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그게 무슨 말이야, 네시아가 위험하다니.”
“이거, 그 아이의 기운이야. 인간과 정령이 오묘하게 섞인 듯한……!”
아이닝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바닥을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그런데 마구 흔들려! 뭔가 큰일이 일어난 게 틀림없어!”
그 말에 난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킬리언도 사태를 인지했는지, 철도의 예상 경로가 그려진 지도를 접었다.
“정령들은 목숨에 위협을 받을 때, 서로 기운을 공유해요.”
그렇다면 지금 네시아가 목숨을 위협받고 있다는 거야?
난 한쪽 눈썹을 까딱이며 물었다.
“네시아가 일전에 자연 친화력으로 폭주했을 때도 그런 기운을 느꼈니?”
“아니!”
“그렇다면…… 상황이 그때보다 더 심각하다는 거야?”
“맞아! 차라리 그 아이가 아프면 이렇게 기운이 뒤틀리지는 않을 거야!”
여기까지 듣자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난 킬리언과 아이닝을 신속하게 드레스 룸에 숨긴 다음, 도로시를 불렀다.
“도로시!”
잠시 후, 와다다 소리와 함께 도로시가 안으로 들어왔다.
“벨라디 님의 부름에~ 도로시가 후다닥 달려왔어요!”
“수도에서 온 급보가 있나?”
“아니요! 전달받은 건 없는데, 따로 알아볼까요?”
도로시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난 고개를 저으며 도로시를 내보냈다.
‘분명 네시아에게 문제가 생겼다면, 아버지도 알고 있었을 텐데.’
내게 급보를 보낼 시간도 없는 건가?
난 드레스 룸의 문을 열어 킬리언을 바라봤다.
“지금 당장 수도 저택으로 가야겠어요. 나를 좀 도와줘요.”
텔레포트를 이용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다.
지금 북부는 방금 막 해가 졌고, 수도는 이미 완전한 밤일 시간. 그러니 텔레포트 진을 관리하는 마법사들은 전부 퇴근했을 것이다.
‘물론 내 명령이면 바로 달려와서 준비하겠지만.’
안절부절못하는 아이닝을 보니, 그럴 때가 아니었다. 상황의 급박함을 이해한 킬리언도 고개를 끄덕였다.
“제 손을 잡아요.”
“또 당신께 무리한 부탁을 하네요.”
“난 당신을 도울 수 있어 기뻐요.”
킬리언은 그렇게 말하며 품 안의 마법 다이아몬드를 꺼냈다. 곧 다이아몬드에서 빛이 나더니, 시야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
앨턴 공작가의 내 집무실이었다.
나가기 위해 문 쪽으로 향했으나, 한 가지 망설임이 발목을 붙잡았다.
‘아버지에게 여기 온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지금 상황은 절대 내가 예상한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이걸 알아낸 경로도 다른 무엇도 아닌 아이닝이니…….
‘네시아의 목숨이 위험하다고 해서 왔다지만…….’
내가 잠시 걸음을 떼지 않고 멈칫거리던 순간이었다.
“벨라디.”
내 뒤에 있던 킬리언이 다정하게 날 불렀다.
고개를 돌리니 그는 단정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지금이 앨턴가 사람들에게 우리 아이닝을 소개할 때인 것 같아요.”
“킬리언.”
“당장 온 제국에 제가 정령사라는 걸 밝히자는 건 아니에요.”
킬리언은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다만, 현재 네시아는 정령으로서 위험하고, 그걸 감지할 수 있는 건 같은 정령인 아이닝밖에 없어요.”
“…….”
“그리고 아이닝이라는 존재를 드러낸다면, 제 존재 역시 밝혀야 하고요.”
“하아.”
난 이마를 감싸 쥐었다.
킬리언이 정령사라는 사실을 내 카드로 쓸 생각은 아니었다. 그건 그의 몫이니, 어떻게 활용할지는 그의 자유이지.
‘하지만 그마저도 순전히 내 사정 때문에…….’
일전에 네시아의 자연 친화력 폭주를 해결해 준 빚도 갚지 못했는데, 또 빚을 지게 생겼다.
이걸 언제 다 갚아야 하는지.
그러나 고민은 짧았다. 아이닝이 차마 재촉하지는 못하고 다급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그 모습을 보자 난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나는 곧 킬리언을 향해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당신의 가장 큰 카드를 날 위해 사용해 줘서.”
“……대가는 꼭 받아 낼 거니까요.”
그 말에 난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저번처럼 순수하게 날 돕고 싶다는 말보다는 차라리 저게 더 마음에 들었다.
난 킬리언을 데리고 즉시 방문을 열었다. 열자마자 느껴지는 건 전례 없던 소란스러움이었다. 어머니가 병으로 쓰러졌을 때도 이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뭔가 일이 단단히 났군.’
난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복도에서 하녀들을 지휘하던 에밀리와 마주칠 수 있었다.
“벨라디 님!”
에밀리는 화들짝 놀라며 내게 달려왔다. 난 그런 에밀리 옆에서 하녀들이 들고 나르는 걸 확인했다. 전부 환자의 피를 닦는 거즈였다.
“아버지는.”
내 말에 에밀리는 별다른 말 없이 서둘러 날 1층 로비로 안내했다. 그녀를 따라 내려가니, 곧 아래의 광경이 보였다.
“거즈를 더 가져와!”
“어서 의원들을 보충해!”
“기사님들은 전부 긴급 치료실로 이동시켜야 한다! 조심해!”
로버의 지도 아래 사용인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는 앨턴가의 기사들이 들것에 실린 상태였다.
모두들 상처가 심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내 말에 에밀리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네시아 아가씨와 소공작님이 소풍을 갔다 괴한들에게 습격을 당한 모양이에요! 뒤늦게 소식을 접한 공작님이 기사님들을 이끌고 다친 분들을 이송하고 있어요!”
그때였다. 활짝 열린 현관으로 아버지가 다급히 뛰어왔다.
그의 품에는 정신을 잃은 멜도르가 축 늘어져 있었다.
“소공작님!”
“세상에!”
“마력 고갈이다. 회복제를 가지고 와.”
“예, 예!”
멜도르가 서둘러 주치의와 조수들에게 넘겨졌다. 그래도 가슴이 고르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걸 보면, 크게 다친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긴 하지만.
다친 멜도르를 보니 어쩐지 머릿속에서 분노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감히 어떤 미친놈이 앨턴을 건드려.’
내 기세가 강해지자, 에밀리가 식은땀을 흘렸다.
난 에밀리에게서 떨어져 거침없이 계단을 내려갔다. 그러자 아무런 말 없이 다시 밖으로 나가려던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벨라디?”
아버지는 마치 환상이라도 본 것처럼 인상을 찡그렸다.
난 그런 그를 보며 다짜고짜 본론을 꺼냈다.
“네시아는 어디 있죠?”
“……아직 찾지 못했다.”
“찾지 못했다는 말은, 실종이라도 된 건가요?”
내 말에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괴한들의 습격을 피해 혼자서 숲 깊숙이 숨은 것 같아.”
“네시아 혼자서요?”
“괴한이…… 네시아만 납치하려 했다는군.”
아아…….
난 참을 수 없는 짜증스러움에 입술을 깨물었다.
“벨라디, 침착해요.”
킬리언이 조심스럽게 내 어깨를 토닥이지 않았다면, 아마 입술이 찢어져 피가 났을지도 몰랐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버지가 내게 물었다.
“넌 어떻게 여기 있는 거지? 게다가 뒤에는…….”
“급하니까 가면서 말해요.”
난 아버지를 지나쳐 밖으로 나갔다.
내가 아버지를 이렇게 무시하는 건 난생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런 내 행동에 아버지가 움찔하는 게 느껴졌지만, 일분일초가 아까웠다.
킬리언이 그런 나 대신 아버지에게 부드럽게 말하는 게 들렸다.
“이렇게 인사드리게 될 줄 몰랐습니다. 킬리언 앨러만 데커딜입니다.”
“2황자 전하께서 왜 벨라디와 같이 있는 겁니까.”
“일단 가시죠. 가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아버지는 잠시 고민하다 곧 나와 보폭을 맞췄다.
그가 내게 빠르게 물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
“킬리언은 정령사예요.”
“……뭐?”
“그리고 그의 정령이 네시아의 위험을 감지했어요.”
“나야!”
킬리언의 품에 얌전히 안겨 있던 아이닝이 폴짝 뛰어올랐다.
“난 아이닝! 불의 정령! 네시아가 위험해!”
“……인형이 아니었나?”
아버지는 당황했는지, 평소와는 다르게 표정이 굳어졌다.
난 그걸 감상할 틈도 없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네시아가 셰넌에 의해 탄생했다고 하셨죠?”
“그래.”
“그래서 그 아이는 절반이 정령이에요. 여기 있는 아이닝은 정령이라서 네시아가 위기에 처한 걸 느낄 수 있었어요.”
“내가 지금 네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구나.”
아버지는 혼란스러운 듯했다. 하지만 그 혼란을 천천히 잠재워 줄 만한 시간은 없었다.
우리는 곧 현관에서 벗어나 아버지의 말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 주위에는 이미 채비를 마친 기사들이 열에 맞춰 대기하고 있었다.
“수색대인가요?”
“……두 번째 수색대다. 처음 수색대는 아직도 숲에서 네시아를 찾고 있어.”
“숲이라면…… 어머니와 자주 갔던 그 숲으로 소풍을 보냈었군요.”
내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괴한들은요?”
“대부분 생포했다.”
“전부 잡은 건 아니란 말이군요.”
“숲에서 떠도는 어중이들이 남은 것 같아.”
빠르게 정보를 주고받은 후, 난 아버지를 바라봤다.
“제 말이 갑작스럽겠지만, 지금은 한시가 급해요. 모든 건 언제나처럼 결과로 설명드리겠어요.”
“결과로 말하겠다고?”
“아버지는 저택에 남아서 상황 정리를 부탁해요.”
“하지만.”
내 부탁에 아버지는 잠시 무어라 덧붙여 이야기하려는 듯했지만, 난 아버지의 말을 단호하게 끊었다.
“네시아는 반드시 내가 찾아 와요. 절 믿으세요, 아버지.”
일순간 아버지와 내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잠시 동안의 침묵. 그 끝에 그는 곧 한숨을 깊게 쉬었다.
“알겠다.”
“그리고 지금 이 광경을 목격할 이들의 입단속 역시 부탁해요.”
난 그렇게 통보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절도 있게 서 있는 기사들은 결코 이쪽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난 알 수 있었다. 저들이 지금 이 상황에 미약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음을.
“입단속이라고?”
난 아버지에게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닝을 바라봤다.
“아이닝, 네시아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낼 수 있겠어?”
“지금은 흐릿해! 하지만 좀 더 가까이 가면 될 것 같아!”
“좋아. 킬리언, 우리가 지금 가야 할 숲의 위치값을 알려 줄게요.”
이왕 도움을 얻기로 했으니, 제대로 본전 좀 뽑자고.
난 자연스럽게 킬리언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그의 입꼬리가 사르륵 올라갔다.
“네, 벨라디.”
“네시아, 기다려! 아이닝이 벨라디 데리고 갈게!”
아이닝의 외침을 마지막으로 킬리언이 다이아몬드를 사용했다.
또 한 번, 눈앞의 풍경이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