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장녀가 육아물에 빙의하면-126화 (127/197)

126.

기자들은 흥분하며 바바에게 질문과 칭찬을 쏟아 냈다. 처음 받아 보는 큰 관심에 바바는 당황해했다.

그러나 점점 가슴을 펴면서, 특유의 뻔뻔함으로 분위기를 주도했다. 개통식에 참석하고 싶지도 않다고 투덜거리던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억지로 데리고 오길 정말 잘했네.’

오히려 이게 더 나았다. 바바는 오늘 이후, 이 제국에서 가장 핫한 인물로 떠오를 테니까.

‘난 이미 유명 인사지만, 바바는 새로운 페이스거든.’

거기에 바바를 반대했던 세력들은 나이가 들어 은퇴한 놈들이 많았다.

그런 놈들에게 바바의 화려한 부활을 알리려면, 이렇게 매체의 힘을 빌리는 게 더 효율적이었다.

‘더불어 바바도 입지를 다지고 말이야.’

머저리들의 일그러진 얼굴은 나중에 따로 구경하면 되지. 그 어떤 핑계로도 절대 피할 수 없는, 그런 자리를 마련해서 말이야.

그렇게 다짐하며 바바 쪽을 살피는데, 시온이 조심스럽게 날 불렀다.

“벨라디, 네 새로운 동생…… 같이 안 있어 줘도 되겠어?”

그 말에 난 고개를 돌려 네시아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비록 증기 기관차에 존재감이 묻혔지만, 네시아도 엄연히 오늘 연회의 주인공이었다. 그러니 너무 우리하고만 붙어 있는 것도 좋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와 나, 멜도르는 네시아에게 새로운 친구를 사귈 기회를 주기 위해 잠시 흩어진 참이었다.

시온은 그게 조금 걱정인 모양이었다.

“괜찮아~.”

그러자 모스틴이 태평하게 웃으며 시온의 팔을 툭 쳤다.

“우리 류스펠이 같이 있는데 뭔 걱정이야?”

모스틴의 말대로 네시아 옆에는 류스펠이 딱 달라붙어서 살뜰하게 그녀를 챙겨 주고 있었다. 거기다 아버지와 멜도르도 네시아 옆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채였다.

네시아는 낯선 사람들과 환경이 부담스러울 때면 아버지를 한 번, 멜도르를 한 번. 그리고 나를 한 번 보면서 힘을 얻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시온이 왜 네시아를 걱정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 바도 아니었다.

“너무 똑같죠?”

“사촌지간인가?”

“하지만 앨턴 공작 부인의 혈연은 다 죽었다면서요.”

“혹시…… 사생아?”

“쉿. 목소리 낮춰요, 부인.”

어머니와 너무 똑같이 생긴 외모로 뒷말이 나오고 있으니까.

당연히 우리의 눈치를 보느라 당당하게 떠들지는 못했지만, 예민한 감각이 드문드문 들려오는 그 말들을 잡아냈다.

시온 역시 본인에 대한 건 둔감하면서 타인에 관해서는 눈치가 있는 편이라 네시아가 계속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착한 녀석.”

난 손을 뻗어 시온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어차피 네시아 걱정은 할 필요 없었다.

‘조만간 아버지가 남몰래 뒷말을 옮기는 이들을 응징할 테니까.’

거기다 네시아도 처음에만 저렇게 낯을 가리고, 곧 특유의 천진하고 해맑은 성격으로 사교계에서 많은 친구를 만들 예정이었다.

지금도 보면, 류스펠의 소개 덕분에 조금씩 또래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는 모습이 보였다.

모스틴도 그걸 확인한 다음 우리 곁으로 다가오더니 나처럼 시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볼 땐, 네 걱정을 먼저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아……. 하하하.”

모스틴의 말에 시온이 약간 해탈한 미소를 지었다.

“그건 그렇지……. 아버지랑 형, 많이 화났으려나.”

시온은 그렇게 말하며 내려간 안경을 올렸다. 난 그런 친구를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래도 와 줘서 고마워, 시온.”

“당연한 소리를. 벨라디 네 첫 사업인데 꼭 축하하러 와야지.”

“어휴, 착한 녀석.”

“아주 순해 빠졌어.”

모스틴과 난 다시금 시온을 어화둥둥 하느라 바빴다. 시온도 헤헤 웃으며 익숙하게 우리의 손길을 받았고.

그렇게 잠시 놀던 난 시온에게 조언을 하나 했다.

“아글라 공작님께 좀 혼나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오늘 분위기를 엄청 궁금해하실 거야. 네시아에 대한 것도 그렇고. 그러니 소상히 말씀드려.”

내 말에 모스틴이 동의했다.

“그래 맞아. 네 아버지랑 형, 둘 다 융통성 있는 사람이잖아? 오히려 너 혼자라도 여기 와서 다행이라 생각하실걸?”

“응! 나 긍정적으로 생각할게!”

“그래도 되도록…… 철광석에 투자했다는 말은 하지 말고.”

“음…….”

내 말에 시온이 머뭇거리며 뺨을 긁적였다. 그 행동을 본 난 그를 잘 타일렀다.

“네가 가족에게 비밀을 만들고 싶어 하지 않은 거, 잘 알아. 하지만 모든 건 시기가 있는 법이야. 철광석에 투자한 게 잘못은 아니지만, 지금 말하는 게 괜한 일이 될 수도 있어.”

“나도 그렇게 생각해. 영원히 비밀로 하는 것도 아니잖아? 애초에 시온 넌, 가족에게 너무 다 공유하려는 것 같아.”

모스틴이 어깨를 으쓱였다.

“난 아버지한테 비밀로 한 일이 수두룩한데. 아직 벨라디와 탄광 거래를 한 것도 모르신단 말씀!”

이 연회에 프레도 공작이 참석하지 않았다고, 모스틴은 당당했다. 그러더니 팔꿈치로 나를 툭툭 치며 목소리를 낮췄다.

“이봐 이봐, 벨라디 앨턴. 넌 뭐 숨기는 거 없어~? 솔직히 말해 봐.”

“흐음, 보자 보자. 이 철도도 아버지보다 너희에게 먼저 말했다고 내가 얘기했던가?”

모스틴과 내가 그렇게 장단을 맞추니, 듣고 있던 시온이 순진하게 눈을 깜빡였다.

“꼭…… 그래야 하는 건가?”

그 반응에 모스틴과 난 서로를 힐끔 바라봤다.

꼭 그래야 하냐고 물으면…… 그건 내가 확답해 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뭐든, 선택은 자신의 몫이니 말이다.

난 가벼운 어투로 대답했다.

“뭐, 비밀이 많은 게 딱히 자랑할 건 아니지.”

“그래, 내 말의 요점은 이제 너도 성인이 됐으니, 너무 가족에게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이거야!”

“걱정해 줘서 고마워, 벨라디. 모스틴.”

시온이 해맑게 웃었다.

“하지만 나 그렇게까지 가족한테 얽매이는 거 아니야. 지금도 말 안 하고 여기에 왔는걸?”

그렇게 말한 시온이 습관처럼 안경을 치켜올렸다.

“그래도 화목한 가정은 무엇보다 신뢰가 중요하니까.”

그렇게 중얼거린 시온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이 해 준 조언이 무슨 말인지 알겠어. 철광석에 대한 건 나중에 조용히 알려야겠다.”

그 말에 모스틴이 시온의 등을 토닥였다.

“그래그래, 잘 생각했어! 혹시 너희 아버지가 너무 구박하면 우리 집으로 도망 와!”

“그럼 어머니가 슬퍼하실 거야.”

“아글라 공작 부인도 초대해 버리지 뭐!”

난 둘의 대화를 들으며 한쪽 눈썹을 까딱였다. 시온의 중얼거림이 새삼 거슬렸기 때문이다.

‘화목한 가정이라.’

확실히 아글라 공작가는 매우 이상적인 가족이었다.

부부는 케스퍼와 시온을 사랑으로 키웠고, 가족 구성원 모두 각자의 역할과 책임을 가지고 행동했으니까.

하지만 가만히 보면, 시온은 종종 그 화목한 가정을 의무적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과거의 나와는 또 다른 방향으로 말이야.’

……뭐, 잘 굴러가는 남의 가정사를 신경 쓰는 건 오지랖이겠지.

정상적인 사랑을 받지 못하고 큰 내가, 새삼 아글라 공작가를 지적하는 것도 우스우니까.

그렇지만 내가 차마 눈 돌릴 수 없는 사항도 있었다.

‘케스퍼 아글라…….’

케스퍼 아글라가 계속 황태자와 같은 배를 타고 있으면, 반드시 나와 대적하게 된다.

그럼 시온이 받을 상처가 얼마나 클지, 안 봐도 뻔한데……. 난 모스틴과 장난을 치며 선하게 웃는 시온을 주시했다.

‘케스퍼 아글라를…… 황태자에게서 떨어트려 놓을 가능성이 아직 존재할까?’

시온을 괴롭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내가 제일 고독하고 비참했던 시절, 날 웃을 수 있게 해 준 정말 소중한 인연이었다. 그런 친구가 나 때문에 힘들어 하는 건 정말로 원치 않은 방향이었다.

‘하아, 왜 하필 가족으로 엮여 있는 거람.’

일단…… 한번, 케스퍼 아글라와 대화를 해 봐야겠어.

솔직히 그 작자가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시온을 위해서 이 정도 시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케스퍼 아글라가 마물의 부산물과 엮여 있지 않다면, 어떻게든 수습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두 사람과 이야기하며, 난 슬슬 시간을 확인했다. 케스퍼 아글라는 나중에 해결할 일이고, 지금은 따로 집중해야 할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곧 올 때가 됐군.’

이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저편에서 소란스러운 목소리들이 들렸다.

“어머, 저기 보세요!”

“저 마차는! 황족의 마차잖아요?!”

“저 뒤에 황실 근위 기사들도 보여요!”

“설마……!”

그들의 말대로, 커다란 마차와 말을 탄 기사 무리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마차는 임시로 설치된 역 입구에서 멈추었다.

곧 마부석에 앉아 있던 황실 시종이 재빠르게 내려 마차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크게 소리쳤다.

“제국의 일원이신 킬리언 앨러만 데커딜 전하와 헤라 앨러만 데커딜 황녀님 듭십니다!”

시종의 외침과 함께 킬리언이 먼저 마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뒤이어 어린 헤라 황녀가 킬리언의 손을 잡고 나왔다.

채도가 다른 붉은 머리의 두 사람을 보며 사람들이 재빠르게 숙덕거렸다.

“정말 황족이 참석할 줄이야!”

“그러게요, 황족이 수도를 벗어나는 일은 잘 없잖아요.”

“심지어 헤라 황녀님은 황궁 외부 연회가 이번이 처음일 텐데!”

“이 연회의 격이 더 높아졌군.”

난 그 속닥거림을 들었으나 의식하지 않고 차분히 입구로 다가갔다. 그리고 주최자로서 킬리언과 헤라 황녀를 반갑게 맞이했다.

“증기 기관차의 첫 개통식에 참석해 주셔서 더없는 영광입니다, 킬리언 황자님.”

“저야말로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히려 조금 늦은 게 아닌가 걱정이군요.”

킬리언은 그렇게 말하며 특유의 단정한 미소를 지었다.

그 말에 나 역시 화답하듯 입꼬리를 올렸다.

“그럴 리가요. 이렇게 오신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랍니다.”

그렇게 말하며, 우리 둘은 남들 모르게 시선을 교환했다.

말은 저렇게 했지만, 사실 그가 늦게 등장한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처음부터 황족이 등장했다면, 증기 기관차에 쏠릴 시선이 분산될 수 있으니까.’

황족은 존재만으로도 제국의 큰 화젯거리였다.

그렇기에 황족과 증기 기관차라는 두 가지의 화제를 함께 보여 주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래서 난 네시아의 소개로 먼저 이슈를 끌고, 증기 기관차로 화룡점정을 찍고, 마지막으로 황족을 등장시켜서 사람들의 관심을 지속시키기로 한 것이다.

이런 내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그 증거로 조금 처질 뻔한 연회의 분위기는 다시금 활활 불타올랐다.

특히 이 분위기를 이끈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오랜만에 뵙습니다, 헤라 황녀님.”

내 인사에 킬리언과 팔짱을 끼고 있던 헤라 황녀가 우아하게 예를 취했다.

황녀의 구불거리는 붉은 머리가 바람에 흔들렸다.

“저도 반갑습니다, 앨턴의 임시 가주님.”

헤라 황녀의 인사말에 귀족들의 수군거림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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