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장녀가 육아물에 빙의하면-110화 (111/197)

110.

그는 집중하며 다음에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난 아까의 소동에도 미동 없이 놓여 있던 라벤더 향초를 집어 들었다.

“제가 일전에 이 향초와 똑같은 걸 당신에게 줬었죠.”

내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는 심각한 얼굴로 내가 들고 있는 향초를 바라봤다.

“당신이 새삼 제게 그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지금 이 향초가 평범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겠죠.”

“맞아요.”

난 향초로 시선을 내려, 이 향초를 얻게 된 계기를 그에게 설명했다. 그러며 무의식중에 향초의 뚜껑을 열었다.

“이 향초에 무슨 사정이,”

“벨라디.”

킬리언이 드물게 내 말을 끊었다. 그러고는 내 손을 잡고 조용히 향초의 뚜껑을 닫았다.

그 행동에 난 시선을 들어 그를 바라봤다.

킬리언은 향초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이걸 케스퍼 아글라의 부하가 건넸다고요.”

그 목소리가 상당히 무거웠다. 여느 때와 다른 그의 모습에, 난 이 향초에 얽힌 비밀이 내 예상보다 더 중대한 사항이란 걸 감지했다.

“말해 줘요, 킬리언.”

난 그를 보며 말했다.

“만약 이 향초가 당신 개인에게 얽힌 일이라면, 굳이 캐묻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케스퍼 아글라와 관련 있다면 그냥 넘어갈 수 없어요.”

단호한 내 어조에 킬리언이 나와 눈을 마주했다. 그는 약간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정황을 전부 파악한 후에 공유하려 했지만, 이 향초가 당신에게까지 닿았다면 입을 다물 때가 아니겠죠.”

킬리언이 무겁게 말문을 뗐다.

“제가 이때까지 조사한 걸 전부 말씀드릴게요. 일단 이 향초.”

그는 자연스럽게 내게서 향초를 받았다.

“이 향초를 만든 브랜드가 누구의 소유인지 아시나요?”

“브랜드?”

난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이 향초는 백화점에서 구매할 수 있는 고급 브랜드의 상품이었다. 지금 들고 있는 것에도 상품의 로고가 그대로 붙여져 있었고.

‘그런데 소유주가 누구인지는…….’

내 관심에 없었던 사항이라 파악하고 있지 않았는데.

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킬리언이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다 곧 표정을 관리하며 입을 열었다.

“동부의 한 자작가가 운영하는 브랜드입니다. 그리고 그 자작의 부인이 패러그린 후작의 사생아죠.”

“패러그린.”

익숙한 이름에 난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케스퍼는 차명으로 여러 개의 상단을 운영 중이다. 이는 여러 개의 사업체를 가진 귀족들이 고액의 세금을 피하기 위해 자주 쓰는 수법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중, 동부에서 움직이는 상단의 부단주가 더미 남작의 차남에게 접근한 거고.

그래서 이 향초가 케스퍼와 관련이 있다고 여기기는 했으나…….

‘패러그린이 끼어 있다.’

그렇다면 황태자 역시 이 일에 깊숙이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킬리언이 마저 말을 이었다.

“제가 황궁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제 방에 이 향초가 놓여 있었어요. 그리고 아이닝이 향초가 불길하다고 말해 줬죠.”

“아이닝이요?”

그때, 허공에 작은 불길이 화르륵 휘몰아치더니 아이닝이 뿅 하고 나타났다.

“맞아! 내가 말했어!”

아이닝은 킬리언이 들고 있는 라벤더 향초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봤다.

“저것도 그때 킬리언 방에 있던 것과 똑같아! 불길한 기운이 느껴져!”

“정령의 본능은 아주 날카롭습니다. 특히 부정적인 것에 확실히 반응하죠.”

킬리언이 손을 뻗어 아이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난 그걸 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래서 그때 제게 향초를 받아 간 거군요.”

“맞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향초는 파는 것과 똑같았기에, 무사히 바꿔치기할 수 있었어요.”

“그럼 원래 당신 방에 있던 향초는 어떻게 됐죠?”

“정보원을 통해 티벤 후작가에 넘겼습니다. 향초를 조사하기 위해서요.”

“흠……. 그게 3년 전이니, 시일이 꽤 지났네요. 그동안 뭔가 밝혀진 게 있나요?”

내 물음에 킬리언이 골치 아픈 듯 인상을 찡그렸다.

“일단……. 향초에서 남부의 전염병 치료제와 같은 성분이 검출됐어요.”

“같은 성분?”

“……마물의 부산물이죠.”

그 말에 난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마물의 부산물……!’

내가 새롭게 등장한 단어에 집중하자, 킬리언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남부의 전염병은 마물의 숲과 제국 해안가를 오가는 철새에 의해 퍼졌어요. 그 병을 완치하기 위해서는 마물의 부산물이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그럼……. 황태자가 마물의 부산물을 이용해 치료제를 만들었다는 건가요?”

내 물음에 킬리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 기가 차는군.”

마물의 숲은 우리 제국의 동쪽에 국경을 맞대고 있는 위다나 왕국의 땅으로, 면적이 대영지와 비슷할 정도로 거대했다.

또한 제국은 그 숲에서 나오는 마물의 부산물 수입을 엄격히 금지했다. 대부분의 부산물은 각성과 환각 등 다양한 정신 이상 증세를 일으키는 부작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위다나 왕국 평민들은 부산물을 진통제로 사용한다지만.’

그건 위다나가 매우 부패한 나라라, 정상적인 의료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고. 이곳에서 그런 위험한 물건을 아무런 설명도 없이 사용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도 한 나라의 황자라는 작자가…….’

“황태자가 그 일을 주도한 거면, 딱히 검열을 받지도 않았겠군요.”

“맞아요. 애초에 우리 제국에서 마물의 부산물은 아주 생소한 물건이죠. 그걸 제국의 황자가 수입했을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 했을 거예요.”

“남부 전염병 치료제에 꼭 그 부산물이 필요했던 건가요?”

“아마도요. 만약 이를 폐하께 보고했다면, 특별히 그 부산물의 수입은 허했을 텐데…….”

“무언가 다른 꿍꿍이가 있으니 그러지 않았겠죠. 가령, 저것처럼.”

난 그렇게 답하며 힐끔 테이블에 올려진 향초를 바라봤다.

나를 따라 시선을 향초로 옮긴 킬리언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전염병에는 확실한 효과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동시에 황후 전하께서 부작용을 일으킨 이유도 더욱 명확해졌네요.”

난 향초에서 눈을 떼, 킬리언을 응시했다.

“그 부산물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는 거죠?”

만약 알았다면, 마물의 부산물이라고 뭉뚱그리지 않고 바로 말했겠지.

내 말에 킬리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물의 부산물이 워낙 종류가 다양하고, 알려진 정보가 없어 특정하기 어렵네요.”

“그렇겠죠. 거기다 황태자가 멍청하게 그 부산물을 그대로 수입하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아마 서류를 조작해 다른 걸로 기록했을 것이다. 아니면 기록 자체를 말소했을 확률도 높았다.

“그 부산물이 지금 이 향초에도 들어갔다, 이 말이죠? 그래서 아이닝이 거부감을 느낀 건가요?”

“맞습니다. 원래 마물과 정령은 상극이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의문인 건…… 아이닝은 남부의 치료제에는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거예요.”

“맞아! 그 하얀 알약은 아무렇지도 않았어! 하지만 저 향초는 불쾌해!”

똑같은 마물의 부산물이 들어갔는데, 향초에만 반응한다고?

난 아이닝을 보며 물었다.

“그럼 변형된 치료약은 어때?”

“그것도 그저 그래!”

아이닝의 대답에 나는 고민에 잠겼다.

“흠, 그렇다면 저 향초에 마물의 부산물 말고 다른 것도 추가되었다는 건가…….”

“하지만 향초의 최종 분석 결과, 마물의 부산물 외에 특이한 건 나오지 않았어요.”

“저 향초는 정말 이상한걸! 아이닝은 거짓말하지 않았어!”

아이닝이 펄쩍 뛰며 향초를 노려봤다.

킬리언은 그런 아이닝을 달래 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난 가만히 황태자의 목적을 추측했다.

“일단……. 향초에 부산물을 넣고, 그걸 당신에게 줬다는 게 거슬리네요. 대체로 마물의 부산물은 강력한 최면 효과를 동반하죠.”

그렇기에 전쟁이 한창일 때는 제국에서도 사용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그러니까…….

“당신의 정신을 조종하기 위해 향초를 건넸을 확률이 높은데.”

마물의 부산물이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추측에 무게가 실렸다.

그렇지 않다면, 황태자가 굳이 위험 부담을 살 이유가 없었다.

“남부의 치료제를 변형하며 실험을 감행한 것도 향초와 관련 있을까요?”

내 중얼거림에 킬리언도 미간을 찡그렸다.

“다행히 피해자들에게 특별한 정신 이상은 나타나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더욱 의문이네요.”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그걸 정확히 알아내려면, 역시 황태자가 어떤 마물의 부산물을 사용했는지 밝혀낼 필요가 있었다.

여기서 신경 써야 할 건 또 있다. 이 향초는 킬리언뿐 아니라, 이미 다른 이들에게도 퍼진 상태라는 것이다.

‘심지어 더미 남작의 차남에게도 이 향초를 내밀었으니까.’

그럼 이 제국에 저 향초는 얼마나 퍼진 건지.

순간 불길한 가정 하나가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난 잠시 고민하다, 킬리언에게 물었다.

“폐하는 괜찮으신 건가요?”

“폐하요?”

“황태자와 가장 많이 접촉했으며, 그가 누구보다 조종하고 싶어 할 인물은 다름 아닌 폐하니까요. 당신에게도 손을 뻗었으니, 폐하도 가만두려 하지 않았을 텐데.”

난 황태자를 상당히 신뢰한다는 황제를 떠올렸다.

이런 내 염려에 킬리언이 살짝 미소 지었다.

“그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폐하께서는 퍼델의 손에 놀아나지 않으시니까.”

“그 말을 증명할 근거가 있나요?”

킬리언이 아까보다는 한결 가벼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폐하께서 제게 은밀히 내린 명령이 있어요.”

“명령?”

“상황을 잘 살펴보다, 벨라디 당신의 철도 사업을 은밀히 도우라고 명하셨죠.”

그 말에 난 빠르게 눈을 깜박였다.

내 반응에 킬리언이 소리 죽여 웃더니, 설명을 보충하듯 말해 주었다.

“폐하께서는 북부의 철도와 증기 기관차 개발 건을 처음부터 유심히 듣고 계셨어요. 다만, 그리리카 선황 때의 전적이 있으니, 일부러 무심한 척하셨죠.”

“그리고 뒤에서 당신에게 명을 내린 거군요? 날 도우라고.”

“그분은 무엇보다 제국의 발전을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이니까요.”

그래, 그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난 무의식적으로 황제는 황태자의 편이라고 판단했다.

아무래도 임시 아동법에 제지를 걸지 않은 것이 이 판단에 큰 영향을 줬었지.

‘그래서 그의 도움은 바라지도 않았는데…….’

내가 편견을 가졌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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