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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장녀가 육아물에 빙의하면-21화 (22/197)

21.

때는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찾아왔다.

며칠 후, 정말 오랜만에 이루어진 가족 식사 시간.

한참 식사를 이어 가는데, 아버지가 조용히 운을 떼셨다.

“북부의 산속에서 이상한 동굴이 발견됐다.”

“이상한 동굴이요?”

스테이크를 썰고 있던 멜도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아버지를 바라봤다.

상석에 앉은 아버지는 물을 한입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산에서 약초를 따던 노인이 발견하고는 심상치 않아 신고했다고 하는데.”

‘왔구나!’

난 떨려 오려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흠…….”

잠시 고민하던 아버지가 우리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학자 몇은 그곳이 매우 위험한 동굴로 괜히 탐사를 하러 갔다가 지반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럼 그곳 근처 출입을 제한해야겠군요!”

멜도르의 말에 아버지가 한쪽 눈썹을 으쓱였다.

“다만 마법사들은……. 그 동굴 안에 꽤 많은 양의 자연 마력이 고여 있다고 보고했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마력을 마법이라 불렀고, 그렇지 않은 마력을 ‘자연 마력’이라 불렀다. 이런 자연 마력은 강처럼 일정한 흐름을 가진 채 움직인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대략 50년 전, 옆 나라 왕국에서 자연 마력이 호수처럼 고여 있는 동굴을 발견했다.

왕국은 곧장 탐사대를 꾸려 그 마력을 조사했고, 엄청난 광맥을 찾을 수 있었다.

‘그 동굴 전체가 마법 자수정 광산이었지.’

일전의 다이아처럼 마법을 새길 수 있는 보석!

한 광산에서 그런 마법 보석이 나올 확률은 아주 희박했다. 보통은 흐르고 있는 자연 마력에 노출된 보석 중 극히 일부분만 마법 보석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그 동굴은 자연 마력의 흐름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었다. 덕분에 오랜 시간 마력에 노출된 보석들이 많이 생겼고, 마법사들은 그 보석들 때문에 자연 마력이 고여 있는 거라 판단했다.

결국 정리하면 이렇다.

‘옆 나라 왕국이 마법 보석 광산을 발견하고 대박이 났다!’

그 왕국은 이 자수정 광산으로 순식간에 대륙 내의 강국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우리 영지에서 그런 곳이 발견된 것이다.

멜도르 역시 단번에 그 의미를 이해했는지 눈을 빛냈다.

하지만 말을 꺼내는 아버지는 침착했다.

“그게 보석 광산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는 없다. 괜히 탐사대를 보냈다가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어.”

확실히 그 이후에도 대륙 전체에 자연 마력이 고인 동굴은 몇 개 더 발견되었다.

그 지역의 권력자들은 욕심껏 동굴을 탐사했지만, 전부 꽝이었다. 오히려 무리하게 탐사를 진행해 산사태 같은 인재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소설 속 여자 주인공 집안이 그런 꽝 동굴을 발견했겠는가!

난 치솟으려는 입꼬리를 억누르며 내적으로 소리쳤다.

‘아버지! 그 동굴은 초대박 마법 루비 광산이라고요!’

이미 우리 가문은 질 좋은 철광석 광산을 소유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리고 거기서 캔 철광석을 팔아 상당한 부를 쌓았지.

하지만 마법 루비는 그 가치가 철광석 따위에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현재 발견된 마법 보석 중 루비는 없으니까.’

다이아도 희귀했지만, 존재하기는 했다. 하지만 마법 루비는 아직 발견조차 되지 않았다.

애초에 루비는 대륙에서 가장 인기 많은 보석 중 하나인데, 우리 가문에서 마법 루비를 선보인다면?

그럼 전 세계의 이목을 단번에 끌어모을 수 있었다.

‘천문학적인 돈은 부수적이고.’

물론 이건 원작을 읽은 나만 가질 수 있는 확신이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위험 부담이 큰 도박일 거야.’

원작에서도 이 동굴을 두고 계속 가문 회의가 열렸었다.

그때 후계자인 첫째 아들은 그 동굴을 탐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아버지는 그에게 모든 권한을 넘겨준다.

북부로 떠난 첫째는 신중하게 동굴을 탐사했다.

‘그리고 결국 그곳이 마법 루비 광산임을 밝혀내지.’

첫째는 자신이 발견한 루비 광산을 책임지기 위해 오랜 시간을 북부에서 보내게 된다.

덕분에 아버지를 찾아온 원작 여주 네시아를 가장 마지막에 만나는 오빠가 됐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단 말이야.’

내가 아무리 탐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해도, 아버지는 날 북부로 보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직 어린 멜도르를 보낼 리도 없고…….

우리 외에 할아버지가 있기는 하지만, 그분은 또 나이가 많으시고.

‘보석 광산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니 직계가 아닌 사람을 보낼 수도 없겠지.’

그러면 결국 아버지밖에 남지 않는다.

난 물로 목을 축인 후 입을 열었다.

“저는 동굴 탐색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유는?”

“위험하다는 이유로 포기하기에는 보석 광산이라는 이익이 너무나 크니까요. 충분히 조사하고 천천히 탐사하면 위험하지 않을 거예요.”

“전 다르게 생각합니다!”

멜도르가 내 말에 즉시 반박했다.

“이전 사례들처럼 탐사하다가 인재가 날 수도 있습니다! 확실하지도 않고 저희 가문이 급할 것도 없는데 모험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멜도르는 그렇게 말하며 날 흘겨봤다.

원작에서는 형을 따라 무조건 탐색을 해야 한다고 외쳤으면서, 지금은 내 의견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었다.

‘……재밌네?’

너무 가소로워서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익숙하게 참았다.

우리 사이에 냉기가 흐르자 아버지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내가 알아서 결정하겠다. 그만 잊도록.”

난 아버지의 어투에서 그의 생각을 눈치챘다.

‘멜도르의 의견을 따를 셈인가 보군.’

처음부터 멜도르가 나와 반대의 주장을 할 것도, 아버지가 놈의 의견을 수용할 것도 예상하고 있었다.

하긴 아버지가 쉽게 수도를 벗어날 리 없었다.

‘하지만 내가 또 그렇게 두지는 않을 거라서.’

난 아버지의 말에 순응하는 척, 썰고 있던 스테이크 조각을 입에 넣었다.

머리로는 빠르게 다음 계획을 상기하며 말이다.

***

모두가 깊게 잠든 새벽.

잠들지 않았던 난 어깨에 두꺼운 숄을 걸치고 방을 나섰다.

기름칠이 잘 된 방문은 아무런 소리도 없이 부드럽게 열렸고, 등이 전부 꺼진 어두운 복도가 날 맞이했다.

난 푸르스름한 새벽 달빛이 비추고 있는 복도를 잠시 바라보다, 휴대용 마법 전등의 빛에 의지한 채 복도를 걸었다.

내가 은밀하게 향한 곳은 어머니가 사용했던 4층이었다.

계단을 오르며 난 원작에서 읽었던 부분을 떠올렸다.

-도헤미아는 언제나 자신의 것을 오빠에게 빼앗겼다고 했어. 그래서 가장 소중한 것은 침대 밑에 숨겨 두었단다. 습관처럼 말이야.

이 말은 네시아를 키웠던 눈의 정령의 속삭임이었다.

정령의 속삭임을 기억하고 있던 네시아는 후에 어머니의 침대 밑에서 그녀의 유품을 찾게 된다. 난 지금 그걸 먼저 찾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소리 없이 4층에 도달한 후, 어머니의 침실 문을 지나쳐 복도 끝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다른 문보다 튼튼하고 투박한 문이 하나 있었다.

‘어머니의 연구실…….’

눈의 정령이 말했던 침대는 어머니의 침실에 있는 크고 폭신한 고급 침대가 아니었다. 어머니는 평소 본인의 침실보다 연구실에서 밤을 보내는 일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연구실의 문고리를 잡고 돌리자 소리 없이 문이 열렸다.

스르륵.

‘원래는 마법이 걸려 있어서 어머니 외에는 열지 못했는데…….’

지금은 그저 주인 잃은 빈방이 되어 버렸구나.

열린 문 너머로 보이는 연구실은 휑하기 그지없었다. 어머니의 유언으로 연구 일지와 결과물 같은 것들이 모조리 마탑에 기증되었기 때문이다.

난 텅 빈 테이블 위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그러자 그동안의 먼지가 수북이 묻어났다.

‘내가 일부러 이곳을 청소 구역에서 제외했으니 당연한 건가.’

혹시라도 하녀들이 텅 빈 연구실을 청소하다가 나보다 먼저 유품을 발견해서는 안 되니까.

멜도르와 아버지도 이곳보다는 온실이나 침실에서 추억을 회상했기에 연구실을 방치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나는 손을 탈탈 털고 작고 낡은 침대로 다가갔다. 그리고 몸을 숙여 마법 전등을 침대 밑에 대었다. 그러자 저 깊숙이에 뭔가가 있는 것이 보였다.

‘예상대로 여기 있군.’

난 팔을 쭈욱 뻗어 그걸 잡았다. 숄이 먼지로 더러워졌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꺼낸 것은 짙푸른 양장 표지의 두꺼운 노트였다. 낡기는 했지만, 마법이라도 걸려 있는지 겉면이 깨끗했다.

‘이게 바로 어머니의 일기장인가.’

네시아가 발견한 어머니의 유품. 그건 어머니가 앨턴가에서 살게 되면서 쓴 일기장이었다.

네시아는 이 일기장을 아버지와 오빠들에게 보여 주며 그들의 환심을 사게 된다. 물론 나는 그런 용도로 사용할 생각이 전혀 없지만 말이다.

잠시 일기를 바라보던 난 신속히 연구실을 나와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러고 더러워진 숄을 바닥에 벗어 던진 후, 털썩 의자에 앉았다. 들고 온 일기는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제 확인을 해야 하는데…….’

잠시 검지로 책상을 툭툭 치던 난 마음을 굳히고 일기를 펼쳤다.

‘첫 페이지부터 차근차근 읽으며 어머니의 생을 구경할 틈 따위 없어.’

촤르륵 일기장을 펼치며 내게 필요한 내용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그 내용은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 곧 내 생일이 다가온다.

생일이 오면 항상 그것이 생각난다.

내가 테오도르를 따라 수도로 오기 전, 정령의 숲에 남겨 둔 과거가.

셰넌은 이를 나의 소중한 보물이라고 말했지만, 난 잘 모르겠다.

그녀는 이 보물이 언젠가 테오도르의 보물도 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도대체 그게 어떻게 그의 보물이 된다는 거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테오도르에게 굳이 말하고 싶지 않다.

셰넌의 말이 맞으면, 그도 언젠가 알게 되겠지.

그때까지는 비밀로 둘 생각이다.」

셰넌은 어머니와 함께한 눈의 정령이었다. 이 정령이 말한 보물이 바로 ‘네시아’고.

눈의 정령은 어머니의 생일에 맞춰 네시아를 데리고 수도의 저택으로 찾아온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네시아를 맡기지.

이게 바로 원작의 시작이었다.

‘이 일기를 보여 주면 아버지는 즉시 북부로 떠날 거야.’

어머니에 관한 것이면 눈에 불을 켜는 양반인데, 이 수상한 일기를 보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아버지가 북부로 간다.

그러면 그에게 볼일이 있는 눈의 정령도 자연스럽게 수도가 아닌 북부의 저택으로 향하겠지?

그럼 아버지는 북부에서 네시아를 처음 만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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