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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장녀가 육아물에 빙의하면-105화 (106/197)

105.

난 곧장 방이 아닌 아버지의 집무실로 향했다.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 북부에 있는 동안은 이곳을 쓰기로 했기 때문이다.

집무실에 들어온 내가 곧장 자리에 앉자, 뒤따라온 집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독도 풀지 않으시고 바로 업무를 보시려구요?”

“텔레포트 진으로 하루 만에 왔는데, 여독은 무슨. 자네는 하녀장을 도와서 내 짐 푸는 걸 도와줘.”

“알겠습니다, 벨라디 님.”

집사는 공손히 고개를 숙인 후, 조용히 집무실을 나갔다.

그가 나가자마자 난 내 보좌관, 로미에게 말했다.

“난 여기서 잠시 기다리다 바로 바바의 연구실로 갈 거야.”

“알렉산더가 현관에서 대기 중입니다. 안장도 아직 풀지 않은 상태고요.”

“잘했어.”

바바는 증기 기관차와 철도의 핵심 인력이다. 그렇기에 그녀의 연구실은 넓은 앨턴 공작령 중에서도 내가 개인으로 소유 중인 땅에 마련되었다.

그곳으로 가는 길은 꽤나 험준했고, 여러 마법 보석으로 보호 중이기에 마차로 빠르게 이동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알렉산더를 타고 왔지.’

원래 알렉산더는 어머니가 멜도르의 생일날 그에게 선물한 말이다. 그러나 멜도르는 마법을 배우는 데 몰두하면서 알렉산더의 존재를 거의 잊었고, 알렉산더 역시 나를 자신의 주인으로 인지한 지 오래였다.

심지어 수도로 돌아온 아버지조차 알렉산더와 내 조합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셨다.

이렇게 되면, 이제 알렉산더는 온전히 내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어머니께 보여 드리고 싶네.

당신이 내게서 빼앗아 간 걸 하나하나씩 되찾는 내 모습을.

‘……이미 죽은 사람을 생각해서 뭐 하겠냐만.’

난 고개를 저으며 상념을 애써 접었다. 그리고 승마를 어려워하는 로미에게 일찍 퇴근하라 말한 후, 간단한 서류 몇 개를 체크했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니, 곧 누군가 문을 노크했다.

“벨라디 님, 더너스 로건입니다.”

“들어와.”

내 허락에 문이 열리며 더너스가 안으로 들어왔다.

더너스는 그동안 내 명령으로 북부에 머물며, 계속 바바를 호위하고 있었다. 덕분에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는 건 오랜만이었다.

말을 타고 빠르게 달려왔는지,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도 하지 못한 채 더너스는 묵묵히 기사의 예를 올렸다.

그런 그에게 난 상냥히 웃어 주었다.

“그곳에서 바로 온 거니?”

“예, 하명하신 일들은 모두 완료했습니다.”

“수고했다.”

난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나저나 북부에서 고생 좀 했나 보네. 그사이 얼굴이 반쪽이 됐어.”

약간의 과장이 들어가긴 했지만,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더너스의 얼굴은 예전보다 핼쑥한 상태였으니까.

내 말에 더너스는 잠시 멈칫하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염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전 괜찮습니다.”

“흠…….”

혹시 바바와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 아니겠지?

바바가 워낙 성격이 자유분방한 편이라, 유연성 없는 더너스와 상극이기는 했다.

‘바바의 곁에 더너스가 아닌 제플린을 붙일 걸 그랬나?’

하지만 아버지의 눈을 피해 자유로이 움직이기는 더너스가 더 유리했다. 제플린은 감시자들의 수장으로 아버지와 접촉이 많은 탓이었다.

더너스도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고.

‘그러니까 더더욱 힘든 점이 있어도 혼자서 참을 확률이 높긴 해.“

“더너스, 연구 진행 과정에서 불편한 일이 있었다면 편하게 말해 봐.”

내 말에 더너스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그런 건 절대 없습니다. 증기 기관차 발명에 참가한 모두, 본인의 임무에 최대한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더너스 같은 기사들은 자기 관리의 프로다. 그런 자가 눈에 띄게 컨디션 조절을 실패했다는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건데…….

하지만 더너스는 본인이 먼저 입을 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뭐, 아무리 충성스러운 자라고 해도 개인적인 사정이 있을 수 있는 거니까.’

날 배신하지 않고, 임무에 큰 지장만 주지 않는다면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가는 게 도리였다.

난 더너스를 주시하던 시선을 거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예, 벨라디 님.”

집무실을 나서 곧장 현관으로 향하니, 기다리고 있던 하인이 알렉산더의 고삐를 내게 쥐여 줬다. 더너스도 곧바로 자신이 타고 온 말 위에 올라탔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더너스가 앞장서자 알렉산더가 거칠게 울었다.

히이이이잉-!

자기 앞에 다른 말이 달리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알렉산더도 속도를 올려 달리기 시작했다.

난 흥분한 말을 적당히 달래며 순식간에 성을 빠져나갔다. 그 후, 성벽을 나서 도개교를 지난 우리는 우거진 소나무 숲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직 덜 녹은 눈을 가르고 얼마나 달렸을까, 몸이 무언가를 통과하는 기분이 들었다.

‘결계를 통과했군.’

이 숲과 그 안쪽에 위치한 그리 넓지 않은 평야는 전부 내가 가지고 있는 땅이었다.

뭐 그래 봤자 다른 지역에 봄이 완연해질 때에도 눈이 녹지 않는 얼어붙은 땅이지만.

‘그래도 증기 기관차를 실험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잖아?’

폭발 사고로 피해를 볼 가구도 없고 말이야.

그래도 혹시 몰라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했다. 거기에 평야 근처에는 광범위로 마법 결계까지 설치했다. 아무리 출입을 금해도 종종 근방 마을 주민이나 사냥꾼들이 땔감을 얻고 사냥을 하기 위해 이 숲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 결계를 위해 마법 루비를 몇십 개나 사용해야 했지.’

그래도 효과는 좋았다. 미리 설정한 인물이 아니면 결계를 인지하지도 못한 채 숲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으니까.

덕분에 바바와 그 조수들은 안심하고 발명에 집중할 수 있었다지.

‘그리고 난 당연히, 결계를 통과할 수 있게 설정된 인물이고.’

결계를 통과했으니, 연구실이 코앞이었다.

알렉산더를 몰아 속도를 높이자, 어느새 더너스의 말을 추월하게 됐다. 알렉산더는 추운 숲을 달리는 게 그리 즐거운지 우렁차게 울음을 토했다.

그와 동시에 내 귀에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카광카광카광카광.

빠르고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소리에는 거대한 진동까지 느껴졌다.

난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이건 설마…….’

“달려, 알렉!”

알렉산더를 거칠게 모니, 말은 신이 나서 자신이 달릴 수 있는 최대의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거센 바람이 얼굴을 마구 할퀴고 지나갔다.

뒤에서 더너스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순식간에 달린 알렉산더 덕분에 난 나무들을 지나쳐 뻥 뚫린 평야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와 함께 커다란 굉음이 내 감각을 덮쳤다.

뿌우우우우우우우-!

동시에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곧이어 희열에 가득 찬 외침들이 들려왔다.

“됐다!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린다!”

“성공이에요, 스승님! 저희가 성공했어요!”

“음하하하하하! 이 바바 와트는 아직 죽지 않았다, 이 말씀이야!”

“세상에……. 저 괴팍한 노인네 말이 사실이었잖아?”

“그 무거운 게 정말로 달리다니…….”

“이, 이건 기적이야!”

그래, 사정을 전부 아는 내 눈에도 이건 실로 기적처럼 보였다.

카광카광카광.

짙은 연기를 내뿜으며, 평야 가운데에 있는 호수를 감싼 채 달리고 있는…….

저 거대한 철 덩어리를 기적이 아니면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바바 와트와 대장장이들이 그새를 못 참고 벌써 움직였군요.”

어느새 내 뒤를 따라온 더너스가 숨을 돌리며 말했다.

그 말에 동의하듯, 다시금 거친 기적소리가 사방에 울렸다.

뿌우우우우우우-!

저 멀리서 그걸 바라보던 바바와 조수들, 그리고 북부의 대장장이들이 서로를 얼싸안으며 좋아했다.

“벨라디 님은 언제 오시는 걸까요!”

“이 광경을 같이 봐야 하는데!”

“오늘은 축제요! 노인장, 내가 거하게 쏘겠소!”

“당연한 소리를! 오늘 먹고 죽을 테니 각오하라고!”

난 그 소리를 들으며 아직도 움직이고 있는 저것을……. 저 ‘증기 기관차’를 보며 물었다.

“거의 완성을 했었군.”

“예, 사실 최종 실험만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다만, 바바 와트가 실패하면 매우 창피하니 일단 비밀로 부치라고 하도 화를 내는 바람에…….”

내가 말이 없자, 더너스가 묵직한 목소리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벨라디 님.”

“……아니, 됐어.”

난 그렇게 중얼거리며 증기 기관차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전생을 자각한 그 순간부터 계획해 왔던 것을 이렇게 실제로 보게 되니, 꼭 꿈속에 있는 것 같았다.

“하하.”

덕분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하하하하하하!”

호통한 내 웃음 소리가 거칠게 달리는 증기 기관차의 소음을 뚫고 평야에 널리 울렸다.

제 주인의 기분을 읽어서인지, 알렉산더도 힘차게 울었다.

히이이잉!

그러자 저편에 있던 이들이 내 쪽을 바라봤다. 잠시 당황하여 굳어 있던 그들은 이내 왁자하게 웃으며 호들갑을 떨어 댔다.

“벨라디 님!”

“오셨군요, 벨라디 님!”

“성공했습니다! 스승님께서 증기 기관차를 완성했어요!”

“음하하하! 성공 보수는 철저하게 받을 거요!”

그 소란을 보며 난 찬찬히 웃음을 멈추었다.

증기 기관차는 어느새 연료가 다 떨어졌는지, 호수를 돌다 말고 중간에서 멈춘 상태였다.

자세히 보니, 호수에는 튼튼해 보이는 선로가 둥글게 연결되어 있었다. 대장장이들에게 임시 철도를 만들라고 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임시로 쓰는 것이니 편하게 만들어도 된다고 했었는데. 멀리서 봐도 감탄이 나올 만큼 저리 정교하게 만들 줄은 몰랐다.

“역시 저들도 장인이라 이건가.”

난 이렇게 중얼거리며, 더너스를 흘깃 바라봤다.

“어때, 내가 꿈꾸던 보물. 아름답지 않니?”

내 말에 더너스가 잠시 눈을 깜박이다,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무런 설명 없이 봤다면, 새로운 마물이라고 착각했을 것 같습니다.”

그 솔직한 반응에 난 다시금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그럴 만도 했다. 들어 본 적 없는 굉음을 내며 연기를 뿜는 저 긴 철 덩어리는 누구에게나 미지의 공포를 선사하겠지.

“내게는 너무나 황홀하게 보이는데.”

저걸 이용하는 즉시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져 갈 내 권력과 영향력이 선명하게 보여서 말이야.

사실 오늘 연구실에 들러 봤자 중간 보고나 들을 수 있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바바와 대장장이들이 내게 이렇게 깜찍한 서프라이즈를 준비해 줬으니, 그들의 주인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난 알렉산더를 몰아 그들에게 달려가며 외쳤다.

“여기에 있는 모두에게 특급 보너스다! 날 놀라게 한 벌로 약속한 보수의 열 배를 추가 지불하지!”

“열 배!”

“여, 열 배면 뒤에 공이 하나 더 붙는 건가?”

“꺄아아아! 벨라디 님!”

“너무 화끈하세요!”

“멋있어! 짜릿해! 최고야!”

그 어느 때보다도 즉각적으로 열광적인 반응이 터져 나왔다.

역시 당근에는 보너스만 한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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