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장녀가 육아물에 빙의하면-80화 (81/197)

80.

내가 도착한 곳은 공작저 내에 위치한 어둡고 습한 지하 감옥이었다.

이곳은 우리 저택 중 유일하게 마법 전등을 설치하지 않은 곳으로, 아직도 횃불을 사용하고 있었다. 일렁이는 불빛 아래에서 난 더너스에게 받은 증거를 읽어 내려갔다.

「현 임시 가주는 자격이 없다.

독단으로 수도 저택에 황족을 머물게 했으며, 모든 사용인에게 이를 함구하라 명령했다. 이는 명백히 가문의 주인인 가주님을 기만하는 행위이다.

또한, 이 명령이 우리 감시자들에게 내려진 것 역시 심각한 사항이다.

우리의 존재가 가주님 외의 다른 존재에게 알려졌다는 뜻이고, 이 존재가 멋대로 우리를 조종하려 들고 있다. 감시자가 가주에게 비밀을 만드는 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벨라디 앨턴은 배신자나 다름없다!

긍지 높은 앨턴 공작가의 사냥개로서 다른 감시자들에게 촉구한다!

임시 가주의 옆에 붙은 ‘스티아 워커’를 처단하고, 오만한 벨라디 앨턴을 조속히 막아야 한다!」

“벨라디 앨턴이 무슨 일을 꾸미기 전에 구금하고, 이를 테오도르 앨턴 공작님께 보고해야 한다. 일어나자. 감시자의 충성과 앨턴 공작가의 위계를 우리가 바로 세우자.”

난 글의 마지막 말을 읊으며 시선을 떼 정면을 응시했다.

그러자 굵은 창살 너머, 온몸이 결박당한 채 무릎 꿇린 남자 네 명의 모습이 보였다.

난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다 천천히 창살 쪽으로 걸어갔다.

“재밌네.”

그렇게 창살 앞에 도달한 난 거침없이 들고 있던 증거를 찢었다.

쫘악-.

그러며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더너스에게 명령했다.

“불.”

내 말에 더너스가 벽에 걸려 있던 횃불 중 하나를 빼내 내 옆에 내밀었다. 찢은 조각들을 그 위에 올리자, 종이에 불이 붙었다.

화르륵-.

종이는 잘도 타올랐다. 그대로 손을 놓으니, 타오르던 증거가 돌바닥에 떨어지며 검은 재로 변해 갔다.

난 그 잔해를 짓밟으며 피식 웃었다.

“그래서, 나를 습격이라도 할 생각이었어?”

내 도발에 쇠사슬로 묶여 있던 놈들 중 가장 덩치가 큰 남자가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곧장 창살로 돌진했다.

철컹-!

지하 감옥 안에서 쇠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그러나 단지 그뿐.

창살은 단 하나의 흠도 생기지 않았고, 남자를 묶은 결박 역시 견고했다. 오히려 그는 중심을 잃으며 볼품없이 넘어지고 말았다.

“크읍!”

남자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나 그 눈빛만큼은 사납기 그지없었다.

다른 세 명 역시 살벌하게 날 노려보고 있었다.

“우웁!”

“우우웁!”

물론, 그 입에 재갈이 물려 있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는 힘들었지만.

‘딱히 상관없지.’

이런 상황에서 저놈들이 할 말이란 건 뻔했으니까.

“억울해? 너희는 원칙대로 행동했을 뿐이고, 규칙을 어긴 건 나니까?”

내 말이 맞았는지 놈들의 움직임이 더 거칠어졌다.

이미 온몸이 꽁꽁 묶여 갇혀 있는 상황인데도 기세가 죽지 않았으니, 그 패기는 인정할 만했다.

‘하긴, 우리 가문의 감시자 노릇을 하려면 이 정도는 돼야지.’

그렇다고 이렇게 세력을 뭉쳐서 하극상을 일으키려 한 건 그냥 넘어갈 수 없지만 말이야.

내가 킬리언의 일을 아버지에게 함구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아버지에게 정령사라는 카드를 들키고 싶지 않아서.

둘은 이 기회를 통해, 감시자들 내부의 ‘위험 요소’를 골라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저들의 말대로, 감시자의 주인은 원래 앨턴 공작가의 가주밖에 없으니까.’

그러니 원칙대로라면 난 감시자의 존재조차 모르는 게 맞았다.

하지만 어떻게 하나. 이미 원작을 통해 전후 사정을 전부 알아 버렸는데.

‘그럼 가만히 있을 수 없잖아?’

그래서 제플린을 회유했고, 스티아를 얻었다.

이 두 사람을 주축으로 일부 감시자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했다.

제플린과 스티아가 소개한 감시자들은 앨턴 공작가 자체에 충성하고 있었기에, 내가 가주가 아니라는 건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은 별문제 없이 일을 진행했지만…….

‘슬슬 감시자 전체의 충성을 얻고 싶어졌거든.’

하지만 분명 감시자 중에는 가주에게만 충성을 바치는 놈들이 있을 터였다.

내가 생각하는 위험 요소는 바로 이들이었다. 감시자들을 전부 손에 얻으려면, 난 필연적으로 놈들을 색출해야 했다.

‘마침 개정된 아동 노동법 덕분에 한 턴 쉬어가게 생겼으니, 타이밍이 좋았어.’

덕분에 킬리언의 방문을 활용해 괜찮은 덫을 만들 수 있었거든.

충성스러운 ‘위험 요소’들은 내가 설치한 덫에 어긋남 없이 걸려들었다.

이는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폐쇄적인 앨턴 공작가의 저택에 다른 누구도 아닌 황족이 머물렀다.

이는 반드시 가주에게 알려야 하는 중요한 사항이었지만, 내가 대놓고 이를 함구하라 명령했으니. 가주에게만 충성하던 이들은 당연히 이 꼴을 납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연락을 취할 거라고 여겼지.’

난 감시자 뒤에 사람을 붙여, 수상한 움직임을 찾아내면 그만이었고.

그러나 이들은 그 수준을 넘어서 직접적으로 날 공격하려 작당했다. 놈들이 이런 극단적인 일을 벌일 이유는 하나였다.

‘이미 수도 저택의 모든 정보망이 내 손아귀에 있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네.’

최소한 저택 부지 안에서는 내 눈을 피해 외부 정보원과 접촉할 수 없거든.

이것이 저들에게 큰 조바심을 불러일으킨 듯싶었다.

“더너스, 가져와.”

내 말에 더너스가 재빠르게 이쪽으로 다가와 들고 있던 보석함을 내밀었다. 난 그런 더너스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더너스 로건……. 내 예상보다 일을 깔끔하게 처리했단 말이야.’

감시자들은 감시에 있어 프로다. 그런 이들을 주시하도록 사람을 붙인다면, 마찬가지로 감시와 첩보에 숙련된 자여야만 했다.

난 그 역할로 더너스 로건을 골랐다. 그는 우리 가문의 기사로서 충분한 임무 수행의 능력을 갖췄고, 나와 따로 감시자 계약을 맺었기에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러모로 조건이 맞아서 스티아에게 받은 요주의 인물 목록을 넘기며 임무를 내렸지만.

‘혼자서 다수의 감시자를 관찰하는 건 어려운 임무였을 텐데.’

더너스는 신속하게 물밑에서 일어나던 정황을 눈치챘고, 저들이 쓴 고발문을 확보했다. 덕분에 나 역시 깔끔하게 놈들을 색출할 수 있었다.

‘이번 일을 보니, 앞으로의 임무도 믿고 맡길 수 있겠어.’

난 만족스럽게 웃으며 더너스가 내민 보석함을 열었다. 그리고 안에 든 것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으읍……!”

이런 내 행동에 꽁꽁 묶여 있던 감시자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몸을 굳혔다. 횃불만이 빛을 밝히는 어둑한 지하 감옥이었지만, 내가 집어 든 것을 용케 알아본 눈치였다.

난 그런 놈들을 응시하며 말했다.

“이걸 보는 건 오랜만일 거야. 계약 이후 처음이려나?”

그렇게 말하며 난 손에 든 것을 잠시 바라봤다.

그것은 가공된 가넷이었다.

앨턴 공작가의 직계가 마력을 불어넣으면 반강제로 계약 마법이 발휘되는, 감시자들의 목줄 말이다.

‘사실 이것까지 쓸 생각은 없었는데.’

그러나 아버지에게 내부의 정보를 보고하려는 것과 직접적으로 내게 이빨을 내보이는 건 일의 경중이 달랐다. 이렇게 과한 충성심을 보이는 위험 요소들에게 어지간한 협박은 소용없었다.

‘그럼 아주 확실한 공포를 심어 줘야겠지.’

거기에 이 가넷만 한 것은 없었고.

난 후후 웃으며 손에 든 가넷을 이리저리 굴렸다.

“내가 이걸 어떻게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

계약이 끝난 가넷은 감시자마다 서로 다른 인장이 새겨져 누구의 것인지 금방 구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보석함에 담겨 있는 가넷은 저 감옥 안에 갇혀 있는 놈들의 것이었다.

놈들도 그걸 눈치챘는지, 가넷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난 천천히 고개를 기울이다, 확 가넷을 힘주어 잡았다. 이 행동에 넷 중 한 명이 무릎을 질질 끌며 창살 쪽으로 기어 왔다.

철커덩-!

쇠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우웁! 우우웁!”

그 몸짓은 아까의 반항이 아닌, 다급하고 절박한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난 그걸 보며 가넷에 쥐었던 힘을 살짝 풀었다.

“사실 너희는 억울해할 필요도, 궁금해할 필요도 없어.”

난 그렇게 말하며 그들을 내려다봤다.

“중요한 건, 지금 너희의 목숨은 가주가 아닌 내 손 위에 있다는 것뿐이니까.”

내 말에 넷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방금 전만 해도 강렬하게 저항하던 놈들이 한순간에 얌전해진 건, 그만큼 가넷에 걸린 계약이 강력했기 때문이다.

‘이 가넷은 단순히 목숨만 앗아 가는 게 아니거든.’

내 선조들은 계약을 어긴 감시자들에게 편한 죽음을 선사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 당시 마법사들을 시켜 꽤나 악랄한 마법을 하나 만들어 냈다.

‘계약자의 감각을 하나씩 없애는 마법을 말이야.’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

계약을 어긴 배신자는 이 다섯 개의 감각이 예고도 없이 사라졌다. 마법에 걸린 즉시 하나의 감각이 사라졌고, 그 이후로는 정해진 순서도, 기간도 없이 랜덤으로 말이다.

그렇게 차례로 모든 감각이 사라지면 비로소 배신자는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거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는 나도 알 수 없어.’

기록에 따르면 한 달 만에 죽은 이도 있었고, 연 단위로 넘어간 이도 있었다.

이 마법의 가장 무서운 점은 자결을 할 수 없다는 것에 있었다. 마법사들은 배신자가 스스로 죽을 수 없도록 억제 마법까지 넣었기 때문이다.

이 무시무시한 마법은 일종의 저주와도 같았다.

‘심지어 그 고도의 마법을 가넷 같은 비교적 흔한 마법 보석에도 담을 수 있도록 조합해 놓았지.’

마법사들은 그렇게 계약이 담긴 가넷을 만든 후 전원 마력 폭주로 사망했다. 하나의 마법 보석에 두 가지 이상의 마법을 담은 자들의 최후였다.

그래서 북부 성에 가면, 이들을 추모하는 추모비를 볼 수 있었다.

‘그때는 잔혹한 전시 상황이었으니까, 이런 비인간적인 마법들이 난무할 수밖에.’

물론 전쟁이 금지된 후부터 이 대가를 치른 이는 없었다.

그렇긴 해도 감시자들은 감시자의 길을 선택할 때 배신의 대가에 대해 충분한 경고를 듣게 된다. 그러니 저들도 가넷의 공포를 어느 정도 알고 있을 터.

난 가만히 기세가 죽은 놈들의 표정을 관찰했다. 그러다 한 가지 가소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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