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장녀가 육아물에 빙의하면-82화 (83/197)

82.

화려한 샹들리에와 각종 조명으로 휘감겨 있는 연회장. 밤새도록 빛나고 있는 그곳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무르익고 있었다.

그 연회장의 한 가운데, 한 여자가 모두의 관심을 받은 채 서 있었다.

짙은 검은 머리를 고아하게 틀어 올린 채, 어깨가 노출된 머메이드라인의 드레스를 입은 여자.

곧게 뻗은 목선에는 크고 작은 루비들이 아름다운 곡선으로 장식된 목걸이가 걸쳐져 있었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연회장 조명에 반사된 수많은 루비들이 반짝였다.

물론 그 화려한 디자인도 여자의 존재감을 죽일 수는 없었다.

어지간한 성인 남자보다 큰 키. 탄탄하고 균형 잡힌 몸. 고혹적이고 세련된 외모는 사치스러운 디자인의 액세서리들을 자연스럽게 녹여 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타인의 시선을 사로잡는 건 루비보다도 선명한 색채의 눈동자였다. 사람들은 그녀의 눈빛에서 묘한 압도감을 느끼는 한편, 조금이라도 그녀와 더 말을 섞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다.

“축하드립니다. 본격적인 마법 루비의 수출이 드디어 코앞이군요.”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저희 서부 연합의 연회에 참석해 주시다니, 참으로 영광입니다.”

설렘과 아부가 섞인 사람들의 말에 여자가 눈동자만큼 붉은 입술을 올리며 웃었다. 그러자 그녀의 파트너로서 옆에 서 있던 금발 머리의 남자도 같이 미소 지었다.

“마법 루비에는 저희 서부도 상당한 자금을 투자했습니다, 앨턴 양.”

화사한 금발과 다정다감한 갈색 눈동자가 잘 어울리는 햇빛 같은 미소였다.

여자보다 조금 더 큰 키의 남자는 자신의 가슴께에 장식된 루비 브로치를 만지며 물었다.

“그러니 저도 모르게 그 이상의 이익을 원하게 되는데, 이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겠나요?”

누구나 물어보고 싶었지만, 여자의 기세에 눌려 꺼낼 수도 없었던 노골적인 질문이었다.

그걸 서슴없이 내뱉으며 웃는 남자, 프레도 공작가의 후계자 모스틴 프레도의 모습에 서부 귀족들은 눈빛을 반짝이며 여자 쪽의 답변을 기다렸다.

여자는 그 시선을 받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글쎄요, 프레도 소공작.”

의문스러운 대답에 서부 연합 귀족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각자의 손을 꼭 잡고 여자의 입에 집중했다.

그걸 알고 있는 듯 여자는 목소리를 낮춘 채, 하지만 귀에 박히는 또렷한 발음으로 말했다.

“확실한 건, 마법 루비의 수요는 가히 폭발적이라 향후 3년간의 판매처가 전부 정해졌으며.”

여자의 붉은 눈이 휘어졌다.

“이번에는 서부 연합 분들의 투자를 가장 많이 받았다는 거지요.”

그 말에 모여 있던 귀족들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연회의 주최자인 모스틴 역시 씨익 웃으며 들고 있던 와인 잔을 여자에게 내밀었다.

“하하하! 역시 사람 마음을 들었다 놓는 솜씨가 일품이라니까.”

“너만 할까, 모스틴.”

모스틴이 굳이 사람들 앞에서 저런 질문을 꺼낸 건 서부 연합 귀족들을 안심시켜 주기 위해서였다. 그가 백날 입 아프게 떠드는 것보다 여자의 한마디가 불안을 잠재우는 데 더 효과적이니까.

여자 역시 그런 모스틴의 속내를 알고 기꺼이 어울려 준 것이고.

목소리와 말투, 기세와 태도. 모든 것에서 믿을 수밖에 없는 카리스마를 지닌 사람.

벨라디 앨턴이 모스틴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쳤다.

째앵-.

맑은 유리 소리와 함께 벨라디가 모스틴에게만 들리도록 속삭였다.

“대신 우리의 거래 잊지 마.”

그녀의 말에 모스틴이 씨익 미소 지었다.

“내가 우리 아버지랑 한 약속은 잊어도, 너랑 한 약속은 절대 안 잊잖아.”

“후폭풍을 감당할 자신 있으면 잊어도 되고.”

그 말에 모스틴이 일부러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세상에, 앨턴 양. 그런 무서운 말씀을 듣기만 해도 심장이 쪼그라듭니다.”

“프레도 소공작의 심장은 때때로 너무 비대해지는 것 같으니, 이렇게 균형을 맞춰도 나쁠 것 없지요.”

둘의 농담에 주변 서부 귀족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중 한 귀족이 입을 열었다.

“여전히 사이가 참 좋으십니다.”

“그러고 보니 두 분의 성인식이 얼마 남지 않았군요.”

“아글라 공께서도 오늘 연회에 참석하셨으면 좋았을걸.”

“그러게 말입니다. 세 분의 우애는 저희 제국의 자랑이니 말입니다.”

벨라디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조용히 와인을 마셨다.

그런 벨라디 대신 모스틴이 나서서 서부 귀족들을 상대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희가 바로 폐하께서 인정하신 데커딜 제국의 삼총사 아닙니까.”

그 넉살 좋은 말에 모두들 다시 한번 웃었다. 그 소음 속에서 벨라디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 성인식이라…….’

그건 벨라디가 임시 가주로 임명받고, 킬리언과 동맹을 맺은 지 대략 3년이 흘렀다는 뜻이다.

17살이던 그녀는 이제 20살을 목전에 두고 있었고, 그녀의 앞길을 막고 있던 아동법이란 족쇄가 해금되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또한.

‘북부로 떠난 아버지가 돌아올 때인가.’

안 그래도 며칠 전, 테오도르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거기에는 조만간 수도로 돌아갈 것이며, 꼭 전해야 할 중요한 소식이 있다고 적혀 있었다.

멜도르는 그걸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벨라디는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그야 너무 뻔했으니까.

‘네시아.’

네시아를 앨턴 공작가의 막내로 들이겠다는 말이겠지.

사실 네시아가 자신에게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막내로 들이든 말든 벨라디가 알 바 아니었다.

지금 그녀가 가장 신경을 들이고 있는 건 따로 있었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한창 바쁜 시기인 지금, 굳이 서부 연합의 연말 연회에 참석하지도 않았다.

‘더 이상 시간이 지체되지 않았으면 싶은데.’

벨라디가 그렇게 와인을 한 입 더 마실 때, 누군가 그녀를 불렀다.

“벨라디 님.”

그녀의 호위이자 감시자로서 따라온 기사, 더너스 로건이었다.

그가 벨라디의 지척으로 다가와 귓가에 속삭였다.

“그자가 협상에 응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벨라디의 붉은 눈동자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빛났다.

***

킬리언에게 정보를 넘기고, 감시자들을 온전히 손에 넣은 난 두 가지 일에 집중했다.

하나는 마법 루비의 수출.

아동법 개정으로 내 개인 사업은 막혔지만, 마법 루비는 아버지가 내게 일임한 북부 전체의 사업이었다. 덕분에 일은 아무런 방해도 없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루비는 시장에 나오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이끌었다. 특히 북부가 선발한 투자자들 위주로 살 수 있다는 점이 마법 루비의 큰 셀링 포인트가 되었다.

‘보통은 신분이 높은 가문의 순서대로 희귀 보석을 구매하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북부의 가신들은 철저히 북부에 이득이 되는 가문부터 보석을 살 수 있도록 투자자를 선별했다.

즉, 후작 가문이 가질 수 없는 루비를 남작 가문이 손에 넣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건 작위가 낮은 이에게는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작위가 높은 이에게는 최대한 빨리 흐름에 타야 한다는 조급함을 선사했다.

이 두 가지 감정들을 조절하며, 난 3년 동안 총 다섯 차례에 걸쳐 루비를 풀었다.

물론 원래 원작에서 앨턴 공작가는 그냥 한 번에 루비를 판매했다.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욕심이 계속 났거든.’

원작보다 더한 성공이 보이는데, 곧이곧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잖아?

이런 내 판단은 정확히 적중했고, 루비는 원작보다도 훨씬 큰 파급을 일으키며 팔렸다. 그리고 그 파급은 고스란히 열매를 맺어 내게 돌아왔다.

‘황제와의 대담 시간을 만들어 줬으니까.’

그것도 단둘이.

황제가 날 부른 이유는 간단했다. 마법 루비의 수요가 내수 시장을 넘어서 마갈라 제국으로까지 뻗어 갔기 때문이다.

날 자신의 티타임에 초대한 황제는 손수 내게 차를 따라 주며 말했다.

-마법 루비를 이용해 우리 제국뿐만 아니라 마갈라 제국의 고삐까지 단단히 틀어쥐었구나.

-과찬이십니다. 그저 부족한 능력껏 열심히 움직였을 뿐입니다.

내가 그렇게 대답하며 황제가 내민 차를 받자, 그가 후후 웃었다.

황제는 차를 한입 마시며 입을 열었다.

-슬슬 그 고삐를 풀어 주는 게 어떻겠느냐. 대신 마법 루비에 대한 세금은 일절 거두지 않겠다. 마갈라 제국도, 우리 제국도.

그 말에 난 찻잔을 잡은 손이 떨리지 않도록 평정을 가해야 했다. 그건 내 기대를 뛰어넘는, 그야말로 엄청난 혜택이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을 떠올리면 아직도 입꼬리가 올라간다니까.’

어느 곳이나 세금은 각 나라의 금고와 연결되었고, 특히 마법 보석 같은 사치품은 세율이 높았다.

이를 양보하겠다는 건, 그만큼 마갈라 제국이 간절하게 마법 루비를 원한다는 뜻이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

마갈라 제국은 생산량이 확보된 마법 자수정의 최대 수입국이었다. 우리 제국처럼 마도 공학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아직까지 많은 부분을 마법 보석에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산의 자원은 언젠가 동나기 마련이었고, 그들은 언제나 더욱 강력한 보석을 갈망했다.

‘그러다 마법 루비가 딱 등장했으니까.’

심지어 마법 루비는 가장 강한 마력을 품고 있는 마법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품고 있는 마력의 양이 많다는 마탑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그러니 얼마나 반가웠을까.

‘물론, 이 연구를 직접 의뢰하고 결과를 홍보한 건 나였지만.’

거기다 북부는 3년 전부터 마법 루비를 이용한 마갈라 제국의 진출을 언급했는데, 그 이후 움직임이 없으니 많이 답답했을 것이다.

‘물론, 걔네들 애타라고 일부러 간만 본 것도 나였지만.’

하여튼 단순히 희귀성과 아름다움 때문에 마법 루비를 얻고 싶어 하는 내수 시장과 그곳은 사정이 사뭇 달랐다.

난 차를 한입 마시며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려야 했다.

그때는 신중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마갈라 제국은 그렇다 치고…….’

왜 우리 제국에서도 세금을 걷지 않는다는 거지?

내가 아무리 물량을 조절했다고 해도, 지난 3년 동안 마법 루비는 적당히 시장에 풀렸다. 그러니 데커딜 제국은 급할 것이 없었고, 굳이 루비에 세금 혜택을 줄 필요도 없을 터였다.

‘오히려 잘못했다가는 귀족들 사이에서 앨턴 공작가와 북부를 편애한다는 불만이 생길 텐데.’

그런데 어째서?

이것이 의미하는 건 한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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