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그날 저녁은 흡사 축제와 같았다.
바바는 연구실 옆 대장장이들의 숙소에 비축된 술과 식량을 모조리 꺼내 왔다. 그러고는 부어라 마셔라 술판을 만들었다.
그 모습에 대장장이들은 왜 자신의 식량을 쓰냐 성을 냈지만, 바바는 한마디로 일축했다.
“자네들이 쏜다며!”
어차피 내가 온 이상, 부족한 것들은 바로바로 채워 줄 수 있었다. 대장장이들도 그걸 알기에 고개를 도리도리 저을 뿐, 바바를 말리지 않았다.
여기서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바바가 보기보다 술에 매우 약하다는 것 정도?
맥주 한 잔을 마시고 바로 취해 버린 그녀는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소리쳤다.
“이제 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가다! 알겠냐!”
그런 바바의 말에 조수들이 짝짝짝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역시 스승님이 최고입니다!”
“증기 기관차의 시초!”
“위대한 바바 와트 만세!”
바바는 조수들의 호응에 기분이 좋은지 이번에는 날 바라봤다.
“이 위대한 발명가를 먼저 알아본 북부의 주인에게 박수!”
“와아아아!”
오늘의 주인공은 바바이기 때문에 난 일부러 연구실 구석에 있던 참이었다. 이런 내게 시선이 쏠리자, 피식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날 바라보는 조수들의 눈이 거의 반쯤 풀려 있었다. 아무래도 다들 취한 상태인 듯싶었다.
‘술에 약한 것까지 제 스승을 닮았나 보네.’
어쩐지 웃겨서 후후 입꼬리를 올리는데, 조수들이 한마디씩 꺼내기 시작했다.
“벨라디 님이 웃으셨어……! 언제나 무표정이셨던 벨라디 님이!”
“벨라디 님 존경합니다! 스승님께 증기 기관차를 다시 만들자고 제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맞습니다! 벨라디 님은 금세기 가장 뛰어난 혜안을 가지고 계신 게 틀림없어요!“
“거기다 통 큰 성과금까지……!”
“벨라디 님 만세!”
왁자지껄 떠드는 조수들을 보며 난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더너스에게 물었다.
“더너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저 조수들과 만난 적이 있던가?”
“아닙니다. 벨라디 님과 바바 와트의 조수들은 오늘 초면입니다.”
“역시 그렇지? 그런 것치고는 내게 상당히 친근하게 다가오는군.”
날 북부의 주인이라고 칭하는 것을 보면, 내 신분을 다 알고 있다는 소리인데……. 그런데도 내게 말을 거는 태도가 썩 정겹단 말이야.
‘뭐, 얼어붙어서 벌벌 떠는 것보다는 낫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안주로 나온 과일을 하나 먹는데, 더너스가 한 곳을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아무래도 저것의 영향이 클 겁니다.”
저것?
난 그의 시선에 따라 연구실 구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저게 뭐지?”
“바바 와트가 직접 신문에서 오린 벨라디 님의 사진입니다.”
“그럼 그 밑에 적혀 있는 문구는?”
“저것 역시 바바 와트가 손수 적은 문구입니다. 언제든 긴장을 풀지 않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난 떨떠름한 눈으로 벽에 걸린 내 사진과 그 아래에 적힌 문구를 바라봤다.
「투자자께서 보고 계신다.」
‘바바 와트. 괴팍한 건 알고 있었지만…….’
저러니까 내가 정말 감시라도 하는 것 같잖아?
이런 내 시선을 읽었는지, 더너스가 나름 바바를 감싸 주었다.
“그래도 저 사진 덕분에 발명 속도에 박차가 가해진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난 슬쩍 더너스를 바라봤다. 그래도 저렇게 변명하는 걸 보면, 더너스도 나름 바바에게 정이 생긴 모양이었다.
난 어깨를 으쓱이며, 가볍게 답했다.
“긍정적인 효과를 가지고 왔다면 상관없지.”
그러며 바바와 조수들이 노는 걸 구경하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게 다가왔다.
“벨라디 님.”
그들은 하나같이 나보다 큰 키에 거대한 덩치를 가진 중년의 남자들이었다.
난 방긋 웃으며 그들을 맞아 주었다.
“다들 건강해 보이는군.”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죄송합니다, 진작 인사드렸어야 했는데 아까는 그럴 겨를이 없어서.”
“자네들도 증기 기관차의 성공에 흥분했을 테지. 이해해.”
난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가장 앞에 있는 이의 어깨를 두드렸다.
“정말 수고 많았어.”
내 말에 그들이 머쓱한 얼굴로 부끄러워했다.
“아닙니다. 저희야 벨라디 님의 명령대로 움직인 것뿐인데요.”
“맞습니다. 그 덕에 새로운 철 제련법도 터득했고요.”
“전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설마 정말로 성공할 줄이야.”
“누가 아니래? 저 무거운 걸 어떻게 증기의 힘만으로 움직이겠다는 건지 얼마나 의아했는데요.”
“역시 벨라디 님이 데리고 오신 인재입니다. 성격은 괴팍해도 실력은 확실해요.”
“철도 공사는 언제 진행됩니까? 저희 모두 준비 완료입니다!”
그 믿음직한 말에 난 더더욱 흐뭇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지금 내게 다가온 저들은 북부에서도 솜씨 좋기로 유명한 대장장이들이었다.
북부는 마법 루비 이전에 철광석으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그 철광석을 제련하는 기술자들이 많이 모여 살았고.
‘덕분에 증기 기관차의 외장 제작과 철도 공사를 진행할 고급 인력들은 충분히 모집할 수 있었어.’
애초에 대장장이들은 철광석을 싼 가격에 제공하는 우리 가문에게 큰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 마법 루비로 어마어마한 투자금이 북부에 몰리자, 낙수 효과로 큰 이익까지 얻었다.
난 그런 대장장이들 중에서 입이 무겁고, 모험심이 강한 일부를 선발해 스카우트 제안을 내밀었다.
-자네들이 이 계획에 참여한다면, 마법 루비 이상의 직업적 만족감을 얻게 될 거야. 장담하지.
그들이 내 손을 잡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난 바바가 지낼 연구소 옆에 대장장이들이 지낼 수 있는 숙소와 임시 작업장까지 함께 올렸다.
‘이렇게 저들이 바바와 함께 증기 기관차를 연구한 거지.’
그 과정에서 기존 철보다 더 단단한 철을 개발한 건, 나도 예상치 못한 소득이었다. 그 기술을 도입하면 철도 건설은 더 빠른 시일 내에 완공될 터.
난 들떠 있는 대장장이들에게 자신만만하게 웃어 주었다.
“바바는 여기서 증기 기관차 연구를 마무리하고, 너희는 더미 영지로 갈 거다. 거기서 리켄 영지와 이어진 마차 도로를 따라 철도 공사를 진행할 거고.”
“오오, 그럼 그 구간이 역사적인 첫 철도가 되겠군요!”
“그래. 그 후 철도를 쭉 서쪽으로 이을 거다. 서부의 카라노 탄광까지 선로를 잇는 것이 올해의 목표라고 생각해.”
지금은 북부의 석탄으로 증기 기관차를 움직이고 있지만, 가장 질이 좋은 석탄은 카라노 탄광에 있었다. 마침 카라노 탄광은 북서부에 있어 북부와 가까우니, 서부의 첫 철도로 삼기에도 괜찮은 위치였다.
이런 내 계획에 대장장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부터 두근거리는군요!”
“얼른 세상 사람들에게 저희의 업적을 보여 주고 싶습니다!”
그러자 저기서 놀고 있던 바바와 그 조수들도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래! 그 남부와 동부 놈들 콧대를 아주 납작히 눌러 주겠어! 두고 봐!”
“저희도 이제 가난뱅이 편법 발명가가 아니라, 제국에서 손꼽히는 최고의 발명가가 되는 건가요?”
“꺄아! 귀족 나리들의 돈을 싹 쓸어서 제 주머니에 넣을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짜릿해요!”
어느새 대장장이들과 바바 무리는 자기들끼리 칭찬과 자랑을 하며 시끌벅적하게 떠들기 시작했다.
난 그 자리에서 한 걸음 물러나며, 더너스에게 속삭였다.
“결계는 잘 설치했지?”
“예. 오늘 최종 점검을 끝냈습니다. 모두 이 숲에 설치한 것과 같은 강도입니다.”
“좋아.”
내가 더너스에게 명령했던 일은 바바의 호위 외에도 하나가 더 있었다. 바로, 더미 영지와 리켄 영지를 이을 땅에 미리미리 결계를 설치하는 것이었다.
그걸 위해 더너스에게는 미리 앨턴령에서 일하는 마법사 몇을 붙여 둔 상태였다.
‘오늘도 그들과 함께 그걸 살핀 후, 내게 온 것이었고.’
이 숲보다도 훨씬 큰 면적에 결계를 설치하느라, 사용된 루비만 몇 개인지 모른다. 그러나 마법 루비의 생산자인 내게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는 투자였다.
‘지금은 무엇보다 안전과 보안에 주의해야 할 때야.’
증기 기관차의 최종 실험을 성공한 지금, 이제 철도 공사는 속도전에 돌입했다.
원래는 북부 성에 대략 보름 정도 머물며 바바의 실험을 지켜보려 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어졌어.’
그렇기에 난 전략을 전면 수정하기로 결정했다.
“더너스, 난 내일 더미 영지로 향한다.”
“내일 말씀입니까.”
“그래, 넌 여기서 대기하고 있다가 내가 연락하면 대장장이들과 함께 오도록 해.”
“알겠습니다. 완성된 증기 기관차는 철도가 완성될 때까지 계속 여기 둘 생각이십니까?”
“일단 그래야지. 철도가 완성되면 마법으로 옮기면 되니까. 마법사들에게도 미리 말해 놓고.”
“예.”
결계를 설치한 마법사들도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업무를 전달받으면 그때가 돼서야 시행할 뿐이며, 그조차도 이 사업의 목표를 파악하기 어렵도록 여러 조치를 해 놓았다.
그만큼 이 일은 아주 은밀하게 진행되는 중이었다.
‘무조건 이번 여름 안에 증기 기관차의 첫 개통식을 치러 주겠어.’
마침 북부의 여름은 날씨도 선선하니, 사람을 초대하기 좋은 때였다.
난 들고 있던 맥주를 마시며, 저절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가렸다.
‘다들 놀라서 아주 자빠지겠지?’
저 앞에서 빨리 증기 기관차를 자랑하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는 대장장이들과 바바에게 외치고 싶었다.
여기서 그 누구보다 그걸 공개하고 싶은 사람은, 바로 나라는 사실을.
***
난 날이 완전히 저물었을 때가 되어서야 앨턴 성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내가 늦게 돌아오니, 하녀장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아무런 호위도 없이 나가셔서 이 시간까지 들어오지 않으시다니요. 제가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데요.”
“걱정하지 마, 이 제국에서 무력으로 날 상대할 수 있는 이는 몇 없으니까.”
“그래도 벨라디 님은 젊은 아가씨인데…….”
그 말에 난 한쪽 눈썹을 까딱이며 하녀장을 내려다봤다.
급격히 냉랭해진 내 기분을 읽었는지, 하녀장이 다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결코 벨라디 님을 무시하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다만 제가 마지막으로 모셨던 아가씨는 아직 어리셨어서…….”
“맞아, 확실히 그랬지.”
난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그걸 감안해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만……. 다음은 없어.”
“감사합니다.”
하녀장은 공손히 대답한 후, 서둘러 화두를 바꾸었다.
“북부로 오며 따로 하녀를 데려오지 않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곳 아이들 중 몇을 골랐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하녀장이 박수를 치자, 방문이 열리며 하녀 셋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중 마지막으로 들어온 단발머리 하녀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그녀가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그렇다, 내게 윙크를 날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