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장녀가 육아물에 빙의하면-66화 (67/197)

66.

그리리카 선황은 역사에 기록될 다양하고 파격적인 업적을 이룩한 황제였다. 또한 그녀는 제국의 수많은 악법을 뜯어고치고, 새로운 법안을 추가했다.

그중 선황이 죽기 직전까지 공을 들인 것을 꼽으라면 누구나 이것을 고를 것이다.

「황실은 평민이 누릴 수 있는 시설을 만들고 운영한다.」

저 법은 나라에서 평민들을 위한 최소한의 복지를 하겠다는 의미였다.

‘황실이 종종 민간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이나 진료소 등에 기부 같은 건 했지만…….’

그건 전부 보여 주기식이었고.

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시설을 운영한다는 건 말이 달랐다. 그건 귀족들에게 거둬들인 세금을 직접적으로 이용한다는 뜻이니까.

참고로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다. 평민에게는 따로 인권이랄 것도 없었다.

그러니 저 법안이 당시 사람들에게 얼마나 생소하고 기괴했을지, 안 봐도 눈에 선했다.

‘당연히 귀족들이 격렬하게 반대했고.’

하지만 그리리카 선황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녀는 정말 끊임없이 반대파 귀족들과 싸웠고, 말년에 도달했을 때 기어이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녀가 죽기 직전 거둔 마지막 승리였다.

그 결과물로 여러 복지 시설들이 생겨났는데, 가장 상징적으로 꼽히는 것이 평민들을 위한 학교, ‘켄뉴브 학교’다.

그해 온 제국을 완전히 뒤집었던 ‘켄뉴브 학교 폭발 테러 사건’의 장소이자, 내가 모스틴과 시온을 처음 만난 그곳 말이다.

‘안타깝게도 원작에서는 이 학교가 유지되지 않았어.’

공작가의 자제 중 한 명이 사망하고, 한 명은 불구가 된 시설이었다.

폭발 테러 사건 이후 황실은 학교 별관을 다시 지어 올렸지만, 사람들은 불길하다며 그곳을 피했다.

서부와 남부는 당장 저 건물을 없애라 강렬히 항의했고 평민들 역시 그런 귀족의 눈치를 보며 입학하지 않았다.

‘평민에게 교육의 장을 여는 것이 그리리카 선황이 생각했던 가장 핵심적인 복지였는데…….’

결국 학교는 얼마 안 가 폐교됐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건물을 폭발시킨 범인들은 가장 잔혹한 형벌을 받았지만, 어떻게 보면 본인들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다.

……뭐, 이건 원작의 이야기고.

‘내 덕에 결과가 아주 깔끔하게 뒤틀렸지.’

그것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그 당시 사상자는커녕 아직 어린 생존자들이 자력으로 사고 현장을 빠져나왔다.

이 드라마틱한 사건은 대서특필되며 엄청난 홍보 효과를 발휘했다.

‘심지어 우리는 제국에서 가장 귀하고 영향력 있는 아이들이었으니까.’

이런 우리가 기적처럼 그 폐허 속에서 몸 하나 다치지 않고 살아남았으니.

켄뉴브 학교는 희망의 상징이 되어 평민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덕분에 매년 입학 시즌마다 엄청난 경쟁률을 보여 줬고.’

그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제2, 제3의 켄뉴브 학교들이 수도를 넘어 제국 전역에서 생겼다. 물론 우리가 살아남았던 첫 번째 학교의 인기만큼은 따라가질 못했지만.

참고로 수도 학교 별관 정원에 가면, 기념비 하나를 볼 수 있었다.

‘모스틴, 시온, 내 이름이 새겨져 있는 커다란 기념비를.’

우리가 잔해를 뚫고 빠져나왔던 그 자리에 떡하니 세워져 있으니까.

그 기념비는 수도의 필수 관광 코스이며, 켄뉴브 학교의 자랑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심지어 원래 기념비가 아니라 우리 동상을 세우려 했었다. 물론 평민들이 다니는 학교에 고위 귀족 자제들의 조각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각되었지만.

‘그 안건을 낸 켄뉴브 학교 교장이 무척 아쉬워했었지.’

하여튼 기념비까지 세워질 만큼 켄뉴브 학교에서 내 인기는 대단했다. 나도 그 인기를 알기에, 종종 시간을 내 학교를 방문했었고.

나라에서 운영하는지라 따로 후원이나 선물은 할 수 없었지만, 내가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켄뉴브 학교 학생들은 무척 좋아했다.

‘고위 귀족의 방문만으로도 학교의 위상이 올라가니까.’

그리고 지금.

난 마차에서 내리며 살짝 삐뚤어진 모자를 바로 했다. 눈앞에는 투박하고 커다란 ㄷ자 형태의 건물이 보였다.

켄뉴브 학교였다.

‘여기도 오랜만이네.’

어머니가 쓰러진 후로 처음 오니까.

켄뉴브 학교는 귀족들이 이용하는 시설처럼 화려하거나 고급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외벽을 타고 자란 담쟁이덩굴이 눈에 띄는, 나름 소박한 멋이 있었다.

잠시 그걸 보는데 멀끔하게 차려입은 중년 남성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오랜만입니다, 벨라디 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켄뉴브 학교의 2대 교장이었다.

난 교장의 인사를 가볍게 받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그대도 얼굴색이 좋아 보이는군.”

내 말에 교장이 껄껄껄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렇습니까? 올해도 뛰어난 학생들이 많이 입학해 줘서 그런가 봅니다.”

그 흐뭇한 웃음소리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야. 인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 그들이 제국의 버팀목이 되도록 잘 교육하길 바라네.”

“예, 맡겨 주십시오. 아, 귀하신 분을 너무 오래 세워 두었군요. 이쪽으로.”

교장은 그렇게 말하며 나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그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길게 이어진 복도와 나열된 교실이 눈에 들어왔다.

제국에 설립된 모든 켄뉴브 학교는 학교가 세워진 지역으로 구분된다.

그 첫 번째 학교이자 본교인 수도의 켄뉴브는 다른 학교들보다 부지와 건물이 유달리 넓었다. 이는 수도에 거주 중인 평민들의 영향이 컸다.

‘다른 지역보다 교육열이 높으니까.’

수도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너나 나 할 거 없이 언제나 더 높은 계급으로 올라가고 싶어 했다. 그건 아마,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보다 귀족을 자주 마주칠 확률이 높기 때문일 거다.

‘그래서 자식 교육에 열을 올리는 거고.’

형편이 좋으면 그걸 그대로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형편이 나쁘면 자식만큼은 더 나은 삶을 살기 바라서.

이런 수도 사람들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했던 그리리카 선황은 학교를 건설할 때 아낌없이 돈을 후원했다.

그녀 역시 최대한 많은 인원을 받아들이고 싶었으니까.

‘그만큼 크게 지었는데도 매년 입학자가 정원 초과된다고 하니.’

그 인기가 다시금 실감 났다.

켄뉴브 학교에서 눈여겨봐야 하는 요소는 한 가지 더 있었다. 바로 이 학교의 교육자들이다.

그리리카 선황은 학교를 지으며 추가 부가 가치를 노렸는데, 바로 여성들의 일자리 창출이었다.

‘법을 뜯어고쳤으나, 사회 진출의 길은 여전히 좁은 탓이었지.’

그리리카 선황은 켄뉴브 학교의 선생들을 모조리 직접 뽑았다.

그 선별에는 일종의 기준이 있었다.

일단, 어린아이들에게 기초적인 지식부터 가르치는 것이니 학식이 매우 깊지 않아도 됐고.

직업을 가지는 것에 욕심이 있으며.

아이들을 가르쳐 본 경험이 있는.

나름의 사명감을 가진 사람.

그리고 그 기준에 딱 부합하는 이들이 있었다.

‘귀족 아이들을 가르치던 가정 교사.’

몰락 귀족이거나, 단승 작위 가문의 여성이 많이 선택했던 ‘가정 교사’는 그 당시 여성이 가질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이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넘쳐 나는 공급을 수요가 따라가질 못했지만.’

날이 갈수록 일자리를 잡지 못하는 가정 교사들이 늘어나는 추세였다. 이를 유심히 지켜보던 그리리카 선황은 학교를 세우며 그녀들을 한꺼번에 선생으로 채용했다.

물론 그 파격적인 행보에는 다양한 잡음이 따라왔다.

‘특히 여자에게 아들을 맡길 수 없다며 들고 일어나는 무리가 있었어.’

노쇠한 그리리카 선황은 이걸 잠재우지 못한 채 죽었고.

여기서 다행인 것은 그녀의 아들인 현 황제가 선황의 유지를 이었다는 점이다.

황제는 책임지고 그녀들의 자리를 보장했다. 이런 황제의 비호 아래, 가정 교사들 역시 빠른 속도로 학교에 적응하며 수업을 진행했고.

어차피 그녀들을 안 좋게 보는 건 풍족한 환경에 학문 좀 배웠다는 지식층이 대다수였다.

그런 지식층보다 교육의 기회는 적고, 숫자는 월등히 많은 평민들은 선생이 남자든 여자든 신경 쓰지 않았다.

‘거기에 나와 모스틴, 시온의 일도 최고의 홍보 효과를 냈으니.’

입학생은 끊기지 않았고, 학교는 수월하게 돌아갔다.

덕분에 지금의 교육 분야는 여성들이 마음 편하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영역이 되었다.

참고로 내가 오늘 이곳에 방문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오늘 만날 이가 이 학교의 선생이니까.’

교장은 날 학교 안쪽에 위치한 응접실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산책로 방향으로 설치된 커다란 테라스와 운동장 방향으로 나 있는 직사각형 창문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 종종 방문했던 난 익숙하게 상석 소파에 앉았다. 그러자 교장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입을 열었다.

“벨라디 님, 이곳에서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지금 신학기라 시간을 빼기 어려웠나 봅니다.”

“알겠어. 그보다 내가 말한 건 잘 준비됐나?”

내 말에 교장이 방긋 웃었다. 그 웃음이 긍정의 의미임을 아는 난 피식 입꼬리를 올리며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 후 교장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니, 곧 경쾌한 피아노 소리가 학교 곳곳에 설치된 마법 스피커에 울려 퍼졌다.

동시에 고요하던 학교가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졌다. 마침 기다리기 지루했던 난 소파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창문 너머로 아이들이 우르르 운동장으로 달려 나가는 것이 보였다.

“활기차네.”

내 말에 교장이 조용히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곤 창밖을 보며 껄껄껄 즐거운 듯 웃었다.

“녀석들. 피아노 소리가 다 끝나기도 전에 운동장으로 나오다니. 수업 시간 내내 나갈 궁리만 했나 보네요.”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교장의 눈이 살짝 예리하게 빛났다.

그때 누군가 빠르게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난 몸을 문 쪽으로 돌린 후, 창가에 살짝 기댔다. 교장 역시 기척을 읽었는지 창가에서 떨어졌다.

“왔군요.”

똑똑똑-.

그와 동시에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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