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내 말에 아버지가 집중했다.
“사실 제가 오래전부터 준비했던 사업이 하나 있어요. 그동안은 임시로 수정된 아동법 때문에 가만히 있었지만, 제가 성인이 되면 본격적으로 움직일 생각이고요.”
내 말에 아버지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업의 구체적인 방향은 정했나?”
그 말에 난 증기 기관차와 철도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했다. 그리고 현재 어디까지 진도가 나갔는지도.
아버지는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들은 후,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훨씬 더 판이 크구나.”
“제 개인의 성공이 아닌, 북부 전체를 생각하며 구상했던 일이니까요.”
“확실히 성공한다면 마법 루비보다 더한 반향을 일으키겠다만……. 반발이 상당할 거다. 이미 사례도 있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버지의 얼굴에는 딱히 반대의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게 어릴 적 날 방치했다는 죄책감 때문인지, 마법 루비로 생긴 신뢰감 때문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제 내게 완벽히 호의적이야.’
이 사실만이 중요한 거지.
난 차분한 목소리로 긍정했다.
“그렇겠죠. 그러니 아버지의 도움이 약간 필요해요.”
“내 비호 아래에서 그 철도 사업을 펼치겠다는 건가?”
“비호까지는 아니고……. 말 몇 마디만 거들어 주시는 정도?”
난 천천히 눈을 깜박이다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다가오는 봄에 대 가주 회의가 열리죠. 그때 공개할까 해요. 제가 증기 기관을 이용한 새로운 운송 수단을 계획 중이라고.”
공사 준비는 거의 완료된 단계다. 그리고 서서히, 다른 연합에서 북부를 주시하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었다.
‘앨턴 공작가가 마법 루비로 벌어들인 억대의 돈을 어떻게 사용할지, 전 제국에서 궁금해하고 있거든.’
특히, 루비 사업을 최고의 성공으로 이끈 내가 성인이 되는 지금은 더더욱.
그러니 비밀리에 계속 일을 진행하기에는 힘들었다.
‘그렇다면 이쪽이 먼저 카드를 보여 주는 게 훨씬 나아.’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시간 차였다. 내게는 반대 세력이 카드를 봤으면서도 방심하고 나를 내버려 두는 시간이 필요했다.
적어도 증기 기관차의 첫 개통식까지는.
‘놈들은 분명, 안전을 명분으로 날 방해하려 들 테니까.’
그리고 그 안전은 개통식이 끝남과 동시에 증명되겠지. 이렇게 되면, 반대 세력이 공식적으로 날 막을 구실도 사라진다.
따라서 그때까지는 큰 방해 없이 일을 진행해야 했다. 난 그 귀중한 황금 시간을 아버지를 통해 확보할 예정이었다.
“전 이번 대 가주 회의에 일부러 참석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난 아버지의 눈을 자연스럽게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 아버지께서 저 대신 철도에 대한 걸 공개해 주세요. 아마 작은 미끼를 하나 던지면, 상대측이 알아서 캐물을 거예요.”
“……네가 직접 말하는 게 아니라, 내 입을 통해서 발표하겠다고?”
아버지의 물음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사업은 이제 막 성인이 된 앨턴가의 임시 가주가 호기롭게 도전하는 사업인 거예요.”
황태자와 케스퍼 측은 아직 어린 내 나이를 이용해 날 가로막았다. 그러니 이번에는 나 스스로 그 부분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아버지는 그동안의 제 공로를 무시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는 뉘앙스를 풍겨 주세요.”
“흠…….”
“여기서 핵심은 ‘도전’이에요. 철도 공사를 허락했지만,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고 꼭 말씀하셔야 해요.”
제국에는 그리리카 선황을 동경해 마법 공학 같은 혁신적인 도전에 취해 있는 젊은 귀족들이 많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사업은 백이면 백 전부 실패했다.
‘제아무리 다른 사업을 성공시킨 인재였어도 성공한 케이스가 없었어.’
그만큼 ‘혁신’이라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반대 세력도 이 결과를 잘 알고 있을 터. 그러니 난 이번 대 가주 회의를 통해, 그들에게 인식시켜야 했다.
증기 기관차와 철도는 본인들 밥그릇을 뺏는 위협적인 사업이 아닌, 단지 젊은 귀족의 객기 어린 도전일 뿐이라고 말이다.
‘그래야 자연스럽게 방심할 테니까.’
그리고 그런 목적의 말은 스스로 말하기보다 그 부모가 한숨을 쉬며 말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지.
아버지 역시 이런 내 의도를 파악한 듯, 염려의 말을 꺼냈다.
“단지 그때의 말속임만으로는 반대 세력을 방심시킬 수 없다.”
물론 그 정도는 내 예상 범위의 내였기 때문에,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말속임으로 끝낼 생각 없어요.”
“그럼?”
난 조금 짓궂게 웃었다.
“그들이 혹할 정도로 유리한 조건들을 내밀어야죠. 이에 대한 방안은 이미 마련된 상태랍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대답 없이 묘한 시선으로 날 바라봤다. 그 눈에는 여러 감정들이 고요히 담겨 있었다.
가만히 살펴보면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있겠으나, 난 그러지 않았다.
‘아버지의 심정까지 깊숙이 파악할 필요는 없지.’
딱히 부정적인 기색은 없으니, 그저 담담하게 기다릴 뿐.
곧 아버지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벨라디 앨턴. 넌 이 사업을 성공시킬 자신이 있나?”
그 물음에 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철도로 인해 북부는 대륙을 아우르는 교통의 요충지가 될 거예요, 아버지.”
난 이미 각오를 마쳤다. 단기간의 성공이 아닌,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내 손으로 세울 각오를.
“제가 평생에 걸쳐 그렇게 만들 테니까.”
이런 내 말에 아버지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네 말대로 해 보지.”
그 승낙에 난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다.
슬슬, 내가 직접 북부로 떠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
테오도르는 실로 오랜만에 대 가주 회의에 참석했다. 북부에 있을 때는 황제의 허락을 받고 대리로 벨라디를 보냈으나, 이제 수도로 복귀했으니 그가 참석하는 게 맞는 일이기도 했다.
테오도르가 북부의 가신들을 이끌고 회의장 안으로 들어서자, 각 연합의 귀족들이 술렁였다. 그 기류를 느끼며 테오도르는 한쪽 눈썹을 까딱였다.
“소란스럽군.”
그 말에 뒤에 있던 리켄 남작이 허허 웃었다.
“여러모로 저희가 시선을 끌기는 하는 모양입니다.”
“벨라디가 들어왔을 때도 이런 분위기였나?”
“이보다 심했지요.”
그나마 벨라디가 처음으로 참석한 소 가주 회의에서 마법 루비를 선보인 덕에 대놓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이는 없었다.
그러나 아직도 상당수의 가주들은 회의장에 젊은 여자가 들어오는 것 자체를 낯설어했다. 일부는 거부감까지 보였다.
그 말을 들은 테오도르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시대의 흐름을 무시한 채 안주하는 자들은 도태되기 마련이지.”
테오도르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벨라디가 한 말을 떠올렸다.
-철도로 인해 북부는 대륙을 아우르는 교통의 요충지가 될 거예요, 아버지. 제가 평생에 걸쳐 그렇게 만들 테니까.
벨라디는 너무나 쉽게 ‘평생’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그건 자신의 모든 걸 북부의 발전에 바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마치, 북부의 주인이나 할 법한 생각 아닌가.
‘벨라디는 신중하니, 아마 어지간한 각오로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거야.’
테오도르는 거기서 벨라디가 내포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역시 그 아이가 최종적으로 바라는 것은…….’
한편, 그에게 집중하고 있던 북부의 가신들은 빠르게 눈빛을 주고받았다.
테오도르가 아무 생각 없이 저 발언을 꺼냈을 리 없었다.
덕분에 가신들도 생각이 많아졌다.
‘리켄 남작의 추측이 맞나 보군.’
‘허어, 그래도 그동안 긴가민가했는데 말이야.’
‘정말로 벨라디 님도 후계자로 염두에 두고 계신 건가…….’
‘그럼 멜도르 님은 어떻게 되는 거지?’
‘애초에 제국법에 의하면, 여자는 가주가 될 수 없는데?’
처음 벨라디가 임시 가주로 임명됐을 때만 해도, 상당수의 가신들은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일이냐며 한탄했다.
그러나 사람은 적응의 생물이라고.
지난 3년 동안 가신들은 자연스럽게 벨라디의 지휘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전부, 그녀가 날카로운 안목과 추진력으로 북부 전체를 빠르게 부상시켰기 때문이다.
벨라디의 업적이 확실했기에, 본래 반대파였던 자들 중 일부는 이미 리켄 남작을 따라 그녀를 차기 공작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은 측은 테오도르가 벨라디를 임시 가주에서 내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가, 방금 그의 발언에 큰 충격을 받았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애써 외면했던 후계 문제가 성큼 다가왔다.
가신들의 고민이 깊어졌다.
덕분에 고요해진 북부 측을 보며, 옆에 앉은 프레도 공작이 능청스럽게 웃었다.
“이것 참 섭섭하군, 테오도르.”
그 말에 테오도르가 힐끔 프레도 공작을 바라봤다. 프레도 공작의 갈색 눈에는 흥미로움이 곁들여진 상태였다.
“수도로 돌아왔으면 한 번쯤 이 친우를 만나 줘야지. 이제야 모습을 드러내다니, 아주 섭섭해.”
“자네가 언제 내 친우였다고 그러는 거지?”
테오도르가 기가 막힌다는 듯이 물었다. 두 사람은 언제나 각 지역을 대표하는 대귀족으로서 필요한 만남만을 가져 왔을 뿐, 그 이상의 우정을 쌓은 적은 없었다.
“하하하! 모스틴과 벨라디가 절친한 사이인데, 부모인 우리가 서먹해야 쓰겠나.”
“그래서 내 딸에게 그렇게 많은 루비를 받아먹은 건가.”
테오도르의 말에 프레도 공작은 당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때의 벨라디는 아들의 친구가 아닌 북부 연합의 임시 대표였으니까. 당연한 일이지.”
“…….”
“각 연합의 대표로서 서로 타협한 거래 조건이네.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게.”
테오도르는 프레도 공작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프레도 공작의 말이 맞긴 했다. 만약 그가 벨라디를 봐주었다면, 그건 그것대로 제 딸을 무시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거다.
그렇기에 딱히 반박할 말은 없다만…….
‘그래도 얄미운 건 어쩔 수 없군.’
이래서 테오도르는 프레도 공작이 불편했다. 애초에 그는 능구렁이 같은 자들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벨라디는 이런 프레도 공작의 아들과 어떻게 그리 죽이 잘 맞는지…….
외양적으로는 저를 쏙 빼닮았지만, 이럴 때에는 서로가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게 실감 났다.
이런 테오도르를 즐거운 눈으로 바라보던 프레도 공작이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자네가 그렇게 벨라디를 생각하는 줄 몰랐는데……. 벨라디는 오늘 참석하지 않은 건가?”
테오도르는 그 말을 가볍게 무시하며 지난 일을 회상했다.
벨라디가 보고한 이번 마법 루비의 투자자 목록을 보면 과반수가 서부 연합 측이었다.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무슨 생각이 있겠거니 하고 넘어갔는데…….
‘설마 증기 기관 건으로 프레도 가문과 오간 조건이었을 줄이야.’
아이는 어느새 다 커서 혼자 힘으로 프레도 공작이라는 거물과 거래를 체결했다.
그게 대견하면서도,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