사이, 퍼델이 벨라디를 노려봤다.

“이곳엔 무슨 일로 온 거지, 공녀.”

그는 뭉개진 체면을 숨기기 위해 애써 웃었다.

물론 벨라디는 그런 퍼델의 속을 전부 꿰뚫은 채, 유유히 입을 열었다.

“폐하와 나눌 이야기가 있어 들렀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묻는 거다.”

“글쎄요, 제가 마음대로 입에 올릴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지라…….”

벨라디는 그렇게 말하며 한쪽 눈썹을 까딱였다.

“대신 전하께 진심 어린 충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뭐?”

“아까와 같은 상황……. 지금은 받아 줬으나, 다음은 아닙니다.”

순간 그녀의 붉은 눈이 기묘하게 빛났다. 마치 사냥 직전의 짐승처럼.

그 안광을 마주한 퍼델은 침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본능적인 두려움이 그의 머리카락을 쭈뼛 서게 만들었다.

“다음에는 전하의 주먹을 피하지 않을 겁니다.”

퍼델은 그 말에 숨긴 의미를 바로 파악했다.

만약, 벨라디가 퍼델의 주먹을 피하지 않는다면? 이는 시종장이 염려했던 폭행 사건으로 이어졌다.

황태자가 공녀의 얼굴을, 그것도 황제의 궁 안에서 때렸다!

이는 퍼델의 명예를 한순간 진창으로 처박고, 모든 귀족들의 노여움을 사게 될 사건이었다.

그나마 그것으로 끝나면 다행이었다.

‘최악의 경우, 북부 전체가 내게서 등을 돌릴 결정적 명분을 제공하게 된다.’

아무리 북부가 얄미워도, 저 거대한 세력과 척을 지는 건 아주 위험한 일이었다.

여기에 더 나아가서, 북부가 이를 핑계로 다른 황족을 지지하게 된다면?

그건 퍼델에게 매우 큰 정치적 부담을 안겨 주는 일이었다.

그러니 그는 오히려 자신의 주먹을 막아 준 벨라디에게 감사하다고 여겨야 할 판이었다.

“그러니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을 잘 판단하시길.”

사실, 벨라디에게 아까는 나쁘지 않은 기회였다.

큰맘 먹고 그의 주먹을 피하지 않았다면, 북부 가신들의 큰 반발 없이 헤라 황녀를 차기 황제로 밀 수 있으니까.

그러나.

‘내가 왜 저 자식에게 뺨을 내줘? 기분 더럽게.’

꼭 이런 방법이 아니어도, 그녀는 얼마든지 북부 가신들을 설득할 자신이 있었다.

벨라디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천천히 퍼델을 스쳐 지나갔다. 그 찰나, 그녀의 미간이 살짝 찡그러졌지만 아무도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의 위압감에 한순간 위축되었던 퍼델은 뒤늦게서야 휙 뒤를 돌아보았다. 벨라디는 이미 멀어진 채였다.

“벨라디 앨턴…….”

퍼델은 모멸감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한 번의 실패 이후, 오랜 시간 동안 패배감을 맛본 적 없던 퍼델이었다. 덕분에 최근까지도 벨라디의 행동을 상당히 얄미운 정도로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앨턴의 첫째는 과거보다 훨씬 더 기고만장해진 채, 자신을 우습게 보고 있었다.

‘가만두지 않겠다.’

여자라고 봐주는 건 이제 끝이었다.

퍼델이 사나운 눈으로 벨라디를 노려보고 있을 때였다.

황실 제2 근위대 기사단 제복을 입은 기사가 다급히 그에게 다가왔다.

“전하, 지금 궁에서 아글라 소공작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렇게 말한 기사가 조용히 덧붙였다.

“전하를 만족시킬 새로운 방안을 찾았다고 하십니다.”

그 말에 퍼델의 입가에 기이한 미소가 걸쳐졌다.

***

황제의 궁에서 벗어난 난 빠르게 걸음을 옮겨 마차에 올라탔다. 내가 타자마자 마차는 부드럽게 황궁 밖으로 빠져나갔다.

난 창문을 보며 황제와의 만남을 정리했다.

황제는 생각보다 증기 기관차가 더 궁금했는지, 개통식 다음 날 나를 불렀다. 난 기꺼이 그 초대에 응하며, 그에게서 두 가지를 확인하기로 했다.

하나는 당연히 헤라 황녀에 대해서였다.

황제에게 헤라 황녀의 기반이 되기 전, 아이의 능력을 시험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당돌한 내 말에 황제는 껄껄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네 몸값이 그만큼 올라갔단 말이지? 그래, 좋다. 허하마!

예상대로 헤라 황녀에 대한 건 쉽게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남은 하나는 황제에게 라벤더 향초를 사용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를 확인하는 거였다.

킬리언의 말에 따르면, 황제는 향초를 싫어해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또 몰랐다.

난 황제와 증기 기관차의 미래와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그의 안색과 모습을 샅샅이 살폈다.

그러나 내가 살펴본 황제는 지극히 정상이었다.

‘그래서 많이 의아했지…….’

욕심 많은 황태자가 황제를 가만 놔둘 리 없으니까.

하지만 난 끝까지 의심스러운 점들을 찾지 못했고, 찝찝한 마음으로 접견실을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소득 없이 돌아가나 싶었는데.’

황태자가 내게 시비를 건 덕분에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난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생각에 잠겼다.

“꽃…… 꽃이라…….”

황제가 오늘 내게 내온 차는 꽃 차였다.

마시기 전, 향을 한 번 맡으니 이 차에 다양한 꽃잎이 블렌딩된 걸 알 수 있었다. 이런 내 모습에 황제가 말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차다. 향이 무척 독특하지?

그리고 방금. 황태자의 곁을 스칠 때, 난 그에게서 그 차와 같은 향을 맡을 수 있었다. 특정한 꽃이라 단정 지을 수 없는, 독특한 그 향.

‘희미했지만, 확실히 같은 향이야.’

사람에게 향이 배려면, 그저 마시는 걸로는 안 됐다. 오랜 시간 그 향에 노출되지 않고서는 힘들지.

동시에 내 머리에는 북부에서 읽은 기록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마물의 부산물 중 일부는 다른 것들과 섞어 사용했을 때, 인체에 악영향을 끼친다.」

‘만약 그 조합에 꽃이 해당된다면?’

킬리언이 받은 향초에 왜 라벤더가 쓰였는지 궁금했었다. 혹여 라벤더에 특별한 것이 있나 하고.

그러나 주목해야 할 건, 라벤더가 아닌 ‘꽃’이었다.

‘꽃이라면 큰 어색함 없이 킬리언과 황제의 삶에 침투시킬 수 있어.’

제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향료가 바로 꽃이니까.

머리가 팽팽 속도를 내며 빠르게 굴러갔다. 내가 읽은 북부의 기록에는 이런 구절도 있었다.

「‘마물의 부산물’의 효과를 높이는 방식에 대한 보고.

-후각의 이용 : 지능의 손상 없는 세뇌를 원한다면, 반드시 후각을 이용해야 한다.

*대부분 5년 이상의 장기적인 시간이 필요함. 비율의 완성도를 높일수록 시간이 단축될 확률 존재.

-직접적인 섭취 : 가장 빠른 효과를 보인다. 그러나 부작용의 위험이 매우 높다.

*여러 조합으로 희석한 결과, 일정한 비율을 완성하면 부작용의 위험이 적어짐.

*여러 비율로 실험하니, 후각과 비슷한 자연스러운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음.」

난 황태자 측이 이 내용을 알고 있음을 직감했다.

또한, 놈들이 킬리언과 황제에게 저 두 가지 방법을 다 사용하고 있다는 것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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