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우리는 앨턴가 소유의 숲 초입에 도착했다.
숲 곳곳에 마법 전등이 놓여 있는 걸 보니, 아버지의 말대로 이미 수색대가 뒤진 모양이었다. 덕분에 한밤인데도 숲이 환했다.
“여기는 어때, 아이닝.”
내 물음에 아이닝이 킬리언의 품에서 쏙 빠져나오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더니 곧 한곳을 주시했다.
“으음……. 느껴진다. 저쪽이야!”
아이닝은 그렇게 말하며 뛰기 시작했다. 킬리언과 나도 아이닝을 따라 달렸다. 그 과정에서 네시아를 수색 중인 우리 가문의 기사 몇과 마주칠 수 있었다.
“벨라디 님!”
“어떻게 여기에!”
난 마음이 급해 그런 기사들에게 대강 손을 휘젓고 발을 멈추지 않았다. 아이닝은 곧잘 방향을 잡은 채, 안으로 나아갔다.
그때, 기사 한 명이 다급히 내게 붙었다.
“벨라디 님, 그쪽은 아직 괴한들을 완전히 정리하지 않아 위험합니다.”
네시아가 있는 방향에 괴한이 남아 있다고?
그렇다면 더욱 큰일이었다. 난 그 기사에게 신속히 명을 내렸다.
“네시아는 내가 찾는다. 너희는 남은 괴한들을 처리하는 데 집중해.”
이 명령에 기사는 잠시 멈칫거렸지만, 곧 내 실력이 떠올랐는지 우렁차게 대답했다.
“예!”
기사는 자신의 동료들을 데리고 발 빠르게 다른 길로 향했다. 난 그 기사가 사라지는 걸 확인한 후, 아이닝에게 속삭였다.
“서두르자.”
“응! 이리로 와!”
아이닝은 이제 앨턴가의 숲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기사들이 배치한 마법 전등의 수도 줄어들어, 주변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때, 킬리언이 딱 손가락을 튕겼다.
화르륵-.
“불의 정령사가 불도 조종하지 못하면 안 되잖아요?”
그는 손바닥 위에 피어오른 불을 보며 웃었다. 정령의 힘으로 만든 불은 마법 전등보다도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해 줬다.
난 그에게 고맙다는 의미로 웃은 후, 허리를 숙여 돌멩이 하나를 주웠다.
“벨라디?”
내 행동에 그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의문을 해소시켜 주기 위해, 움켜쥔 돌멩이를 왼쪽으로 던졌다.
“네시아 앨턴을 찾아, 크헉!”
내가 던진 돌멩이는 막 수풀을 뒤지며 나온 남자의 미간에 정확히 명중했다. 그걸 보자 킬리언과 앞서가던 아이닝이 화들짝 놀랐다.
“무서워!”
“벨라디, 괜찮나요!”
킬리언은 대번에 이쪽으로 다가와 내 몸을 살폈다.
그걸 보며 난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다친 건 제가 아니라 저쪽이에요, 킬리언.”
“그래도 당신이 제일 먼저 걱정되는걸요.”
“걱정도 많으셔라.”
그렇게 말하며 쓰러진 남자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분명 기절해야 마땅할 남자가 꿈틀거리며 다시 몸을 일으키는 게 아닌가.
“끄윽, 네시아 앨턴을…….”
그 행색이 꼭 좀비와 같았다.
난 한쪽 눈썹을 까딱이며 놈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위험해요.”
킬리언은 반사적으로 날 제 뒤에 숨기려 했다. 물론 난 가뿐히 그의 팔을 치우고 남자를 관찰했다.
남자는 복면을 쓰고 있었지만, 곳곳이 찢어지고 너덜너덜해져 쓰나 마나 별 효과가 없었다.
‘이게 에밀리가 말한 그 괴한인가?’
그나저나 저 얼굴은…….
난 놈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며 눈을 가늘게 떴다. 자연스럽게 뭔가에 홀린 듯 풀려 있던 동공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 순간이었다.
“……베, 벨라디 앨턴?!”
날 알아본 듯, 남자의 눈빛이 또렷해졌다. 동시에 놈은 몸을 파르르 떨더니 풀썩 땅으로 엎어졌다. 그러고는 괴로운 듯 머리를 부여잡고 울부짖었다.
“끄아아아아아악!”
난 그걸 보며 혀를 찼다. 그러고는 발버둥 치는 놈을 간단히 제압한 후, 빠르게 목뒤를 내려쳤다. 다행히 한순간이나마 정신을 차린 덕에, 이번에는 완전히 기절시키는 데 성공했다.
난 엎어진 남자를 뒤집어 복면을 벗겼다.
“역시.”
이런 내 반응에 가까이 다가온 킬리언이 남자의 얼굴을 보고는 당황스러워했다.
“설마 이자는…….”
“맞아요, 그 작자네요.”
난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숨을 쉬었다.
“황태자의 명으로 당신을 감시했던 그 호위 기사.”
그중에서도 내게 직접적으로 대들었던 호위 기사들의 대장이 지금 우리 눈앞에 쓰러져 있었다. 그를 알아본 킬리언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전부 기사직을 박탈당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들었는데.”
“그런 자들이 무슨 일로 이 숲을 헤맸는지는, 심문을 통해 알 수 있겠죠.”
난 땅에 널브러진 그 호위 기사를 무감하게 내려다봤다.
아니……. 사실 무감하지 않았다.
놈이 여기에 있다는 건, 이 사건이 황태자와 관련이 있을 확률이 높았으니까.
‘퍼델 앨러만 데커딜…….’
이번에는 또 어떤 식으로 이 일에 엮인 거지.
그 이름을 곱씹는데, 저 방향으로 앨턴가의 기사 무리가 달려왔다.
“벨라디 님, 괜찮으십니까!”
“비명이 들려서 왔습니다!”
“마침 잘 왔어.”
난 기사들에게 쓰러진 황태자의 기사를 데려가라고 명했다. 그리고 마저 걸음을 옮겼다.
“가자, 아이닝.”
“응!”
일단 지금은 네시아를 찾는 게 제일 급했다. 나와 킬리언은 아이닝을 따라 숲 안쪽으로 들어갔다.
얼마나 달렸을까. 아이닝은 더 이상 마법 전등이 하나도 없는 숲의 어느 지점에서 우뚝 멈춰 섰다.
“여기서부터는 기운이 너무 강하게 느껴져. 그래서 정확한 위치를 모르겠어.”
“이 근처인 건 확실하지?”
“응!”
난 따로 재 보지도 않고, 곧장 네시아를 불렀다.
“네시아!”
내가 먼저 네시아의 이름을 외치며 숲을 뒤지자, 킬리언과 아이닝도 날 도와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네시아! 이제 괜찮으니 나와!”
“네시아 양!”
“어디 있어! 아이닝이 벨라디 데려왔어!”
그렇게 한참 숲을 뒤지며 내 머릿속에는 오만 가지 생각이 뒤엉켰다.
만약 네시아가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
소설에서 여자 주인공이 사라지면, 앞으로의 전개는?
‘거기다 이번 일의 배후가 황태자라면…… 네시아는 나 때문에 위험에 빠진 거야.’
그리고 아이닝이 아니었다면, 난 이 일을 뒤늦게서야 알았겠지.
이런 생각을 하자 일말의 죄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어머니와 똑같이 생겼다고 마냥 아이를 외면하는 게 아니었다. 그 아이가 겉으로나마 나와 가족이 된 이상, 언제든 내 정적들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뒀어야 했는데……!
“네시아!”
내가 너무 안일했어.
이런 내 후회는 외침이 되어 숲 안에 울렸다.
“네시아! 어디 있어!”
난 정말 열심히 네시아를 찾아 헤맸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죄책감이 든다고 해도, 내가 이렇게까지 필사적일 이유가 있나?’
물론 도덕적인 의미로 아이가 걱정되긴 했다. 또한, 어머니에 대한 거부감을 완전히 지우지 못해서 이런 사달이 난 것 같아 분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난 그 이상으로 불안함과 초조함을 느끼고 있었다. 가만히 곱씹어 보면, 이건 네시아를 향한 감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 본능이 스스로에게 내리는 경고와 같았다.
‘네시아를 대체할 수 있는 건 없다고.’
정확히는 네시아를 통해 이용할 예정인 눈의 정령 셰넌을 절대 놓치면 안 된다고.
셰넌이야말로 내가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할 존재라고.
어디서 기인했는지 모르겠으나, 난 본능이 내리는 이 경고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데리러 왔어!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그래서 다시금 간절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때였다.
부스럭.
그 소리에 난 휙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에서 엉망진창인 몰골의 네시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네시아!”
난 서둘러 아이에게 달려갔다.
멍하니 날 보던 아이는 내가 가까이 다가가고 나서야 상황을 파악한 듯싶었다.
“언니…….”
퉁퉁 부은 네시아의 눈에서 굵은 눈물 줄기가 후드득 떨어졌다.
“으아앙! 언니!”
네시아는 서글프게 울며 내 품으로 달려들어 왔다.
거세게 안긴 아이는 온몸이 땀으로 푹 젖어 있었고, 많이 무서웠는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흐어어엉!”
네시아는 어미의 품을 찾는 새끼처럼 날 껴안은 손에 힘을 줬다. 난 그런 아이를 다급히 토닥이며 네시아의 귓가에 연신 속삭였다.
“고생했어, 네시아. 이제 괜찮아.”
내 말에 네시아는 더욱 목 놓아 울었다. 아이의 묵직한 체중이 느껴지고 나서야, 나도 초조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난 네시아를 단단히 껴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정한 목소리로 우는 아이를 안심시켰다.
“집으로 가자.”
“으응!”
네시아는 우는 와중에도 착실히 내 말에 대답했다.
난 그런 네시아의 머리와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킬리언과 아이닝을 바라봤다.
우리를 본 킬리언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네시아 양을 찾았군요.”
아이닝도 폴짝폴짝 주변을 뛰어다니며 외쳤다.
“우와! 정령의 기운도 순식간에 안정됐어! 벨라디 대단해!”
“그러니?”
난 미묘한 마음으로 아직 훌쩍이는 네시아를 쓰다듬었다.
‘내가 네시아에게 이런 감정을 느낄 줄은 몰랐는데…….’
아무리 본능에 따른 경고의 탓이 크지만, 그래도 아이를 찾을 때 난 분명한 안도감을 느꼈다. 참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난 달라붙은 아이를 달래며 손으로 눈물을 닦아 주고 네시아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또래보다 덩치가 작은 아이는 오로지 내게 의지하고 있었다.
‘어리다.’
손의 크기, 내게 안긴 몸, 울먹이는 목소리, 바라보는 눈빛…….
언제나 내가 간절히 매달려야 했던 어머니와 이 아이는 비슷하면서도 상이했다.
난 그걸 보며 네시아에게 취할 태도를 정했다.
‘어차피 셰넌이 필요한 거면…… 마냥 이 아이를 무시할 수는 없겠지.’
그러니 당분간은 신경을 좀 써 줘야 할 듯싶었다.
***
난 기사들에게 철수 명령을 내린 후, 킬리언의 다이아몬드로 먼저 저택에 돌아왔다.
그사이 아버지가 상황 정리를 끝냈는지 어수선했던 분위기는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에밀리와 로버를 비롯한 사용인들은 울다가 지쳐 잠든 네시아를 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세상에, 네시아 아가씨.”
“얼마나 우셨으면 눈가 피부가 다 상하셨어요.”
“첫 소풍에서 이런 변고를 당하시다니 그럴 만하지…….”
아버지는 그런 사용인들을 뒤로 물리고 손수 내게서 잠든 네시아를 받으셨다. 그러고는 조용히 아이를 2층으로 데리고 가셨다.
네시아의 방에는 이미 주치의가 대기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침대에 아이를 눕히며 말씀하셨다.
“살펴라.”
“예, 공작님.”
주치의가 신속하게 네시아의 몸을 진찰하기 시작했다. 곧 그의 입에서 결과가 나왔다.
“너무 많이 우셔서 탈진이 왔지만, 그 이상 주의해야 할 점은 없습니다.”
그제야 아버지는 안심이 되셨는지, 굳은 얼굴을 풀고 한숨을 푹 쉬셨다.
나 역시 근심스러운 마음을 조금은 놓을 수 있었다. 그러고는 힐끔 아버지의 뒤통수를 바라봤다.
‘이제 큰 산을 하나 넘어야겠구나.’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아버지가 스르륵 고개를 돌려 날 주시했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이제 네 차례구나.”
“예,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