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지금 누구 놀리러 왔어?!”
놈의 외침에 난 피식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설마. 너보다 내가 더 이 사격장에 자주 방문하는 걸 몰라서 하는 소리야?”
애초에 사격은 내 몇 안 되는 취미 중 하나였다. 몸 쓰는 일을 싫어하는 멜도르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발걸음 하지 않았고.
내 말에 멜도르는 할 말이 없는지 입술을 깨물었다. 놈은 거친 손길로 자신의 머리를 헝클였다.
“나가! 난 더 연습해야 하니까!”
“이번에도 사냥 대회에 나갈 생각이니?”
“이번에도? 하, 벨라디 앨턴.”
멜도르는 짝다리를 짚으며 날 흘겨봤다.
“‘이번에도’가 아니라 ‘항상’이겠지. 그 대회는 황제 폐하께서 제국의 공작들만 초대하는 중요한 친목의 장이야. 가문의 후계자가 참여하는 건 당연한 거고.”
“성적도 내지 못하는 후계자가 가 봤자 웃음거리밖에 더 될까.”
난 그렇게 말하며 피식 웃었다.
내 말에 멜도르는 애써 찾은 포커페이스를 다시금 일그러트렸다.
“야-!”
그렇게 외친 멜도르가 씨익씨익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가뜩이나 사냥 대회가 얼마 남지 않아 예민한데, 내 비아냥에 몹시 화가 난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어머니 장례식 때문에 네 검술 수업 진도가 한참 늦어졌다는데…… 한가하게 사냥 연습할 시간은 있어?”
난 그렇게 말하며 방금 맞힌 표적 판 옆의 또 다른 표적을 조준했다.
타앙-!
역시나, 탄환은 아까처럼 날카롭게 정중앙을 뚫었다.
“평소 연습을 게을리했던 것에 집착하지 말고, 하던 거나 열심히 하지 그래? 사냥 대회에 반드시 후계자가 참가해야 하는 법도 없고.”
“네가 뭔 상관이야!”
“난 상관없지만…….”
난 멜도르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놈의 불안을 툭 건드리는 말을 꺼냈다.
“아버지의 명예는 걱정이 되네. 사냥 대회 때마다 후계자의 얕은 실력이 고스란히 드러났잖아? 지금 솜씨를 보니 이번에도 그럴 것 같고.”
그러며 나무 구석에 숨겨진 또 다른 표적 판을 연달아 조준했다.
탕-! 탕-! 탕-!
멜도르가 쏘았던 커다란 연습용 표적 판이 아닌, 사냥용으로 만들어진 작은 표적들이었다.
내가 쏜 탄환에 정확히 들어맞은 다람쥐 모양의 표적 판이 하나둘 나무에서 떨어졌다.
난 가만히 총을 내리고 멜도르의 안색을 살폈다. 멜도르는 아버지의 말이 나오자 하얗게 질린 얼굴이었다.
‘쉽군.’
놈은 표적 판과 내 얼굴을 번갈아 노려보더니 이를 아득 갈았다.
“그래, 이따위 쓸모없는 사격! 너나 실컷 해라!”
그러더니 쓰고 있던 초보용 사격 장갑을 휙 벗어 던지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난 멜도르의 뒷모습을 잠시 응시하다,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남아 있는 표적 판을 겨냥했다.
경쾌한 총소리와 함께 백발백중으로 명중된 판들이 나뒹굴었다.
‘멜도르가 운동 신경이 없는 게 내게는 천운이려나?’
멜도르는 3년째 아버지를 따라 황제의 사냥 대회에 참가했다.
하지만 공자들 중 가장 어리고, 사냥도 썩 잘하지 못하는 멜도르가 만년 꼴등을 차지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게 자존심 높은 멜도르에게는 상당한 스트레스였겠지.
그 증거로 사냥 대회 후 멜도르의 히스테리는 극에 달하곤 했다.
‘그렇게 고생하지 말고 얌전히 집에 있으렴, 멜도르.’
마지막 한 발을 쏘았다.
타앙-!
멜도르의 얼굴을 떠올리며 쏜 탄환은 이번에도 완벽하게 정중앙을 뚫었다.
난 그걸 보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그 자리에는 이 누나가 대신 가 줄 테니까.”
그리고 그날 저녁.
내 하녀가 멜도르의 사냥 대회 불참 소식을 전해 왔다.
***
난 쓰고 있던 모자를 살짝 고치며 말을 몰았다.
이런 내 모습에 왼쪽에 있던 보라색 머리에 금안을 가진 남자가 가까이 다가왔다.
“벨라디, 모자 고쳐 줄까?”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어차피 벗지만 않으면 되니까.”
그러자 이번엔 오른쪽에 있던 금발의 남자가 내 쪽으로 밀착하여 말을 몰았다.
“그런데 웬일로 네가 참가했네?”
그 말에 난 피식 웃었다.
내 양옆으로 나란히 말을 모는 두 남자.
아글라 공작가의 차남, 시온 아글라.
프레도 공작가의 장남, 모스틴 프레도.
내게 친근하게 말을 거는 이 둘은 나와 가장 친한 소꿉친구들이었다. 그중 금발을 가진 모스틴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네 동생이 가만있었어? 저번에 보니까 성격 더럽던데.”
“본인이 먼저 안 가겠다고 했으니, 할 말이 있어도 못 했겠지.”
내 말에 모스틴이 키득키득 웃었다.
“그래? 잘됐네! 멜도르 그 자식, 사냥감 놓치면 얼마나 짜증을 내는지 알아? 그 소란 때문에 몰아넣은 사냥감을 몇 번이나 놓쳤는데.”
“흠, 그래도 아득바득 참여는 하지 않았나? ……설마 벨라디 네가 뭐라고 한 건 아니지?”
보라색 머리의 시온은 쓰고 있던 안경을 올리며 날 바라봤다. 그 말에 난 반듯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네 사냥 실력이 곧 아버지의 명예라고는 했지. 선택은 멜도르의 몫이었지만.”
내 대답에 모스틴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와, 벨라디 앨턴. 살벌하다, 살벌해.”
“그래서 내가 온 게 싫어?”
“무슨 소리. 난 너랑 있는 게 훨씬 좋지~.”
모스틴이 능글맞게 웃는데, 이번에는 시온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원래 너희 부모님 반대로 사냥 대회에 참가 안 했잖아. 이번에는 괜찮은 거야?”
그 말에 난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이제는 어머니가 없으니까…….”
어머니는 여자인 내가 사냥같이 과격한 활동을 하는 걸 무척 싫어하셨다. 그나마 사격도 가문 내의 사격장에서만 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은 것이었고.
‘하지만 지금은 날 붙들던 어머니가 없으시지.’
난 앞서가고 있는 무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신록으로 우거진 황궁의 서쪽 숲. 맨 가운데에는 황제가, 그 오른쪽으로 프레도 공작과 아글라 공작이 사이좋게 말을 몰고 있었다.
그리고 황제의 왼편에 흑마를 탄 아버지가 있었다.
난 그들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며 말을 이었다.
“아버지는 애초에 나한테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셨고.”
내 사정을 아는 시온과 모스틴이 씁쓸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난 이틀 전 밤의 일을 떠올렸다.
멜도르가 사냥 대회에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후, 난 아버지를 찾아갔다.
-제가 멜도르 대신 사냥 대회에 참가하고 싶어요.
멜도르의 말처럼 황제의 사냥 대회는 친목의 장소였다.
그러니 후계자가 아니더라도, 가문의 자제가 한 명 정도는 참가하는 것이 좋았다.
거기에 멜도르가 가지 않는다면?
놈을 대신해 내가 갈 만한 명분이 생기는 것이다.
‘그걸 노리고 일부러 예민한 멜도르의 심기를 툭 건드렸지.’
내 말에 아버지는 의외라는 듯 한쪽 눈썹을 까딱였다.
-……네가 사냥 대회에 관심 있는 줄 몰랐는데.
내 취미가 사격이라는 건 그 멜도르조차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사격을 좋아하는 이들은 대부분, 사냥에도 흥미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나도 대회에 가고 싶다고 몇 번 돌려 표현한 적도 있었는데.’
하지만 아버지는 뜻밖이라는 눈을 거두지 않았다.
그걸 보니, 내 취미와 은연중 했던 말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전생을 자각하기 전이었다면, 그 순간 분명 상처받았을 거야.’
물론 지금의 난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새삼 그에게 내가 어떤 존재인지 와닿았을 뿐.
난 여상히 미소 지었다.
-그동안은 어머니의 만류로 참가를 못 했지만, 항상 궁금했거든요. 마침 멜도르도 저택에 남아서 검술 훈련에 집중한다고 하니, 한번 가 보고 싶어서요.
여기까지 말했을 때도 아버지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마 내가 어떤 속셈인지 파악하려는 듯했다.
난 미소를 잃지 않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제 친구들도 만나고요.
-……아, 다른 공작가 자제들이 네 친구였지.
-예, 아버지. 그들도 이번 대회에 참가한다고 해요.
참 다행으로 아버지는 시온과 모스틴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긴, 아버지에게는 딸의 취미보다 공작가의 아들들이 더 중요한 정보였을 것이다.
내 말에 그는 드디어 고개를 끄덕였다.
-가문에 누만 끼치지 말아라.
-예, 아버지.
그렇게 아버지의 허락을 받고 나서야, 난 이 사냥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
“내가 가문에 누가 될지, 영광이 될지는 두고 보면 아시겠지.”
“응?”
옆에 있던 시온이 날 바라봤다. 시온의 순수한 표정에 난 아무 말 하지 않고 그저 미소 지었다.
그때 앞서가던 황제의 말이 멈추었다.
“어느 정도 깊숙이 들어왔으니, 이쯤에서 사냥을 시작해도 좋겠구나.”
그 말에, 우리를 따라오던 시종들이 일사불란하게 천막을 치고 휴식 공간을 만들었다.
우리 셋은 말을 몰아 황제 쪽으로 더 다가갔다. 황제는 살짝 우리를 본 후, 공작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올해는 과연 누가 내게 기쁨을 가져다줄지 기대되는군.”
그 말에 프레도 공작이 사람 좋게 웃었다.
“어떤 이든 폐하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몸 바쳐 즐거움을 선사할 것입니다.”
세 공작가 중 가장 정계에 밝은 가문답게 말솜씨도 청산유수였다.
‘모스틴의 능청스러운 혀가 누구를 닮았나 했더니.’
난 힐끔 왼쪽에 있는 모스틴을 바라봤다. 내 시선을 읽었는지, 모스틴이 당당한 얼굴로 가슴을 폈다. 그 모습을 보자 나도 시온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공작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황제는 시종에게 눈짓했다.
“자, 그럼 나는 이 근처에 있을 테니 그대들끼리 대회를 시작하라. 정해진 시간 안에 모두 이 천막으로 돌아와야 한다.”
동시에 시종이 쥐고 있던 붉은색 깃발을 들어 올렸다.
“시작합니다!”
신호에 맞춰 아버지를 포함한 공작들이 각자 데리고 온 기사들과 함께 숲 안으로 들어갔다. 모스틴과 시온 역시 본인의 기사들을 맞이했다.
내게도 가문의 기사가 몇 다가왔다. 모두 멜도르의 사냥을 보좌해 주던 이들이었다.
난 그중 한 명을 보며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역시 함께 왔군.’
그때 모스틴이 외쳤다.
“나 먼저 출발한다!”
활동적인 모스틴은 신이 나서 공작들과 반대 방향으로 말을 몰았다. 시온은 머뭇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벨라디, 처음인데 괜찮겠어? 나랑 같이 다닐래?”
“아니.”
난 그렇게 말하며 메고 있던 총을 장전했다.
그 후 재빠르게 자세를 잡고, 발사.
타앙-!
곧 하늘에서 무언가가 툭 떨어졌다.
그걸 본 시온이 어벙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새, 새잖아……?”
난 떨어진 새를 보며 유유히 말했다.
“내 목록에 포함해.”
그 순간 뒤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