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장녀가 육아물에 빙의하면-33화 (34/197)

33.

“저택 내 사람 중, 가장 수상한 움직임을 보인 자의 방에서 발견했습니다.”

스티아는 그렇게 보고하며 내게 종이 몇 장을 내밀었다.

“마법으로 무언가를 말소한 흔적이 보여 추적하니, 이 종이들이 복구됐습니다.”

난 그걸 받으며 물었다.

“결정적 증거는 이것뿐이니?”

“예. 오늘을 기준으로 1년간의 마법을 더 추적했지만, 추가로 나온 것은 없었습니다.”

“감시자들의 반응은?”

“그들은 앨턴 가문 자체에 충성을 맹세한 자들이기에, 별 거부감 없이 벨라디 님의 명령을 수행했습니다.”

“그래, 수고했어.”

내 말에 스티아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쓴 안경이 변한 각도에 따라 반짝였다.

“이후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이만 나가도 좋아.”

“예, 벨라디 님. 언제든 명령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스티아는 이 말을 남기고 방을 나섰다.

달칵-.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고, 난 스티아가 넘긴 종이를 살펴봤다.

“명령을 내린 지 얼마 안 지났는데, 증거를 금방 찾아왔네.”

종이에는 나와 멜도르의 관계 변화 같은 것들이 아주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난 그걸 읽으며 비릿하게 웃었다.

‘스파이는 자신이 증거를 완전히 없앴다고 자만했겠지.’

그랬다면 ‘앨턴 공작가는 반드시 배신자를 색출한다.’라는 말이 나오지도 않았다.

바람잡이들을 푼 후, 난 곧바로 스티아를 불러 다른 감시자들을 활용하고 싶다 말했다. 내 말에 스티아는 감시자 중에서도 인물 몇을 내게 추천했다.

추천을 받은 즉시, 난 스티아를 통해 그들에게 명령을 하나 내렸다.

-배신자가 있다. 저택 내에 의도적으로 소문을 퍼트렸으니, 수상한 행동을 보이는 놈이 있으면 즉시 증거를 확보하도록.

평소에는 감시자들을 활용할 사건이 없어서 입맛만 다시고 있었지. 그러니 이번 기회를 통해 그들의 능력을 테스트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의심 가는 놈이 있지만, 굳이 누군지까지 언급하지는 않았고.’

그렇게 며칠 후.

감시자들은 정확하게 내가 의심하던 놈을 첩자로 지목했다.

게다가 내 예상보다 더 짧은 시간 안에 결정적 증거까지 복구해 냈으니, 난 순수하게 감탄했다.

‘이 정도면 굳이 바람잡이를 풀 필요도 없었겠네.’

특히 스티아.

스티아는 독보적인 수식을 사용해 마법으로 없앤 이 서류들을 완벽히 복구해 냈다. 그 복구 수식은 원작에서도 아주 유용하게 쓰였었다.

‘스티아 외에도 감시자들 모두 하나씩 특기가 있다고 했지?’

이건 무슨 앨턴 공작가의 보석함도 아니고.

뛰어난 인재들을 감시자라는 명목으로 죄다 모아 놓은 느낌인데…….

물론, 이 좋은 보석함을 타인한테 오픈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이렇게 생각하니 이번 배신자는 참 운이 좋았다. 저택에 심어 놓은 기사단의 감시자는 제플린 하나인데, 정작 제플린은 외부 활동으로 저택을 자주 비웠으니까.

‘이게 다 아버지가 기사들을 너무 신뢰해서 생긴 일이야.’

검을 숭배하는 북부의 주인답게 아버지는 기사들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셨다. 그만큼 그들을 믿기도 했고.

그래서 마음 편하게 기사단을 담당하던 제플린을 외부로 돌린 것이다.

‘아버지가 저러시면 내가 수습해 줘야지, 어쩌겠어.’

지금은 제플린이 기사단에 복귀를 했지만, 측근으로서 내 옆에 둬야 했다. 그러니 기사단 내부에 감시자를 따로 심어 두는 게 좋을 듯싶었다.

‘새로 심을 감시자는……. 온전히 내 사람으로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난 읽던 종이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유출된 정보가 나와 멜도르의 관계뿐이라…….”

시시하다, 시시해.

그래도 나름 스파이로 행동했으면 더 큰 정보를 유출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앨턴 공작가가 한번 제대로 털려 줘야 아버지한테 타격이 갔을 텐데.’

그래야 내가 파고들 틈이 더 넓어질 것이고.

……하긴, 가문을 좌지우지할 핵심적인 정보들은 아버지가 몸소 관리했다. 그러니 스파이가 거기까지 접근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은근 아쉬움이 들었지만, 가볍게 넘기기로 했다. 난 아직 성년식도 치르지 않았으니, 큰 욕심을 낼 필요 없었다.

‘아직은 도약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할 때니까.’

그나저나 이 스파이를 어떻게 할까.

놈을 떠올리자 피식 실소가 나왔다. 원작을 봤기 때문에 첩자의 정체를 예상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더러웠다.

나와 앨턴 공작가를 배신한 괘씸한 스파이. 그 정체는 바로 한때 어머니를 제일 가까이에서 지켰던 ‘호위 기사’였다.

그는 본분을 망각하고 주인에게 연정을 품은 한심한 작자이기도 했다.

그래도 꼴에 우리 가문 기사라고 그 새끼는 포커페이스를 잘 유지하고, 제 감정을 철저히 숨겨 왔었다.

그럼에도 과거부터 놈을 볼 때마다 뭔가 싸하기는 했지만…….

‘감히 어머니에게 엉뚱한 마음을 가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

그는 어머니가 죽자마자 앨턴 공작가에 적의를 가지게 된다. 공작 가문이나 되면서 어머니를 살리지 못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다 네시아가 입양되면서 그 아이에게 새로운 충성을 맹세하는데, 이게 살짝 찝찝한 점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놈이 기사단으로 복귀한 것까지는 원작과 똑같아.’

하지만 그 새끼가 첩자가 된다는 내용은 없었다.

‘이 호위 기사는 여주인 네시아가 얼마나 공작 부인과 똑같이 생겼는지 부각해 주는 역할에 불과했어.’

그런데 왜?

‘……아, 그러고 보니.’

원래 네시아는 북부가 아니라 수도에서 지냈다.

하지만 내 계획에 의해 아버지가 북부로 향했고, 자연스레 네시아도 북부에서 지내게 되었다.

‘이 시기에 네시아를 보고 충성을 맹세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으니 첩자로 변절한 건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그래, 킬리언 황자 외에 돌발행동을 보이는 인물이 또 존재하면 안 되지.’

그러면 내 골치만 아파졌다. 내가 원작을 비튼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내용이 꼬이는 건 결코 좋은 현상이 아니니까.

난 펜을 집어 들었다. 여하튼 아버지에게 이 모든 상황을 보고해야 했기 때문이다.

‘스파이가 사용인 중에서 나왔다면 내 권한으로 체포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기사나 가신 같은 고급 인력이라면 내 권한을 벗어나게 된다.

고급 인력의 모든 관리 권한은 가주인 아버지에게 있었다.

‘……만약 아버지가 내게 그 권한까지 넘겨줬다면 이렇게 보고서를 쓸 필요도 없겠지.’

편지를 쓰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저택에서의 내 입지도 수직으로 상승할 수 있었다. 사용인을 관리하는 것과 기사를 관리하는 건 급이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편지 겸 보고서를 작성하던 난 잠시 손을 멈추었다. 그리고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스파이가 만들어 준 절호의 찬스를 이렇게 날릴 수는 없어.”

감시자의 능력을 테스트한 것 가지고는 만족이 되지 않거든.

이용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활용하는 게 예의 아니겠어?

쫘악-!

난 적고 있던 편지를 거침없이 찢어 버렸다.

원작을 알고 있다는 건 참 여러모로 유용했다.

‘마침 이 스파이와 함께 엮일 놈이 또 있으니까.’

난 내 영향력을 한 단계 높여 주기 위해 목 내밀고 기다리고 있을 제물을 떠올리며 씨익 미소 지었다.

***

아버지가 북부로 가시면서 저택에는 세 명의 가신이 상주하기로 했다.

그중 한 명은 원래 저택에 살다시피 했던 아버지의 최측근 보좌관인 리켄 남작이었고, 남은 두 명은 앨턴 공작가의 봉신 가문에서 뽑혔다.

‘브룩스 가문과 더미 가문.’

둘 중 내가 볼일 있는 것은 더미 가문에서 온 놈이었다. 그놈은 더미 남작의 차남으로 미래에 북부의 공금을 횡령할 놈이다.

그때의 북부는 한창 보석 광산을 개발하느라 정신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다 어느 정도 자란 네시아가 그 횡령을 밝혀 냈고 말이다.

네시아는 이걸 계기로 아버지에게 저택 내부 관리를 넘겨받게 된다.

‘지금은 내가 있으니, 그런 일 따위 일어나지 않겠지만.’

원작에서 밝혀진 차남의 횡령 기간과 지금은 시기가 맞지 않았다.

때문에 난 직접 덫을 놓기로 했다.

‘원작이 비틀렸어도 사람이 바뀌지는 않을 테니까.’

원작에서는 아버지가 북부로 떠나는 일이 없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브룩스 가문과 더미 가문의 사람이 장기간 수도 저택에 머물지도 않았고.

그러나 지금은 아버지가 떠나셨고, 그들은 이곳에 상주 중이다.

난 아버지가 떠난 후 가신들이 저택에 도착한 첫날부터 더미 가문의 차남을 관찰했다. 그 결과 차남은 욕심이 매우 많고 어리석은 인물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이곳은 북부가 아니지만, 수도에 있는 대저택인 만큼 큰돈이 움직였다. 유인을 위해 난 일부러 저택의 예산을 느슨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

‘차남의 입맛을 돋울 수 있게, 최적의 환경을 연출해 줬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남은 은밀히 내게 접근해 왔다.

-벨라디 님. 이번에 저택의 별관을 새로 단장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난 새어 나오려는 비웃음을 참았다.

원작을 통해 이미 차남의 횡령 수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공사가 거의 마무리돼 가고 있지요.

-새롭게 들일 가구들도 다 정하셨나요? 그게 아니라면, 제가 조금 도와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날 돕는다?

-별건 아니고. 제가 한때 수도에서 사업을 했던 적이 있어 나름 친한 가구 업자가 있습니다. 그들의 실력이 좋아서 괜찮으시다면 소개를 시켜 드리고 싶어서요.

이렇게 말하는 차남은 순박하고 푸근한 미소를 띠었다.

난 그걸 보고 싱긋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네가 이렇게 나와야 상황이 재밌게 돌아가거든.’

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잘됐군요. 안 그래도 백화점이 아니라 전문 업체에 직접 가구를 맡기고 싶었는데. 아, 차라리 더미 공이 내 대리로 그들과 직접 거래를 하는 건 어떨까요?

-예? 대, 대리 말씀입니까?

여기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던 듯, 차남의 동그란 눈이 더욱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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