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뭐? 오빠?”
멜도르가 인상을 쓰며 아이를 노려봤다.
“언제 봤다고 내가 네 오빠야?”
“그렇지만 공작님이 그렇게 부르라고 하셨는걸요?”
네시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대답했다. 멜도르가 이에 뭐라고 대꾸하려고 하는데,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맞다.”
“예?”
멜도르가 고개를 돌려 아버지를 바라봤다.
아버지 역시 멜도르를 주시하며 말을 이었다.
“네시아는 내가 인정한 앨턴이야. 그러니 괜히 심술부리지 마라.”
그 말에 멜도르는 불퉁하게 있다가,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아버지.”
“그리고 벨라디, 너도 언니로서 새로 온 동생을 잘 챙겨 주길 바란다.”
아버지의 말에 난 네시아를 바라봤다. 멜도르에게는 평온하던 네시아가 정면으로 나와 눈이 마주치니 휙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아버지가 피식 웃으셨다.
“네시아가 벨라디 널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지 알면 아마 깜짝 놀랄 거다.”
“……저를요?”
“그래, 전에 네 얼굴을 본 적이 있다. 그때부터 네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야.”
“공작니임…….”
네시아가 얼굴을 확 붉히며 아버지를 올려다봤다. 그 모습에 아버지가 다시 한번 크게 웃으셨다.
“널 만나면 무슨 말을 할지 매일 고민했으면서, 정작 지금은 부끄러운 모양이군.”
아버지가 저렇게 편안하게 웃는 건 무척 낯선 모습이었다.
멜도르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조금은 티가 날 정도로 아버지를 바라봤다. 물론 나는 멜도르처럼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실수 따위는 하지 않았다.
난 아버지에게서 시선을 떼며 가지런히 입꼬리를 올렸다.
“그렇군요……. 잘 지내 보자, 네시아.”
부디 서로 부딪치는 일 없게끔 말이야.
내 말에 네시아가 한순간 내게 집중하는 듯하더니,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네…….”
그날 만찬은 나름 평화롭게 마무리되었다.
***
만찬 이후, 아버지는 바로 네시아를 우리 가문에 입적했다.
보통 양자를 들이면 공식적으로 연회를 열어 귀족 사회에 소개하는 것이 정석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연회를 뒤로 미뤄 두었다.
이유는 지극히 단순했다.
“네시아를 답답한 귀족 사회에 물들게 하고 싶지 않다.”
“어머니처럼요?”
“그래, 넌 어떻게 생각하지?”
그 물음에 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찻잔을 입가에 가져갔다. 그리고 차를 한 입 마신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글쎄요. 제 의견이 중요할까요?”
어쩐 일로 나와 티타임을 가지는지 의아했는데, 네시아에 대한 상담이었네.
난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아버지와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 방긋 입꼬리를 올렸다.
“네시아는 아버지의 자식이니, 아버지의 교육관을 따를 뿐이에요.”
“교육…….”
그는 생소한 단어를 들은 듯, 내 말을 읊조렸다. 그러고는 잠시 고민하다 날 바라봤다.
“앞으로 아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
“자유롭게 키우고 싶지만, 내 욕심으로 후에 네시아가 후회할까 걱정돼.”
그 말에 난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에도 저런 고민을 하셨을까?’
이런 생각을 하자, 문득 실소가 나왔다.
‘그럴 리 없지.’
나나 멜도르는 누구나 밟는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걸어온 고위 귀족이다. 이 코스는 양육자의 고민이 전혀 필요 없는 아주 편리한 길이기도 했다.
‘그러니 네시아도 그렇게 키우면 그만일 텐데.’
그 아이는 특별하니까, 더 신경이 쓰인다는 건가?
난 저절로 입가에 지어지는 비웃음을 감추기 위해 다시 차를 한 입 마셨다. 그 후, 평이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유롭게 키운다고 해도, 네시아는 이제 앨턴이 됐죠. 공작가의 자제로서 남들에게 흉보이지 않을 예법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법이라.”
“최소한 연회에서 파트너와 춤은 출 수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또래와 교우 관계를 넓혀야 할 때도 예법은 필요하고요.”
“그것도 그렇지.”
어머니는 그러질 못했다.
앨턴 공작 부인으로서 지켜야 할 까다로운 예법을 버티지 못했고, 자유로운 마법사의 길을 택했다.
사실 이 데커딜 제국에서 어머니의 위치는 특별했다. 강한 마법사인 것과는 별개로, 정령을 소환하는 데 성공했던 건 제국 내에서 그녀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마갈라 제국은 종종 정령석을 이용해 정령을 소환했지만, 여기는 아니었거든.’
물론, 어머니는 계약의 수식을 완성시키지 못해 정령사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소환에 성공했다는 것만으로도 어머니는 많은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여기서 문제는, 벗어나기만 했다는 것이다.
‘귀족들은 어머니를 인정했지만, 자신들과 다르다며 단호히 선을 그었으니까.’
그 때문에 어머니는 귀족 사회 내에서 다양한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다.
앨턴가의 충성스러운 북부 가문들 역시 어머니에게 호감은 보였으나,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 그렇다고 다른 마법사들과 친해지기에는 급격히 상승한 신분에 발이 묶였다.
그래서 어머니는 더욱 마법 연구와 가족에게 집중했던 걸지도 모른다.
‘더불어 내 교육까지도.’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자유로운 마법사의 삶이 좋다고 흥얼거렸다.
그러나 이제 난 안다. 그 마음 한편으로, 그녀는 완벽한 태생의 귀족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어머니 본인은 절대 그들과 같이 될 수 없다고 여겼을 테니까.’
어머니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나를 통해 이루려는 듯, 내 예법 교육에 아주 엄격한 자세를 취했다. 내가 검을 배우지 못한 것도 이런 자세의 연장선인 셈이다.
‘어머니가 살아 계셨을 때에는 그걸 몰랐어.’
그러나 전생을 자각한 후,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돌이켜 보니 어머니의 콤플렉스가 보였다.
더불어 내가 그 감정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것도 깨달았고 말이다.
‘아버지도 이런 어머니의 속내를 잘 알고 있겠지.’
그러니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고.
난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제 가정 교사였던 그레이스 백작 부인을 네시아에게 붙이는 건 어떠세요?”
“그레이스 백작 부인? 이제는 가정 교사 일에서 은퇴한 걸로 아는데.”
“제가 부탁하면 들어줄 거예요. 최근 마법 루비 투자자를 추가적으로 모집했거든요.”
당연히 그 추가 모집 대상에는 그레이스 가문이 들어가 있었다. 그러니 그곳은 한창 우리 가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할 때지.
이런 내 말에 아버지가 가만히 날 주시했다.
잠시 후, 그의 입꼬리가 피식 올라갔다.
“그래, 그런 속셈이었구나.”
아버지의 목소리에 난 그와 눈을 마주했다. 서로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찰했다.
“그레이스 백작 부인은 수도에서 유명한 귀부인이지만, 그 가문 자체는 우리 북부와 연관이 없지. 그래서 네가 과거의 인연으로 그 가문을 목록에 넣은 줄 알았는데…….”
그 말에 나 역시 옅게 웃었다.
“설마, 제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일까 봐요.”
난 나와 똑같은 붉은 눈동자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한쪽 눈썹을 까딱였다.
“그 정도 인연으로 움직이기엔, 전 꽤 이해타산적인 사람이랍니다.”
“임시 가주로서 훌륭한 자세다.”
“전부 아버지께 배웠죠.”
약간의 아부가 곁들여진 내 말에 아버지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여유로운 동작으로 의자에 등을 기댔다.
“언제부터 네시아의 교육을 염두에 뒀던 거지?”
“당연히 처음 봤던 그날부터지요.”
“내가 아이에게 가정 교사를 붙이지 않겠다고 결정하면 어떻게 하려고?”
“확신이 있었어요.”
아버지가 나와 멜도르처럼 네시아를 키울 거라면 당연히 가정 교사가 필요했다.
또한 그러지 않는다고 해도 어머니가 귀족들에게 품었던 열등감을 알고 있으니 아이를 마냥 자유롭게 키울 리 없었다. 특히나 그 아이가 어머니를 똑 닮은 존재라면 더더욱.
‘아버지가 뭘 선택하든, 결국 네시아에게 본격적인 교육을 시키게 되어 있어.’
원작에서도 네시아는 그레이스 백작 부인을 가정 교사로 뒀으니까.
물론 거기서는 지금보다 조금 더 복잡한 에피소드를 거쳐야 했다.
처음 아버지는 북부의 한 귀부인을 네시아의 가정 교사로 선택하셨다. 그가 가정 교사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요소는 네시아의 존재를 밖으로 발설하지 않을 충성심이었기 때문이다.
그 귀부인은 아버지가 원했던 대로 비밀을 엄수했고, 네시아를 가르치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네시아도 성실하게 학습에 임해서 수업은 무난하게 끝났지.’
문제는 그 이후였다. 앨턴가의 영애로서 사교계에 진출한 네시아 앞에는 큰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북부에서 쓰이지 않는 수도 사교계만의 규칙이었다.
‘수도는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지역과 차별점을 두는 것을 아주 좋아하거든.’
사교계와 친하지 않은 아버지는 당연히 그걸 모르고 있었고.
이후에 일어난 일은 뻔했다. 네시아는 본인이 주도한 첫 티타임에서 또래 영애들에게 큰 망신을 당하고 만다. 그리고 그걸 목격한 멜도르가 영애들에게서 네시아를 감싸 주며, 둘 사이가 한층 더 돈독해지는 에피소드로 이어졌다.
이후, 네시아는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아버지께 요청해 본격적인 예법과 교양 수업을 받게 된다.
이때 네시아의 새로운 가정 교사로 선택된 이가 모든 귀족 여성들의 귀감인 그레이스 백작 부인이었다.
‘그때에도 그레이스 백작 부인은 이미 은퇴를 한 시점이어서, 그녀를 부르기 위해 꽤 많은 루비를 선물했다지.’
하지만 이제는 내가 있는데, 돌아서 갈 필요 뭐 있겠는가?
‘어차피 네시아는 배움에 욕심이 있는 아이야.’
그러니 굳이 그런 창피를 당하지 않아도 더 배우고 싶어 할 거다. 멜도르와 가까워질 사건도 앞으로 수두룩하게 많았고.
그래서 난 아예 처음부터 그레이스 백작 부인을 네시아에게 붙여 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사실 네시아 일에는 어지간하면 발 빼려고 했지만…….’
네시아의 교육 문제는 앨턴 공작가를 몇 번이나 들썩이게 만드는 사건이었다. 그대로 놔뒀다가는 내가 계획한 일들에도 차질을 일으킬 터. 그러니 미리 잠재우는 게 내게도 편했다.
동시에 아버지에게 내 혜안을 어필할 기회이기도 하고.
“제 확신이 잘 맞았나요?”
돌아올 대답을 알면서도, 난 그렇게 물었다.
내 속셈을 읽었는지, 그 역시 짙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꽤 부드러워졌다. 그 반응에 난 눈가를 둥글게 휘며 말했다.
“아버지께서 직접 그레이스 백작 부인에게 편지를 보내는 게 좋겠어요.”
“가문의 가주인 그레이스 백작이 아니라?”
“그레이스 백작 부인은 자부심이 높은 사람이에요. 그러니 앨턴 공작의 편지를 받았다는 것에 큰 만족감을 느낄 거예요.”
“흠, 더불어 내가 네시아에게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는 인상도 줄 수 있겠구나.”
아버지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이유를 유추했다.
그는 어느새 흐뭇한 얼굴로 날 바라봤다.
“괜찮은 생각이다. 역시 벨라디 넌 현명한 아이야.”
당연한 소리를.
난 굳이 겸손을 떨지 않았다. 그리고 일부러 만든 이 타이밍에 맞춰 입을 열었다.
“저도 아버지께 드릴 말씀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