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장녀가 육아물에 빙의하면-114화 (115/197)

114.

분명 멋진 소풍이 될 거라 장담했다.

완연한 봄을 맞이해 날씨가 좋았고, 교외의 숲도 평화로웠다.

이곳은 어릴 적, 멜도르가 어머니와 종종 나들이를 왔던 곳으로, 앨턴 가문이 소유한 땅이었다. 덕분에 드나드는 사람이 없었고, 숲을 관리하는 인력도 따로 있어 위험한 지형 역시 없었다.

네시아와 멜도르는 북부에서 보기 힘든 넓은 야생 꽃밭에 돗자리를 깔았다.

아이는 처음 보는 풍경에 흥분해, 꽃밭을 마구 뒹굴었다. 사슴과 다람쥐 같은 소동물들도 경계 없이 다가와 더욱 동화 같은 한때를 보냈다.

어머니가 아픈 이후, 이곳에 오지 못했던 멜도르도 그런 네시아에게 감화돼 이 시간을 즐겼고.

둘은 실컷 놀고, 해가 질 무렵 집으로 돌아가는 마차에 몸을 실었다.

호위 기사는 네시아의 첫 외출임을 감안해 평소보다 훨씬 많은 인원을 데려왔다. 그래서 안심하며 깜박 잠들었을 뿐인데…….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뜬 멜도르는,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자기가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

“소공자님! 작은아가씨! 절대 안에서 나오시면 안 됩니다!”

“크윽! 다들 목숨을 바쳐 두 분을 지켜라!”

“이놈들! 감히 이 마차가 누구의 것인 줄 알고!”

챙! 챙!

날카로운 칼날이 서로 맞부딪히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멜도르에게는 익숙한 소리였다.

‘감히 누가 이 마차를 습격한 거지!’

오늘 두 사람이 탄 마차와 호위 기사들의 갑옷에는 앨턴가를 상징하는 검은 매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빈민가의 거지들조차도 세 공작가의 문장과 위용을 알고 있었다. 평범한 강도떼라면 앨턴가의 마차를 보자마자 오히려 저들 쪽에서 달아났을 것이다.

그러니 이건 분명 앨턴가를 노린 습격이리라.

멜도르는 연신 입술을 깨물었다.

처음 괴한의 습격을 알았을 때에는 금방 상황이 마무리될 줄 알았다. 이 수도에서 앨턴의 기사들을 상대할 자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아악!”

“막아라! 절대 마차에 다가서게 두지 마!”

처절한 외침이 마차 안으로 뚫고 들어왔다.

창에 달린 작은 커튼을 내려, 밖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그러나 소리를 들었을 때, 좋게 흘러가지 않고 있음은 분명해 보였다.

멜도르는 초조함에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때였다.

“오, 오빠…….”

작게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멜도르가 시선을 내렸다. 괴한의 습격을 전해 들었을 때부터 눈치껏 조용히 있던 네시아였다.

그러나 많이 무서웠는지, 네시아는 어느새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소리를 내지 않으려 작은 주먹을 꽉 쥐고 헐떡였다.

멜도르는 그 모습에 손을 뻗어 네시아를 안아 주었다.

“울지 마.”

“으으…….”

“호위 기사들이 반드시 우리를 지켜 줄 거야. 거기에 나도 마법을 쓸 수 있으니까, 괜찮아.”

“네…….”

네시아가 그렇게 대답하며 멜도르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멜도르는 울먹이는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자신이 한 말을 되새겼다.

‘그래, 큰 문제 없을 거야.’

앨턴가의 긍지인 기사들이 괴한 따위를 막지 못할 리 없었다. 거기다 멜도르도 한 몸은 거뜬히 지킬 정도로 마법을 연마해 왔다. 그러니 두려워할 필요 전혀 없었다.

‘혹시 모를 그런 일 따위는…….’

여기까지 생각할 때였다.

쨍그랑!

거친 소리와 함께 마차의 창문이 깨지며 무언가가 불쑥 들어왔다.

“힉!”

네시아가 멜도르의 품에 파고들었다.

멜도르는 그런 아이를 지키기 위해 몸을 비틀며 눈앞의 그것을 바라봤다. 마차 창문을 깨부순 건 다름 아닌 검은 갑옷을 입은 팔이었다.

멜도르가 미처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팔은 서서히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러고는 뻥 뚫린 창문 안으로 불쑥 누군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 때문에 멜도르는 퀭한 눈과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했다.

그 찰나가 억겁 같았다.

“찾았다…….”

눈만 드러나는 복면을 쓴 괴한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때, 누군가 괴한의 목덜미를 낚아채 밖으로 끄집어냈다.

“괜찮으십니까!”

기사의 외침이었다.

멜도르는 그제야 제 심장이 매우 거세게 뛰고 있음을 느꼈다. 살면서 딱 한 번, 벨라디에게 호되게 혼났을 때 울렸던 위기감이 다시금 멜도르를 덮쳤다.

마차 밖에서 타격음이 이어졌다.

멜도르는 침을 꿀꺽 삼킨 후, 뚫린 창문으로 밖을 살폈다. 그러고는 곧장 몸을 뒤로 물릴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 돼.’

밖은 처참했다. 멜도르의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괴한들이 기사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기사들이 이 시간까지 버틴 게 용하다 싶을 만큼 전력 차이가 심했다.

거기다 그 괴한들은 매우 괴이했다.

‘저 정도의 상처면 정신을 잃어야 마땅한데…… 어떻게 저렇게 움직일 수 있는 거지?’

다리가 골절될 정도로 꺾인 와중에도 마차로 돌진하려는 놈, 한쪽 팔에 시꺼멓게 멍이 들어도 검을 휘두르는 놈. 멀쩡한 놈이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아무렇지 않게 앨턴가의 기사들을 상대했다.

‘마치……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그런 마법이 있었나?

멜도르는 머리를 굴렸으나, 고민은 오래가지 못했다. 잠시 멈칫거리는 사이, 아까 그놈과는 다른 괴한이 마차 안으로 얼굴을 들이민 것이다.

그 괴한이 소리쳤다.

“네시아 앨턴을 찾았다! 네시아 앨턴을 찾았다!”

괴한은 이 말만 소리치며, 네시아만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눈도 한 번 깜박이지 않은 채였다.

덜컹덜컹!

잠긴 마차 문을 잡아당기는지 크게 덜컹거렸다. 그러자 네시아가 더욱 강하게 멜도르에게 매달렸다.

멜도르는 그런 아이를 보듬으며 발로 괴한의 얼굴을 팍 걷어찼다. 마력을 담은 발길질에 괴한이 밖으로 밀려났다.

“저게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그 순간이었다.

“네시아 앨턴을 찾았다!”

“네시아 앨턴을 찾았다!”

밖에서 기사들과 싸우던 괴한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기 시작했다.

그에 질세라, 기사들의 목소리도 커졌다.

“이 괴물 같은 놈들!”

“두 분을 절대로 지켜야 한다!”

기사들은 최선을 다했다. 멜도르도 그걸 안다.

그러나 소리의 성량에서 차이가 났다. 누가 봐도 앨턴가의 기사들이 밀리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돼.’

괴한들의 외침이 점점 마차와 가까워졌다.

애써 침착하던 멜도르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소년은 아이의 귓가에 속삭였다.

“마차에서 내릴 거야.”

“내, 내려요?”

“마법으로 몸을 감출 거니까 걱정하지 마.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수도 검문소가 나올 테니, 거기까지만 가면 돼.”

“흐읍…….”

네시아는 겁을 먹었는지 다시 울먹였다.

멜도르는 그런 아이를 달랬다.

“내가 안고 달릴 거야. 넌 조금만 더 조용히 있어 줘. 할 수 있지?”

“네, 네…….”

네시아가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때마침 이런 멜도르와 같은 결단을 내린 자가 있었다. 저 멀리서 호위 기사 중 가장 노련한 기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망가십시오!”

그 소리를 신호로 멜도르가 마력을 활성화했다.

둘의 모습이 완전히 투명하게 변한 걸 확인한 멜도르가 망가지지 않은 반대편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챙챙챙!

그쪽 방향에서도 기사들이 마차를 둘러싼 채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다행히 기사들은 마차의 문이 살짝 열린 걸 바로 눈치챘다.

제 주인들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그들은 원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며 마지막 기세를 몰아, 한쪽 방향으로 괴한들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제발 좀 쓰러져!”

멜도르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네시아를 안은 채, 달렸다. 마력 덕분에 달리는 속도가 무척 빨랐다.

열심히 발을 움직이는 와중에, 멜도르는 혀를 찼다.

‘텔레포트를 미리 배웠어야 했는데……!’

현재 멜도르의 실력으로는 터무니없는 마법이지만, 그래도 후회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후회한들 상황은 달라지지는 않는다. 우선 멜도르는 지금의 상황에 집중하기로 했다.

기사들이 버텨 줄 때, 빠르게 수도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멜도르는 최대한 신속하게 달렸다.

그러나 괴한들은 끈질겼다.

“네시아 앨턴을 잡아라!”

“잡아라!”

멜도르가 뒤를 돌아보자, 괴한들이 무서운 속도로 자신을 추격하고 있었다. 앨턴가의 기사들이 온몸으로 막아서고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멜도르는 기겁했다.

‘헉!’

괴한들이 마법으로 몸을 가린 멜도르와 네시아를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는 행동을 보니, 네시아가 마차에서 사라진 걸 알고 곳곳이 흩어진 듯싶었다.

다만 워낙 그 수가 많아 멜도르 쪽으로 일부가 붙은 것이고.

여기까지는 큰 문제 없었다.

‘저 미친 새끼들!’

분명 멜도르는 마법으로 달리고 있다. 현재 그의 속도는 어지간한 말도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괴한들과 멜도르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고 있었다.

‘어떻게 저럴 수 있는 거지? 어떻게!’

괴한들은 서로 달리면서 부딪히고 엉키고 넘어졌다. 그러면서도 계속 달렸다. 그들은 자신의 몸이 망가지는 걸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괴한들의 외침이 숲속에서 메아리쳤다.

“네시아 앨턴을 잡아라!”

뭔가에 홀리지 않는 이상, 저럴 수는 없었다.

형용할 수 없는 소름이 그의 온몸을 스쳤다. 피부에 와닿는 공포가 칼바람처럼 시렸다.

“허억허억…….”

동시에 턱 끝까지 숨이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비 오듯 흐르는 땀 때문에 눈가가 따가웠다.

그러나 멜도르는 그걸 닦지도 못한 채, 네시아를 고쳐 안았다. 이대로라면 따라잡힌다는 생각이 소년을 사로잡았다.

멜도르는 속도를 올리기 위해 다리에 마력을 더 집어넣으려 했다.

그러다 곧 절망했다.

‘빌어먹을!’

평소였다면 더 버텼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급격하고 괴이한 상황 속에서 멜도르의 체력과 집중력은 빠르게 고갈되고 있었다.

마력이 생각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멜도르는 속으로 몇 번이고 더 분통을 터트렸다.

‘낮에 그렇게 마음 놓고 뛰어다니는 게 아니었어.’

멜도르는 냉정해지려 애쓰며 앞을 주시했다.

빛 한 점 없는 숲은 낮과는 전혀 달랐다. 멜도르는 이제 자신이 옳은 길로 가고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이상하다. 이만큼 달렸으면, 검문소가 나와야 하는데!’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길을 잃은 걸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더 움직여도 괜찮은 걸까?

이러다 앨턴가 소유의 숲에서 벗어나면, 이제 지형도 위험해졌다.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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