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장녀가 육아물에 빙의하면-107화 (108/197)

107.

난 그걸 떨떠름하게 바라보며, 힐끔 하녀장과 다른 하녀 두 명을 살폈다. 다행히 나 외에는 아무도 저 은밀한 행동을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난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어차피 난 내일부터 더미 영지로 갈 거야. 그러니 하녀는 한 명만 있으면 돼.”

“더미 영지로 가신다고요?”

“그래, 일 때문에 왔다 갔다 할 예정이니 참고해.”

난 그렇게 말하며 얌전히 대기하고 있는 하녀 세 명을 바라봤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마지막 하녀를 가리켰다.

“저 아이만 남고 이만 나가 봐.”

내 말에 하녀장이 무어라 말을 하려 입을 열었다. 그러나 아까 자신이 실언을 했을 때 내가 보였던 반응을 떠올렸는지, 곧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예, 벨라디 님. 부디 편안한 밤 보내십시오.”

하녀장이 다른 하녀들을 데리고 방을 나섰다.

달칵.

문이 닫히고 나와 단둘이 남게 되자, 윙크를 했던 하녀가 발랄하게 웃었다.

“벨라디 님~! 너무 뵙고 싶었어요!”

그렇게 외친 그녀가 몸을 배배 꼬며 한 걸음씩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어쩜 그리 무심하실 수 있으세요~. 도로시가 언제나 벨라디 님을 향한 마음을 편지에 꼭꼭 담아 보냈는데요~.”

“그래, 날 찬양하는 글은 잘 봤어. 솜씨가 점점 늘어나더군.”

“아잉, 벨라디 님을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시구들이 마구마구 떠올랐답니다~.”

그렇게 훌쩍 곁으로 다가온 하녀, 도로시가 무릎을 꿇더니 내 다리에 살짝 얼굴을 기댔다.

“제 보고는 전부 읽으셨나요~?”

그러고는 아주 조심스럽게 자신의 얼굴을 비볐다.

바지 위로 흩어지는 머리카락을 보며 난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재미있는 정보가 많았지.”

내 대답에 도로시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칭찬을 바라는 듯 간절하게 날 바라봤다.

“모조리 도로시 혼자서 알아낸 정보랍니다~! 벨라디 님을 생각하며 힘냈어요~!”

그 눈빛에 난 선뜻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도로시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털썩 바닥에 쓰러졌다.

“아아앙, 너무 좋아……!”

그걸 보며 난 다시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쟨 일은 잘하는데……. 가끔 진짜 변태 같아.’

제플린, 그리고 켄뉴브 학교의 교장처럼 일부 감시자들은 날 흡사 우상처럼 따르고 있었다. 보다시피 도로시도 그중 한 명이었다.

북부 성에서 하녀로 위장 중인 도로시는 다른 누구보다 이중 첩자로서 공공연히 활약했다.

‘그리고 난 원작을 통해 이미 이를 알고 있었지.’

그렇기에 3년 전, 제플린을 통해 은밀히 만남을 주선했고.

전부 아버지 혼자 네시아를 돌보느라 매우 바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수도에 심은 첩자를 들켰으니, 황태자 측은 북부로 시선을 돌릴 확률이 높아.

난 처음 마주한 도로시를 똑바로 바라보며 웃었다.

-상황을 잘 관찰하다 접촉이 생긴다면, 도로시 네가 그 역할을 맡아라. 황태자 측과 이쪽의 정보를 교란시켜야 해.

이런 내 지령에 도로시가 몽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곧 몸을 배배 꼬며 얼굴을 붉혔다.

-……예, 벨라디 님. 도로시, 벨라디 님을 위해 힘낼게요~.

그 순간, 그녀가 첫눈에 내게 호감을 품었다는 걸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뭐, 내 외면은 아버지를 닮아 객관적으로 월등한 편이기는 했다. 나를 보자마자 호감을 표현하는 이들도 성별을 가리지 않고 많이 봐 왔었다.

그렇기에 그 호감을 그리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설마, 주기적으로 보내는 보고서에 날 향한 사심의 편지를 따로 동봉할 줄은 몰랐지.’

참고로 그 편지의 길이는 상당히 어마어마했으며, 매번 겹치는 표현도 없었다.

덕분에 처음 그걸 읽고, 난 적잖이 당황해야만 했다.

‘원작에서 도로시는 이런 성격이 아니었거든.’

물론 거기서도 발랄한 캐릭터이기는 했다.

비중이 크지는 않았으나, 네시아가 북부로 갈 때마다 아이가 귀엽다며 어화둥둥 하던 하녀 중 하나로 종종 나왔으니까.

그렇긴 하지만…….

“도로시는 벨라디 님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게,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더 쓰다듬어 주셔요~.”

“그래, 그래.”

이렇게 대놓고, 배를 내보이는 고양이처럼 행동하지는 않았단 말이지.

그래서 언제 한 번은 도로시에게 직접 물어보기도 했다.

‘진짜 네 속셈이 뭐냐고.’

원작에서 첫째에게는 이러지 않았는데, 내게만 이러는 연유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혹여 내가 모르는 사이에 원작이 뒤틀렸다면, 즉시 바로잡을 속셈이기도 했고.

내 물음에 도로시는 기다렸다는 듯, 술술술 자기 입으로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가주가 걸어온 길을 그대로 밟는 장남? 흔하죠~. 하지만 자기가 갈 길을 직접 개척하는 장녀? 짜릿하잖아요~!

그 대답이 무슨 뉘앙스에서 나왔는지 이해가 갔다.

그래서 난 더 이상 자세히 묻지 않았다.

‘결국 원작이 바뀌어서 도로시가 변한 건 맞았지.’

그래도 앨턴을 향한 충성심은 그대로니까, 그냥 넘어가면 그만이었다.

잠시 과거를 회상하던 난 다시 현재에 집중했다.

“도로시, 그사이에 추가적으로 내려온 지령이 있니?”

“네, 벨라디 님~!”

도로시는 신속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접힌 종이 하나를 내밀었다.

난 그걸 펼쳐 적힌 내용을 읽었다.

「북부의 첩자들에게 알린다. 벨라디 앨턴이 음흉한 일을 꾸미고 있다. 이를 제지하기 위해, 너희들은 최대한 많은 정보들을 내게 전달하길 바란다.」

“암호를 해독하면 이런 내용이에요~.”

“원본은?”

“활활 태웠답니다~.”

“잘했어.”

난 도로시가 따로 해석한 종이를 구기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역시 케스퍼 아글라는 방심하지 않았던 모양이군.’

하긴, 오만한 황태자보다는 케스퍼 아글라가 더 예민하니까. 그러니 아무리 대 가주 회의에서 황태자와 남부 측이 철도 건설 건을 무시하고 넘어갔다고 해도, 이 작자는 단독으로 일을 꾸밀 줄 알았다.

아마 놈은 북부에 첩자를 미리 숨겨 두어 다행이라고 여기며, 재빨리 지령을 내렸겠지.

‘바보 같은 케스퍼. 네가 심어 두었다고 생각하는 이들 모두, 원래 내 사람이라는 것도 모르고.’

애초에 북부는 꽤나 최근까지 군사 정보의 접전지로서 각국의 첩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했던 곳이다. 정령에 의해 전쟁이 종결 났다고는 하나, 서로에 대한 적대감과 의심은 한순간에 끝나는 감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시간이 오래 지나 그 기세가 많이 꺾였지만, 첩보전의 흔적과 노하우는 대대로 북부에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괜히 앨턴의 정보망이 다른 세력보다 탄탄한 게 아니라고.’

감시자 같은 인력이 어디 하루아침에 나오는 줄 아나?

그런데 이런 곳에 어쭙잖게 스파이를 심어 두려고 하다니…….

‘여기는 수도보다 경계가 느슨하니 더 쉬울 줄 알았나 보지.’

사실 숨어 있는 고수들은 전부 북부에 있는데 말이야.

케스퍼가 누구를 이용해 이 북부의 사람들에게 접촉했는지, 이미 파악이 끝난 상황이었다.

“이제 그놈들을 솎아 낼 때가 왔네.”

그동안 폐쇄적인 북부였으나, 곧 증기 기관차로 인한 대량의 인구 유입이 시작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스파이들을 걸러 내는 것이 더 어려워지겠지.

그러니 슬슬 거슬리는 잡초들을 뽑는 것이 내게도 편했다.

내 중얼거림에 도로시가 눈을 반짝이며 외쳤다.

“명령만 내려 주시면 이 도로시가 직접 그 무리를 도륙 낼게요, 벨라디 님~. 발칙하게도 우리 벨라디 님께 거스르는 자, 도로시가 심판하겠어요~!”

그렇게 말하며 윙크를 하는 도로시에게 난 싱긋 웃어 주었다.

“좋아, 도로시. 이번에도 널 믿고 맡기지. 케스퍼의 끄나풀들을 알아서 처리해.”

“네, 벨라디 님~!”

도로시의 발랄한 외침을 들으며 난 소파에 등을 기댔다. 케스퍼의 끄나풀과 함께 손봐 줘야 할 인물은 또 있었다.

‘내일은 스펙터클한 하루가 되겠어.’

물론, 내가 아니라 상대방이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난 씨익 미소 지었다.

***

다음 날, 난 알렉산더와 함께 곧장 더미 영지로 향했다.

이번에도 텔레포트 진을 이용해 빠르게 이동하니, 더미 남작이 미리 마중 나와 있었다.

“저희 영지에 와 주셔서 큰 영광입니다, 벨라디 님.”

“그래, 잘 지냈나.”

그렇게 우리는 담소를 나누며 텔레포트 진이 있는 건물을 나왔다.

나오자마자 따스한 햇살이 내려왔다. 확실히 더미 영지는 아직도 입김이 나오는 앨턴령과 기온 자체가 달랐다.

“이곳은 눈이 완전히 녹았군.”

“하하하, 여기는 북부 중 가장 동쪽에 있으니까요. 벌써 새싹도 돋고 있답니다.”

그래?

역시 대중에게 처음으로 증기 기관차를 선보일 북부의 영지로 딱이야.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는데, 더미 남작이 알렉산더를 보고는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몰라 마차를 준비해 왔는데, 제가 괜한 짓을 했군요.”

“아니, 잘했어. 내 보좌관이 말을 못 타니, 마차는 그녀가 타면 되겠군.”

내 말에 뒤에서 따라오고 있던 로미가 고개를 숙였다.

“배려 감사드립니다, 벨라디 님.”

그렇게 더미 남작이 가지고 온 손님용 마차는 로미가 타게 됐다. 내가 탈 예정이었던 마차에 감히 보좌관이 탄다는 사실을 신경 쓰는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다.

더미 남작은 허허 웃더니, 본인의 마차에 올라탔다.

곧 우리는 더미 남작가의 저택으로 향했다.

남작의 저택과 텔레포트 진은 그리 멀지 않은 터라,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다.

난 알렉산더를 하인에게 맡긴 후, 로미에게 곧바로 심부름을 시켰다.

“공사에 필요한 것들이 잘 있나 확인해 봐.”

“예, 벨라디 님.”

그렇게 로미가 걸음을 옮겼다.

그때 마차에서 내린 더미 남작이 날 안으로 안내했다.

한적한 복도를 걸으며, 더미 남작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나저나 벨라디 님. 이렇게 저희 영지에 들리신 이유는 역시…… 그 철도라는 것 때문이지요?”

“그래. 이곳은 북부 철도의 시작점이니까.”

난 그렇게 말하며 앞을 응시했다. 그러다가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그 외에도 신경 쓰이는 게 하나 있고 말이야.”

“신경 쓰이는 것 말입니까?”

남작이 의아해하면서도 평온한 얼굴로 물었다. 내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자네 차남은 잘 지내고 있나?”

훅 들어온 내 물음에 더미 남작이 어깨를 움츠렸다. 날씨가 더운 것도 아닌데,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는 손수건을 꺼내 이마를 훔치며 말했다.

“호, 호, 혹시 저희 아들이 또 무슨 일에 연루되기라도 했습니까? 분명 이 영지에서 나가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지켜봤는데…….”

그렇게 묻는 더미 남작의 목소리가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난 그걸 보며 고개를 살며시 기울였다.

“글쎄, 물리적으로 영지를 벗어나지 못해도 사고뭉치들은 어떻게 해서든 일을 키우기 마련이지.”

“그, 그런…….”

“이런, 너무 걱정하지는 마.”

난 더미 남작을 보며 여유롭게 웃었다.

“아직 모든 근황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는 않았으니, 네 아들에게도 기회는 남아 있어.”

자, 그럼 한번 가 볼까.

되지도 않는 제안에 흔들리고 있는 더미 남작의 차남에게 다시 공포를 새겨 주러.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