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장녀가 육아물에 빙의하면-84화 (85/197)

84.

바바는 아까보다 조금 더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지긋지긋한, 증기 기관차를?”

그렇다.

내가 지난 3년 동안 마법 루비와 함께 메인으로 집중하고 있던 것.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힘을 쏟고 있던 것.

그건 이 세상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사할, 그 이름도 유명한 ‘증기 기관차와 철도’였다.

‘현 대륙의 이동 수단은 너무 비효율적이니까.’

대륙은 데커딜 제국과 마갈라 제국, 이 두 제국에 더해 총 네 개의 왕국까지 품을 만큼 거대한 대지였다. 그런 대륙의 이동 수단이 고작 텔레포트 진과 마차뿐이라니, 이게 말이 되는가?

덕분에 난 전생을 자각하고 사업을 벌이자고 결심한 순간부터 증기 기관차를 주목하고 있었다.

‘사실 내가 단순히 돈을 벌 목적이었으면 다른 분야의 아이템을 눈여겨봤을 거야.’

예를 들면, 디저트나 드레스 같은 사치품?

난 이미 사교계에서 탄탄한 입지를 다지고 있으니, 분명 그런 것들이 더 안정적이고 빠른 수단이 되었을 테지.

하지만 내게 필요한 건 돈이 아니었다.

‘돈은 마법 루비로 썩어 넘치게 벌 예정이었으니까.’

내게 필요했던 건 업적이었다.

황제는 물론 데커딜 제국을 넘어, 온 대륙을 내게 주목시킬 수 있는 그런 위대한 업적. 그리고 그 업적과 함께 따라올 힘과 명예.

그걸 이용하면 사람들에게 내 권세를 각인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각인은 내가 후계자의 자리를 차지하는 순간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어 줄 것이다.

이 외에도 텔레포트 진이 유독 부족한 북부의 사정, 마법 루비의 원활한 유통 등등을 고려했을 때…….

‘그래, 지금 생각해도 철도만 한 건 없어.’

참고로, 내가 터무니없이 증기 기관차를 떠올린 것은 아니다. 그리리카 선황 시절, 이미 증기 기관차를 개발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니까.

‘마도 기술이 발달한 이 세계관에서 증기 기관이라고 탄생하지 못할 것 없지.’

선황에게 제일 먼저 증기 기관을 소개했던 건 서부의 유명한 발명가였던 ‘와트 남작’이었다.

와트 남작은 임시로 만든 증기 기관과 그 원리를 그리리카 선황에게 선보였고, 이에 큰 흥미를 느낀 그녀는 남작에게 거액의 돈을 후원했다.

-증기 기관 발명에 반드시 성공해 제국의 발전에 이바지하라.

그리리카 선황의 후원 아래, 와트 남작은 안정적인 증기 기관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이때, 바바는 와트 남작의 훌륭한 조수로서 함께 발명에 참여했었고.

‘증기 기관으로 새로운 운송 수단을 만들자고 주장한 것도 바바였지.’

이때 와트 남작은 많이 늙어 은퇴를 생각하고 있었기에 하나뿐인 딸에게 힘을 실어 주고 있었다. 작위는 바바의 남편에게 물려주고, 그녀가 발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랬기에 남작은 바바의 의견에 동의했고, 이를 그리리카 선황에게 보고했다.

그리리카 선황은 보고서를 본 후, 큰 우려를 표했다.

-텔레포트 진이 활성화되어 있는 남부와 동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젊음의 치기로 혁신을 꿈꾸는 것은 좋으나, 이미 고착화된 세력이 너무 크구나. 이렇게 되면 완전한 성공이 아닌 이상 의미가 없다.

이때, 남작과 함께 황궁으로 갔던 바바가 그리리카 선황에게 이 말을 던진 것이다.

-열정은 한순간의 불꽃이지만, 확신은 영원합니다, 폐하. 증기 기관을 이용한 운송 수단은 데커딜 제국을 넘어 대륙의 모든 판도를 뒤집을 것입니다.

-바바 와트, 넌 확신한다 이 말이냐?

-그렇습니다! 전 반드시 성공시킬 것이고, 동부와 남부가 순응하게 만들 것입니다!

바바의 자신감 있는 선언은 그리리카 선황을 크게 만족시켰다. 그렇게 황제의 신임을 얻은 바바는 순탄하게 증기 기관차를 발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바의 든든한 지원자였던 와트 남작이 노환으로 사망한 후부터, 모든 과정이 삐거덕거리기 시작했다.

증기 기관차 발명에 틈을 보고 있던 동부와 남부가 기다렸다는 듯이 바바의 성별을 걸고넘어진 것이다.

그들은 여자 발명가는 절대로 믿을 수 없으며, 분명 안전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소리쳤다. 텔레포트 진으로 막대한 수수료를 받고 있던 마탑 역시 이 목소리에 힘을 보태었다.

그리리카 선황은 최선을 다해 이 세력으로부터 바바 와트를 보호했지만…….

‘배신은 내부에서 이루어졌지.’

자신의 아내를 이해하지 못했고, 허울뿐인 작위에 불만이었던 바바의 남편이 그녀의 연구실에 폭발을 낸 것이다.

그때 당시 신문 기사를 살펴보면, 폭발로 인한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연구실 근처 민가의 재산 피해가 상당했다.

반대 세력은 이를 빌미로 바바를 감옥에 구금시키려 들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야.’

여러 요소들을 살폈을 때, 반대 세력이 바바의 남편을 꾀어 낸 게 분명했으나 증거가 없었다.

그렇게 바바는 고스란히 위기에 직면했고, 선황은 그녀를 돕기 위해 분주히 노력했다. 본격적인 수사로 범인이 바바의 남편임을 밝혔고, 바바의 혐의를 벗겨 낸 것이다.

또한 그녀에게 병사를 붙여 어느 정도 신변을 지켜 주었다.

‘그러나 그게 선황이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였어.’

이 사건을 깊숙이 파고들기에는 그리리카 선황이 해결해야 할 사건들이 너무 많았다.

거기다 당시, 그녀가 주력하고 있던 정책도 따로 있던 상황이었다.

따라서 바바는 연구실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죄로 재산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막대한 보상금을 지불해야 했고, 와트 남작가는 그렇게 파산하고 말았다.

‘거기에 수색 중이던 바바의 남편이 사망한 채 발견돼, 바바가 남편을 죽인 게 아니냐는 여론까지 일어났지.’

바바의 남편은 분명 입막음을 위해 살해당했겠지만, 타인이 이런 사정을 어떻게 알겠는가. 그들은 그저 자극적인 이야기에만 관심을 갖고 떠들 뿐인데.

이 일로 인해 바바는 고향에서도 살 수 없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리고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난 기어코 행방을 감춘 바바를 찾아내, 이곳까지 끌어낸 것이다.

‘더너스가 고생을 많이 했어.’

바바는 그동안 먹고살 돈을 벌기 위해, 전구 같은 간단한 발명품 등을 만들어 근처 평민들에게 팔고 있었다.

복잡한 기술이 필요 없는 것이라도, 평민들에게는 고가의 제품이었다. 그리고 그 경향은 시골로 들어갈수록 심했기에 나름 수요가 있었을 것이다.

애초에 바바처럼 정상적인 판매 루트를 무시하고 개인으로 거래하는 편법 발명가들은 많았다. 그리고 이들은 아무나 찾을 수 없게 꽁꽁 숨어 살았고.

난 바바가 죽지 않았다면, 이런 편법 발명가로서 살고 있다고 예상했었다.

‘혹 죽었다고 해도, 분명 살던 곳에 증기 기관차에 대한 흔적이 남아 있을 거라고 여겼어.’

그리리카 선황의 기록과 신문 기사들을 종합했을 때, 바바는 아버지의 유작인 증기 기관과 증기 기관차에 남다른 애착을 보였으니까.

그래서 더너스에게 편법 발명가들을 위주로 수색하라고 말했고, 그는 착실히 내 임무를 수행했다.

‘예상치 못한 문제가 있다면, 바바가 너무 잘 숨어 있었다는 점?’

더너스는 가넷으로 굴복시킨 감시자 넷을 데리고도 거의 3년 동안 서부의 오지 산간을 뒤져야 했다. 그렇게 내가 내어 준 추적 기간을 꽉 채우긴 했지만, 기어코 더너스는 바바를 찾아냈다.

‘거기다 그 과정에서 불안 요소였던 감시자 넷 역시 더너스를 본인들의 리더로 인정했으니,크게 나쁠 건 없지.’

난 더너스의 임무 실패를 대비해 세워 둔 차선책을 치워 버린 뒤, 바바에게 지속적으로 연락을 요청했다.

동시에 프레도 공작가와의 합의도 멈출 수 없었다.

‘아무리 파산한 귀족이라고 해도 귀족 장부가 남아 있는 이상 와트 남작가는 서부 연합 소속이니까.’

덕분에 남작가를 빼내 오려고 프레도 공작과 여러 거래를 해야만 했다.

거기에 바바의 연구실과 철도 연구에 적합한 북부의 지역, 직접 살 집과 그녀를 도울 고용인들도 알아봐야 했다. 추가로 바바가 사용할 지원금까지 따로 마련해야 했고.

이것들을 준비하며, 난 차라리 3년의 여유 기간이 생긴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덕분에 지금처럼 빈틈없이 계획을 추진할 수 있었다.

‘황태자와 퍼델은 나한테 한 대 먹였다고 퍽 기뻐했지만.’

오히려 내게는 이게 기회였다, 이 말이지.

물론, 내가 위기를 기회로 삼은 것과 놈들에게 원수를 갚는 것은 별개의 일이지만.

하여튼 여러 고초 끝에 바바를 모시고 갈 준비는 모두 끝났다.

남은 건, 이 불운의 발명가를 최대한 설득하는 것뿐이었다.

“바바, 넌 불공평한 세상에서 끝까지 발명가로 살아남았어. 그건 무척 대단한 일이야.”

바바는 장인이었다.

그리고 난 바바라는 장인을 설득할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숨어 살 필요도, 이유도 없지.”

“입에 발린 말은 잘하시는군요. 이렇게 날 찾아낼 정도면, 내가 어떤 수모를 겪고 이 꼴이 되었는지 전부 알 텐데? 말년에 그런 위험을 또 감수하라고?”

“그래, 난 다 알고 있어. 그 수모도, 사건의 진상도. 그리고 그 이후의 네 삶까지.”

난 고개를 기울였다.

“그대는 온갖 무시와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결국 발명을 놓지 못했어. 안 그래?”

난 바바의 은신처에 수없이 뜯어고친 증기 기관차의 설계도가 그려져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걸 굳이 언급하지는 않았다. 바바도 내가 뭘 떠올리고 있는지 이미 파악한 눈치였으니까.

“너무 오래 숨죽였어, 바바. 이제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이름을 역사에 새겨야지. 그대는 그럴 자격이 충분해.”

“그 말은…….”

“‘위대한 증기 기관차 발명가, 바바 와트’. 멋진 울림이지 않나?”

내 마지막 말에 바바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주름진 얼굴이 애써 표정을 관리했지만, 내게는 보였다. 그녀가 지금 동요하고 있음을.

그 모습을 보고 난 다시금 확신했다. 바바를 회유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오랜 욕구를 건드리면 됐다.

발명가 특유의 장인 정신에서 파생된 인정 욕구, 가치 증명 욕구, 불우한 여성 발명가라는 타이틀에서의 해방 욕구까지.

‘그리고 난 저 세 가지를 모두 충족시켜 줄 수 있지.’

내 진심을 파헤치기 위해서인지, 바바는 뚫어지게 날 응시했다. 나 역시 그녀의 시선을 당당히 받아 주었다.

꿀릴 것은 하나도 없었다. 바바의 앞에서 내가 뱉은 말은 모두 진심이었으니까.

“내게 와, 바바. 나와 함께 영원한 확신을 만들자.”

“아가씨가 어떻게? 결국 아가씨도 북부의 딸일 뿐이지 않은가.”

“아니.”

난 싱긋 웃으며 바바의 말을 고쳐 주었다.

“난 북부의 주인이 될 거다.”

내 말을 알아들은 바바의 눈이 한순간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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