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장녀가 육아물에 빙의하면-50화 (51/197)

50.

그 비웃음에서 이런 속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싸움을 걸 때는 후폭풍을 수습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걸, 이제 뼈저리게 깨달았지? 후회해도 늦었어. 벨라디 앨턴.’

비웃음의 의미가 너무 뚜렷했기에, 나뿐만 아니라 북부의 가신들도 저 속내를 눈치챈 모양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가신들의 신음이 여기까지 들렸다.

“아이고, 맙소사.”

“결국 일이 이렇게 되는구나…….”

“저 투자를 성공시켜야 우리 영지가 먹고사는데.”

반대로 남부의 가신들은 자기들끼리 꼴 좋다며 수군거렸다. 그 모습에 북부의 가신들은 더욱 끙끙거리며 나를 바라봤고.

굳이 뒤돌지 않아도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수도에서 쫓겨날까 봐 일단 싸우기는 했는데……. 이렇게 돈을 벌 기회를 놓쳤구나, 놓쳤어!’

심지어 내 바로 뒤에 있는 리켄 남작도 작게 한숨을 쉬었다.

“으음, 앨턴 공작님께 이를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

“그럴 필요 없어.”

난 그에게 작게 속삭이며 웃었다.

“앞으로 우리 북부는 모든 투자를 중지할 거니까.”

“……예?”

리켄 남작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을 때, 케스퍼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남부는 여기까지 말하겠습니다.”

그 말에 황태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북부의 투자를 받지 않는 건 당사자의 마음이니 황실은 굳이 관여하지 않겠다.”

종종 귀족들 간의 갈등이 생기면 황실에서 중재를 해 주고는 했다. 하지만 황태자는 이 일에 끼어들기 싫다며 직접적으로 선을 그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노골적으로 남부의 편을 들어 주는 것이나 다름없는 짓이었다.

그 태도에 케스퍼의 능글맞은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난 그걸 빤히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저희 북부의 소식 전하겠습니다.”

내 말에 황태자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케스퍼가 입을 열 때와는 사뭇 다른 표정이었다.

‘하긴. 언제나 새로운 이슈를 가지고 오는 남부와 다르게, 우리 북부는 거의 똑같았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도 그럴까?

난 오늘 착용하고 온 목걸이를 쓰다듬으며 또박또박 말했다.

“우선 축하해 주십시오, 전하.”

내 말에 딴짓을 하고 있던 황태자가 의아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난 그를 보며 싱긋 웃어 보였다.

“앨턴 공작님께서 조사를 맡은 북부의 동굴. 그것이 마법 보석 광산임을 확인받았습니다.”

그 말과 함께 난 목걸이에 장식된 루비에 얕은 마력을 흘려 넣었다. 그러자 보석에서 빛줄기가 나오더니 이내 커다란 스크린으로 변했다.

안에는 아버지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화면 속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전하, 테오도르 앨턴 인사 드립니다. 현재 중요한 공사를 앞두고 있어 부득이하게 마법으로 말씀드리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회의장에 울려 퍼졌다.

회의장에 있던 모두 입을 떠억 벌린 채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일전에 보고드린 동굴에 대량의 마법 루비 원석이 묻혀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 말에 회의장 곳곳에서 숨을 들이켰다.

“루, 루비?”

“마법 보석인 것도 놀라운데, 루비라고요?”

“맙소사……. 맙소사!”

그건 북부의 가신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리켄 남작은 멍한 얼굴로 내려간 안경을 올리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버지의 영상은 계속되었다.

[앨턴 공작가의 임시 가주에게 소량의 루비를 가공해 보냈습니다. 그러니 가주 회의 때는 이 루비 외의 다른 루비들 역시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아버지의 말이 여기까지 나왔을 때 몇몇 가신들은 참지 못하고 질문을 쏟아 냈다.

“앨턴 공작님! 그 말이 사실입니까?!”

“루비의 유통은 언제부터 가능한 거지요?!”

저들의 질문에 아버지는 답하지 않으셨다.

당연한 일이었다.

[참고로 이 영상은 영상 마법이 아닌, 녹화 마법을 담은 루비로 촬영했습니다. 따라서 모든 궁금증에 답을 해 드릴 수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질문 세례가 쏟아질 걸 짐작하고, 미리 싹을 잘라 놨으니까.’

그 말에 모두들 다급한 기색이 역력했다.

여기서 아버지는 가장 중요한 말을 내뱉었다.

[또한 이번 루비에 대한 모든 권한을 임시 가주에게 맡겼으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저는 이만.]

그 말과 함께 화면 속 아버지가 뿅 사라졌다.

그 순간 난 나오는 웃음을 참지 않았다.

“하하하-!”

모두의 시선이 내게 꽂힌 것이 느껴졌다.

난 그 시선을 기꺼이 즐기며 유쾌한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저희 아버지도 참 통이 크신 분입니다. 저런 거대한 기회를 제게 그대로 일임하시다니.”

난 그렇게 말하며 테이블을 가볍게 두 번 두드렸다.

똑똑.

아버지가 자주 쓰는 신호였다.

‘웃어.’

이 신호를 빠르게 알아들은 리켄 남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누구의 말마따나 앨턴 공작님은 파격적인 선택을 좋아하시니까요.”

그 말에 멍하니 있던 북부의 다른 가신들도 옳다구나 하며 화목하게 웃기 시작했다.

“공작님께서 아무런 근거도 없이 벨라디 님께 모든 걸 일임했을 리가요.”

“맞습니다, 모두 벨라디 님을 인정하니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허허허, 그나저나 발견된 광석이 루비라니! 마법 루비는 대륙에서도 처음 아닙니까?”

“그게 저희 북부에서 발견된 것도 전부 다 벨라디 님의 덕인 것 같습니다!”

그들은 기대 이상으로 너스레를 떨며 아부까지 곁들였다. 본인들 역시 방금 전까지는 아무것도 몰랐으면서, 이런 면에서는 정말 대단한 자들이었다.

여하튼 이들 덕분에 회의실의 분위기는 또다시 내 쪽으로 넘어왔다.

난 미소를 유지하며 루비 목걸이를 매만졌다.

‘아버지가 통이 큰 것도 있지만. 내가 미리 움직인 몫이 컸지.’

난 아버지가 귀찮은 일을 매우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조사 중인 동굴이 마법 루비 광산일 것 같다는 그의 편지에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

「루비에 영상을 녹화해 소식을 전하는 건 어떨까요? 그런다면 루비의 효과도 입증하고, 이쪽이 전할 소식을 일방적으로 보내니 쓸데없는 의혹들을 무시할 수 있을 거예요.

또한, 보석의 모든 권한을 제게 넘겨주신다면…… 아버지께서 더 자유롭게 루비 발굴에 집중하실 수 있지 않을까요?」

내 편지에 아버지는 루비 몇 개를 보내며 허락의 답장을 보냈다.

사실 그 답장에는 영상을 녹화한 루비를 미리 황태자와 황제에게 보여 주라고 적혀 있었지만…….

‘적절한 타이밍을 기다려야 더 극적인 효과를 가지고 오지.’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적기였고.

심지어 케스퍼의 심술 덕분에 효과가 더 크게 발휘되었으니, 그에게 감사 인사라도 해 줘야 할 판이었다.

난 싱긋 웃으며 케스퍼를 바라봤다. 그는 여전히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뒤에 있는 남부 가신들은 그게 힘든 모양이었다.

난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고 아버지가 보낸 가공된 루비를 꺼냈다.

“앨턴 공작님의 말씀대로 앞으로 저희 가문에서 발굴할 루비는 모두 제가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난 그렇게 말하며 테이블 위의 루비 중 가장 큰 것을 집어 들었다. 화려한 붉은색의 루비가 회의장의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이 가주 회의를 통해 공식적으로 발표하겠습니다. 저희 북부는 현재 하고 있는 사업 외의 모든 투자를 당분간 중단합니다.”

내 말에 모두들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륙을 통틀어 2번째로 발견된 마법 보석 광산이다. 거기다 지금까지 발견된 적 없던 마법 루비가 매장되어 있으니 그 가치는 더욱 남달랐다.

‘이 엄청난 기회를 두고 다른 곳으로 힘을 분산시키는 건 말이 안 되니까.’

물론 몇몇 이들은 내 말에 매우 분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북부의 투자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남부의 가신들 말이다.

‘싸움은 후폭풍을 수습할 능력이 있어야 키울 수 있다고? 봐라, 이 머저리들아. 난 그까짓 거 언제든 감당할 수 있어.’

난 그런 의미를 담아 케스퍼를 비웃었다. 그러자 케스퍼의 얼굴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걸 구경한 채, 난 말을 이었다.

“또한 루비의 원활한 발굴과 가공, 유통에 힘을 보탤 투자자를 모집하겠습니다.”

내 말에 회의장에 모인 모두의 머리가 바쁘게 굴러가는 것이 보였다. 마법 루비는 당연히 탐나는 시장일 테지만, 섣불리 긍정의 신호를 보내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 그동안의 북부는 투자를 하는 입장이었지, 받는 입장이 아니었다. 무엇이든지 처음에는 리스크가 생길 수 있었고, 귀족 사회는 그런 걸 무척 싫어하는 보수적인 이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거기다 방금 전, 남부에서 새로운 교역로를 개척했다고 발표했으니.’

전통적이고 안정적인 투자처가 있는데, 굳이 루비에 투자해야 할까? 구도를 보아하니 새 교역로와 루비가 라이벌로 구축될 것 같은데, 어떤 선택을 해야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을까?

각 연합의 가신이 아닌 한 가문의 가주로 돌아간 귀족들의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나는 듯싶었다.

‘뭐……. 인정하기는 싫지만.’

후계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어린 여자가 이끄는 사업이 얼마나 성공하겠냐는 편견도 고민에 한몫할 것이다.

난 그 고민에 마침표를 찍어 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참고로 갑작스러운 루비의 대량 유통은 그 가치가 훼손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판매는 엄선된 분들께만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러자 계산기를 두드리던 가주들이 동작을 멈추고 전부 나를 주시했다. 내 대답을 기다리는 그 눈들이 전에 없을 만큼 강렬했다.

난 가지런히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 기준은……. 여러분들도 아실 거라고 믿습니다.”

대놓고 말하자면, 투자자한테만 루비를 판매하겠다.

그 순간, 극명하게 보였다.

‘대륙에 첫 등장 하는 마법 루비, 거기에 물량까지 조절한다.’

이 말에 눈이 먼 귀족들의 욕심이.

난 그걸 보며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

“따라서 투자자도 약간의 심사를 거쳐 받을 예정이니 염두에 두시길 바랍니다. 아, 그리고…….”

난 맞은 편에 있는 케스퍼를 보며 한쪽 눈썹을 올렸다.

“저희 북부는 남부의 투자를 거절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언제든 심사에 도전하세요.”

자존심의 쐐기를 박는 내 마지막 말에 결국 케스퍼의 얼굴이 와르르 무너졌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케스퍼는 분함을 참지 못하고 이를 아드득 갈았다.

그걸 보며 피식 한쪽 입꼬리를 올리는데, 어디서 청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