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220화 (220/222)

220화

* * *

수많은 모험을 했다.

그러니 이제 되었겠지.

현세에서는 빛으로 이끄는 자라 불리어, 많은 사람의 희망을 짊어졌다. 내가 이곳에 태어난 이유는 전부 그 때문이었다.

내 탄생은 평범하지 못했다. 아득히 머나먼 과거, 이제는 역사라고 불릴 수 있을 시기에. 하늘에서 천사가 여럿이 내려와, 정교의 통치자에게 이달리브와 함께 아기를 건넸다.

이 아이가 훗날 세계를 집어삼킬 절망을 토하는 구멍을 저지할 영웅이 되노라, 그러니 신의 아이를 거두어 보살펴라.

―그리고 영웅들을 모아, 절망을 토하는 구멍의 원인을 찾고, 인류를 구원하라.

성인이 된 이후에는 절망을 토하는 구멍으로부터 온전할 시기까지 많은 것을 배웠고, 드넓은 세상을 경험했다.

평온했던 시간이 흘러 절망을 토하는 구멍이 나타났으니. 이제는 사명을 다하기 위해 여정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천사들이 아기와 함께 건네준 성서 속 예언대로, 사계를 구하는 영웅들을 모으는 일은 이 마르노프 바바비어의 몫이었다.

영웅들을 모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성서가 알려준 대로, 그곳을 찾아가면 영웅과의 인연이 손쉽게 이어졌다.

이 모든 것은 사계를 창조한 ‘서시’에 의한 것이라, 결국 ‘서시’는 인류의 편이리라.

서시로부터 태어난 생명, 서시가 빛으로 이끄는 자를 돕는 것은 당연하다고.

인류는 믿었다. 그와 함께 이 대지를 밟는 모든 생명체는 서시의 자식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영웅들과 함께 시작의 원정대를 결성했다. 마차를 타고, 예언에 적힌 숲을 찾아갔다.

숱한 산을 넘어, 치명적인 상처를 입으며, 절망을 소멸해갔다. 그 끝에는 우리가 찾던 숲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곳에서부터였다. 가지고 있던 성서에 끝자락, 아무것도 적혀져 있던 공백에서 기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지막 예언을 의미했다.

―빛으로 이끄는 자는 변절한다. 함께했던 영웅들을 죽이고, 절망을 토하는 구멍과 하나 되어 사계에 비극이 도래한다.

‘어째서.’

이는 사실이 아니다.

나는 변절하지 않는다.

함께했던 이들과 함께 절망을 토하는 구멍의 원인을 찾은 다음, 모두와 함께했던 이 여정을 사계에 남기고 싶다. 어째서 변절한다는 것인지, 사실처럼 이루어졌던 예언을 처음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 이해할 수 없었다. 믿지 못하기에는 예언은 반드시 적중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다른 영웅들에게 알렸을 때, 그들은 폭소를 터뜨릴 뿐이었다.

공백에 나타난 새로운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나조차도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 * *

나는 과거에 하늘에 떠 있는 달에게 기도했다. 인류의 문장으로 깊은 어둠 속에서 잔잔하게 빛을 내며 소원을 이루어주는 달, 사실 지금까지 행하고 있는 습관 중 하나라, 과거라고 붙이기에도 애매하다.

매번 그것을 바라보며 기도했다. 더 이상 신은 믿을 것이 되어주지 않았으니까.

처참한 내 운명을 위해, 나를 조금만 보듬어줄 수 있겠냐고, 그렇게 기도했다.

전 인류의 대표로서, 이 이야기를 비극으로 치닫게 하는 원흉으로서.

생명체가 거닐 수 있는 대지.

나는 그곳에서 종일 달에게 소원했다.

그 소원은 닿았던 것인지, 그녀는 모르는 듯했으나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영웅이 이 손에 죽어 나간 이후, 절망을 토하는 구멍과 동조하기 직전. 첫 번째 회귀를 이루어줄 수 있게 도와주었던 7번째 영웅, 이변의 창조주 ‘일화’에게 물었다.

―얼마나 반복해야만, 정답을 찾을 수 있을까. 과연 우리는 정답을 찾을 수 있을까.

그렇게 나는 그녀가 보는 눈앞에서 무한히 생을 마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영겁에 가까운 회귀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그녀는 절망을 토하는 구멍이 만들어내는 멸망의 시간을 수없이 지켜봤다.

그러나 비극 앞에서는 이 신념도 희미한 불꽃에 불과했는지, 결말 앞에서 처참하게 저버리기에 십상이었다.

일화는 그런 나를 계속해서 다시 피웠다. 턱없이 역부족이다. 심연을 비추기에는 너무나도 옅은 빛이었기에.

시간을 수없이 번복되던 중, 내 목소리가 그녀에게 닿았다. 처음이었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나를 향해 ‘반쪽짜리 영혼’을 가진 생명이라 했다.

―나는 ‘마르노프 바바비어.’ 주변의 생명은 그것에게 ‘빛으로 이끄는 자’라 불렀고, 다시금 창조되는 세상에서 불렀던 것처럼 똑같이 영웅이라 추앙받고 있소.

우리에게는 무언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믿었다. 분명, 나와 저 달은 ‘기구한 운명의 연결점’이 있다는 것을.

나는 매번 그녀에게 기도했다. 반복되는 회귀 속에서 불멸의 정신을 유지 할 수 있도록. 내 신념이 무뎌지지 않게끔 유일하게 측정할 수 있을 시간이 되어 주라며.

―당신을 떠올리면, 마치 내가 아르마니 대지에 있었던 때가 떠오르오. 그 향은 꼭 밤하늘에 피어난 당신과 비슷한 느낌일지도.

밤이 되면 그녀의 소리가 들렸고, 낮이 되면 그녀의 목소리는 흐릿해졌다.

그렇게 시간을 번복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일화와 나는 여러 방법을 생각했다.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주연의 자결이었다. 나 빛으로 이끄는 자는 인류를 위해 홀로 희생하기로 마음먹었기에, 어느 밤 내 반쪽을 채워주던 달에게 이별을 고했다.

―다음 날, 그대의 목소리가 흐릿해질 때.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이오.

만류하던 그녀를 무시하고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못했다. 그렇게 계획은 성사될 수 있었고, 서시는 새로운 주연을 내세워야만 했다.

그렇게 돼야 했었는데, 도리어 나를 창조했던 서시가 시간을 반복했다. 그 반복되는 시간만큼 운명의 갈래라고 할 수 있을 평행세계들이 소실했다.

자결에는 의미가 없었다. 오로지 비극이라는 결말을 맞이해야만 성이 풀렸던 것일까. 한낱 미개한 생명체가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대응할 수 있기나 한 것일까.

하물며 내 반쪽을 채워주던 달은 가지고 있던 모든 기적을 다하여 나를 살리기 위해 회귀를 반복했다. 언제나 절망을 토하는 구멍이 열리는 세계를 똑같이 반복했다고. 그렇게 이변의 창조주인 일화가 말했다.

오만했던 내 생각, 그녀와 나, 기구한 운명의 연결점은 우리에게 있어서 희극이 아니라 비극이었다.

이제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다.

그것은 이야기의 변칙을 만드는 장치, 일화가 신의 기계적 장치의 역할을 맡아줄 나와 같은 이방인을 모시어, 절망을 토하는 구멍에서 비극을 막는 동안, 나는 미지의 나무를 구성하기로 했다.

열 가지의 여정을 겪고, 내 숨은 여정은 또 다른 세계관을 지키고 있을 그에게 찾아가는 것. 하지만 서시의 본체를 붙들기 위해선 시작의 원정을 번복해야 하기에 그를 찾아갈 수 없다.

만약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끝마칠 수 있다면, 언젠가 우리를 찾아올지도 모르는 일.

두 가지의 세계선, 하나는 또 다른 이방인이 지켜야 할 곳. 하나는 유일한 마르노프 바바비어가 서시를 붙들고 아주 작은 이야기를 반복하며 인류를 구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우리들의 이야기는 없던 것이 되어버릴 것이다.

이 이야기는 끝이 날 수 없으니까, 기록으로 남을 수 없으니까. 그래도 혹여 그가 찾아오지 않을까.

이곳에 찾아온 그가 우리들의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아주 길었던 우리들의 여정을 남겨주지 않을까. 이제는 대답이 없을 달에게, 빌어볼 소원이 늘어버린 셈이다.

* * *

“그녀가 당신을 만나면 무척이나 연모했다고 전해달라는군요.”

전부 타버린 잿더미가 실바람에도 흩날리듯, 바바비어의 하반신이 사라지고 있었다.

상반신도 마찬가지였다. 얼굴의 일부분과 팔 한쪽도 없어진 지 오래라 누가 보아도 곧 사라질 느낌이 다분했다.

…베로니카의 부탁이 떠올랐다. 그녀가 사랑했던 이는 마르노프 바바비어, 빛으로 이끄는 자. 바바비어가 멋쩍게 웃었다.

“……그녀를 실제로 만났나 보군. …하하.”

간신히 새어 나오는 그의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만나기도 했으며 그녀의 최후를 선사한 인물은 다름 아닌 나였다.

바바비어와 베로니카는 유사한 운명을 타고났다. 처절하면서도 희망적인, 희생의 상징은 어쩌면 신의 기계적 장치로 일했던 내가 아니라 그들일지도.

“……그녀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녀가 어떻게 살아갔는지. ……말해주겠나, 아서.”

희미한 동공에서 무한한 호기심이 느껴졌다. 그 순간만큼은 생명력이 넘쳐 보였다.

그녀가 마녀의 종자로 태어나, 기구한 운명을 짊어지고 기억을 잃었다는 이야기는 빼버리는 것이 좋을까. 슬픈 이야기보다는 기분 좋은 이야기가 나을 것이다.

“저는 그녀를 ‘베로니카 선생님’일 때 만났습니다. 제가 데리고 있던 정령이 아팠던 나머지 자문할 자가 필요했거든요.”

그때 보았던 그녀를 떠올리며, 그리고 번외세계에서 만난 그녀를 떠올리며 설명했다.

그가 생동감 넘치는 베로니카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도록.

“……무척이나, …자상하고, ……아름다웠다는 말이군. …실제로 만나지, …못해, …아쉽지만, 괜찮다네.”

그가 희미한 동공을 감으며 웃어 보인다. 그곳엔 어렵게 얻은 평온이 있었다.

“……괜찮다네, 그녀와 나는 분명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야. …그렇게 믿고 있으니.”

어렵게 고개를 돌린 그가 나를 바라봤다. 초점 없는 동공이 나를 인식하고는 있을는지, 그저 인기척과 내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린 것이 분명했다.

“……멋진 동료들과, 수많은 모험을 했네.”

“…그리고, 정말 고귀한 여정이었어.”

바바비어의 육체가 대부분 소멸하며, 그 파편이 실바람에 흩날렸다.

그가 유유히 사라진다. 귓가를 스치며 나지막이 들려오는 그의 한마디가, 이제는 돌아가도 좋다고 말하는 듯하다.

―고맙네, 아서.

“……고맙긴.”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한다.

그 앞에서 반응 없던 해골 녀석들이 달그락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에, 멀리서 한 대 쥐어박을까 고민하다가 고개를 흔든다. 아무렴, 이제는 돌아가자.

용사의 쉼터로, 그들의 흔적인 너희들이 평온하게 지낼 수 있을, 델타 외곽의 어느 한적한 시골에 있는 어느 쉼터로.

“달그락, 달그락.”

“이 사장이 고생해서 찾으러 왔으니, 감사한 마음을 담아 두개골 돌리기를 해보도록.”

말이 끝나자마자 두개골 돌리기를 선보이는 녀석들을 바라보며,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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