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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장녀가 육아물에 빙의하면-85화 (86/197)

85.

이내 그녀의 몸이 조금씩 들썩이다, 낄낄거리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그래, 좋아! 아주 재밌어!”

그렇게 바바는 테이블을 탕탕 내리치며 한참을 웃다가 끅끅대며 날 봤다.

“그리리카 선황 같은 사람이 또 나타나다니! 정말 세상이 바뀌려는 모양이군! 좋아, 내 마지막 보금자리로 아가씨를 고르지요!”

“옳은 선택이야.”

“대신 날 버린다면, 아주 큰코다칠 거요. 이 노인네는 자식도 없고, 재산도 없어. 거기에 살날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 무서울 게 하나도 없거든!”

바바의 선전포고에 난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그대야말로 각오해.”

그렇게 말하며, 난 테이블 아래에 붙어 있는 서랍을 열었다. 안에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고용 계약서가 놓여 있었다.

“난 손에 넣은 인재는 절대 놓지 않으니까.”

계약서에는 내가 바바에게 지원할 것들, 그리고 증기 기관차가 완성될 때 바바에게 주어질 보상들이 직관적으로 나열되어 있었다. 물론, 바바가 내게 협력해야 할 것들도 모조리 말이다.

“읽어 봐.”

바바는 내가 꺼낸 계약서를 보며 재밌다는 듯 웃었다.

“이 조항대로 가면 종신 계약서와 다름없는데?

“말했잖아, 인재는 놓지 않는다고.”

“그래, 아가씨가 진심인 것 같아 안심이로군요.”

이 계약서는 북부의 인장까지 적힌 공식 계약서였다. 그러니 만약 내가 계약서에 적힌 사항을 어긴다면, 바바는 이를 들고 피해 보상을 요구할 수 있었다.

물론 정말로 재판까지 간다면 당연히 권력자인 내가 이기겠지만, 재판은 공개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면 북부는 큰 불명예에 휘말리겠지.’

그걸 다 떠나서 계약서를 쓰는 것 자체가 내가 바바에게 보여 주는 일종의 성의 표시였다. 만약 내가 정말 바바를 중간에 버릴 생각이었다면, 이미 평민과 다름없는 그녀와 굳이 이런 걸 쓰지 않을 테니까.

바바는 계약서를 꼼꼼히 확인한 후 더너스에게서 펜을 받아 서명했다.

“이런 계약서도 오랜만이군요.”

바바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자신의 계약서를 바라봤다. 귀족으로서,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발명가로 불리던 때가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바바가 추억에 젖어 있을 때, 난 더너스에게 명령했다.

“바바가 서부에서 북부의 저택으로 도착할 때까지 책임지고 호위해.”

“예, 벨라디 님.”

“바바가 요청하는 건 최대한 들어주고.”

내 말에 추억에서 빠져나온 바바가 더너스를 보고 낄낄 웃었다.

“고생 좀 하시오, 기사 양반.”

내가 바바에게 제안한 조건 중에는 그녀의 거주지를 북부로 옮긴다는 조항이 추가되어 있었다. 바바도 이를 인지하고 있어서인지 아무런 불만도 품지 않고 더너스를 따라나섰다.

“그럼 북부에서 뵙지요.”

그렇게 두 사람이 방을 나섰고, 난 텅 빈 방에 잠시 앉아 있었다.

바바까지 포섭했으니, 이제 일의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증기 기관은 그냥 돌아가지 않으니까.’

동력이 생기려면 그에 맞는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겠어?

그렇게 의자에 앉아 기다리니, 곧 누군가 노크를 했다.

똑똑.

“제플린입니다, 벨라디 님.”

“들어와.”

그 말에 문이 열렸고 더너스와 함께 이번 연회의 호위 기사로 날 따라온 제플린이 고개를 숙였다.

“바바 와트를 태운 마차가 방금 출발했습니다.”

그 말과 함께 뒤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드디어 내 차례인 거야?”

해맑은 목소리에 난 피식 웃었다.

“서성이지 말고 얼른 들어와.”

“와, 우리 집인데 꼭 네가 주인 같다?”

“너도 우리 집에서 주인인 것처럼 행동하잖아.”

“그건 그래. 인정.”

그렇게 시시덕거리며 들어온 이는 다름 아닌 모스틴이었다.

모스틴은 아까 바바가 앉았던 자리에 털썩 앉으며 턱을 괬다.

“이러니까 괜히 새삼스럽다.”

“새삼스러울 게 뭐 있어.”

내 대답에 모스틴은 피식 웃다가, 아까에 비해 휑해진 내 목가로 시선이 향했다.

“어? 그러고 보니 너 목걸이는?”

“방금 팔았어.”

“그걸? 흐음, 네가 돈을 받았을 리는 없고. 도대체 뭘 받아 낸 거야?”

그 말에 난 씨익 웃으며 간결하게 답했다.

“열정.”

바바는 자신의 열정을 한순간의 불꽃에 비유했다. 그러나 내가 본 그녀의 열정은 한순간의 불꽃치고는 몇십 년을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니 아마 죽기 직전까지, 그 불꽃은 꺼지지 않겠지.’

난 웃으며 대기하고 있는 제플린에게 손을 내밀었다. 제플린은 공손한 자세로 내게 종이 두 장을 넘겼다.

적힌 내용을 다시금 확인한 난 모스틴처럼 자세를 편하게 바꾸며 다리를 꼬았다.

“그럼 거래를 해 볼까요, 프레도 소공작.”

탁.

종이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니, 모스틴이 어깨를 으쓱였다.

“좋습니다, 앨턴 양.”

그렇게 말하며 그 역시 품에서 종이봉투 한 장을 꺼냈다.

“여기, 앨턴 양께서 원하시는 토지 문서입니다.”

모스틴이 그 봉투를 그대로 내게 내밀었다.

난 봉투를 열어, 안에 든 토지 문서를 확인했다.

“잘 챙겨 왔네?”

“당연하지, 날 뭘로 보고.”

모스틴이 콧대를 높이며 웃었다. 난 그런 모스틴을 힐끔 바라보다 다시 토지 문서로 시선을 돌렸다.

그가 내게 넘긴 이 문서는 북서부에 위치한 영세한 토지, 카라노 지역의 소유권이었다.

그리고 내가 이곳을 원하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이 영지에 제국에서 가장 거대한 노천 탄광이 있거든.’

증기 기관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을 고르라면 누가 뭐라고 해도 ‘석탄’일 것이다.

왜 제국의 수많은 발명가 중 서부 사람인 와트 남작이 증기 기관을 만들었겠는가.

‘그야 그의 저택이 카라노 노천 탄광과 가까웠으니까.’

물론, 우리 북부에도 탄광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석탄의 질이 카라노 탄광만 못한 데다가, 대대적으로 채굴을 하려면 아예 새로 개발해야 하는 상태였다. 반면에 그곳은 이미 그리리카 선황 때에 개발이 끝나 있었다.

‘한동안 이용하지 않아 어느 정도 보수가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처음부터 개발하는 것보다는 훨씬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겠지.

무엇보다 지금 저 탄광이 모스틴의 손에 있는 건 내게 좋은 기회였다.

‘카라노 탄광은 원래 프레도 공작이 가지고 있었거든.’

킬리언이 넘겨준 기록에 따르면, 그리리카 선황은 선대 프레도 공작인 모스틴의 할아버지에게 이런 조언을 했었다.

-공작, 와트 남작이 증기 기관이란 것을 완성시킨 것을 아는가.

-예, 폐하. 저희 서부의 일이니 잘 알고 있지요.

-난 앞으로 증기 기관을 크게 활용할 생각이네. 그러니 그 연료를 미리 확보하고 싶군.

그때 모스틴의 할아버지는 그리리카 선황의 최측근이었다.

선황은 자신의 측근에게 미리 석탄을 확보하게 해, 증기 기관이 실용화될 경우 석탄의 매점매석을 방지할 생각이었다.

그녀의 뜻을 알아차린 모스틴의 할아버지는 즉시 카라노 토지를 매입하고, 선황과 함께 노천 탄광을 개발했다.

‘그러다 바바에게 그 사건이 터지면서 증기 기관차의 개발은 멈추었지.’

석탄 이용률도 역시 훅 떨어져 버렸다.

그렇다고 황제의 조언으로 산 땅을 바로 처분하기에도 눈치가 보여, 카리노 영지는 모스틴의 할아버지에게 계륵으로 남게 되었다.

‘그걸 모스틴의 아버지인 프레도 공작이 물려받은 거고.’

프레도 공작은 자신의 아들인 모스틴에게 그 탄광을 선물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내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아버지가 성인식 선물로 본인이 가지고 있는 땅 중 하나를 준다는데, 뭘 받을까?

-그럼 서부 끝의 해변가는 어때? 거기 풍경 정말 예쁘잖아.

모스틴의 발언은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찬스였다.

그래서 난 해맑게 대답하는 시온의 얼굴을 옆으로 치우며, 모스틴의 시선을 독차지했다.

-카라노 탄광을 받아, 모스틴.

-에엥? 카라노 탄광?

뜬금없는 내 말에 모스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만도 했다. 증기 기관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카라노 탄광은 효율성이 전혀 없는 땅이니까.

내 말에 얼굴이 밀린 시온도 안경을 고쳐 쓰며 물었다.

-성인식 선물로 받는 건데, 그 탄광은 별로지 않을까?

-그래. 거기는 뭐 구경할 것도 없고. 돈을 벌 수 있는 곳도 아니고.

둘의 투덜거림에 난 후후후 웃었다.

-카라노 탄광을 받아서 내게 팔면 되지.

-루비 팔아서 부자 되더니, 땅 좀 모으려는 거야? 그럼 내가 더 좋은 땅 줄게. 거기는 영-,

시큰둥한 얼굴로 여기까지 말하던 모스틴은 무언가 눈치챈 듯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날 바라봤다.

-벨라디, 너! 또 혼자서 뭔가 꾸미고 있지!

모스틴의 말에 시온도 날 바라봤다.

-그런 거야?

둘의 반응에 난 입꼬리를 올렸다.

-왜? 나랑 같이하고 싶어?

-당연하지! 재미있는 건 셋이 함께하기로 약속했잖아!

소속감을 좋아하는 모스틴이 외쳤다.

시온도 무해한 미소를 지었다.

-난 뭐든 좋아.

그런 두 사람의 눈에는 나를 향한 의심이 단 한 톨도 없었다.

몇 년이 지나도 참 변함없는 둘을 보며 난 어깨를 으쓱였다.

-좋아. 그럼 두 사람 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해.

그렇게 모스틴은 내 말대로 프레도 공작에게서 카리노 탄광을 선물받은 것이다.

원래대로였다면, 내가 직접 프레도 공작과의 거래를 통해 카리노 탄광을 구매했겠지만…….

‘그 아저씨는 거래에 너무 능숙하단 말이지.’

루비 투자자를 뽑을 때 서부 귀족들의 비율을 올린다든지, 새로운 디자인의 루비 공예품은 무조건 서부 연합에 먼저 판매한다든지 등등.

바바를 서부 연합 명단에서 빼 북부로 옮기는 것에서만 공작에게 많은 부분을 내줘야 했다.

‘그나마 내가 하는 걸 어린아이의 치기 정도로 보고 자세한 걸 캐묻지 않아 다행인가.’

이런 면으로 봤을 때, 확실히 모스틴이 내게는 더 수월한 상대였다.

‘그렇다고 얘가 만만하다는 건 아니고.’

모스틴도 태어났을 때부터 공작가의 후계자로서 자랐고, 프레도 공작을 닮은 유창한 말솜씨를 가지고 있으니까.

다만 그는 내 절친이었고, 나를 상당히 신뢰한다는 점에서 한결 편한 상대임은 맞았다.

난 바바를 설득하느라 열심히 굴렸던 머리를 식히며 테이블 위에 있던 종이 두 장 중 한 장을 모스틴에게 넘겼다.

토지 양도서였다.

“내가 말한 대로 계약할 거지?”

“당연하지! 아~, 아버지가 놀랄 생각하니까 왜 벌써 재밌냐.”

“상용화 전까지는 비밀이다.”

“이것 보세요, 앨턴 양. 저만큼 입 무거운 사람이 또 어디 있다고.”

“입은 무거운데, 혀는 가벼워서 문제지요.”

난 피식 웃으며 바바가 계약할 때 사용했던 만년필을 들었다.

그리고 토지 양도서에 카라노 탄광과 내 이름을 적고 조항 하나를 추가시켰다.

「‘벨라디 앨턴’은 ‘모스틴 프레도’에게 ‘카라노 탄광’을 양도받는다. 대신, 벨라디 앨턴이 카라노 탄광을 이용해 수익을 창출할 경우, 모스틴 프레도에게 그 몫의 일정 비율만큼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처음에는 깔끔하게 땅을 전부 사려고 했다.

하지만 나를 향해 너무 순수한 믿음을 보여 주는 모스틴에게 차마 매몰차게 행동할 수가 없었다.

-뭐? 증기 기관차를 만들겠다고? 야, 재밌겠다! 카라노 탄광 그냥 너 줄게! 가져!

저렇게 말하는 놈에게 어떻게 푼돈으로 땅을 뜯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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