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장녀가 육아물에 빙의하면-83화 (84/197)

83.

‘내가 모르는 물밑에서 그들만의 거래가 이루어졌군.’

마갈라 제국은 아마 세금 감면 외에 황제의 구미를 당길 조건을 덧붙였을 것이다.

황제가 앨턴 공작가를 확실히 설득하는 조건으로 말이다.

그리고 황제는 그 조건들은 굳이 언급하지 않은 채, 자신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혜택을 내게 먼저 제시했던 것이고.

원하는 바를 큰 손해 없이 성취하기 위해서는 작은 것부터 제시하는 것이 거래의 기본자세였다. 하지만 그걸 무시할 만큼 마갈라 제국이 황제에게 줄 이익이 큰 모양이었다.

‘그럼 순순히 황제의 뜻을 따라 주기에는 아까웠지.’

재주는 내가 다 부릴 텐데, 황제 혼자만 큰 재미를 보면 너무 섭섭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난 황제에게 이런 말을 꺼냈다.

-언제나 아랫것들에게 귀가 열려 있으신 폐하이시니, 곧 제가 성인이 되는 걸 알고 계실 겁니다.

-후후, 그렇지.

-그리고 지난 3년 동안, 제국의 모든 아동은 황태자 전하께서 통과시킨 임시법 덕분에 여러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었죠.

굳이 그 법이 필요 없는 이들까지 전부 다.

이 말만으로도 황제는 내가 무슨 의도로 입을 열었는지 단번에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가 껄껄 웃었다.

-좋다. 네가 하고 싶은 게 따로 있는 모양이니, 그에 관한 것도 따로 세금 혜택을 주마.

-아버지의 도움 없이 저 혼자 잘 해낼지 걱정입니다.

덧붙인 말에 황제는 더욱 즐거워졌는지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런 면에서는 네 아비보다도 당돌하구나! 그래, 네가 황태자 때문에 3년을 기다렸다지? 그럼 나 역시 혜택의 기간을 3년으로 해 주겠다.

그건 아-주 만족스러운 말이었다.

난 그제야 염려스러운 표정을 거두며 가지런히 입꼬리를 올렸다.

-폐하의 하늘과 같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마갈라 제국과의 마법 루비 교역은 북부에도 더 없는 기회입니다. 이를 귀히 여기며 바로 준비를 시작하겠습니다.

-허허, 그래. 앞으로 네가 보여 줄 그림이 기대되는구나.

그렇게 황제와의 독대 후, 난 즉시 북부의 가신들을 모아 마법 루비의 수출을 준비시켰다.

이제는 내 말에 손발이 척척 맞게 된 가신들과 보좌관들이 순조롭게 일을 진행해, 마갈라 제국으로부터 예약자를 받기 시작했다.

원래 데커딜 제국에서 마법 루비를 팔았을 때는 투자자에게만 루비를 판매했다. 하지만 마갈라 제국에서 이 전략은 별 효과가 없었다.

‘마갈라 제국은 어차피 타국. 우리 북부에 도움이 되는 곳만 선별하는 건 무의미한 일이야.’

따라서 돈이 있다면 아무나 예약을 할 수 있다고 홍보를 했지.

이 방식에 대해, 선별 방식으로 루비를 구매해야 했던 데커딜 제국 귀족들로부터 불만이 나올 법했음에도 의외로 큰 반응이 없었다.

어차피 3년 동안 그들은 루비의 가치를 누릴 만큼 누렸기 때문이다.

‘오히려 투자자들 중에는 마갈라 제국에의 수출이 너무 늦어진 거 아니냐며 걱정하는 이도 있었지.’

그렇게 국경을 넘어 본격적으로 수출되기 시작한 루비.

예약 문의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마갈라 제국 귀족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루비를 예약했고, 덕분에 북부는 예정에 없던 추가 투자자를 받을 지경에 이르렀다.

‘전부 예상대로 흘러갔어.’

마갈라 제국은 한 번 루비를 산 후, 관상용으로 즐길 뿐인 데커딜 제국의 귀족과 다르다. 그들은 주기적으로 루비를 대량 구매할 우량주 고객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북부에게 어마어마한 부를 가져다줄 것이다. 원작에서 묘사된 성공, 그 이상으로 말이다.

‘그래, 루비는 이렇게 큰 문제 없이 순탄해.’

문제는 루비가 아닌 또 다른 곳에 있었다.

난 그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 연회장을 벗어났다.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니, 더너스가 내 뒤를 따라오며 속삭였다.

“프레도 공작가의 별관 2층, 맨 끝방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사자가 온 게 확실해?”

“예.”

“그렇단 말이지.”

‘그럼 오늘 끝장을 봐야겠어.’

난 익숙하게 프레도 공작가의 복도를 걸었고, 곧 모스틴이 따로 내어 준 별관의 어느 방 앞에 도착했다.

더너스가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끼이익.

방 안은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는 단출한 공간이었다.

난 조용히 의자에 앉아 있는 이를 바라봤다.

“드디어 만났군.”

내 말에 의자에 앉아 있던 노인이 낄낄 웃었다.

“저 같은 촌것한테 무슨 볼일이 있다고 그렇게 찾아 헤맸을까요.”

“그런 섭섭한 말을. 그대의 가치가 지금 이 목걸이보다 귀하다는 걸 내가 모를 리 있나.”

“오호라, 참 영광이로군요. 그럼 그 목걸이를 당장 달라고 하면, 주시렵니까?”

그 말에 난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천천히 테이블로 다가갔다. 내 행동에 한발 먼저 움직인 더너스가 의자를 빼 주었다.

난 그곳에 앉으며 여유롭게 목에 걸린 화려한 루비 목걸이를 풀었다. 그리고 거침없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차랑-.

화려하게 세공된 루비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내가 내민 목걸이는 총 34개의 마법 루비와 16개의 진주로 장식되어 있었다. 이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어지간한 귀족들의 별장 2개 정도는 거뜬히 살 수 있는 값이었다.

이걸 흔쾌히 내놓자 노인이 눈을 반짝이며 잽싸게 목걸이를 챙겼다.

“역시나, 대귀족께서는 배포도 참 남다르군요! 이 늙은이는 욕심에 눈이 어두워 한 치 앞을 바라보지 않으니, 이건 잘 챙기도록 하지요.”

노인은 자신이 가지고 온 낡은 포대 자루에 목걸이를 쑤셔 넣으며 킬킬 웃었다. 보석을 막 다루는 모양새를 보니, 저걸 착용하거나 팔 생각은 영 없어 보였다.

그게 만족스러워 난 더욱 짙게 웃었다.

“이제 알겠지? 내가 내민 제안에는 한 치의 과장도 거짓도 없다는 걸.”

내 말에 포대 자루의 입구를 꽁꽁 묶던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하얗게 센 머리를 기사인 더너스보다도 짧게 자른 노인은 주름진 손으로 쓰고 있던 자루를 마저 묶었다.

“배포가 남달라서 그런가, 열정도 남다른 아가씨로군.”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혀를 끌끌 찼다.

“어차피 인생 얼마 남지도 않았으니, 그냥 간을 배 밖으로 내밀고 말하지요. 아가씨가 내민 그 제안, 난 관심 없소.”

“흐음, 그래?”

“저 기사 양반이 지난 3년 동안 하도 서부를 쑤시고 다녀서 내 직접 수도로 왔지만.”

지목당한 더너스는 별 반응을 하지 않고 그저 침묵할 뿐이었다.

“난 지금 내 삶에 만족하고, 바라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저 간간이 내 욕심만 채우면 될 뿐. 열정 넘치는 건 좋지만, 주변 좀 그만 볶고 살던 세상에서 잘 사시오, 아가씨.”

날 향한 건방진 발언에 대기하고 있던 더너스가 허리춤에 찬 칼 손잡이를 잡았다. 그걸 고스란히 바라보던 노인이 의자에 늘어지게 앉아 킬킬 웃었다.

“아이고, 무서워라. 저 기사 양반이 저리 격하게 나오는 건 처음 보네.”

노인이 어떻게 말하든, 더너스는 그걸 무시하며 내 반응을 확인했다.

난 그저 눈을 한 번 깜박였다. 불허한다는 의미였다.

이걸 알아들은 더너스가 자세를 풀고 다시 바르게 섰다. 그걸 확인한 노인은 들고 있던 포대 자루를 빙빙 돌리며 다시금 웃었다.

“기사 훈련은 참 잘 시키셨군요. 역시 북부는 다르다는 건가?”

난 그걸 보며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확실히 노인은 내 앞에서 무례했고, 난 내게 무례한 자들을 가만 놔두는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걸 가볍게 그냥 넘길 수 있었다.

왜냐?

‘저런 이는 무력과 약점으로는 흔들 수 없거든.’

난 협박을 사용할 때와 그러지 말아야 할 때를 잘 구분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저 노인을 무엇으로 자극해야 하는지도 이미 파악이 끝난 상태였다.

난 테이블에 팔을 기대며 노인을 바라봤다.

그리고 싱긋 웃었다.

“열정은 한순간의 불꽃이지만, 확신은 영원하지.”

내 말에 시종일관 히죽이던 노인의 입꼬리가 잠시 내려앉았다.

“그 말, 어디서 들었지요?”

“그게 중요한가?”

“하긴, 공작가 정도 되면 모르는 정보가 없을 터이니. 새삼 놀랍지도 않군.”

노인이 그렇게 투덜거렸다.

난 그걸 보며 내가 했던 말을 다시금 머릿속으로 되새겼다.

‘열정은 한순간의 불꽃이지만, 확신은 영원하다…….’

이건 바로 저 노인이 꺼냈던 말이었다.

그 누구도 아닌, 그리리카 선황에게 직접.

‘킬리언에게 그리리카 선황 시절의 기록들을 요청하길 잘했지.’

황제의 즉위 후 붕어하는 그 순간까지 사관들은 그들의 모든 공적인 정보들을 기록해야 한다. 그렇게 편찬된 역사서는 국보 중 하나로서, 오로지 직계 황족만이 열람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난 더너스가 가지고 온 정보를 통합해 노인과 그리리카 선황이 접촉했던 시기를 알아낸 후, 킬리언에게 그때의 기록들을 받아 냈다.

이 발언은 거기서 알아낸 것으로, 한때 노인의 신념이었던 것임이 분명했다.

노인은 허탈한 웃음을 조금 짓더니 날 보며 물었다.

“아가씨는 정말 ‘그걸’ 세상에 내보일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그대는 능력과 기술이 있고, 난 돈과 권력이 있어. 이미 설계도까지 완성되었는데, 못할 이유도 없지.”

“하아? 그 위대하다는 그리리카 선황께서도 끝내 가지지 못한 게 그놈의 확신인데도?”

노인이 혀를 쯧 찼다.

“본인은 다르다는 말 따위는 듣고 싶지 않아요. 난 이제 늙었고, 그런 번지르르한 말에 속아 넘어가기에는 지쳤어.”

노인이 완강하게 말했다.

난 그런 노인을 보며 여유롭게 웃었다.

“하지만 계속 보고 싶어 했잖아.”

내 말에 노인이 날 똑바로 마주 봤다.

“그대가 만든 합작이 대륙의 역사를 뒤바꾸는 그림을, 그리고 그대를 반대했던 머저리들의 뒤통수가 깨질 때의 표정을.”

내가 입을 열수록 테이블 위에 올려진 노인의 주름진 손이 꽉 쥐어졌다.

“아무리 늙었어도 보여 줘야지. 넌 아직 살아 있고, 시대는 변하고 있다는 걸.”

제국의 천재 발명가 와트 남작의 외동딸이자, 불운의 첫 여성 발명가였던 노인.

바바 와트의 눈빛이 어느새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나보고 다시 그걸 만들라는 거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