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장녀가 육아물에 빙의하면-100화 (101/197)

100.

아버지는 만나고 싶다는 내 제안을 흔쾌히 허락했다. 오히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오랜만에 가족끼리 저녁을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이건 네시아를 정식으로 우리에게 소개해 준다는 뜻이었고, 난 거기에 동의했다.

‘어차피 한 번은 겪어야 할 시간이니, 빨리 해치우는 게 낫지.’

저녁 만찬 약속은 빠르게 잡혔고,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다 보니 곧 당일이 되었다.

아무리 가족 식사라지만 만찬이면 어느 정도 착장을 갖춰야 했다. 그 때문에 난 간단하게 치장을 한 후, 가족 만찬이 열릴 식당으로 향하게 됐다.

‘네시아, 그 아이가 날 보고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네.’

며칠 전, 아이에게 아이닝과의 대화를 들켰을 때부터 내 신경은 네시아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아이닝을 만나는 순간에는 무엇보다 보안에 신경을 많이 썼다. 복도에는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도록 명령해 뒀고, 보안 마법을 최대로 강화했다. 제플린에게 말해 누군가 4층에 오는 것 자체를 막았다.

그러니 일반인은 물론, 어지간한 실력자여도 함부로 4층을 돌아다닐 수 없었다.

‘그런데 네시아는 너무 가뿐하게 내 방 앞까지 다가왔었지.’

심지어 나도 아이닝이 말하기 전까지는 아이의 기척을 눈치채지 못했고.

복도에 설치된 보안과 경보 마법들은 네시아가 방으로 다시 돌아가는 그 순간까지 하나도 울리지 않았다.

이걸 보며 아이닝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쟤는 정령과 비슷해!

-정령?

-응! 셰넌이 만든 아이라서 평범한 인간이랑 다르거든! 그래도 나이를 먹으면 점점 변할 거야!

그 말을 듣자 새삼 네시아의 진짜 정체가 실감 났다.

원작에서 네시아는 정령과 비슷했다. 그러나 점점 자라고 가족과 교감하면서 정령이 아닌 인간으로 성장했지.

‘그럼 지금은 아직 어리니까 인간보다 정령에 더 가깝다는 건가.’

그래서 마법도 통하지 않고, 제플린의 감시도 뚫은 거고?

문득 그날 복도에서 날 올려다보던 네시아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 방 불빛으로 비춰지던 아이의 얼굴은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어머니와 닮아 있었다.

지금도 이런데, 네시아가 점점 자라게 된다면…….

‘어머니와 얼굴이 더욱 같아지려나.’

문자로 알던 것과 직접 마주하는 건 파급력이 달랐다.

네시아를 보기 전까지는 난 네시아가 어머니를 닮든 말든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염두에 두지 않았고, 신경 쓰지도 않았지.’

그건 아파하는 아이를 볼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자신이 살아 있음을 과시하듯 뛰어다니는 아이를 마주하니, 난 생각보다 더한 거부감과 마주하고 말았다.

‘그래도 아직은 어려서 괜찮아.’

그러나 정말로 어머니와 똑같이 자란다면, 그때는 감당하기 힘들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곤란하네.”

그 전에 어디론가 보내야 하는 걸까?

내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나란히 식당으로 가던 멜도르가 날 바라봤다.

“역시 누나도 그렇지?”

멜도르는 잘 정리된 넥타이를 괜히 건들며 한숨을 쉬었다.

“나도 그 녀석, 내 동생으로 인정하기 싫어.”

가족 만찬이니 멜도르 역시 함께해야 했다. 그러나 혼자서 식당에 가기는 싫었는지, 멜도르는 본인의 준비가 끝나자마자 내 방과 이어진 응접실에서 날 기다렸다.

그렇게 내가 준비가 끝난 후, 나와 함께 식당으로 가게 된 거고.

“걔는 왜 하필 그렇게 생긴 거야? 찝찝하잖아.”

멜도르 역시 일전에 네시아를 본 후로 어머니와 똑같이 생긴 그 얼굴에 큰 거부감을 표현했다. 그리고 계속 자신의 연구실에 박혀서 나오질 않았다.

‘아마 오늘 가족 만찬이 아니었다면, 아직도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었겠지.’

그러나 네시아를 향한 거부감도 아버지의 명령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아버지가 초대한 만찬을 거절할 수 있는 간 큰 인물은 이제껏 단 한 명, 어머니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난 투덜거리는 멜도르를 보다 여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어쩌겠어. 아버지가 직접 데리고 온 아이인데.”

“싫은 걸 어떻게 해.”

“받아들여야지.”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나 역시 생각이 복잡하게 얽혔다.

이제 곧 정식으로 소개를 받으면 네시아는 빼도 박도 못하고 앨턴이 된다.

그 일에 대해 걱정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네시아는 어머니가 아니야.’

분명 이걸 알고 있으면서도 후에 내가 아이를 불쾌하게 여길까 염려됐다.

내가 그런 속 좁은 인간이 되는 것이 싫었고, 어머니란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피해 가는 것 같아 싫었다.

난 한쪽 눈썹을 살짝 찡그리다 살짝 옆을 바라봤다. 멜도르는 아직도 투덜거리고 있었다.

‘지금은 저렇게 말해도, 멜도르는 결국 네시아를 진심으로 아끼게 되겠지.’

자신의 가족으로 인정하면서 말이야.

나와는 다르게…….

그래서 그런가, 지금 멜도르의 투정은 그리 와닿지 않았다.

‘일단 내가 행동을 똑바로 해야 해. 내가.’

지금은 최대한 아이를 신경 쓰지 말고, 어머니와 분리해서 보자. 혹여 네시아가 아이닝에 대한 언급을 해도 자연스럽게 말을 돌리면 되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식당에 다다르자 대기하고 있던 하인들이 문을 열었다.

그러자 식당 안, 긴 직사각형 모양의 식탁에 호화로운 음식들이 나열된 게 보였다. 오랜만의 가족 만찬이라고 주방장이 힘을 좀 쓴 모양이었다.

그리고 상석에는 아버지가 왼쪽 두 번째 의자에는 네시아가 앉아 있었다.

“왔구나, 앉아라.”

“예.”

“네, 아버지.”

멜도르와 난 서로 왼쪽과 오른쪽으로 향했다. 아버지를 기준으로 왼쪽 첫 번째 자리에는 가문의 후계자인 멜도르의 자리, 그리고 오른쪽 첫 번째의 자리는 저택 내부를 담당하는 안주인의 자리였다.

‘그러니 원래는 이 자리가 어머니의 자리인 거지.’

그러나 지금 어머니는 없고, 내가 임시 가주 겸 저택 내부까지 책임지고 있으니 난 자연스럽게 오른쪽 자리에 착석했다.

그러며 옆에 앉은 아버지의 상석을 흘깃 바라봤다.

‘아버지가 오기 전까지는 저 상석이 내 자리였는데…….’

5층 집무실도 그렇고, 저 자리도 그렇고. 이것저것 잘 사용하다 돌려주려니, 어쩐지 배가 다 아프네.

‘그럼……. 어쩔 수 없지.’

하루빨리 다시 찾아오는 수밖에.

그렇게 의지가 확 불타오르니, 내 내면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네시아로 연신 술렁이던 마음이 현실을 자각하자마자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한 것이다.

달려야 할 길이 아직 한참 남은 내게 불안은 사치였다.

‘그래, 벨라디. 네가 지금 괜한 감정놀음에 빠질 때가 아니야.’

어떻게 해서든 킬리언과 함께 황태자를 끌어내리고 제국 법을 뜯어고친 후, 저 상석을 되찾아야지!

‘지난 3년간 맛본 권력의 맛,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에 난 이미 원래의 페이스를 완전히 회복할 수 있었다. 새삼 날 자극시켜 준 아버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이런 내 내적 갈등을 모를 아버지는 보기 드물게 흐뭇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온 가족이 이렇게 다시 모이게 되니, 무척 기쁘구나.”

아버지가 날 보며 옅게 웃으셨다.

“벨라디, 내가 없는 동안 임시 가주로서 저택을 지탱하느라 수고 많았다.”

네시아를 치료한 직후에도 들었던 말이긴 하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더 여유롭게 대답할 수 있었다.

“가주께서 북부에 계실 동안 임시 가주로서 가문을 책임지는 건 당연한 일인걸요.”

“그리고 멜도르.”

“네, 아버지!”

“네 마법 실력이 날이 갈수록 늘어난다고 칭찬이 자자하더군. 네 재능은 애초에 도헤미아를 닮았는데, 내가 괜한 욕심에 널 힘들게 한 것 같다. 너도 수고 많았어.”

“크흠, 별거 아닌걸요, 뭘.”

아버지는 이렇게 분위기를 풀 겸, 덕담을 몇 마디 더 하셨다.

난 그걸 흘려들으며 맞은 편에 앉은 아이를 바라봤다. 애초에 네시아는 힐끔거리며 날 훔쳐보고 있었기에, 바로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순간 아이의 몸이 굳었다. 또한 날 바라보는 푸른 눈망울에는 겁이 한가득이었다.

난 그걸 보며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역시, 그때 분위기를 너무 험악하게 잡은 모양이야.’

아이닝에게 누군가 있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난 경계를 극도로 끌어 올렸다. 상대가 누구든, 무력으로 제압해야 할 순간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긴장하며 문을 연 거였는데…….

‘등장한 게 네시아라서, 나도 나름 놀랐었지.’

그래서 조이고 있던 분위기를 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급히 아이를 방으로 돌려보낸 거고.

성인도 감당 못 하는 앨턴가의 위압감을 네시아가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덕분에 괜히 아이를 괴롭힌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는데, 지금 보니 썩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저렇게 네시아가 날 무서워하면, 오히려 내 입장에서는 편하지.’

물론 아이에게 트라우마를 주거나, 공포의 대상이 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네시아가 그날의 기억으로 날 무서워하면 본인이 먼저 날 피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굳이 아이를 달래 줄 필요 없겠어.’

그냥 이 상황을 유지하자.

내가 이런 판단을 내릴 때쯤, 네시아의 정체와 입양하게 된 계기를 말씀하시던 아버지가 마침내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그래서 너희에게 소개하겠다. 앞으로 우리 가문의 일원이 될 네시아 앨턴이다.”

아버지의 말에 긴장하고 있던 네시아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네시아 앨턴입니다!”

“그러니까 이……. 얘를 어머니의 기억으로 만들었다는 거예요? 정령이 직접? 그래서 이렇게 똑같이 생긴 거고?”

네시아 옆에 있던 멜도르는 멍한 얼굴로 중얼거리다 맞은편에 앉은 날 바라봤다. 마치 내게, ‘누나는 저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라며 물어보듯이.

난 그런 멜도르의 시선에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전 아버지의 결정을 이해해요. 그러니 눈의 정령이 저 아이를 어머니의 보물이라 칭한 거군요.”

“그래.”

“수도의 귀족들이 이 소식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네요.”

“다른 이의 말은 신경 쓸 필요 없다. 우리 가족끼리만 잘하면 되니까.”

난 타인의 평판이 신경 쓰였고, 그 가족에 끼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런 속마음을 완벽히 숨긴 채 난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멜도르는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물을 벌컥벌컥 마신 후 한숨을 쉬었다.

“야, 일단 앉아. 식사 도중에 일어나는 건 예의가 아니야.”

“아, 죄송해요. 멜도르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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