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222화 (222/222)
  • 222화

    * * *

    에필로그(2)

    조금은 긴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수많은 여정 끝에 되찾은 평화는 그리 거대하지도, 그리 장황하지도 않은 소박한 것이다.

    단조롭게 흘러가는 하루가 반복될 뿐이다. 그리고 가끔 일상 사이에 끼어있는 시끄러운 하루가, 또다시 엄지와 검지를 관자놀이로 향하게 하는 습관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나는 델타의 어느 한적한 시골에서 여관을 운영하는 평범한 여관주인, 그저 평범한 자영업자일 뿐, 나는 지금 그 역할에 충실하기로 했으니. 그보다 어울리는 것은 없을 테니까.

    물론,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선 날이 선 무언가라도 들어야 할 테지만, 그건 내 몫을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여관을 중심으로 사방에 넓게 펼쳐진 언덕에는 이름의 전사들이 있다. 수많은 역사가 담긴 제국을 포함하여 인연이 닿았던 식구를 지키기 위한 무지막지한 전사들이 있다.

    그 밖에도 많은 이들이 이곳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약속에 가까운 것이다. 어쩌면 저기 보이는 저 작은 울타리가, 사계에서 가장 굳건하다는 성벽보다 튼튼할지도 모르는 일.

    한기가 여관의 창에 붙어 델타의 겨울을 알린다. 7인의 영웅들과 어느 이야기를 함께 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해가 두 번이나 지났다. 그 해를 맞이할 때마다, 저 벽에 붙은 그림의 내용이 달라진 이유를 설명했던 것만 수백 번은 되었을 것이다.

    모쪼록, 그들의 이야기는 무사히 사계에 정착할 수 있었다. 내가 가져온 베르히만의 새로운 기록 덕분인지, 8인의 영웅으로 기록된 ‘아서’라는 이름이 나를 더욱더 귀찮게 만들었다는 것은 다음 일이었다.

    그리고 7인의 영웅들의 잔재, 그들의 사념이 담겨있는 기록 장치인 ‘우리 가게의 신사들’은 지금도 두개골을 돌리며 자신의 존재감을 마음껏 뽐내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홀의 지휘자인 바바비어는 여전히 그들의 중심으로서 모든 책임을 다하고 있다.

    이런, 여관에 복귀한 이후 그들의 이름을 영웅들의 이름으로 부르기로 결정된 회의 사항을 말해준다는 것을 깜빡했다니. 바바비어는 미지의 독자들도 예상했겠지만, 캡틴으로, 홀에서 여전히 ‘빛으로 이끄는 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홉스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영웅들의 모습을 씌우자’라는 의견을 내세웠다. 아이리스가 과거에 7인의 영웅들을 설명할 때를 비롯하여 그들에게 변장 마법을 사용했던 상황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서 월키스와의 만남이 잦아진 아이리스는 해골들이 영웅들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변장 마법을 일일이 걸어줄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결국 정령왕만큼이나 만나기 껄끄러운 게이트 디 마나에게 부탁했더니, 마력만 공급해주면 지속해서 변장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마법을 적용해주었다.

    그렇게 ‘용사의 쉼터’에는 ‘7인의 영웅’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고, 소문을 듣고 찾아온 손님들은 신사들의 더욱 기괴해진 두개골 돌리기에 섬뜩함을 느끼기도 했다.

    ‘용사들의 쉼터라는 이름을 가진 여관인데, 용사들이 휴식은커녕 못된 사장에게 학대받고 있다’라는 소문도 있었는데, 그 소문의 출처는 대부분 ‘브라운 아저씨’나, ‘쥬드’같은 농담을 좋아하는 손님들로, 이 사장 또한 그들에게 비슷한 ‘살인 예고’ 농담을 던지며 해당 소문이 단절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내가 없는 동안 새로운 종족의 손님들이 늘었는데, 다름이 아닌 ‘드래곤’이었다.

    게다가 한 마리도 아니고, 수십 마리의 개체들이 전원 폴리모프를 사용하여 인간의 모습을 흉내 내더니, 손님으로 들어왔다.

    그들을 처음 본 날에는 아이리스가 여관에 처음 등장한 날과 맞먹는 패닉이 스쳤다.

    허공에 드래곤들이 날아오더니 아무렇지 않게 언덕 위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자,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

    전원 블랙리스트로 지정할까 했으나, 하루마다 갱신되는 여관의 특이사항을 입구에서 정독하고 문을 여는 것을 보고는 일단은 보류하기로 했다.

    흠, 홉스가 용들은 돈이 많다는 것이 큰 몫을 했다. 생각해보니 역사에도 그렇게 기록되어있지 않은가.

    통제되지 않는 손님들을 받으며 위험 수단을 감수할 필요가 있는가, …전자의 문제점은 우리 가게의 수호자이자 파괴자이며, 용들의 정점이라고 불리는 규격 외의 웨이트리스가 있으니 사뿐하게 넘어가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간혹 용들이 레니가 만들어 놓은 다양한 효능의 약과 그 재료가 되는 것들을 사거나 브라운 아저씨가 제작한 장비들을 사는 덕에, 이전과 달리 높은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며 기쁨을 표하는 그들이었다.

    용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도움이 되는 구석이 많았다. 심지어는 ‘신문을 나르는 용’에서 만들어진 신문을 전역에다 빠르게 퍼뜨리기 위해 용들을 배달부로 채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메이 앞에서 면접을 보는 용들이 늘어났다는 것은 인간 사회에 적응하기 시작한 개체들이 늘어났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꽤 흡족한 미소를 짓는 렌과 아이리스다.

    …나는 불안하다. 델타의 어느 여관 덕에 사계에서 용들을 보는 것이 과거와 달리 어렵지 않게 되었으니, 분명 제국에서도 문제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던가.

    현 델타의 훌륭한 통치자로 주목받고 있는 베를리의 말씀. ‘배달부로 일하는 개체나, 손님으로 찾아오는 개체가 늘어났으니 우리는 사계 최강의 무력을 가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 심지어 어깨를 으쓱이기까지 했다.

    좌우간, 이전보다 다채로운 색깔을 내며 성장하고 있는 용사의 쉼터이다.

    정령왕의 힘이 담겨있다는 어마어마한 고가의 물건을 행세하던 호롱불이 여관 내부에서 묘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따금 깜빡거리는 호롱불에 ‘슬 갈아치울 때도 되었건만’이라고 쓴소리를 해댔지만, ‘멀쩡한 물건을 왜 바꿔’라고, 정령왕이라 부르는 작자가 건치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바꿀 겁니다.”

    “안 돼.”

    “바꿀 건데요.”

    “안― 돼.”

    정령왕은 홀에 매달려있는 호롱불을 갓 태어난 아기를 다루듯 했다. 호롱불을 부여잡으며 얇게 떠올린 눈을 가볍게 무시한다.

    여관을 둘러본다. 웨라의 악기 소리와 아름다운 음색이 조화롭게 섞여, 홀 속에 비어있는 공허함을 달래고 있다.

    상의 위로 동그랗게 피어난 땀자국, 브라운 아저씨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쥬드의 찌푸린 인상을 보아하니, 늘 앉던 자리에서 케피탄 맥주와 함께 시시콜콜한 대화를 이어갔을 것이다.

    늘 이쯤이면 시작되는 레니의 주사도 여전했다. 극단적인 트라우마가 사라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나쁜 것도 없지만, 레니가 마력을 몽땅 소진할 수 없게 호주머니에 포션을 구비하고 다니는 습관도 잊지 않은 아이리스까지.

    “임자야, 레니가 또 말썽이구나.”

    “미안하지만 뒷일을 부탁할게, 이 임자께서는 여관을 시찰 중이니까 말이지.”

    “감독이라는 핑계로 돌아다닐 생각이겠지.”

    레니를 흘깃 쳐다보며 눈이 마주치자 기겁을 하며 몸을 틀었다. 입구를 어슬렁거리며 손님을 맞이하는 홉스의 어깨를 두드리며 외부로 향한다.

    대충 ‘내부는 레니 때문에 글러 먹었으니, 나는 외부에 나가 피신하겠다.’라는 뜻으로 홉스는 이를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

    외부, 펼쳐진 언덕과 드넓은 창공 외에는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던 경관이 어느새 다양한 건축물들로 가득 차 있었다.

    거목 엑스칼리버, 드래곤 길드, 레니의 연구실, 해골 마차, 새롭게 들어선 메이의 신문사.

    …술에 취해 폴리모프를 풀어버리고 들판에 뻗어 자는 용들까지. 투숙객 시설의 이용 요금까지 합산할 것이다.

    “우리의 단장이 아닌가, 하하!”

    “의뢰 때문에 늦게 도착했나 보네요, 외부에서 프리실라와 아이나를 보다니.”

    의뢰로 인하여 여관에 없으면 없었지, 외부에 앉아 케피탄 맥주를 홀짝이는 모습은 처음이다. 근래 베를리의 부탁으로 인하여 황실의 임무를 수행하다 보니 부재가 잦은 편이었다.

    “시끄럽고, 선생님께서는, …아니 사장님께서는 현재 여관 시찰 중이시다. 방해하지 말도록.”

    어느새 나타난 란베르크가 프리실라와 아이나가 주문한 음식을 가지고 나타났다. 테이블 위로 음식을 올린다.

    호탕하게 웃는 프리실라와 눈웃음을 짓는 아이나를 보며 한숨을 쉬는 란베르크, 묘하게 앞치마가 어울린다.

    녀석은 현재 모든 일을 접어두고, 용사의 쉼터에서 일하는 중으로, 홉스 못지않게 상당히 든든한 직원이라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사장에게 귀찮게 굴지 않는 것, 사장의 귀찮은 일을 줄여주는 것 = 사장이 신뢰하는 직원’이라는 수식을 잘 알고 있다.

    “선생님, …아니 사장님, 렌이 곧 사장님의 지인분과 함께 돌아올 겁니다. 사장님께서는 아무래도 마중하는 편이.”

    “그래, 어차피 내부로 들어가기는 글렀다고, 레니가 이미 시작했으니까 말이지.”

    “……이런, 이런.”

    상처를 치료하는 것을 우선시하지 않고 오자마자 맥주부터 들이켜는 프리실라에게 잔소리를 쏟아붓는 란베르크의 목소리를 뒤로하며, 손님들이 가득한 언덕을 가로질러 입구라 부를 수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엑스칼리버 주위에서 기분 좋은 밤바람을 맞으며 날아다니는 수많은 정령을 스친다.

    주제를 알 수 없는 손님들의 대화, 잔이 부딪치는 소리, 용사의 쉼터를 더욱 생동감 넘치게 만드는 모든 것들을 지나서.

    언덕 끝자락에서 맞바람과 함께 허공을 바라본다. 저 멀리서 구름을 뚫고 날아오는 강철 같은 비늘을 가진 붉은 유성이 다가오는 듯했다.

    ―.

    붉은 용을 타고 있던 에르미가 엉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자리에서 내려온다.

    “에르미, 왔어?”

    “이야, 보기보다 엄청 좋은걸, …어쩌면 메르헨보다. 이곳에 꿀이라도 발라뒀나 싶었는데, 실제로도 그랬잖아.”

    에르미가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렌에게 눈웃음을 지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이어서 가방에 담긴 플라스크를 주섬주섬 꺼낸다. 씨앗이 수북이 쌓여있다.

    “프리게야, 이곳에 올 때 가지고 오면 좋을 것 같아서. 아템은 안에 있나?”

    “응, 홀에 있으니까 들어가 봐, 아주 멋지게 놓여있으니까. 안내는 입구 앞에 홉스나 캡틴이 도와줄 거야.”

    “메르헨의 정원사가 옛 친구가 운영하는 여관의 정원사가 될 줄은, 아하하.”

    에르미는 사계에 관심이 많은 녀석이었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 용사의 쉼터에 정원사가 되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언덕을 오르며 보이기 시작하는 거목과 정령들을 구경하며 넋을 놓는 그녀를 바라보더니 미소를 보이는 렌이었다.

    “아하하, 바빠지겠네요, 마스터.”

    “물론, 앞으로 렌도 바빠질 테지, 프랜차이즈 계획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니까.”

    이곳에서 녀석을 만나고부터 여관주인으로서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나 싶었지만, 생각해보면 이야기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피곤할 일이 분명 끊임없이 찾아올 것이라는 불안한 예감, 그러나 이전과 달리 피곤함보다 왠지 모를 설렘이 마음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곳에서 처음 마스터를 뵙게 된 날, 마스터와 함께하면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도 그 믿음은 통했고요.”

    “…그래서 그런데, 앞으로도 쭉 함께해도 괜찮겠죠? 마스터가 없는 2년 동안 이곳을 봐왔으니까, 실력은 이미 충분하다고 보는데 말이죠!”

    미소를 보이며 낯간지러운 소리를 해대는 렌의 볼을 꼬집었다. 으윽, 하고 신음이 터져 나오는 녀석을 보며 피식 웃는다.

    “네가 없으면 이곳도 더는 용사의 쉼터가 될 수 없잖아. 언제든 떠날 수 있을 거라 착각하나 본데…….”

    녀석의 볼을 쥐고 있던 손을 내려놓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모쪼록 익숙해져 버린 붉은 머리칼에서 좋아하는 향기가 났다.

    “평생 이곳에서 종사해야 해 넌.”

    섬뜩했으면 하고 던진 소리건만, 도리어 행복한 표정을 짓는 렌을 향해 고개를 흔든다.

    내게 팔짱을 끼며 ‘배고파용’을 외치는 녀석과 함께 슬슬 여관으로 돌아가, 미지의 독자들을 위해 여관 이용 규칙 사항을 추가해야 할 듯하다.

    언젠가 이곳을 찾아오게 될지도 모르니, 독백으로 ‘탄산수 무료 쿠폰’을 증정하겠다.

    …존재 여부도 확실하지 않은 여러분들에게 내가 당장 줄 수 있는 것은 이게 전부니까?

    .

    .

    .

    『 용사의 쉼터 : 여관 이용 규칙 사항 』

    ◈ 지금까지 EX랭크의 여관주인이었습니다. 완결까지 지켜봐 주신 많은 독자님에게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 ――END.

    《EX랭크의 여관주인》 완결

    * * *

    < 작가 소감 및 감사의 말씀 >

    안녕하십니까, EX랭크의 여관주인을 집필한 백경이라고 합니다. 완결까지 열심히 달려주신 많은 독자님에게 우선 감사의 말씀 올리겠습니다.

    첫 작품이라 부족한 점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매 편마다 기대감을 갖고서 즐겁게, 혹은 다양한 감정을 담아 읽어주시고 조언을 아끼지 않아 주셔서,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 여러분들이 읽어주신 덕에 완결까지 무사히 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생각 이상으로 많은 관심을 받은 것 같아 감복합니다.

    본 작품을 집필하면서 댓글을 통해 많은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너무 값진 것들이라 제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점들이 모이고 모여서, 여러분을 다시금 찾아뵐 때는 작가로서 조금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이지 이 작품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즐겼습니다. 본 작품을 꾸준히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과 여러분들이 작품을 무사히 읽으실 수 있도록 노력해주시는 편집자님 덕이겠지요, 이 마음과 함께 새로운 작품을 집필할 때마다 초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또 노력하겠습니다.

    차기작을 기획하고 준비하면, 반드시 이전보다 발전된 모습으로 나타나겠습니다. 그때, 이전보다 좋은 작가가 되어있다면, 부디 여러분들의 마음이 함께했다고 생각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독자님들에게 행복하고 따스한 순간이 늘 자연스럽게 함께하길 소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랭크의 여관주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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