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장녀가 육아물에 빙의하면-125화 (126/197)

125.

곧 세 번째 칸의 입구가 열렸다.

그리고 귀족들이 계속 기다리고 있던 오늘 행사의 주최자이자, 이 거대한 증기 기관차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제국의 북부를 수호하는 앨턴 공작가의 일원들. 테오도르 앨턴, 벨라디 앨턴, 멜도르 앨턴이 말이다.

다른 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키에 균형 잡힌 몸, 그리고 화려한 이목구비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거기에 서로 맞춘 듯, 같은 톤의 의상을 입고 등장해, 앨턴가 특유의 카리스마가 돋보였다.

귀족들은 저도 모르게 그들을 홀린 듯 바라보다, 뒤늦게 또 다른 누군가가 있음을 깨달았다.

세 사람의 분위기에 취해 눈치채지 못했지만, 벨라디 앨턴의 손을 꼭 잡은 아이가 있는 것이다!

그 아이는 여유로운 흑표범들 사이에서 혼자 무해하게 웃고 있었다. 앙증맞게 묶은 은발이 바람에 휘날렸다.

그걸 본 귀족들이 재빠르게 소곤거렸다.

“저 아이가 새로운 공녀?”

“세상에……. 저 얼굴은…….”

“제가 잘못 본 건가요?”

“아니요. 저도 지금 같은 생각 중인데…….”

그동안 제국의 새로운 공녀에 대해 많은 의문들이 따라다녔다. 어쩌다 입양됐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숨겨진 사정은 무엇인지.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귀족들은 왜 저 아이가 앨턴 공작의 선택을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죽은 공작 부인과 너무 똑같잖아요!”

귀족들이 전부 기겁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기자들은 다른 의미로 전율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서 있는 이 자리의 진가가 바로 지금이란 걸 깨달았다.

우선 저 거대한 증기 기관차와 그 옆면에 자랑스럽게 새겨진 앨턴 공작가의 검은 독수리 문장. 그 배경 앞으로, 귀족들을 여유롭게 내려다보고 있는 앨턴가의 일원들까지.

한 폭의 명화가 따로 없었다.

기자들은 이 모든 걸 기록하기 위해 손가락을 움직이며,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이 사진은 무조건 맨 첫 장에 싣는다……!’

이렇게 각 신문사의 헤드라인까지 연출해 준 벨라디는 터지는 플래시 소리를 들으며 느긋하게 웃었다. 그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오늘 개통식은 대성공이로군.’

벨라디는 기자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충분히 시간을 준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저희 북부의 첫 증기 기관차와 철도의 개통식을 구경하러 오신 분들, 감사합니다.”

사람들을 대번에 집중시킬 수 있는 적당한 성량과 음성이었다.

벨라디는 귀족들의 시선을 느끼며, 제 손을 꼭 잡고 있는 네시아를 내려다봤다. 아이는 애써 웃고 있었지만, 이런 자리가 처음이라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벨라디는 그런 네시아의 손을 엄지로 부드럽게 쓸어 주며 말했다.

“또한, 처음으로 소개하겠습니다. 저희 가문의 정식으로 일원이 된, 네시아 앨턴입니다.”

그 말에 네시아는 벨라디를 한 번 바라봤다. 벨라디는 아이의 손을 놓으며 할 수 있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응원에 네시아도 같이 고개를 끄덕인 후,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배웠던 것처럼 우아하게 인사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여러분. 네시아 앨턴입니다.”

흠잡을 곳 없이 완벽했다. 귀족들은 습관처럼 박수를 치며, 서로 눈길을 주고받았다.

“분명 저 두 사람, 사이가 안 좋다고 했는데…….”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죠?”

사실 네시아의 생김새 하나로, 사교계에 떠돌던 자극적인 소문은 대번에 열기를 잃었다.

벨라디 앨턴이 죽은 공작 부인에게 얼마나 지극정성이었는지 알 사람은 다 알았다.

그런 그녀가 자기 어머니와 똑같이 생긴 아이를 질투한다든가, 모질게 군다는 건 말이 안 됐다.

지금도 보라.

벨라디는 무사히 인사를 마친 네시아를 자랑스럽게 바라봤다. 아이도 방긋 웃으며 도도도 벨라디에게 달려가 다시금 손을 잡았다. 그런 두 자매를 테오도르와 멜도르가 뿌듯하게 바라봤다.

누가 봐도 다정하고 화목한 ‘가족’의 모습이 아닌가!

기자들은 이 구도도 좋다며, 사진기에 열심히 그 모습을 담았다.

벨라디는 네시아를 챙긴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 개통식은 조금 특별한 형식으로 준비해 봤습니다. 이 증기 기관차 내부도 연회장으로 꾸며 놓았으니, 외부와 내부를 자유로이 오가며 즐겨 주세요.”

그 말을 시작으로 악단이 새로운 곡을 연주했다.

본격적인 연회의 시작이었다.

***

연회의 분위기가 한창 달아올랐다. 참석한 이들은 모두 증기 기관차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었다.

“어머, 객실이 이렇게 나뉘어 있군요.”

“예상보다 더 넓어요.”

“이러면 한 번에 몇 명을 태울 수 있는 거죠?”

“와, 뒤에는 화물을 운송할 수 있도록 되어 있군요……!”

“이렇게 되면 정말로 공장의 물건들을 텔레포트 진이 아닌 이 증기 기관차로 운송할 수 있겠어요!”

“사람들의 이동도 훨씬 용이해지고요.”

당연한 소리를. 애초에 그럴 의도로 만든 건데. 난 귀족들의 수다를 들으며, 뿌듯하게 웃었다.

아, 참고로 반대 세력이 가장 먼저 문제 삼았던 안전 문제? 그건 누구의 입에도 오르내리지 않았다. 애초에 안전으로 꼬투리를 잡히지 않도록 내가 처음부터 싹을 짓밟았기 때문이다.

‘일부러 증기 기관차를 타고 개통식에 등장한 건, 퍼포먼스 외에도 안전을 입증하기 위한 거니까.’

심지어 다른 누구도 아닌 앨턴가 일원 전부가.

그러니 이보다 확실한 입증이 없었다. 이로써 귀족들은 증기 기관차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우리 가족에게 모여들었다. 특히 증기 기관차 사업을 주도하는 건 나였기에, 사업과 투자에 관심이 많은 가주들이 끊임없이 내게 다가왔다.

“정말 혁신적인 순간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차로 며칠은 걸리는 거리를 단 몇 시간으로 줄이다니. 이런 교통수단은 들어 본 적도 없습니다.”

“사실 대 가주 회의에서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에는 염려가 많았는데, 이렇게 완벽한 결과를 보여 주다니. 대단합니다.”

“구체적인 개통과 투자 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난 여유롭게 그들을 상대하며 속으로 미소 지었다. 귀족들이 내게 다가올수록 황태자와 케스퍼가 생각났다.

‘이번 개통식에 참석하지 않은 건, 그들의 크나큰 실책이야.’

만약 황태자와 케스퍼가 이 개통식에 직접 참가했더라면, 저들 중 일부는 둘을 의식하며 내게 다가오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다 증기 기관차의 부정적인 인식을 유지하려면 오히려 당당하게 이런 곳에 참여해 여론을 유지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오지 않았고, 오히려 본인들이 막고자 했던 이들은 전부 참석했다. 그리고 혁신을 두 눈으로 목격했으니, 이제 이를 널리널리 알리기 시작하겠지.

이렇게 됐으니 더 이상 막을 방법이 없다. 증기 기관차는 그렇게 명성을 알리고, 철도와 역 공사는 더욱 활성화될 것이다.

‘으음, 아주 만족스러워.’

난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이번 무리와의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옆에 있던 모스틴과 시온에게로 다가갔다. 나를 본 모스틴이 들고 있던 샴페인 잔으로 내 잔을 툭 치며 감탄했다.

“벨라디 너 진짜 대단하다.”

“뭐가?”

“솔직히 나, 네가 사교계에서 훅 떨어진 평판을 어떻게 할까 진짜 궁금했거든. 그런데 이게 이렇게 뒤집히다니……. 다 예상한 거야?”

“당연한 소리를.”

내 대답에 시온이 상냥하게 웃었다.

“아까 너와 인사했던 영애들도 연신 네 칭찬뿐이야. 다들 널 무척 따르고 좋아하는 영애들이었잖아. 그런데 안 좋은 소문이 나서 꽤 힘들었나 봐.”

“음, 그렇게 생각하면 좀 미안해. 다 계획이 있는 거였는데, 그 영애들은 그걸 몰랐으니까.”

나중에 따로 티 파티를 열어야겠다. 사교계의 내 인맥도 다시금 관리해야지.

난 그렇게 생각하며 들고 있던 샴페인을 마셨다.

“솔직히 난 좀 아쉬워.”

“아쉽다고?”

“반대 세력 측이 직접 참가했다면, 더 큰 볼거리를 제공해 줄 생각이었는데 말이야.”

내 말에 모스틴이 푸하하 웃더니,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못 말린다, 벨라디 앨턴. 지금도 충분히 재밌으니까 걱정 마. 하아, 증기 기관차 욕하던 귀족들 표정이 점점 변하는 걸 네가 봤어야 했는데! 그때 진짜 짜릿했다.”

“맞아! 정말 대단했어! 난 너에게 미리 증기 기관차에 대해 들었는데도 너무 놀라서 환호했다니까!”

두 사람은 그렇게 증기 기관차 이야기로 신나게 떠들었다.

그러나 난 정말로 아쉬웠다. 본인들이 먼저 싸움을 걸었으면서 이렇게 나오지도 않을 줄은 예상 못 했기 때문이다.

‘놈들한테는 일부러 초대장도 제일 좋은 거로 골라, 글씨도 크게 써서 보냈는데.’

못해도 남부의 굵직한 인사 몇은 염탐용으로 올 줄 알았단 말이야?

그런데 중도와 가까운 이들을 제외하면,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이게 사실상 도망 아니면 뭐겠어?’

소심한 놈들.

참고로 그들이 참석하지 않은 것에 대해 나보다 더 아쉬워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바바였다.

‘바바는 자신을 망하게 만들었던 귀족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고 싶어 했으니까.’

그러나 오늘 참석한 이들 중, 바바가 아는 작자들은 한 명도 없었다. 이를 안 바바는 크게 실망했고, 사람들 앞에서 발명가로서 소개해 주겠다는 내 제안도 거절했다.

물론, 그건 불과 오늘 아침까지의 이야기지만.

“정말 대단합니다, 바바 와트 님!”

“작고하신 와트 남작님께 천재 발명가의 재능을 그대로 이어받으셨군요!”

“그동안 이렇게 숨어 계셨다니! 앞으로 왕성히 활동하시며 취재에 응해 주세요!”

“껄껄껄! 다들 이 노인네를 띄워 주는 데 소질이 있구만!”

난 내가 아끼는 부하가 그렇게 의기소침하고 실망에 빠진 모습을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래서 오늘은 바바의 복수 대신, 발명가로서의 명예와 인정 욕구를 채워 주기로 했다.

‘그래서 아침에 급하게 기자들을 추가로 초대했지.’

그리고 모든 취재를 죄다 바바 쪽으로 넘겼다. 기자들은 이를 매우 좋아했다.

애초에 그들은 쟁쟁한 귀족들이 죄다 나를 찾을 게 뻔하니, 나와의 대화는 포기하고 있었다. 대신 사진으로 만족하려 했는데, 내가 직접 증기 기관차의 ‘발명가’를 연결해 줬으니.

그것도 스토리가 있는 발명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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