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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랭크의 여관주인-218화 (218/222)
  • 218화

    * * *

    “그렇게 내버려 둬도 괜찮은 걸까요.”

    “그녀도 그것을 바랐으니, 괜찮네.”

    데크에던이 눈을 감고, 레니아단은 그곳에서 머물기를 바랐다. 좋은 핑계라면 브렌트 잉크처럼 그녀도 안식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바바비어는 흔쾌히 수락한다.

    무릇 며칠이 흘렀으니, 그녀는 지금쯤 안식에 들었을 것으로. 차라리 잘된 일이다.

    셀로닌은 수염을 매만지며 헛기침을 했다. 이윽고 8인의 영웅이 4인의 영웅이 되었다. 바바비어를 필두로, 베일리아, 셀로닌, 그리고 아서. 교대 인원은 두 명에서 한 명으로 줄어든다.

    “……콜록, 콜록.”

    “괜찮으십니까, 셀로닌.”

    “아, 괜찮네. 걱정하지 말게나.”

    셀로닌의 안식도 머지않은 듯했다. 검버섯 하나 없이 깔끔했던 피부가, 점점 주연의 죽음으로 인하여 어두워지고 있다.

    휴식은 더욱 길어졌다. 결말의 문지기를 지나쳐 숲속 내부로 더욱더 깊게 들어가자, 그 많던 절망들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셀로닌의 거동이 불편하다는 것을 알아챈 바바비어가 그에게 다가갔다.

    “괜찮겠나, 셀로닌.”

    “하하, 사실 괜찮다고 보기에는 어렵겠지. 아무래도 곧 안식에 들어설 것 같군. 코앞이 결말인데 말일세.”

    “걱정하지 말게, 이다음의 회귀는 없으니까. 지금까지 고생 많았네, 나의 친구.”

    셀로닌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수염을 매만졌다. 바바비어가 정찰을 위해 자리에서 벗어나자 베일리아가 그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베일리아, 마지막까지 잘 부탁하네. 아서 군은 처음이라 자네의 안내가 필요할 걸세.”

    “이 순간을 위해 모두가 노력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행한 무한한 여정에 셀로닌이 없었더라면 많은 것들이 불가능했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서의 마지막 안내는 제가 할 테니.”

    곱게 뻗은 하얀 수염의 마법사는 조용히 웃었다. 이내 갈라지고 썩어 문드러진 나무들을 바라보더니 다시금 하염없이 웃었다.

    “아서, 떠나기 전에 담소나 나누세. 우리 대장도 그렇고, 베일리아도, 이제는 지겹다고나 할까, 내가 그들인지 그들이 나인지 원.”

    셀로닌과의 담소는 그렇게 대마법사다운 것이 아니었다. 여관에 손님들에게서 나올 법한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전부였다.

    “용사의 쉼터, 가보지 못했다는 게 한으로 남을지도 모르겠군. 자네는 아주 영업에 뛰어난 인물이야, 옛이야기처럼 듣기만 해도 설레는 기분은 오랜만이라네.”

    여관에 대한 이야기가 오감으로써 그는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아서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용사의 쉼터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아서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전부, 사장을 제외한 여관의 종사자들 덕’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수염을 습관처럼 만지던 셀로닌은 자신이 만든 골렘, 아서의 직원들에 대해 생각했다.

    “셀로닌, 뭔가 문제라도?”

    “흐음, 내 기억의 찌꺼기 중 하나가 자네의 여관에서 일하는 충실한 직원이 되었으니, 뭐 따지고 보면 가지 못한다는 말은 실언이었군.”

    일곱 마리의 골렘은 회귀 이후 기억을 잃은 영웅들이 그 이전에 있었던 기억을 되찾기 위해 만들어진 저장소. 세이브포인트.

    결말 앞에선 바바비어가 이전 회귀에서 수거한 골렘들을 ‘일화가 모체인 베일리아’의 힘으로 다음 회귀가 이어질 세계에 이동시킨다.

    이어서 ‘결말과 하나 된 바바비어’가 ‘일화가 모체인 베일리아’에게 죽고 나면, 다시금 회귀가 시작된다.

    “아서, 우리가 자네에게 고마운 이유를 대라고 한다면 아마 끝도 없을 걸세. 먼저 우리를 대신하여 절망을 토하는 구멍으로 들어가 비극을 막아준 것.”

    “그리고 자네가 살던 원래 세계로 돌아가지 않으며 또 한 번의 비극을 막아낸 것.”

    아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직접 말하기 이전에 ‘이곳과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셀로닌은 알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을 짓고 있는 아서를 바라보며 피식 웃는 셀로닌이다.

    “이보게 아서, 자네가 이방인이라는 것쯤은 나뿐만이 아니라, 함께했던 모든 영웅이 알고 있었다네. 꼭 무언가를 해내는 주연은 죄다 ‘이방인’이더군, 그것이 ‘서시’의 선택자이든, ‘일화’의 선택자이든 말이지.”

    “…저 말고도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이 있다는 말이군요?”

    셀로닌은 손가락을 가리키기 위해서 고개를 돌렸지만, 바바비어가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도 결말을 향한 것이겠지, 위치상 바로 코앞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깨를 으쓱거리며 한숨을 쉬는 셀로닌이 아서와 눈이 마주치자 정적이 찾아온다.

    “7인의 영웅, 우리들의 중심, 붉은 머리의 장발을 한 사내의 이름은 마르노프 바바비어, 인류를 빛으로 이끄는 자! …바로, 그가 자네와 같은 이방인이었다네.”

    “……말도 안 돼.”

    “게다가 그의 출신이 함구르? 아니지 이러한 발음이 아니었을 터, …한궈르?, 한구르?”

    “이렇게 발음하는 겁니다. 한국이요.”

    “그래 그 걸세, 그것이야, 한구르!”

    배를 부여잡으며 폭소를 터뜨리는 셀로닌, 새하얀 수염 위에 침이 튀겼다. 이곳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한국이라는 발음이 그에게는 어지간히 웃겼던 것이다.

    “……후우.”

    그가 한숨을 푹 내쉬며, 바바비어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사내라 덧붙였다.

    “대장께서는 한구르라는 곳에서 태어났지만, 그곳이 어떤지 모른다더군.”

    “…한국에서 태어났는데, 한국을 모른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외국에서 살았군요?”

    그가 아서의 손을 꾹 잡았다.

    셀로닌이 바바비어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그때 했던 행동과 다를 바 없다. 그저 대상이 아서로 바뀌었을 뿐이다.

    “암,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

    푸르른 자연을 온통 칠흑으로 뒤덮은 절망 한가운데, 늘 밟아왔던 어딘가에서 대수롭지 않게 몸을 눕는 대마법사.

    어울리지 않게 그의 수염이 흐드러졌다.

    그가 입고 있던 로브는 제멋대로 바닥을 누빈다. 자유를 만끽한다는 느낌으로, 드디어 모든 것을 내려놓은 모습이었다.

    “…안식에 들기 좋은 날씨군.”

    * * *

    저녁이 되었다. 슬 불침번을 정해야 할 시간임에도 원정대의 중심인 바바비어의 행방이 묘연했다.

    “베일리아, 대장은 어디에 있는 겁니까?”

    이를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으련만, 안식에 들어선 셀로닌도, 붉은 머리 사내와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하던 베일리아도 그의 행방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회귀하지 않았던 여정 때처럼, 먼저 결말에 도착한 뒤, 아서를 기다릴 겁니다.”

    바바비어의 불꽃 없이도 베이스캠프는 유지될 수 있었다. 징그러울 정도로 득실거리던 절망들이 도리어 보기 어려워졌으니, 불침번도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다.

    적당히 몸을 숨길 수 있을 법한 썩은 거목 아래. 셀로닌이 잠들어 있다. 안식, 바바비어는 그의 안식을 지켜보지 못했을 텐데.

    ‘당신의 안식을 축하합니다. 그리고 좋은 직원들을 남겨줘서 고맙네요. 셀로닌.’

    워낙 긴 시간 동안 함께해온 까닭일까, 셀로닌 또한 죽음에 대해 개의치 않은 듯했다. 아니 모든 영웅이 그랬다. 베일리아의 시선이 눈을 감은 셀로닌을 향했다.

    “분명, 좋은 꿈을 꾸고 있겠죠.”

    “당신도, 베일리아도 머지않았겠어요.”

    그는 늘 최후의 최후까지 남아있었다고 했다. 뭐랄까, 이들의 다음 회귀를 위해서 뒷정리를 맡은 듯했다. 그가 나지막이 얘기했다.

    “여기서 조금 더 걸어가면, 당신의 직원들이 결말 앞에서 의식을 잃은 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원정대의 수많은 회귀 이야기 중, 내가 만난 해골들이 어느 회귀 시점의 저장소인지 알 수 없다. 영웅들에게 들은바, 모든 세계관이 하나로 통합되며 이야기를 지탱하는 모순과 개연성이 섞여버린 탓이다.

    “그 앞을 버젓이 지키고 있는 결말을 맞이해야겠죠. 우리 대장님이라던가.”

    “아서는 역시 눈치가 빠르군요.”

    비르테리아도 그랬으니까, 결국 비극이라는 결말과 동조하는 것은 주연의 역할을 맡은 자였다. 서시는 늘 악인을 주연으로 내세웠다.

    바바비어가 회귀를 반복해야만 했던 이유도, 결말을 맞이할 수 없었던 이유도, 여정을 통해 확신할 수 있었다.

    ‘사는데 피곤했겠군, 무척.’

    그는 비르테리아와 다르게 한없이 선에 가까운 인물이라고. 빛으로 이끄는 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불리는 데 부족함이 없는 느낌이었다.

    “바바비어의 정신은 회귀 이후로 떠나고, 남은 육체는 비극의 불꽃이 됩니다. 마하블은 권능을 지닌 그 자체로서, 모체인 일화로부터 얻은 창조력으로 그 잔재를 없애는 것까지가 제 역할인 셈이죠.”

    베일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을 잡고서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난다.

    “지금까지 이를 반복했으니, 이제는 결말을 지어야겠지요. 다만 이전과 달리 바바비어의 정신까지도 결말과 함께 동조될 것입니다. 결말을 지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모든 세계관의 중심인 곳에서 주연인, 당신뿐.”

    동이 트기 시작했다. 흐릿한 푸른빛으로 밝아지기 시작하는 하늘을 보며 한숨을 내쉰다.

    “제가 직원을 찾기 위해서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당신들은 이것을 계속 반복하고 있었겠죠.”

    고개를 끄덕이는 베일리아였다. 길고 하얗게 늘어진 머리가 바람에 날렸다. 그의 모습이 은은하게 옅어졌다.

    “일화의 남은 창조력, 당신에게 건네는 것까지가 제 마지막 역할입니다.”

    그가 히죽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과거에 아서가 부여받았던 권능을 일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당신이라는 신의 기계적 장치란, 모두 이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니까요.”

    이미 잔뜩 옅어진 잔상 같은 그로부터 익숙한 기운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무릇 아저씨가 떠올랐다.

    “그들의 의지를 이어받아, 끝나지 않는 이야기의 결말을 지어주시길.”

    그가 빛줄기에 번지며 소멸했다. 형식은 다르나, 또한 안식을 얻었다고 볼 수 있을까.

    막내에게 의지를 넘겼다며, 가장 궂은일을 남겨버린 영웅들은 모두 사라졌다.

    “완벽하게 떠맡겨졌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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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가시의 장막(Invisibility Curtain) 설정 완료, 고유 차원으로부터 연결―…. 대상을 카테고리 EX로 지정.]

    [권능의 수명까지 대략 ‘■시간’(파악할 수 없음), 마안의 뭉치(Bundle of Magical Eyes) 개안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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