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장녀가 육아물에 빙의하면-81화 (82/197)

81.

‘이것 봐라?’

난 가넷을 들지 않은 다른 손으로 보석함에 장식되어 있던 크리스털을 떼어 냈다.

그리고 그걸 휙 창살 안으로 던졌다.

빠악-!

“크읍!”

크리스털은 정확히 창살 맨 구석에 앉아 있던 남자의 왼쪽 손목을 쳤다.

남자는 알 수 없는 신음 소리를 내며 인상을 찡그렸다. 일부러 날카로운 크리스털을 골라 있는 힘껏 던졌으니, 상당히 고통스러우리라.

“왜 그렇게 손이 바빠?”

내 말에 아픔을 참던 남자의 몸이 움찔거렸다.

난 그걸 보며 피식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어두워서 들키지 않을 줄 알았어?”

확실히 감시자답게 놈의 행동은 티가 잘 나지 않았다.

거기에 가넷의 등장으로 분위기는 긴장감이 맴돈 상태라, 옆에 있던 놈들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내 눈을 피할 수는 없거든.’

난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더너스에게 턱짓을 했다.

“저놈 손에 있는 거, 당장 가지고 와.”

내 명령에 더너스가 곧장 창살 안으로 들어가 웅크린 놈에게로 향했다. 남은 세 명이 그런 더너스를 막으려 움직였지만, 온몸이 꽁꽁 묶여 있으니 있으나 마나 한 반항이었다.

더너스는 빠르게 다른 놈들을 제압하고, 웅크린 감시자의 목덜미를 잡아 바닥으로 짓눌렀다.

“웁!”

바짝 상체를 엎드린 자세 덕에 뒤로 결박당한 놈의 손이 무방비로 드러났다.

더너스는 깔끔하게 그놈이 꽉 움켜쥔 것을 빼앗아 내가 잘 볼 수 있도록 내밀었다. 그건 작은 옷핀이었다.

그대로 시선을 내려 놈의 발목을 확인하니, 발목을 묶은 구속구의 잠금장치를 열려고 했던 흔적이 보였다.

더너스가 손을 뻗어 잠금장치를 점검했다.

“문제없습니다.”

‘당연하지.’

공작가의 죄인에게 쓰는 구속구다. 그런 걸 고작 옷핀으로 딸 수 있다면 그건 가문의 수치였다.

또한 이 행위로 알 수 있는 건 하나였다.

“그래, 말로 해서는 안 된다 이거로군.”

마침 내가 들고 있던 가넷은 저 잠금장치를 풀려던 감시자의 것이었다.

난 더너스에게 나오라고 턱짓을 한 후, 가넷에 천천히 마력을 부여했다.

그 순간, 바로 반응이 왔다.

“으으읍!”

더너스가 나오기 위해 감시자의 목덜미를 놓자, 감시자가 크게 당황하며 고개를 좌우로 돌렸던 것이다.

그 광경을 바로 옆에서 목격한 더너스는 침착하게 감옥에서 나와 창살을 다시 잠갔다.

“으으! 으으으읍!”

그 와중에도 놈은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무릎으로 질질 기어가다 넘어지는 둥, 벽에 머리를 쿵 부딪히는 둥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그 행동 하나하나가 무언가 부자연스러웠다. 마치 한순간에 빛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난 그걸 잠시 지켜보다가 쥐고 있던 손바닥을 펴 가넷을 내려다봤다. 내 마력을 머금은 가넷은 어느새 검붉게 빛나고 있었다.

‘사실 나도 조금 의심했는데……. 아직도 잘 작동되다니.’

작동하지 않은 지 무려 200년이 지난 마법인데 말이다.

내 선조가 만들었지만, 참 무섭고 잔인한 마법이었다.

더너스와 감시자들도 가넷이 검붉은 빛을 띠며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것을 알아본 눈치였다. 특히 감시자들은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경직되었다.

저들도 아는 것이다.

‘앨턴가의 직계가 계약이 완성된 가넷에 마력을 부여하면 마법이 발동된다는 걸.’

그리고 지금, 내 마력을 머금은 가넷이 저 감시자의 시력을 빼앗았다는 것까지 말이다.

한순간 시력을 잃은 감시자는 이제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그 절망에 빠진 모습이 또 다른 감시자들을 계속해서 공포의 구덩이로 밀어 넣고 있었다.

오죽하면 뒤에 있는 더너스까지 긴장하고 있는 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3, 2, 1.’

나 역시 저 모습을 마음 편하게 볼 정도로 무자비한 건 아니었다.

속으로 초를 세던 난 타이밍에 맞춰 가넷에 불어넣었던 마력을 다시 내게로 끌어당겼다. 그러자 은은하게 빛나던 가넷이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와 동시에 비탄에 잠겨 있던 감시자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러고는 똑바로 내가 들고 있는 가넷과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와 시선을 마주친 놈은 여전히 덜덜 떨리는 몸을 추스르지도 못한 채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난 그걸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선조들도 참 너그러워.”

내 말에 다른 감시자들이 이목을 집중했다. 난 그걸 보며 싱긋 웃었다.

“아무리 주인의 손을 물려고 하는 발칙한 사냥개라고 해도, 이렇게 한 번의 기회는 남겨 줬거든.”

감시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가넷의 비밀은 두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방금 내가 보여 줬던 것처럼 가넷의 마법을 일정 시간 안에 취소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과감하게 움직였지.’

물론 그 타이밍을 놓치면 마법은 그대로 진행되고 되돌릴 수 없게 되니, 상당한 주의를 요했지만.

감시자들 역시 대번에 내 말뜻을 이해한 모양이었다. 그들의 긴장이 조금은 풀린 것 같았다. 특히, 한 번 본보기를 당했던 감시자는 눈에 띄게 안도하며 참았던 눈물을 줄줄 흘렸다.

난 가만히 그걸 바라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너희는 가넷의 계약이 어떤 내용인지 정확히 모를 거야. 항상 구두로 경고만 들었을 테니까.”

내 말에 그들이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난 그걸 보며 마치 아이에게 설명을 해 주는 것처럼 나긋한 어조를 띄었다.

“가넷의 계약자는 ‘앨턴 공작가의 직계’의 말에 절대적으로 복종한다. 이를 어길 시, 그들은 죽음으로 그 값을 치른다.”

내 입에서 나온 진짜 계약의 내용에 감시자들의 눈에 동요가 일었다. 이게 바로 지금의 감시자들이 모를 가넷의 두 번째 비밀이었다.

“너희들은 그동안 가주에게만 충성하면 되는 줄 알았지?”

난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기울였다.

“아니야. 이제껏 감시자의 존재는 가주만 알았기에, 그에게만 충성이 요구됐던 것뿐. 사실 너희들이 복종해야 할 대상은 한 사람이 아니었어.”

사실 나도 이 사실은 안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아버지의 서고 다락에서 발견한 가넷의 기록에서 확인했으니까.

‘이 가넷은 처음부터 앨턴가의 직계면 전부 사용할 수 있었어.’

이유는 당연히 전쟁 때문이었다.

대대로 앨턴 공작은 북부 병사들의 사기를 위해 최전방에서 선두로 나서야 했고, 그로 인해 요절하는 경우가 많았다.

‘덕분에 앨턴 공작가는 세 공작 가문 중 가장 방계가 없는 가문이 되었지.’

이렇게 가주가 죽었을 경우, 새로운 가주가 나올 동안 감시자들을 이끌 존재가 필요했다.

그래서 이 마법을 개발한 마법사들은 처음부터 복종의 범위를 직계로 넓혔던 것이다.

‘그러다 전쟁이 끝난 후, 가주가 더는 바뀌지 않자 서서히 그 충성이 집중된 거고.’

이건 아직 가주가 아닌 나에게 아주 유리한 사실이었다.

난 특히나 가주에게 맹목적인 이 사냥개들을 보며 미소 지었다.

“안 믿겨?”

내 말에 크게 동요하던 이들이 홀린 듯 날 바라봤다.

난 그들을 보며 쐐기를 박아 주었다.

“내 말이 틀렸다면, 왜 내 마력에 이 가넷이 반응했겠어. 아버지의 마력에만 반응했어야 했는데.”

이 의문까지는 생각해 본 적 없던 듯, 감시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럴 만도 했다. 그들에게 가넷은 오로지 가주만 소유하고 있고, 가주만 관리하고 있었던 물건이었을 테니까.

‘나 같은 제삼자가 끼어들 줄 몰랐겠지.’

그들은 그동안 자신이 믿던 세계가 무너진 것처럼 혼란스러워했다.

난 그걸 보며 간결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많이 혼란스러우면, 그냥 내가 아까 했던 말만 머리에 잘 각인시켜. 너희는 억울해할 필요도, 궁금해할 필요도 없다는 거.”

난 그렇게 말하며 들고 있던 가넷을 놈들이 잘 볼 수 있게 흔들었다. 너희의 목숨은 내 손 위에 있는 것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

그리고 유유히 더너스에게 넘기니, 더너스는 두 손으로 가넷을 받은 뒤 보석함에 잘 넣어 두었다.

난 그걸 보며 일부러 또박또박 더너스에게 말했다.

“앞으로 이 넷을 네 밑으로 붙여 줄 거야, 더너스 로건. 네가 직접 관리하도록 해.”

“예, 벨라디 님.”

“혹시라도 이 가넷의 마법을 다시 체험하길 원하는 놈이 있으면, 바로 나에게 보고하고.”

이렇게 말하며 놈들을 흘겨보니, 감시자 넷은 이제 완전히 기가 죽은 채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 태도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이걸로 감시자들도 완전히 내 수중에 들어왔네.’

난 그렇게 걸음을 옮겨 지하 감옥을 빠져나왔다.

더너스도 묵묵히 내 뒤를 따르다, 감옥에서 나온 후에야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들은 언제까지 저기에 둘 예정입니까?”

“머리 식힐 시간은 하루면 충분하겠지.”

저들 역시 감시자이니 상황 판단은 빠를 것이다. 거기에 난 생판 남도 아니고 같은 앨턴이니, 금방 주인이 바뀐 것에 적응할 것이고.

그렇게 방으로 향하며, 난 더너스에게 속삭였다.

“저놈들에게 일부러 널 보여 준 거야.”

놈들을 굴복시키는 과정에서 더너스는 내내 내 옆에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저 넷은 더너스가 내 최측근이라는 것을 확실히 인지했을 것이다.

‘그러니 더너스의 말을 마치 내 말처럼 따르겠지.’

한마디로 더너스가 놈들을 더 잘 굴릴 수 있도록 내가 힘 좀 써 줬다, 이 말이다.

평생 주군을 모시는 기사였으니, 더너스는 곧바로 내 뜻을 이해한 모양이었다.

“더없는 영광입니다.”

묵묵한 더너스답게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지만, 그의 눈은 주인의 신뢰를 받는다는 묘한 흥분감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난 그걸 보며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더너스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네게 아주 중하게 맡길 일이 있다, 더너스 로건.”

내 말에 더너스가 즉시 한쪽 무릎을 꿇고 기사의 예를 취했다.

“뭐든 하명해 주십시오.”

“저 넷을 데리고 서부로 가. 그곳에 내게 꼭 필요한 사람이 있으니 반드시 찾아내야 해. 기간은 3년이다.”

“반드시 명을 수행하겠습니다, 벨라디 님.”

더너스가 그렇게 말하며 더욱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난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래, 이제 슬슬 더너스도 써먹어야지.’

정확히는 더너스의 가문인 로건 백작가와 그들이 가진 서부의 인맥들을 말이야.

이로써 내가 준비한 초석들은 얼추 준비가 되었다.

‘이제 기다릴 때인가.’

내가 뿌린 씨앗들이 발아할 순간을.

앞으로의 3년이 무척이나 기대가 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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