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장녀가 육아물에 빙의하면-26화 (27/197)

26.

-황녀의 독점을 막는 법은 없지. 허나 황제의 독점을 막는 법은 존재한다. 내가 황제가 되면 모든 독점을 멈추고 구매의 자유를 허락하겠다.

그리리카 황녀처럼 본인이 직접 기술을 개발하고 사업을 하던 황녀는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황녀들을 막는 법 역시 따로 없던 형편이었다.

그리리카 황녀는 그러한 법의 맹점을 그대로 이용한 셈이다.

또한, 황녀는 허영심 가득한 귀족의 심리를 너무 잘 알았다. 그녀는 자신의 세력을 넓히기 위해 발명품 구매 제한 외에도 하나의 계책을 더 내었다.

마법 공학으로 벌어들인 억대의 돈으로 귀족 사회에 새로운 붐을 일으키기로 한 것이다.

그게 바로 지금 초대장에 적힌 황실의 ‘겨울 연회’였다.

‘정말 엄청난 센세이션이었겠지.’

모두가 집에 틀어박혀 하루빨리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겨울의 일상이었다.

그런데 한겨울의 연회라니!

황녀는 황실 연회장에 거대한 난방 시설을 설치했다. 그리고 자신의 세력만을 초대해 매일 색다른 연회를 열었다.

이 연회에 초대받은 귀족들은 적절한 온도가 유지되는 연회장 안에서 꽃이나 단풍이 아닌 ‘눈’과 ‘얼음 조각’들을 구경하였다.

겨울 연회를 즐긴 황녀파 귀족들은 연신 그것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그것뿐만 아니라 황녀의 허락을 받은 일부 귀족들은 겨울 연회와 관련된 상품을 내놓는 등 여러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황녀파 귀족들은 마법 공학 발명품으로 편리한 일상을 보내고, 아름다운 연회도 즐기고, 돈도 버는데.’

거기에 소외된 귀족들은 자신들이 뒤처지고 있음을 참지 못했다.

결국 반대파였던 귀족들이 하나, 둘 그리리카 황녀의 손을 잡았다.

딱히 난방 시설이 필요 없던 남부의 아글라는 끝까지 황태자의 편을 들었지만……. 중립이었던 서부의 프레도까지 그리리카 황녀의 편으로 돌아서자 하는 수 없이 대세를 따랐다.

결국 그녀는 대륙 최초로 여자로서 황제에 등극하는 것에 성공한다.

‘그걸 기념하기 위해 황실은 매년 겨울 연회를 열었고.’

특히 우리 앨턴가는 난방 시설을 북부에 전파하기 위해 첫 번째로 그리리카 황녀를 지지했던 가문이었다. 그러니 겨울 연회는 우리 가문에게도 꽤 특별한 행사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북부에 계시니 참석하지 못하시겠고.’

원래라면 북부에 있어도 텔레포트로 돌아와 참석해야 하는 행사였다.

다만 지금 아버지는 네시아를 돌보느라 수도로 돌아올 정신이 아닐 것이다.

‘다행히 대외적으로는 보석 광산을 조사하러 간 것이지.’

마법 공학의 발명품이 발달했어도, 마법 보석은 여전히 귀한 보물이었다.

발명품은 아무리 뛰어나도 결국은 실생활을 유용하게 만들어 주는 도구일 뿐, 허공에 보호막을 생성해 내 목숨을 보호해 주는 ‘마법’은 여전히 보석의 몫인 것이다.

그러니 마법 보석 광산 개발은 지금도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다.

황실 측도 아버지의 불참을 이해해 줄 것이다.

“오랜만의 연회네. 새 드레스를 맞춰야겠으니 디자이너들을 저택에 초대하렴.”

“예, 벨라디 님.”

난 하녀에게 그렇게 말하며 초대장을 집어넣었다.

그동안 어머니의 간호와 장례, 그리고 훈련에 집중하느라 사교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원래의 난 연회를 꽤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말이다.

‘그동안 사교계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난 제국의 유일한 공녀로 사교계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하던 인물이었다.

이런 내가 두문불출했으니, 흐름이 빠른 사교계가 어떤 변화를 맞이했을지 나름 궁금해졌다.

***

겨울 연회의 첫날은 빠르게 다가왔다.

보통 연회는 밤에 열리지만, 겨울 연회는 낮부터 열리는 것이 보통이다. 마침 날씨도 연회에 어울리게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난 새로 맞춘 벨벳 드레스와 코트를 잘 여미고 마차에서 내렸다. 내가 내리자마자 누군가 우산을 펼쳐 눈을 막아 주었다.

대기하고 있는 시종인 줄 알고 고개를 돌렸는데, 옆에는 말끔하게 차려입은 시온이 서 있었다.

“고마워, 시온.”

“안녕, 벨라디.”

“그런데 왜 네가 우산을 들고 있어?”

힐끔 그의 뒤를 보니 우산을 빼앗긴 시종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왜 남이 할 일을 뺏고 그래?”

“그냥……. 그러고 싶어서?”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내 어깨에 자신의 어깨를 밀착했다.

이렇게 나란히 서 있으니 어느새 시온의 키가 나를 추월해 가는 것이 느껴졌다.

앞으로 어느 정도 굽 있는 신발을 신지 않으면, 비슷한 눈높이를 가지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시온 쟤는 얼굴도 예쁘고 몸의 균형도 좋고 성격도 착한데, 키까지 크겠네.’

내 친구라서 이렇게 금칠해 주는 게 아니라, 시온은 진짜 잘난 놈이었다.

왠지 뿌듯한 마음에 고개를 끄덕이는데, 누군가 우리에게 어깨동무를 해 왔다.

“와, 눈 진짜 많이 온다!”

해사한 미소를 장착한 모스틴이었다.

“춥다! 우리 얼른 연회장으로 가자!”

모스틴이 호들갑을 떨며 우산 안으로 들어왔다. 어쩌다 보니 하나의 우산에 세 명이 옹기종기 모여 있게 되었다.

난 우산을 들고 있는 시온을 가운데로 보내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옷은 맞춰서 입고 왔네?”

여민 코트 사이로 모스틴과 시온이 입은 옷이 보였다. 오늘 우리 셋만의 드레스 코드는 짙은 와인 색의 벨벳이었다.

이 드레스 코드를 제안한 건 모스틴이다.

모스틴은 소속감을 무척 좋아하는 편으로 무엇이든 셋이 함께하는 걸 선호했다. 오늘 연회장 앞에서 만나 같이 들어가자고 제안한 것도 모스틴이었고 말이다.

모스틴은 우리 셋이 차려입은 걸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역시 다들 잘 어울릴 줄 알았어.”

“우리가 다 한 인물 하기는 하지.”

“시온 네가 그렇게 말해 주니까 영광이다.”

“그러게, 벨라디. 그나저나 오늘 시온 추종자들 또 난리 나겠어.”

우리는 그렇게 떠들며 연회장이 있는 황실 건물에 들어섰다. 건물은 입구부터 따뜻했다.

우리는 입고 있던 코트와 우산을 황실 하녀들에게 맡긴 후 문으로 향했다. 대기하고 있던 시종들은 우리에게 공손히 인사를 한 후, 연회장 문을 활짝 열었다.

열리는 문 너머로 보이는 연회장은 겨울과 어울리게 흰색의 향연이었다. 커다란 테라스들의 커튼들도 다 치워져 있어, 눈이 내리는 풍경이 무척 잘 보였다.

우리가 들어서자 삼삼오오 담소를 즐기던 귀족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난 여유롭게 웃으며 시종의 쟁반에서 샴페인이 가득 담긴 잔 하나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네 동생은?”

나와 같은 샴페인 잔을 집어 든 모스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난 가볍게 목을 축이며 말했다.

“요즘 마법 수업의 비중을 늘렸더니 거기에 푹 빠졌어. 공부하느라 못 가겠대.”

내 말에 시온도 입을 열었다.

“그래도 겨울 연회를 빠져?”

“내가 있으니까 멜도르 정도는 빠져도 돼. 아버지도 허락하셨고.”

멜도르가 얌전해진 건 무척 마음에 드는 상황이었다. 녀석이 이렇게 쭉 마법에만 몰두하면 내 영향력을 높이기 한결 편할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후후 웃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벨라디 양!”

“정말 오랜만이에요!”

평소 나와 자주 교류를 나누던 가문의 영애들이었다.

난 그녀들의 인사에 가볍게 미소 지었다.

“반가워요, 그동안 제 소식이 너무 뜸했었지요. 여러분들 편지에 일일이 답장을 보내지 못한 점, 사과드릴게요.”

“아니에요. 저희가 벨라디 양의 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맞아요. 전 이렇게 얼굴이라도 뵈니 너무 기뻐요!”

영애들은 내 주위를 감싸며 자신들이 앉아 있던 소파로 안내했다. 난 모스틴과 시온에게 눈인사를 한 후, 그녀들을 따라갔다.

내가 소파에 앉자 영애들이 우르르 모여들며 내게 말을 걸었다.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오늘 드레스가 정말 잘 어울리세요.”

“공자님들과 맞춘 모양이군요! 세 분의 우정이 두터워 제가 다 뿌듯한 거 있죠?”

난 미소를 유지하며 그녀들의 말을 경청했다.

참고로 말하자면, 난 내 나이 또래 여자애들에게 압도적으로 인기가 많은 편이다.

애초에 나와 모스틴, 시온. 우리 셋의 모임 자체를 동경하는 귀족 자제들이 많았고, 개인마다 사랑받는 팬층도 따로 있었다.

일단 모스틴.

모스틴은 나이대가 얼추 있는 귀족들에게 꽤 예쁨받았다.

아무래도 나와 시온에게는 없는 해사하고 친근한 미소가 어른들의 마음에 쏙 드는 모양이었다. 지금도 모스틴은 할아버지, 할머니뻘 되는 귀족 몇과 어울려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시온.

시온은…….

난 시선을 살짝 돌려 시온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내 몸짓에 다른 이들도 우르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아글라 공자님의 인기는 대단하네요.”

“전 사교계에서 저렇게 남녀 불문하고 인기가 많은 분은 처음 봬요.”

“저희 어머니 말씀으로는 아글라 공작 부인이 한창 사교 활동을 했을 때보다 더 인기가 많다고 해요.”

그녀들의 말대로였다. 시온의 근처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대부분 우리 또래였는데, 그들은 전부 얼굴을 붉힌 채 시온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건 전부 시온이 제국에서 가장 청순하고 아름답다는 아글라 공작 부인을 쏙 빼닮은 탓이었다.

‘저 외모 덕분에 사교계 최고의 미인이라는 소리를 듣는 거겠지.’

게다가 성격까지 동글동글하고 온화하니, 누구나 시온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시온에게 딱 붙어서 끊임없이 말을 거는 무리가 있는데…….

“아글라 공자님, 이것 받아 주세요. 제가 공자님을 생각하며 밤새 수놓은 손수건이랍니다.”

“시온 님, 시온 님이 마법을 좋아하신다는 말을 듣고 저희 저택 한 층을 마법 연구실로 만들었습니다. 꼭 들러 주세요.”

“이건 시온 님을 떠올리며 만든 향수예요. 앞으로 이것만 뿌려 주세요. 네?”

바로, ‘시온의 극단적인 추종자’. 그들은 시온의 극성 팬으로, 그에게 접근하기 위해 치열한 기 싸움을 벌이는 자들이었다.

마음 약한 시온은 곤란한 듯 웃으며 저들을 일일이 상대해 주고 있었다.

‘쟤도 참 피곤하게 산다니까.’

나라면 전부 무시했을 텐데.

일례로 과거, 시온의 추종자들이 나에게 접근한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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