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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장녀가 육아물에 빙의하면-122화 (123/197)

122.

물론 내게 그 검은 속셈을 전부 들킨 이상, 그건 그들의 헛된 꿈으로 남게 됐다.

‘그나저나…… 나랑 수 싸움을 하자, 이거지?’

이거 어쩌나. 내가 또 거기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인데.

난 그렇게 씨익 웃었다. 내 웃음을 본 모스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희 아버지라면 몰라도 벨라디 앨턴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당연한 소리를, 모스틴.”

내 말에 모스틴이 두근거리는 얼굴로 날 바라봤다.

“나도 끼워 줄 거야?”

“시온이랑 손잡고 와. 잔치 구경 거하게 시켜 줄 테니까.”

“아, 벌써 기대돼. 벨라디 네가 내 친구라서 진짜 좋다.”

모스틴은 이 흥분을 빨리 시온과 나누고 싶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나도 순한 얼굴로 흘러내린 안경을 올리는 시온이 그리웠다.

“그놈의 마법 학술회는 언제 끝나는 거야. 시온 기다리다가 말라 죽겠네.”

모스틴이 작게 투덜거렸다.

시온은 마탑에서 주관하는 마법 학술회에 아글라 공작가의 대표로 참석한 상황이다.

현재 아글라 공작가는 사업으로 승승장구하고 있었으나, 그 가문의 근본은 지혜와 마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온은 제국에서 손꼽히는 실력자였고.

“여름이 되기 전에 수도로 돌아온다 했으니까.”

“거기에 맞춰서 이번에는 네가 북부로 가는 거 아니야?”

“그럴 수도 있고.”

“으으, 다들 성인이 되니까 시간 맞추기 어렵네…. 아!”

테이블에 늘어졌던 모스틴이 묘책을 떠올린 듯 벌떡 일어났다.

“나랑 시온도 확 북부로 놀러 갈까? 여름이면 역시 북부잖아!”

“그럼 네 일은 어떻게 하고?”

모스틴도 프레도 공작가의 후계자로서 꽤나 높은 강도의 업무를 보고 있었다. 덕분에 오늘 티타임도 어렵게 일정을 조율한 것이었다.

내 말에 모스틴이 자신의 머리를 헝클였다.

“으으, 그놈의 업무. 지겹다. 지겨워!”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와 모스틴은 그렇게 잠시 더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서 아이 둘이 돌아오는 게 보였다. 모스틴은 그걸 보며 작게 감탄했다.

“……와, 우리 꼬맹이. 다 컸네, 다 컸어.”

“흠, 저 둘이 약혼하면 너와 날 엮는 소리는 줄어들겠네.”

내가 괜히 저렇게 말한 게 아니었다. 네시아와 류스펠은 어느새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작에서도 첫날부터 손을 잡지는 않았는데.’

게다가 류스펠은 내내 네시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네시아도 첫 친구가 마음에 들었는지, 재잘재잘 수다를 이었다.

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 네시아의 관심이 류스펠에게로 많이 쏠린 것 같아.’

역시 남자 주인공이야. 초대하길 잘했어.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는데, 모스틴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날 바라봤다.

“아니……. 벌써 약혼까지 생각한다고? 진도가 너무 빠른데?”

“왜? 아니면 계속 나랑 약혼하라는 소리에 시달리고 싶어?”

“……잘 부탁합니다, 사돈.”

우리가 사돈이 되면 자연스럽게 결혼이라는 단어는 쏙 들어가게 된다. 그걸 깨달은 모스틴이 재빠르게 말을 바꾸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하하하하하!”

그렇게 잠시 웃던 난 당당하게 모스틴이 내민 손을 마주 잡았다. 그리고 놈과 눈을 마주했다.

“우리 저택에 자주 류스펠을 보내. 네시아와 더욱 친해질 수 있도록.”

“좋은 생각입니다, 사돈.”

그렇게 우리는 아주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지금 막 언니, 형에게 미래를 저당 잡힌 것도 모른 채 네시아와 류스펠도 해맑게 웃었다.

참으로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

모스틴은 약속대로 류스펠을 자주 우리 저택에 보냈다. 내 껌딱지였던 네시아도 류스펠과 놀며 점점 나와 떨어지는 시간이 길어졌다.

하녀장인 에밀리의 말에 따르면, 둘은 주로 공작가 부지에 있는 평원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의외네. 류스펠은 실내에서 노는 걸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네시아에게 맞춰 주는 건가?

애초에 두 사람은 한창 뛰어놀 나이이니, 가볍게 넘겼다.

그렇게 슬슬 북부로 갈 준비를 하는데, 제플린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보고했다.

“네시아가 류스펠과 검술 훈련을 한다고?”

“본격적인 훈련은 아닙니다. 그저 목검으로 투닥거리는 정도라고 보면 됩니다.”

“그래도 그 아이가 검에 흥미를 보이다니……. 아버지의 반응은?”

“예상하지 못하셨는지, 조금 놀라워하십니다. 부정적인 기류는 보이지 않아, 네시아 아가씨가 원하면 허락하실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난 잠시 멈칫했다.

‘허락이라…….’

그래, 아버지는 내게 못 해 준 것들이 아쉽다고 했었지. 그러니 소중한 네시아에게만큼은 원하는 걸 전부 들어줄 가능성이 높았다.

나도 네시아가 굳이 어린 시절의 나와 똑같은 취급을 받는 건 바라지 않았다.

그렇긴 하지만…….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네.’

내가 그 ‘검’ 하나를 배우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떠올리면, 더더욱.

그러나 이미 지나간 일이다. 난 애써 감정을 털어 낸 후, 제플린을 바라봤다.

“넌 네시아가 검술을 본격적으로 배울 것 같니?”

“생각보다 좋아하시니, 아마 그럴 겁니다. 물론 수업을 진행한다면, 기초 체력 향상과 호신술을 위주로 배우실 듯합니다. 네시아 아가씨는 벨라디 님처럼 검술의 천재가 아니니까요.”

제플린은 그렇게 말하며 후후후 뿌듯하게 웃었다.

“그런 면으로 볼 때, 역시 전 운이 좋습니다. 테오도르 님과 벨라디 님을 바로 곁에서 지켜볼 수 있다니. 벨라디 님의 자서전을 적어서 후대에게 대대로 내려 주고 싶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최고의 검사인지 모두 알 필요가 있으며…….”

오랜만에 제플린의 주접이 시작됐다. 난 익숙하게 그걸 흘려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이것도 원작과 다르게 가네.’

원래 네시아는 육체적 훈련을 받지 않는다. 그저 앨턴가의 공주로서 베일에 감싸인 채 곱게 자라지.

‘그러다 셰넌과 계약하게 되며, 무력까지 얻게 되는 케이스였고.’

그런데 이번에는 검에 흥미를 보인다라…….

아무래도 이 변화에 납치 사건의 영향도 없지 않을 것이다. 네시아가 내게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던 건, 그날 너무 큰 공포를 마주했기 때문이니까.

‘스스로를 지킬 수단이 필요하다고 여긴 건가.’

그 수단이 되어 줄 셰넌은 현재 깊이 잠든 상태였다.

네시아를 탄생시킨 이후, 너무 많은 힘을 소진한 탓이다. 아마 네시아가 정식으로 소환하기 전까지는 계속 잠들어 있겠지.

‘그래서 이번에 네시아가 위험에 처했을 때도 셰넌은 나타나지 못했어.’

문득, 그날 발견했던 네시아가 떠올랐다. 두려움에 몸을 오들오들 떨며 내게 안겨 오던 그 아이가.

두려움에 크기를 잴 수는 없겠지만, 네시아는 너무 과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때문에 익숙한 장소와 아버지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을 직접적으로 구한 내 곁을 서성였지.

주치의는 그저 큰 충격으로 인해 정신이 불안정해진 거라 진찰했다. 그러나 난 네시아가 왜 저렇게 무서워하는지 근본적인 이유가 짐작 갔다.

‘네시아는 결국, 어머니의 기억으로 만들어진 아이니까.’

그렇기에 그 아이의 무의식 안에는 어머니의 기억이 잠들어 있다.

이 기억은 네시아가 점점 사람과 가까워질수록, 혹은 특정 상황이 맞물리게 되면 퍼뜩 떠오른다고 했다.

‘때문에 원작에서도 네시아는 무척 괴로워했어.’

본인의 것이 아닌 낯선 기억과 그 감정들을 다스리기 위해 말이야.

그렇게 갖은 마음 고생을 하던 네시아는 긍정적인 여자 주인공답게, 기어코 어머니의 기억까지 포용했다. 어머니의 기억이 떠올라도 혼란스러워하지 않고, 그녀를 기리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소설에선 그걸 성장이라고 말했다만…….’

솔직히 나에겐 납득하기 힘든 방식이었다.

하여튼 지금의 네시아도 어머니의 기억을 떠올렸을 확률이 높았다. 무슨 상황인지, 얼추 예상도 갔다.

‘어머니는 어릴 적, 북부의 숲에서 가족에게 버림받았다고 했지.’

그렇게 며칠을 숲에서 헤매다 셰넌을 만나게 된 거고.

어두운 밤, 멜도르와 떨어져 혼자 남은 숲. 아마 이 두 가지 상황이 맞물리며, 어머니의 기억이 물 밀려오듯 네시아를 덮쳤을 것이다. 그러니 정령의 기운이 상당히 흔들렸겠지.

‘아이닝의 말에 따르면, 매우 위태롭다고 했나…….’

네시아가 얼마나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워했는지, 안 봐도 뻔했다.

물론 이걸 네시아에게 직접적으로 물어보지는 않았다.

아이의 힘든 상황에 공감하며 위로해 주는 건 내 몫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네시아도 굳이 자신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말하지 않았고.

그러나 난 원작을 통해 이런 상황을 알고 있었기에, 그동안 차마 아이를 떼어 놓을 수 없었다.

그래도 이제는 한시름 놓았다.

‘검에 흥미를 보인다는 건, 네시아 나름대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거겠지.’

원작과는 다른 방향이지만, 네시아가 뭘 선택하든 그건 아이의 자유였다.

오히려 그 아이가 어머니와 다른 선택을 한다는 게 내게는 기꺼운 일이었다. 그래야 죄 없는 아이를 향한 거부감이 조금 더 옅어질 테니까.

이제 나도 다시 내 일에 박차를 가할 때가 왔다.

‘그나마 유능한 부하들 덕분에 일이 착착 진행돼서 다행이야.’

철도 공사는 아주 빠르고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애초에 그렇게 어려운 공사도 아니었다.

‘이미 마차 도로로 사용되는 길 위에 선로를 설치하는 거니까.’

거기다 밤마다 내가 공사 현장을 체크하는 걸 알기에, 대장장이들과 인부들은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바바 측도 증기 기관차의 최종 외형과 객실, 화물칸을 완성했다고 보고했다. 최종 안전 점검까지 모두 끝낸 상황이었다.

‘내가 추가로 지시했던 증기 기관차의 기념사진도 무사히 촬영했다지.’

이 사진은 사람들의 거부감은 줄이고, 호기심은 자극할 용도로 제국 모든 신문에 기재될 예정이었다.

귀족들 사이에서는 한차례 난리가 났던 증기 기관차지만, 평민들은 아직 모르는 이가 많았다.

그래서 미리미리 홍보를 하려는 속셈도 있었다. 당연히 황태자의 신문사는 목록에서 제외됐다.

‘자, 그럼 준비가 거의 끝났으니.’

이제 언제, 어떻게 공개하느냐만 남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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