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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랭크의 여관주인-219화 (219/222)
  • 219화

    * * *

    길게 늘어진 나무들 사이로 푸른빛이 새어 나왔다. 여명이 찾아온 지가 한참이었는데도 해가 완전히 뜨지 못했다.

    마치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처럼 지속하는 것은 여명뿐이었다. 푸르게 묽든 하늘 아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향해야 하는 곳으로 움직여주었다. 무심코 시선이 그곳으로 향한다.

    “축하해, 그토록 바랐던 결말을 맞이할 시간이 찾아왔어.”

    나무들이 가리고 있는 어두운 길. 상당한 질량의 무언가가 느껴졌다.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상당한 존재감이 결말의 숲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다.

    재가 되어 칠흑으로 몽땅 물들어버린 숲을 걷는다. 정면을 향할 때마다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마브리우스 산맥의 꼭대기보다 뜨겁다. 곧 도착하는가 싶어도, 가면 갈수록 날숨을 단번에 가둬버리는 열기만 짙어질 뿐이다.

    그 원천에 가까워지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대단하신 영웅들도 감당 불가라 생각한 탓에 내게 떠맡긴 것이다.

    농담처럼 넘어갈 수 없다.

    “마나에게 건네받은 마법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터무니없었을지도.”

    어차피 비극적인 결말로 끝난다면, 이 이야기는 없었던 것처럼 사라진다. 그 속에 포함이 되어버린 이 여관주인도 마찬가지. 돌아갈 곳이 없어진다는 이야기였다.

    본래의 세계관에 영향을 주진 않겠지만, 자칫하다간 이곳에서 죽고 영영 그들과 함께 사라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계속해서 열기가 뜨거워진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검게 물든 나무들이 지독한 탄내를 내뿜는다. 나는 전방으로부터 느껴지는 거대한 마력의 주인이 누군지 안다. 사납고, 흉측한 것이지만 결국 본질은 같다.

    “마르노프 바바비어.”

    우거진 숲이 끝났다.

    이어서 넓게 펼쳐진 대지가 숲 중앙에서 드러난다. 뜨거운 열기 속의 종잡을 수 없는 마력과 존재감. 빛으로 이끄는 자, 마르노프 바바비어의 최후, 마하블의 모습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내가 돌아갈 출구는, …저곳인가.’

    성난 불꽃을 연상하게 만드는 마하블의 뒤로 문이 보였다. 엑스칼리버에 돌연 나타난 문과 상당히 유사하다.

    ‘바보 같은 녀석들, 찾았잖아.’

    그 문 앞으로 7마리의 해골들이, 골렘들이 쓰러져있다. 먼저 결말에 도달한 영웅들의 찌꺼기, 모두가 찾고 있는 용사의 쉼터 직원.

    타오르는 불꽃은 분명 인간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전신이 불꽃으로 가득했다. 미약한 움직임에도 그 불꽃이 내는 열기가 전해진다.

    마하블이 고개를 돌려 시선이 내게로 향한다. 순간 마안의 뭉치가 무언가에 반응하여 마하블의 속성에 대응할 수 있는 마안을 도출하기 시작한다.

    [대상을 침묵시킬 수 있는 마안을 임의로 결속, EX랭크 : 하델의 마안 결속]

    마하블을 향해 강렬한 빛무리가 덮친다.

    그 사이로 붉은 화염이 수없이 발버둥 쳤다. 인류를 멸망으로 몰아넣는 화마는 제 손으로 하델의 빛을 걷어냈다.

    살짝만 스쳐도 허무로 돌아가게 만드는 그 빛을 걷어낸 것이다. 이윽고 귀찮은 짓거리를 해대는 나를 향해서 끔찍한 포효를 터트린다.

    “시끄러워, 가끔은 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적도 있는 법이야.”

    그 끝으로 하델의 마안이 나왔다는 것은 대응할 수 있는 속성이 창조주급의 힘이 아니고서야 없다는 뜻이었다.

    밟고 있던 땅에서 불길이 솟아오른다. 녀석은 시선만으로 나를 태워죽일 심산이다.

    “무엇을 바라보았다는 것만으로도 태워죽일 수 있다니, 내가 그 눈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저 구멍에서 나쁘지 않게 써먹었겠는데.”

    마하블 위로 버젓이 나타나 있는 절망을 토하는 구멍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고개를 돌리는 것 따위는 기대도 하지 않았건만, 무엇이 궁금한지 불꽃을 튀기며 구멍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끼에에에엑!!

    마하블이 괴성을 토해냈다.

    괴성이 하늘을 버젓이 지키고 있는 절망을 토하는 구멍을 향한다. 저 끓어오르는 염마에게 괴로움이나 슬픔 따위의 감정이 느껴졌다.

    남아있는 바바비어의 감정으로 추측된다.

    …――끼에엑!!

    …―끼에에에에에엑!

    “그래, 괴롭겠지, 원하지 않는 결말을 맞이해야 하는 것도, 그 결말을 유도하는 주연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마하블을 중심으로 사방이 불꽃에 휩쓸린다. 새까맣게 변질하여있던 숲이 화마로 인하여 몽땅 산화된다.

    지금까지 영웅들이 걸어왔던 숲의 일대가 없던 것처럼 불에 타들어 간다.

    [ 해당 장기(눈)에 ‘SSS랭크 : 셜록의 단서’ 지속형 마안 결속 ]

    셜록의 단서는 마하블의 핵을 포착했다. 심장 부근, 결말의 핵을 파괴하지 않으면 녀석은 몇 번이고 매서운 화마를 내뿜으며 나를 죽이려 들것이다.

    비극을 소멸하기 위해서는 그 근원인 바바비어의 의식을 없애야만 한다.

    “…저 핵을 부수는 일도 여간내기가 아니겠군, 온갖 초월 마법으로 구성된 육체라니.”

    보통 주신의 육체를 구성하는 기초에너지는 자연 마력이다. 그 자연 마력으로부터 태어나는 육체에, 서시의 창조력이 더해져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식한 존재가 탄생한 것이다.

    마나의 마법을 건네받지 않았더라면 분명 곤란했을지도 모르는 일. 게다가 일화가 남긴 창조력이 더해졌으니, 따지고 보면 마하블과 비등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쥐었던 아템의 칼끝은 마하블을 향했다.

    최종국면에 다시금 나타난 고장 난 장치가, 다시금 파국을 막을 수 있을는지.

    ―[결말 코드 인식 중… 인식 완료]

    ―[대상자로부터 카테고리 ‘최종국면’이 판단됨. ‘일곱 영웅의 일화’로부터 승인]

    ―[대상자의 ‘신의 기계적 출현’ 중, 마안의 뭉치, 완전 개안 / 마검의 뭉치, 부재로 인한 사용 불가]

    ―[대상자로부터 적용되는 모든 카테고리가 ‘침묵’에 고정됩니다]

    ―[오메가(omega) 랭크 : ‘엔드 오브 시나리오(End of Scenario)’ 초기화 후, ‘1회’차 결속 준비 중…….]

    ―[오메가(omega) 랭크 : ‘엔드 오브 시나리오(End of Scenario)’ 결속 준비 완료, 결속 코드를 입력하십시오]

    분명한 점은 이야기의 결말은 그들의 힘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파국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수단이나 기법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다만, 이는 신의 대명(大命)이 아닌, 인류의 대명(大命).”

    “그들이 직접 기중기를 내린 이상, 귀찮더라도 천사는 내려올 수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내 직원들도 데려가야지.”

    .

    .

    .

    ―[승인 완료]

    * * *

    새벽하늘의 구름이 두 존재가 뿜어내는 기운으로 인하여 잔잔히 흩어진다.

    대지는 붉은색으로, 하늘은 백색으로, 두 색이 서로를 매섭게 밀어붙였다.

    그 위, 어둡게 깔린 우주가 펼쳐진다.

    하나는 대지를 붉게 물들이고 있는 화마, 들끓는 불꽃이 대지를 달아오르게 했다.

    그가 하늘에 매달린 천사를 향해 수백 개의 불기둥을 쏴 올리니, 대지가 가라앉고, 하늘을 가르자 우주가 열린다.

    불기둥을 가로지르며 허공을 부유하는 새하얀 천사는 은색 빛의 검을 제 날개라도 되는 듯이 대지의 화마가 쏴 올리는 모든 불꽃을 무자비하게 베어냈다.

    ―그 안에 지독한 결말이 있었으니, 이 부르짖음은 일곱의 의지가 담긴 빛이라.

    천사가 그렇게 말하니, 푸른빛에서 벗어나지 못한 여명이 아침을 맞이하는 것처럼 사방이 빛으로 퍼뜨려졌다.

    ―비로소 이야기는 희극을 맞이하니. 감히 기계장치의 신은 일곱 의지의 뜻에 따라 기중기를 내린다.

    붉은 고리를 머리맡에 달고서, 은색 빛의 검을 쥔 천사는 절망을 토하는 구멍 아래에서 부유했다.

    염마로부터 불꽃에 휩쓸려 사라진 결말의 숲, 그 위에서 버젓이 비극을 상징하며 하늘을 뒤덮었던 그 구멍이 빛에 의해 서서히 무너진다. 비극의 무너짐과 함께 염마의 고통 섞인 굉음은 무섭도록 대지를 울린다.

    …――끼에 …―에에에엑!

    염마는 빛 속에서 소멸하지 않았다.

    내리쬐는 빛기둥에 갇힌 염마의 불꽃이 꺼졌다가 피어오르는 것을 수없이 반복했다.

    인류라면 공포에 젖을 법한 굉음을 토해내며 죽음과 부활을 거듭한다. 본능 이상의 무언가가 그것을 움직이게 만든다. 억지스러운 희극을 방해하기 위해.

    …―기에에에엑!

    그러나 매서운 불꽃을 두르고 있던 염마의 몸은 이전처럼 타오르지 못했다. 이윽고 빛이 사라지자 그 실체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인류를 닮은 형태, 붉은 기운으로 그 형상을 유지하고 있으나, 이야기를 땔감으로써 흉포하게 타오르던 그것은 다시는 강렬한 불꽃을 내뿜지 못했다.

    식어버린 잔재처럼, 실컷 산화했다가 찌꺼기만 남아버린, 이젠 미약한 불씨에 불가하다.

    그 불씨를 거두기 위해, 천공을 누비던 천사가 지상으로 내려왔다.

    지면은 마하블로 인하여 뜨거운 열기가 남아있었다. 대지가 칠흑처럼 그을렸다. 까만 대지 사이로 타닥타닥 타오르는 검은 모래를 지르밟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타닥, …타닥.

    마하블은 실로 나약한 불씨에 불과했다. 대지를 붉게 달아오르게 했던 빛이 죽어갔다.

    타닥타닥, 마하블에게 잔불이 올랐다.

    금방이라도 꺼질 것만 같은 화마의 핵이 서서히 그을려 흑색으로 물들어가는 육체 속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끼에엑―….

    천사는 이야기의 비극의 최후를 처단하기 위해 은색 빛의 장검을 들어 올렸다.

    새벽녘에 의해 푸르게 번쩍인다.

    “커튼콜은 끝났어, 대장.”

    꺼져가는 비극과 피어오르는 희극이 서로를 바라봤다. 서시의 바람은, 내세웠던 영웅들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었다.

    유성처럼, 새하얀 빛줄기가 강렬한 격음을 내뿜으며 어린 불씨를 향해 쇄도한다.

    쇄도하는 유성을 막기 위해서 대지 위로 거대한 불길을 태워보지만, 혼신을 다한 발악은 애처로울 뿐이다.

    그을린 땅 위를 아지랑이처럼 내달리던 새하얀 빛줄기, 천사의 검이 끝내 염마의 핵을 꿰뚫는다.

    ―.

    칼끝이 파고든 바바비어의 심장, 고동이 칠 때마다 불길이 튀어 오른다. 그렇게 몇 번의 뜀박질 끝에 간신히 고동이 멈췄다.

    영원토록 지평선에 숨어서 떠오르지 않을 것 같던 태양이 제 모습을 비춘다. 결말의 끝은 언제나 푸르른 새벽이었을 테지만, 이제는 비극을 게우고 맑은 햇볕이 그을린 대지를 밝힐 수 있을 것이었다.

    “……아, …서.”

    화산의 잔재처럼 칠흑처럼 그을린 육체는 더 인간의 것이라고 할 수 없었다.

    간신히 육신을 세우고 있던 두 다리가 파괴되며 상반신이 바닥에 떨어진다.

    지면에 드리우는 햇볕이 마하블의 얼을, 아니 바바비어의 얼을 비춘다.

    딱딱하게 그은 얼굴 피부의 파편이 깨지자, 그의 곱상한 얼굴이 나타났다.

    여전하게도 그 붉은 눈동자는 열정과 희망이 서려 있었다. 천사는 몸을 숙이며 그 옆으로 앉는다. 비극의 최후가 아닌, 빛으로 이끄는 자의 최후를 기다리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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