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난 훈련과 저택 관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덕분에 사교계는 물론, 친분이 있는 다른 귀족들과도 교류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모스틴, 시온과는 정기적인 만남을 가지고 있었다.
‘그만큼 두 사람은 내게 소중한 존재니까.’
오늘은 그 모임을 위해 프레도 공작가로 향하는 중이었다.
난 달리는 마차 안에서 턱을 괴고 창문을 바라보았다. 때마침 창문 너머로 어린아이 세 명이 중앙 광장에서 노는 모습이 보였다.
‘여자아이 한 명과 남자아이 두 명이라…….’
그 조합을 보자마자 자동적으로 두 사람을 처음 만났던 때가 떠올랐다.
***
제국을 받드는 든든한 세 기둥.
북부의 앨턴.
서부의 프레도.
남부의 아글라.
이 세 공작가에서 참 경사롭고 이례적이게도 같은 해에 아이들이 태어났다.
그게 바로 나, 벨라디 앨턴.
모스틴 프레도.
시온 아글라였다.
평소 교류가 잦은 프레도 가문과 아글라 가문의 아이였던 모스틴과 시온은 걷기도 전부터 친구로 지냈다고 들었다.
그에 반해서 우리 앨턴은 다른 가문들과 큰 교류 없이 독자적인 길을 걷고 있었다. 더욱이 나만 성별이 달랐기에, 이 둘과 큰 접점 없는 유아기를 보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내가 열 살이던 무렵.
사건이 하나 일어났다.
그 해는 죽은 선황의 명으로 수도 외곽에 공사 중이던 학교가 완공되던 해였는데, 제국의 모든 신문에는 이런 기사들이 도배되었다.
「평민을 위한 최초의 학교! 드디어 완공되다!」
선황이 귀족 의회와의 오랜 다툼 끝에 얻어 낸 전리품이 아들 대에 이르러 완성된 것이다.
황제는 선전을 위해 어마어마한 규모의 완공식을 진행했다.
그 완공식에 황족은 물론, 유력 귀족들도 다수 참석해야 했다. 어머니는 아직 어린 멜도르와 함께 저택에 남으셨고, 나는 아버지를 따라 그 완공식에 참석했다.
‘그곳에서 모스틴과 시온을 처음 만났지.’
그 둘은 그때 당시 이미 서로 죽고 못 사는 절친이었다. 나를 소 닭 보듯 무시하다시피 하고 저들끼리 어울리기에 바빴다.
나 역시 둘에게 큰 관심이 없어서 간단히 인사를 한 후, 또래의 여자아이들과 어울렸다.
완공식은 아무런 탈 없이 잘 진행되는 듯싶었다. 시간이 흘러 황족들이 먼저 자리를 떠났고, 귀족들도 하나둘 돌아가기 위해 일어날 즈음…….
사건이 터졌다.
아직도 두고두고 화제가 되는 그 사고. 일명, ‘켄뉴브 학교 폭발 테러 사건’.
평민을 위한 학교 설립에 큰 불만을 품었던 소수 귀족이 건물 내에 폭탄을 설치한 것이다.
다행히 이 사건으로 죽은 이는 나오지 않았다. 사상자 중 귀족이 나오면 일이 너무 커진다는 걸 의식한 테러범들이 학교 뒤쪽의 별관에만 폭탄을 설치했기 때문이다.
무너진 건물이 텅 비어 있었던 것은 정말 천운이었지만…….
문제는 그 별관 정원에 우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나와 모스틴, 그리고 시온.
우리 셋이 그 타이밍에 별관에 있던 건 순전한 우연이었다.
나는 고양이를 쫓아가다 보니 그곳이었고, 두 사람은 마음 편하게 놀 공터를 찾다 보니 도달한 것이고.
“여긴 우리끼리 놀 거니까…… 저리 가 줄래?”
시온은 금안을 깜박이며 날 바라봤다.
난 그런 놈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왜?”
“그게…… 우린 둘이고 넌 혼자잖아.”
“혼자지만 여기서 잘 놀고 있던 나를 방해하는 건 너희 둘이야.”
“……어, 그런가?”
그러자 옆에 있던 모스틴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러지 말고 우리랑 같이,”
그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앙-!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모스틴의 말을 집어삼킨 엄청난 굉음과 온몸을 덮치는 매캐하고 거센 바람.
그리고 어린 모스틴의 얼굴 위로 무너지는 건물의 그림자가 생기던 그 순간을.
“위험해!”
그 순간, 모스틴과 시온을 끌어안은 건 거의 본능이었다.
파앗-!
동시에 내가 착용하고 있던 목걸이가 빛났고, 우리 주변에 푸른색 보호막이 펼쳐졌다.
고위 귀족 자제들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보호 마법이 새겨진 장신구를 가지고 다녔다. 나도 어머니가 새겨 주셨던 목걸이를 걸고 다녔고.
장신구의 힘에 의해 펼쳐진 보호막 위로는 초록색과 보라색 보호막도 펼쳐져 있었다. 모스틴과 시온의 것이었다.
세 겹의 보호막이 우리를 보호했지만, 무너지는 건물의 진동까지는 막아 주지 못했다.
모스틴과 시온은 내 품에 안긴 채 몸을 웅크렸다. 난 쏟아지는 건물의 파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사방이 고요해졌다.
“끄, 끝난 거야?”
“그런 것 같아.”
모스틴과 시온이 감았던 눈을 뜨며 주변을 둘러봤다.
분명 세 겹의 보호막이었지만, 초록색 보호막은 이미 깨진 지 오래.
지금 우리를 감싸고 있는 건 희미한 보라색 마법진, 그리고 견고한 푸른색 마법진이었다.
“너희, 장신구 좀 바꿔야겠다.”
내 말에 모스틴과 시온이 허탈한 얼굴로 자신들의 브로치를 바라봤다. 그들의 브로치는 각자 페리도트와 자수정이었다.
모스틴의 페리도트는 완전히 깨져 버렸고, 시온의 자수정도 크게 금이 간 상태였다.
“넌 무슨 보석을 썼는데?”
시온의 물음에 난 목걸이를 흔들어 보였다.
“다이아.”
순수한 마법을 새길 수 있는 건 보석밖에 없었다. 그것도 평범한 보석이 아니라, 그 원석이 자연적인 마력에 아주 오랜 세월 노출된 것만 가능했다.
‘총에 있던 자수정도, 온실에 있었던 사파이어도 그런 마법 보석이었지.’
마법을 새길 수 있는 보석은 매우 희귀했고, 그중에서도 다이아몬드는 내 것을 포함해 단 세 개뿐이었다.
그 귀한 명성에 걸맞게 내 목걸이는 어떠한 흠집도 없이 반짝였다. 다이아몬드가 반짝이는 것만큼 튼튼한 보호막이 우리를 보호해 주고 있었다.
난 그 보호막을 보며 입을 열었다.
“너희 운 좋은 줄 알아. 내 덕에 산 거니까.”
튼튼한 다이아몬드에 최고의 마법사였던 어머니가 몸소 마법진을 새기셨다. 그러니 그 강도가 얼마나 강했을까.
푸른 보호막 안에 있으니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다른 두 공작가보다 우리 가문이 더 대단하다는 묘한 우월감도 날 들뜨게 했다.
내 말에 모스틴이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 너 아니었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어. 고마워.”
시온 역시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아까 일은 사과할게. 시비를 걸 생각은 아니었어.”
수줍은 사과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받아 줄게. 자, 그럼 나가자.”
“나가자고? 기다리면 어른들이 구하러 올 텐데?”
모스틴의 말에 난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가는 보호막의 시간이 끝날 거야. 아무리 튼튼해도 이게 만능은 아니니까.”
시온이 내 말에 동의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해. 하지만…….”
시온은 사방을 막은 건물의 잔해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저걸 어떻게 파헤치고 가지?”
“너희는 그냥 나만 따라와.”
난 그렇게 말하며 근처에 있는 건물의 파편을 발로 치웠다.
우르르-!
그러자 요란한 소리가 나며 건물 잔해들이 무너졌다.
“뭐, 뭐 하는 거야!”
“미쳤어?!”
시온과 모스틴은 깜짝 놀라서 내 양팔을 붙잡고 끌어당겼다. 난 아랑곳하지 않고 위를 바라봤다.
“이 보호막이 존재하는 한, 무슨 짓을 해도 우리는 안전해. 아까 건물이 무너질 때 나갈 방향도 확인했어.”
난 다시 파편 쪽으로 향했다.
“보호막이 사라지기 전에 빠져나가는 게 우선이야.”
그러자 모스틴이 갈색 눈을 굳히며 내 손목을 잡았다.
“우리 외에 또 다른 사람이 이 안에 있을 수도 있어.”
“그럼 얌전히 기다리자고? 그러다 보호막이 사라지면?”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살기 위해 다른 이를 위험에 빠지게 둘 수는 없어.”
“그건 네 추측일 뿐이야.”
“시간 안에 어른들이 구하러 오지 못한다는 것도 네 추측인 거잖아.”
모스틴과 내 의견이 팽팽하게 충돌했다.
그러자 시온이 나섰다.
“둘 다 기운 빼지 말자. 내가 마법으로 주변에 살아 있는 생물이 있는지 살펴볼게.”
아글라 가문은 수많은 마법사를 배출한 가문이었고, 시온 역시 그때부터 뛰어난 소질을 보이고 있었다.
“그 정도는 기다려 줄 수 있지, 벨라디?”
나를 응시하는 금안이 침착했다.
어머니 외에 다른 이가 내 이름을 친근하게 부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난 생소한 감정을 느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 말이 끝나자마자 시온은 두 손으로 땅을 짚고 눈을 감았다. 그 주위로 보라색 마력이 넘실거렸다.
잠시 후, 감겼던 시온의 눈이 스르륵 떠졌다.
“이 주변에는 아무도 없어.”
“정말로?”
모스틴의 물음에 시온이 땀으로 젖은 보라색 머리를 넘기며 웃었다.
“응, 밖에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것 같은데, 일단 이 안에는 없어.”
“좋았어!”
모스틴은 그제야 안심이 되었는지 방긋 웃으며 날 바라봤다.
“방향을 알려 줘! 내가 파편을 치울게!”
“내가 할 수 있어.”
“그 정도는 내가 하게 해 줘!”
“그래, 벨라디. 모스틴한테 시켜. 어렸을 때부터 검을 배워서 힘쓰는 건 잘할 거야.”
“맞아! 나 힘세!”
두 소년은 아까의 심각한 얼굴을 치워 버리고는 키득거리며 서로를 바라봤다.
난 두 사람의 말에 한숨을 푹 쉬고는 한쪽을 가리켰다.
“그럼 당장 저것부터 치워. 난 빨리 이 답답한 곳을 빠져나가고 싶으니까.”
“알았어, 맡겨 둬!”
“야, 나도 같이 해!”
두 놈은 신이 나서 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향했다.
우리가 움직이자 파편들이 다시 우르르 떨어졌다. 그럴 때마다 놈들의 등이 흠칫거렸지만, 주눅 들지는 않았다.
시온과 모스틴은 마법과 힘을 적절히 쓰며 척척 잔해들을 치웠다. 이때의 난 두 사람을 보며 묘한 부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나한테는 저런 친구가 없었으니까…….
그러는 와중에 점점 빛이 가까워졌다.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으윽! 근데 이 마지막 돌 엄청 무거워!”
“으악! 진짜잖아!”
확실히 마지막 파편은 둘의 덩치보다도 훨씬 컸다. 두 사람이 한참을 끙끙거리며 파편을 밀었지만 어떠한 미동도 없었다.
뒤에서 그걸 가만히 바라보던 난 고개를 저으며 앞으로 나섰다.
“둘 다 비켜, 속 터져서 못 보겠으니까.”
“같이 하려고?”
“혼자 할 거야.”
“우리 둘이 밀어도 꿈적도 않는 걸 어떻게 혼자 치우려,”
시온이 말을 끝내기도 전이었다.
난 발을 빠르게 휘둘러 파편을 향해 내리쳤다.
콰앙-!
그러자 거대한 산처럼 버티고 있던 마지막 파편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우수수 부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