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애초에 내가 아카데미에서 실행할 계획은 이랬다.
일단 엘린을 포섭해 내가 쓸 카드로 만들어 놓고, 그다음 킬리언을 아무도 눈치 못 채게 우리 저택으로 데려가는 것.
엘린을 포섭하는 건 혼자서도 가능했지만, 킬리언을 데려가는 건 스티아와 제플린의 능력이 필수였다.
그래서 난 계획을 짜자마자 둘을 불러내 지령을 내렸다.
-이번에는 황태자의 눈을 속여야 해. 제플린 네가 며칠 동안 킬리언 황자인 척 잠입을 해야겠다.
그렇게 말한 난 얼마 전, 아이닝이 건네준 킬리언의 프로필을 제플린에게 넘겼다.
킬리언 본인이 직접 작성한 터라 그 일상이 세세하게 적혀 있었다.
-킬리언 2황자의 정보야.
-예, 벨라디 님. 임무 시행 전까지 전부 숙달해 오겠습니다.
제플린이 믿음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흡족한 대답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킬리언은 아카데미 생활을 오래 한 덕분에 기본적인 일상생활을 스스로 할 수 있었어.’
그래서 시종들의 시중을 따로 받지 않았고, 그들이 자신을 감시하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말을 아꼈다고 했다.
‘제플린이 위장하기에는 더없이 유리한 환경이지.’
또한, 이 작전의 핵심은 스티아의 변신 마법이었다.
스티아는 아주 미세한 마력 조종 기술이 특기인 마법사다. 그래서 일전에 앨턴 공작가 저택의 보안 마법을 뚫고, 제플린을 윌리엄으로 변신시키는 데 성공했지.
‘변신 마법에 한해서는 황궁보다 우리 저택의 보안 수준이 더 높은데 말이야.’
그걸 큰 어려움 없이 뚫은 스티아이니, 황궁의 마력 감지 시스템도 피해 갈 확률이 높았다.
난 내 예측을 확인하기 위해 스티아를 바라봤다.
-스티아, 넌 제플린이 잠입해 있는 동안 황궁에 설치된 감지와 시종들의 눈을 피해 변신 마법을 유지해야 해.
내가 말을 하면 할수록 스티아의 눈이 화르륵 불타올랐다.
-할 수 있겠니?
-예, 벨라디 님. 반드시 완수하겠습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여러 까다로운 조건들이 그녀의 도전 정신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스티아의 확답까지 들은 난 바로 계획에 착수했다.
계획을 진행하는 곳은 엘린도 있고, 교장도 있는 켄뉴브 학교.
일단 그곳에 킬리언을 불러들인 후, 그의 곁에 딱 달라붙은 황태자의 꼬리를 아까의 연극으로 전부 치워 버렸다. 그리고 킬리언과 제플린에게 서로 겉옷을 바꿔 입으라 말했지.
‘마지막으로 스티아의 마법을 사용해 둘의 외형을 바꾸면 완성.’
그렇게 킬리언의 모습을 한 제플린이 방금까지 나와 수다를 떤 후 황궁으로 돌아간 것이다.
난 고개를 돌려 스티아를 바라봤다.
참고로 스티아 역시 방금까지 본인의 얼굴을 전혀 다른 것으로 바꾼 상태였다. 지금은 킬리언처럼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지만.
“너도 돌아왔구나.”
“예, 벨라디 님.”
“그래, 이제 제플린의 마법을 유지하는 데 집중해.”
“알겠습니다.”
스티아가 제플린과 킬리언뿐 아니라 본인 얼굴까지 바꾼 건 남은 계획 때문이었다.
‘이제 스티아는 킬리언이 유혹하는 여자들 중 한 명으로 위장해 황궁에 방문해야 하니까.’
아무리 그녀가 뛰어난 마법사라고 해도 주기적으로 제플린에게 걸린 마법을 확인해야 했다. 이틀 정도는 유지가 되지만, 그 이후로는 불안하다는 것이 스티아의 소견이다.
‘마침 킬리언에게는 바람둥이 이미지가 있으니.’
그걸 이용해서 그녀를 황궁으로 보내는 것까지가 내 계획의 일부였다. 이때 호위 기사가 스티아를 기억하면 곤란했기에 얼굴을 바꿨고.
‘사실 스티아가 매번 본인의 얼굴을 바꾼 후 황궁을 방문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실시간으로 감지 마법이 돌아가는 황궁이다. 거기서 그녀가 자기 얼굴도 신경 쓴 채 제플린의 얼굴도 신경 쓰는 건 위험 부담이 컸다. 스티아는 그냥 제플린의 변신이 풀리지 않도록 집중하는 것이 나았다.
‘제플린은 못해도 일주일 정도 킬리언으로 있어야 해.’
단지 몇 시간 킬리언을 데리고 있을 거면 이런 귀찮은 작전 세우지도 않았다. 그냥 호위 기사들과 시종들을 잠시 잠재우고 말지.
내가 며칠 동안 킬리언을 저택에 숨기려는 이유는 확고했다.
‘제플린과 스티아가 활약해 주는 동안 킬리언에게 내가 아는 정보를 전부 넘겨야 하니까.’
킬리언은 기록을 보관할 수 없는 환경에서 생활한다.
그러니 원작에서 나온 정보와 감시자들이 조사해 온 것들을 세세히 알려 줄 수 없었다.
‘그럼 어쩌겠어. 단기간 안에 최대한 외우게 해야지.’
나와 일대일로 만나서 말이야.
특히나 앞으로를 위해서라면 ‘그’에 대한 것들은 무조건 암기시켜야 했다.
‘그자는 킬리언에게 꼭 필요한 부하가 될 테니까.’
이를 위해 난, 그와 나 모두 안심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 그 장소로 뽑은 곳이 내 손아귀 안에 있는 앨턴 공작가의 저택이었고.
이런 내 계획을 뒤늦게서야 알게 된 킬리언은 기꺼이 이 작전에 동의했다. 오히려 그는 본인이 더 즐거운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당신 하녀에게 친필 초대장을 작성해 줄게요. 길도 제 궁과 연결된 뒷길을 이용하면 조용하고 편하게 왔다 갈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킬리언의 목소리는 살짝 들떠 있었다.
그걸 보며 난 묘한 뿌듯함을 느꼈다.
‘아이닝에게 정보를 캐낸 보람이 있었어.’
내가 처음부터 킬리언에게 이 작전을 알려 주지 않은 건 내 장난기도 있었지만, 그의 흥미를 이끌기 위함이 컸다.
이건 그동안 내가 아이닝을 살살 구슬려 얻어 낸 정보 중 하나다.
-킬리언이 좋아하는 게 뭐냐구?
-그래, 뭐든 괜찮아.
-킬리언은 아이닝이 장난치는 걸 제일 좋아하지!
-장난?
-또래들끼리 노는 것도 좋아하지!
-또래?
-왜냐면 킬리언은!
거기까지 해맑게 외치던 아이닝은 금방 시무룩해졌다.
-친구가 아이닝밖에 없으니까아.
아이닝은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 한숨을 쉬더니 킬리언에 대한 것들을 종알종알 말해 줬다.
그것들을 정리하면, 일단 그는 살짝 소심한 편이라는 점.
그만큼 소설에나 나올 법한 대범한 작전, 무모한 도박 등을 동경한다는 점.
마지막으로 본인이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정령들은 본능적으로 계약한 상대의 내면을 들여다본다지.’
본인도 미처 자각하지 못한 진심들을 말이야.
그런 아이닝이 알려 준 것이니,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확실히, 킬리언은 상당히 고립된 어린 시절을 보냈어.’
그러니 또래와 어울린 경험도 현저히 적었을 것이다. 거기에 가족 관계도 완전히 망가져 있으니, 겉모습은 멀쩡해 보였지만 속은 엉망진창일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이런 소소한 이벤트를 준비해 봤지.’
어딘지 소설에나 나올 법한 스파이 작전을, 또래인 내가 장난을 곁들여서.
물론 이런 종류의 장난은 지금같이 작은 계획 한정이다.
‘앞으로 함께할 굵직굵직한 작전들은 의사소통이 잘돼야 하니까.’
난 힐끔 킬리언을 바라봤다. 언제나 웃는 얼굴의 킬리언이지만, 어쩐지 지금의 그는 조금 더 편안한 모습이었다.
‘킬리언의 호감을 얻는 건 생각보다 간단할지도 모르겠어.’
난 그렇게 생각하며 스티아에게 물었다.
“언제쯤 황궁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니?”
“모레 정오 이후면 될 것 같습니다.”
그 대답에 킬리언이 웃으며 말했다.
“제 초대장이 있으면 언제든 자유롭게 오갈 수 있을 겁니다.”
“좋아요. 제플린에게도 말해 놓았으니, 유동적으로 판단하겠죠.”
이제 슬슬 돌아가 볼까.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똑-.
“접니다, 벨라디 님.”
교장의 목소리였다.
스티아는 내 허락을 받고 문을 열었다. 교장은 인자한 얼굴로 한 손에는 검은색 로브를 든 채 안으로 들어왔다.
“일은 잘 마무리되었습니까?”
“덕분에.”
스티아는 교장의 손에서 로브를 받아 들고는 제플린에게 넘겼다.
제플린은 이게 무슨 용도인지 눈치채고는 피식 웃었다.
“철저하네요.”
그렇게 말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로브를 입은 후, 후드로 얼굴을 가렸다.
로브는 상당히 커서 키가 큰 킬리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숨겨 주었다. 난 그걸 확인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교장을 바라봤다.
“오늘 수고 많았어. 그 아이들이 요즘 눈여겨보는 애들이니?”
“맞습니다. 다들 하나같이 입이 무겁고 신중하죠.”
“좋아. 적절한 상을 주도록 해.”
“예, 벨라디 님.”
아이들의 입막음은 걱정 없었다. 어차피 큰 정보를 준 것도 아니고, 교장이 어련히 믿을 수 있는 애들로 골랐겠지.
‘이런 거에 일일이 신경 쓰지 않으려고 감시자를 쓰는 거니까.’
“그럼 가요, 킬리언. 당신을 제 저택에 초대하죠.”
“말로만 들었던 앨턴 공작가에 드디어 가는군요. 조금 설레네요.”
후드 아래로 드러난 입술이 시원한 호선을 그렸다.
난 교장의 배웅을 받으며 마차로 향했다.
먼저 내가 타고, 그다음 킬리언이 타고. 스티아는 날이 좋으니 마부석에 앉겠다며 자리를 옮겼다. 킬리언과 내가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자리를 피한 것이다.
‘기특하기도 하지.’
최측근인 제플린과 스티아에게는 킬리언과 내 관계를 얼추 설명했다. 한 목표로 나아가기 위해 손을 잡은 협력자.
하지만 그 목표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우리가 그리는 큰 그림은 가장 은밀하게 그려야 성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저 단편적인 조각들을 하나씩 맡길 차례야.’
곧 나와 킬리언을 태운 마차가 출발했다.
부드럽게 달리는 마차 안. 맞은편에 앉아 있던 킬리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들은 모두 알고 있는 건가요?”
그 말에 난 킬리언을 바라봤다. 어느새 후드를 벗은 그는 나와 시선을 마주한 채였다.
목적어 없는 의문이 무엇인지 알았기에, 고개를 저었다.
“당신과 제가 손을 잡은 것만 알아요. 전후 사정과 최종 목표를 알고 있는 건 아직 우리 둘이면 충분하니까.”
그렇게 답하며 난 방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